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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수필창작아카데미 7차시 합평 자료(2026년 4월 13일 월)
1. 떠난 자와 남은 자 /황무선3
1. 며칠 전, 새벽에 울리는 휴대폰 소리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큰 시누 남편의 별세 소식에 온몸이 경직되었다. 아버지처럼 살가운 분이었기에 피부에 느끼는 상실감은 납덩이가 되었다.
2. 고인이 환하게 웃고 있는 영정사진을 바라보니, 눈물이 하염없이 볼을 타고 흘렀다. 몇 년 전 시누이 가족들과 설악산에서 단풍놀이를 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되살아났다.
3. 시매부는 오랜 기간 양구에서 한약방을 운영했다. 한약방을 찾는 환자들에게 몸의 상태를 진맥하여 가족처럼 침을 놓아드렸다. 환자들은 시매부의 한약방을 내 집처럼 자주 찾았다.
4. 나에게 처남댁이라는 호칭을 쓰며 정답게 말을 걸던 시매부였다. 언제였던가 “처남댁, 장모님도 대단하고 처제들이 많으니까 나만 믿고 따라오세요”라며 온가족이 있는 곳에서 능청스럽게 새 식구를 편들어준 시매부가 아니었던가. 천군만마처럼 느껴졌고 의지하는 마음이 생겼다.
5. 나는 첫 아이를 출산하고 스트레스와 혈액 순환의 장애로 오른쪽 팔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 시매부가 처가인 대구에 내려 오시면 성심을 다하여 내 팔에 침을 놓았다. 내가 양구에 다니러 갈 때도 팔부터 내미라고 아버지의 마음으로 채근하셨다.
6. 예전에는 양약에 비해 한약에 의존하던 시대였다. 시매부의 한약방은 오랜 기간 터줏대감의 역할로 늘 문앞이 붐볐다. 약효를 본 손님들의 입소문으로 늘 흥청거렸고 한약방은 삽시간에 유명세를 탔다. 시대가 변하여 양약과 병원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지만 시매부의 한약방은 그렇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7. 시매부는 여든 중반에 들어서면서 기력이 약해져 병원에 다니는 일이 잦았다. 거기에다가 폐렴이 찾아왔다. 예방접종을 놓친 것이 크나큰 실수였다. 나이가 들면 면역이 떨어져 기침에도 오한이 들지 않은가? 작은 병이 겹치고 겹쳐서 결국에는 일어나지 못했다. 한약방을 찾아오는 환자를 위해서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았지만 자신의 몸과 건강에는 늑장을 부린 탓이었다.
8. 장례식장에는 수많은 지인들이 다녀갔다. 떠난 자는 말이 없지만 당신이 살아온 자취에 인연을 맺은 사람들은 안타까운 마음을 에둘러 표현했다. 내 몸과 내 일을 대하듯이 환자를 보살폈다고 한마디씩 거들며 다양한 체험담을 굴비처럼 엮었다.
9. 장례를 마치고 시누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시매부가 떠난 후에 모든 것이 눈에 밟혀서 많이 허전하다고 했다. 그도 그럴것이다. 시누는 항상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시매부를 위해서 배려하는 삶을 살았다. 집안의 맏며느리로서 대소사를 거뜬하게 챙기며 시매부가 평안하게 한약방을 운영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10. 시누는 편찮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기도 했다. 아픈 어머님을 위해 손과 발이 되었고 몸에 좋은 음식을 찾아서 지극정성으로 보필했다. 시댁 가족과의 유대관계에도 마찰없이 이해하고 양보했다. 세 명의 아들을 잘 키워서 짝을 맞추어 결혼을 시켰다. 그 많은 일을 여자의 힘으로 얼마나 힘드셨을까?
11. 시매부의 손을 덜어주려고 뒤늦게 공부하여 건강원을 운영할 수 있는 면허증을 취득했다. 손수 한약과 약초를 정성껏 달였다. 좋은 약초를 넣은 건강 음료를 남매들에게도 맛보이며 마음을 썼다.
12. 시누는 내게 어머니 같은 분이었다. 가난한 집안에 시집와서 고생한다고 항상 따뜻한 말로 용기를 주었다. 친정에 오면 구석에 있는 나를 일으키며 함께하려고 애썼다. 내가 아이를 낳았을 때도 몸에 좋은 한약을 정성으로 손수 달여서 여러 번 보내주었다.
13. 내가 안동에서 근무할 때, 시누는 먼 거리인 양구에서 반찬을 준비해서 오셨다. 며칠 동안 반찬 걱정없이 눈물을 삼키며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14. 삶이란 하나하나 떠나보내는 과정이다. 시매부의 죽음은 우리의 영혼이 이제까지의 몸을 벗는 깊은 잠이 아닐까. 한 줌의 유골이 된 주검을 보면서 쓸쓸함과 공허함이 모순이 되어 뒤엉킨다. 살아생전에 그토록 주변의 사람들을 위해 모든 것을 베풀어 주고 존경을 받으셨다. 시매부는 죽음 앞에서 한줌의 먼지가 되어 간다는 것이 세상사이와 죽음사이의 모순이다. 시매부는 이 세상을 떠났지만 많은 환자를 살린 따뜻한 마음과 발자취는 모두의 가슴속에 아름답게 숨 쉬리라.
15. 세상에는 언제나 떠난자와 남은 자가 존재한다. 시매부를 떠나보낸 시누이도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 상처가 아물 것이다. 언젠가는 시누도 세상을 떠나겠지만 남은 자는 떠난 자를 잊기 위해 단단해져야 하지 않겠는가.
16. 다만 떠난 자의 소중한 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해야 할 것이다. 남은 가족들은 고인의 발자취에 누가 되지 않도록 더 경계하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2. 마흔에 바다 건널 상 / 김창남 3
1. 어제는 새로 오신 신부님을 모시고 점심 식사를 함께했다. 신부님께서 인사치레로 듣기 좋은 덕담을 하셨다.
“무척 젊어 보이시네요. 비결이 무엇입니까?”
난 짐짓 농담을 섞어 한마디 건넸다.
“신부님 모시는 자리라 신경 좀 썼지요”
2. 식사를 마치고 화장실에 들러 거울을 보다가 혼자 웃음이 터졌다. 문득 식당에서 서빙 하는 할머니에게 “아가씨 같으시네요” 하면 “웬 농담을 그렇게 하세요” 하고 핀잔을 주다가도, 슬그머니 화장실에 가 거울 앞에 서서 웃음을 짓는다는 얘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람 마음이 다 그렇고 그런 모양이다.
3. 1860년, 대선 후보였던 ‘링컨’에게 열한 살 소녀 그레이스 베델이 편지를 보냈다.
“링컨 아저씨, 저는 아저씨가 훌륭하게 되길 바라요. 그런데 아저씨 얼굴이 너무 못생겼어요, 턱은 주걱턱이고 눈은 움푹 들어갔고요. 광대뼈는 왜 그렇게 뾰족 튀어나왔나요. 우리 동네 어른들은 아저씨가 너무 못 생겨서 싫다고 하는데 어쩌면 좋아요. 하지만 아저씨가 수염을 기르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부드러워 보일 것 같아요”
4. 링컨은 이 말을 기꺼이 받아들여 수염을 길렀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당선 후 워싱턴으로 가던 도중에 소녀의 동네인 ‘웨스트 필드’에 들른 링컨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소녀에게 말했다.
“그레이스, 내 수염을 보렴, 널 위해 기른 거란다”
5.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은 동상으로 만들어져 ‘웨스트 필드’에 세워져 있고, 소녀의 편지는 ‘디트로이트 공공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턱수염은 링컨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링컨에게도 타인에게 비치는 모습은 그토록 중요했던 모양이다.
6. 흔히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고 한다. ‘신언서판’은 중국 당나라 시대 인재 등용의 기준으로, 그 첫 번째가 외모에서 풍기는 풍모였다. 좁은 소견으로는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판’이 외모보다 우선해야 맞을 듯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됨됨이를 가늠하는 관문은 외모, 즉 용모를 더 중요시한 것 같다.
7. 난 주위에서 젊어 보인다거나, 동안童顏이라는 얘기를 제법 듣는 편이다. 속으로는 은근히 그 말을 즐기기도 한다.
농협에 갓 입사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사무실에 한 노인이 찾아와 직원들의 관상을 봐주겠다고 했다. 직원이 많지도 않았고 점심 뒤 한가한 시간이라 다들 복채를 조금씩 놓고 관상을 보았다.
출납 여직원에게는 ‘기린 상’, 대부 담당 선배에게는 ‘곰 상’, 누구는 ‘사슴 상’, 누구는 ‘다람쥐 상’이라며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었다. 듣기에 좋지 않은 말은 없었다.
8. 내 차례가 되자 그는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호랑이상이네”
내가 범띠인 걸 어찌 알았을까. 직장에서도 성공할 상이고, 마흔이 넘으면 바다를 건널 운이 있는 상이라고 덧붙였다. 꾀죄죄한 노인에게서 그런 말을 들으니 어쩐지 우습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누나 같은 여직원들이
“창남 씨한테 잘 보여야겠네. 나이가 몇 살만 더 먹었으면 좋을 텐데”
하며 웃어 대자 사무실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는, 내가 들은 말 중에서 가장 기분 좋은 말이었다.
9. 마흔 살에 차장으로 승진하여 고향으로 발령을 받았고, 마흔두 살에는 지역본부 과장으로 영전했다. 남보다 빨리 승진했고, 모두가 탐내는 자리를 맡아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해 태국과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를 포상 여행으로 열흘간 다녀왔다. 해외여행 자율화가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10. 처음으로 가져보는 해외여행 길에서 오래전 관상 보던 이가 떠올랐다. ‘마흔 즈음이면 바다 건널 상’이라더니 비행기 타고 바다 건너가는 이걸 말한 건가. 비행기 좌석에 머리를 기대고 혼자 픽 웃었던 기억이 났다. 관상쟁이 말이 맞았다면 참 소박하고도 정확한 예언이긴 했다.
11. 그 시절 은행은 외모를 중요하게 여겼다. 매일 아침 머리를 감고 포마드를 발라 넘겼다. 잘 다려진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단정하게 매는 것이 일상이었다. 직원들끼리는 농담으로 ‘꽃미남’이 되어야 한다고도 했고, 능력은 외모 다음이라는 말까지 주고받았다. 예금 유치를 위해 거래처를 찾아 발로 뛰며 많은 사람을 만나야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12. 퇴직 후에도 한동안은 매일 면도를 거르지 않았다. 친구들과 점심 먹는 자리에도 넥타이를 매고 나갔다. 친구들도 다르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격식은 차츰 번거로움이 되었고,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편안함을 쫓다 보니 자연스럽게 게으름과 타협하게 되었다. 넥타이는 성당 주일미사나 예식장, 장례식장에 갈 때만 찾는 특별한 물건이 되었다.
13. 퇴직한 지 어느덧 이십 년, 이제는 넥타이 매지 않는다. 면도도 이틀에 한 번이면 족하다. 티셔츠에 평상복 바지가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예식장에는 밝은색 티셔츠에, 장례식장에는 검은색 티셔츠에 양복을 걸치고 간다. 웬만한 자리에는 늘 점퍼 차림이다.
14. ‘신언서판’에서 이제는 ‘판’이 먼저인가 생각하다가 문득 깨닫는다. 지금의 나는 ‘신’도 ‘판’도 아니다. 그저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늙은이가 되었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외모에 너무 무심한 게 아닌지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지난달에는 얼굴에 점을 뺐고, 다음 주 금요일에는 손녀가 눈썹 문신하러 가자는 성화에 못 이기는 척 “그러마” 했다. 나이 들어 점을 빼고 눈썹 문신을 한다고 얼마나 달리 보일까 싶으면서도 말이다.
15. 어쩌면 사람은 생이 다하는 날까지 다른 사람에게 좋은 모습으로 남고 싶은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 존재인가 보다.
노화는 막을 수 없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피할 수 없다면 마음가짐이라도 바꿔야 하지 않을까.
16. 어느 수녀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얼굴은 마음이 건강해야 빛이 납니다. 그래서 얼굴에는 자기 책임이 있습니다. 주름이 깊더라도 마음이 편안하고 넉넉해 보이는 얼굴은 아름답습니다”
17. 주어지는 삶에 감사하고, 욕심의 자리에 만족을 채우는 삶. 경쟁과 시기 대신 지혜를 나누는 삶, 그런 삶을 살아낸다면 내 얼굴도 조금은 맑아지지 않을까. 멋진 노인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거울 앞에 비춰본다.
18. 신부님!
계시는 동안 제가 계속 젊어 보이도록, 아니 맑아 보이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3. 一日一善(일일일선 /진일3
1. 엊그제 화원에 5일장 열리는 아침 산책길에 어느 장사꾼이 보드블럭 사이에 난 잡초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물을 주는 가 싶어 '좋은 일 하십니다. 생명은 살려야 지요.'하고 인사를 하니깐에 '잡초는 죽이든지 뽑아내야지요'하고 답변을 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것은 물이 아니고 묵은 때 벗겨내는 강한 화학 세정제인 것 같았습니다.
그것을 뿌리므로 잡초를 죽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엄밀히 보아서는 살생에 가깝습니다.
2. 저는 보드블럭 틈사이에 있는 흙속에 뿌리 내리는 강인한 잡초의 생명력이 대단하다고 느끼는데, 보통 사람은 그냥 필요없는 잡초로 여기고 죽여야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꽃이라도 피우며는 반갑게 보고 '대단하다'고 얘기도 해 주곤 합니다.
3. 길 가는데, 키낮고 작은 이 잡초들이 무슨 문제를 일으키는 지 알 수가 없네요.
사람들 발에 밣혀서 키낮게 엍드려 자라므로 걷는데, 방해줄 것도 없는 데 말입니다.
오히려 걷다가 미끄러워 낙상할 수도 있음을 예방할 수도 있는 완충역활도 될 것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4. 잡초가 어디 따로 있나요?
길가에 피어나는 잡초같은 민들레나 엉컹퀴 등은 약초도 되는데, 그 질긴 생명력이 약이 될 것 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밭에 재배하는 상추나 배추나 들에 피는 개나리나 진달래나 장미같은 꽃들은 예쁘고 소중히 여기면서 이름없는 길가의 잡초나 밭과
들의 잡초들을 무시하면서 살아갑니다.
5. 작년 어느 날, 배고프고 헐벗은 걸인이 돼지국밥집 앞에 앉아있어 저가 식당에 같이 들어가자고 했더니, 출입을 제지 당해 못 들어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식당에 들어가서 1만원 주면서, 밖의 저 분에게 국밥 한 그릇 내어주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을 드렸지만, 거절 당했습니다.
뜨거워서 입에 화상당할 수도 있어서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옷이 추하고 불결스러워도 이런 겉모습만 가지고 사람을 차별하고 무시해서야 되겠는지요?
걸국, 저는 그 걸인에게 그냥 1만원을 드리며 알아서 다른 거라도 사 드시라고 애기하였습니다.
6. 여러분께 묻습니다.
길가에 사람이 쓰러져 있거나, 배고파 구걸을 하는 분이 더러 있는데, 그냥 지나칠 것인지, 한 푼 드리거나 살펴 드러야 할 것인지, 여러분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대부분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남의 일에 무관심하고 무정한 이기주의자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업장이 두텁고 욕심많은 중생입니다.
나이들수록 세상이 허망하고 인생이 無常무상 하지요. 이제부터라도 복을 지어가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7. 복을 지어감에 가장 중요한 마음은 생명사랑이 먼저 마음속에 내재해 있어야 합니다.
복을 짓겠다는 마음이 철저하며는, 천지에 작은 日常일상속에서도 널려져 있습니다.
하루 한가지 착한 일인 '一日一善일인일선'을 오늘도 찾아보면서 살아가시길 권합니다.
이렇게 중생교화를 위해 勸善권선하면서 저 역시도 부처님의 제자로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매일 서원하며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4. 매화(梅花) 교수님/ 박인규2
1.순리대로 살아야 하나?. 순리를 거스르며 살아야 하나?.
사람들은 흔히 세상을 순리대로 살라고 말한다.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흐름을 거스르지 않게 모난 돌이 되지 않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보다 세상의 분위기를 먼저 살피고 남들이 장에 가면 함께 장에 가고 바람이 부는 방향에 몸을 눕히며 편안한 길을 택한다. 그렇게 사는 것이 손해를 덜 볼 수 있고 위험도 적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이것이야 말로 세상살이의 상식일 것이다. 따뜻한 봄이 왔을 때 꽃을 피우고 햇살이 충분한 계절에 열매를 맺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듯 사람도 형편과 이익을 우선 살피며 사는 것이 당연하다. 너무 일찍 앞서가면 추위에 상할 수 있고 너무 튀면 세상의 정(釘)을 맞을 수도 있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은 적당히 때를 기다리고 적당한 흐름에 몸을 맡기며 살아간다.
3.그런데 자연 속에는 이 상식을 조금 비껴가는 존재가 있다. 바로 매화(梅花)다.
다른 나무들이 아직 겨울잠 속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고 찬바람이 산자락을 훑고 지나갈 때 매화는 꽃망울을 터뜨린다. 다른 나무들이 긴 겨울동안 힘을 아끼며 봄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매화는 묵묵히 차가운 땅속에서 생명활동을 부지런히 이어간다. 마침내 봄이라 부르기에 이른 시절에 가장먼저 꽃을 피운다.
4.만약 매화가 세상의 이익에 밝은 나무라면 조금 더 따뜻해질 때까지 기다렸을 것이다. 찬바람이 잦아들고 햇살이 넉넉할 때 꽃을 피우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편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화를 보고 있으면 마치 세상의 상식과는 다른 길을 선택한 존재로 보인다.
5.학창시절 존경하는 교수님의 좌우명은 ‘상식과 반대로 사는 것’이었다. “세상은 다 이익과 편리를 따라가기 마련이지만 정말 귀한가치는 그 상식과 반대로 살 때 비로소 나타나게 됩니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리 모임 이어서 늘 최우선인 사람, 학위 받고서도 마치 논문 쓸 때 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 최고 자리 올라가서 더 잘하는 사람, 시간이 정말 없을 때 그래서 더 귀한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는 사람, 저는 그런 사람을 좋아하고 제자여도 존경 합니다”
6.세상에도 매화 같은 사람들이 있다. 모두가 편안함과 이익을 먼저 생각할 때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있다. 세속적인 욕심을 조금 내려놓고 때로는 남들보다 앞서 고생을 감수하면서 스스로 옳다고 믿는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 그 길이 외롭고 불편할지라도 쉽게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그들을 바라보며 묘한 존경과 선망을 느낀다.
7.매화를 보면서 한수 배운다. 남들과 조금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이익보다 가치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때로는 더 깊은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어쩌면 세상을 향기롭게 만드는 것은 순리를 따르는 무성한 꽃이 아니라 세찬 추위를 뚫고 나오는 매화의 거스름 기상(氣像) 아닐까.
5. 돌아보니 겨릿소였다. 고영숙/2
1. 소 두 마리가 나란히 멍에를 등에 지고 비탈진 밭을 겨리질하는 장면을 TV속 영상에서 우연히 보았다. 모든 농사일을 기계로 대신하는 요즘과 달리 묵직하고 느린 걸음으로 거친 밭을 일구는 장면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두 마리의 소와 농부가 호흡을 맞춰 한 해의 농사를 시작하는 모습 속에서 내 삶의 지난날을 잠시 돌이켜보았다.
2. 봄을 맞이하기엔 채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그의 비탈진 밭 속으로 내가 불쑥 뛰어들었다. 크게 놀란 그가 고개를 저었지만 각자 짊어지고 살아온 삶의 무게를 함께 나누고 발걸음의 장단을 잘 맞추어 깊게 고랑을 파고 흙을 일구기로 다짐하며 우여곡절 끝에 둘은 겨릿소가 되었다.
3. 내가 선택한 안 소는 매사에 빈틈이 없었다. 모든 일에 철저히 준비하고 살피는 성격이라 발을 맞추어 함께 쟁기질하기에는 힘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입 밖으로 불만을 나타내진 않았다.
4. 남편은 한 여자의 남자로만 살아가기엔 많은 어려움을 안고 있었다. 가난한 시골살림에도 공부를 시켜주신 부모님께 효도하느라 온갖 고생을 하며 학창 시절을 보냈고 공부하러 대구로 온 동생들을 품에 안아야만 했던 사람이었기에 나와는 약간의 틈이 있는 사람이었다. 늘 유쾌했고 위트가 넘쳤던 그의 모습 뒤쪽에는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삶의 고단함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5. 우리는 언 땅도 일구고 험한 밭도 일구며 각자의 자리에서 멍에를 함께 메고 열심히 살았다. 그동안 어찌 평평한 밭만 일구었겠는가! 서로가 멍에를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순간들도 많았지만 가을의 수확을 꿈꾸며 봄을 기다리는 농부처럼 인내하고 참으며 서로에게 흡수되어 잘 견뎌온 것 같다.
6. 뒤늦은 공부를 하겠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망설임 없이 허락해 주었다. 첫 아이가 두 살 되던 해에 대학원에 진학하여 때 늦은 공부를 시작했다. 모든 불편함을 감수한 남편의 외조가 시작되었다. 실험을 위주로 하여 논문을 써야 하는 공부라 어려움은 당연하리라 생각했지만 예상치 못한 힘겨운 순간들이 참 많았다. 밤을 새워 실험을 해야 하는 날이 밥 먹듯 많았고 부족한 실력으로 자괴감이 쏟아져 나와 포기하고 싶었던 날도 있었지만 아내와 엄마라는 자리를 비워내고 어렵게 하는 공부였기에 열 배, 백배 치열하게 노력한 결과 몇 편의 논문에 공동저자로 이름도 등재되었다.
7. 석사과정이 거의 끝날 무렵 분리불안 탓인지 아이가 사흘이 멀다 하고 병원신세를 졌다.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외가에서 지내야 했던 딸아이의 스트레스가 도를 넘은듯했다. 외할머니의 지극한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부재를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산처럼 가로막힌 현실 앞에서 깊은 갈등이 일어났다. 남편과 지도교수님의 완강한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딸을 뜨겁게 안았다. 엄마이기 때문이었다. 늘 엄마를 보게 된 딸은 예쁘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내 꿈은 이와 함께 멀어졌지만 엄마라는 든든한 울타리로 살아가는 것도 싫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8. 모든 마음의 갈등들이 가라앉고 일상이 평온하게 잘 지나갔다. 많은 세월이 흘렀다. 평소 크게 사업을 하던 동생의 힘든 소식들이 가끔씩 들려왔다. 불안한 마음이 가슴 한편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부도소식이 전해졌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 쉽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앞이 캄캄했다. 어려울 때 서로 도와야 한다는 생각으로 적지 않은 돈을 빌려주었던 터라 남편 볼 면목이 없었다. 쟁기를 끌며 겨리질하는 것이 어디 부부에게만 있는 일이겠는가, 형제간에도 함께 쟁기질을 해야 한다고 믿은 나에게 엄청난 스트레스가 덮친 것이다.
9. 드러내지도 못한 고통의 시간들이 소리도 없이 흘렀다. 다행히 동생은 일을 나름 잘 수습하여 관련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일을 잘 마무리지었다. 십 년이라는 혹독했던 세월과 마주하고 싸우며 지내온 고된 삶의 투쟁 끝에 일궈낸 마무리였다. 돈보다 먼저 건강해야 한다며 알게 모르게 동생에게 지금도 도움을 주고 있는 남편이 내겐 참 고맙고 든든한 안 소다.
10. 남편은 평생을 교육자로 살아온 사람이다. 누구보다도 제자들을 사랑했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지적능력이 뛰어나 자기의 전공분야에서는 실력을 인정받는 사람이었다. 늘 열정적으로 학교에 출근하던 그가 무엇 때문인지 별안간 명예퇴직을 입에 오르내렸다. 마흔에 낳은 둘째가 고2 때였다. 뒷일이 걱정되었지만 그가 결정하는 일에는 그럴만한 사유가 있었을 것이라 믿었기에 나도 기꺼이 그 뜻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11. 직장에서, 불편함을 넘어 병이 되어도 말 못 하고 살아온 무수한 시간들이 남편에게 있었다. 결근 한번 안 한 그가 일어나질 못했다.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다. 혼탁한 세상에 함께 발을 담그지 않은 대가였을까, 견딜 수 없는 그 어떤 무거움이 남편을 누르고 있다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 마음의 병이 깊어 힘들어하면서도 쉽게 퇴직을 결정하지 못하는 그에게 학교를 그만두라고 내가 먼저 제안했다. 남편의 얼굴에 희미하게 미소가 보였다. 뜻하지 않은 위기의 순간이었지만 나는 크게 웃어 그를 안심시켰다.
12. 퇴직 후, 얼마 되지 않아 모 대학교로 남편이 출강하게 되었다. 자신감 넘치는 환한 미소가 얼굴에 가득했다. 온 열정으로 강의하고 연구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안심이 되었다. 남편은 힘겨웠던 자신과의 싸움에서 굽히지 않고 일어나 밤하늘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밝은 별 시리우스로 다시 돌아왔다. 평생 마라소였던 내가 남편을 대신하여 굴곡진 밭을 말없이 갈아낸 안소의 역할을 이번에는 잘 해낸 것이다.
13. 사람들은 각기 다른 속도의 걸음걸이로 삶을 살아간다. 어떤 이는 바람처럼, 어떤 이는 강물처럼, 느리게 , 빠르게 , 속도를 조절하며 인생길을 걸어간다. 나도 그동안 상처받은 밭도 갈고 기쁨의 밭도 일구고 세월의 온갖 밭을 묵묵히 하루하루 열심히 겨리질을 한 것 같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후회 없이 살아온 세월이었다. 돌아보니 우직하게 멍에를 메고 느리게 느리게 걸어온 겨릿소의 걸음이었다.
*안소:농사 경험이 많은 소.
마라소: 농사 경험이 적어서 안소 와 나란히 일을 하며 일을 터득한다 함.
※시리우스: 밤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
6. 간이역 카페 /박현옥1
1) 봄 햇살이 따스한 날, 중학교 시절 친구 J를 만나기로 했다. 우리는 간간이 소식을 주고받다가, 큰아이 다섯 살 때 만난 이후로 연락이 끊겼다. 최근 몇 번의 통화로 서로의 근황은 알고 있었지만, 설렘으로 가슴이 요동을 쳤다. 어떻게 변했을까.
2) 서울에 사는 J가 고향에 모임이 있다면서 김천구미역에서 만나자고 했다. 시간의 더께가 십 년을 단위로 세 번이나 흘렀다. 차창 밖을 유심히 살피며 서행하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친구가 먼저 손짓을 했다. 머릿속은 이미 초고속 타임머신을 탔다. 그때도 그랬다. 체격이 좀 왜소했다. 우리는 변해있는 서로의 모습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세월의 흔적을 지우고 앳된 소녀의 모습을 찾으려고 애썼다
3) 점심을 먹고 오봉지 둘레길을 걸었다. 부드러운 봄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우리는 흐르는 물처럼 지나온 세월의 조각들을 하염없이 쏟아냈다. 친구는 공부를 잘했다. 고등학교도 전면 장학생으로 진학했고, 대학도 명문대 수학과를 졸업했다. 수학 교사로 재직하다가 건강이 좋지 않아 명예퇴직을 했다고 한다. 퇴직 후에는 글쓰기와 그림 공부를 해서 시집을 3권이나 냈다고 했다.
4) 비행기 조종사인 그녀의 남편은 올해 초 퇴직했다. 계약직 근무 연장을 요구받았으나 최근 잦은 사고의 충격으로 더 이상 비행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아이가 세 명인데 모두 교직 생활을 하고 있단다. 나도 큰아들 내외가 모두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기에 격하게 공감이 갔다. 내 며느리와 친구는 같은 수학 교사라는 공통점도 있다. 얼마 전에는 며느리가 출간한 수학책을 보내줬더니 서평을 블로그에 올려주기도 했다.
5) 우리는 간이역을 개조한 '대신역' 카페로 향했다. 예전 완행열차가 정차하던 그곳은 이제 운치 있는 카페로 변해 있었다. 유리로 된 출입문에 ‘이곳이 예뻐진다는 그곳인가’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중년의 남자가 손님을 맞았다. 카페 안은 다른 손님은 없고 조용했다. 입구부터 심상치 않더니 ‘여기 오길 참 잘했다, 예쁜 것은 다 너를 닮았다’ 등 재미있는 글들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순식간에 낯설음은 사라지고, 글귀를 찾아다니는 재미에 카페 안을 두리번거렸다. 여기저기 걸려 있는 액자들 속 시는 모두 주인장이 직접 쓴 작품이라고 했다.
6) 햇볕이 잘 드는 곳으로 자리를 잡고 앉으니 창 너머로 철길이 보이고 그 옆으로 ‘대신역’이란 익숙한 이정표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추억이 봄날 아지랑이처럼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7)기차역은 나에게 소중한 추억이 있다. 대신역은 대구와 김천 사이에 있는 간이역이다. 대학 다닐 때 기차를 타면 수도 없이 스치던 곳이다. 대학초년생 시절, 자취생활을 하던 나는 주말이면 김천에 있는 집엘 다니러 갔었다. 공무원인 아버지의 박봉으로 넉넉지 않은 살림살이를 해야 했던 엄마는 일주일 단위로 용돈을 챙겨주셨다.
8)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버스보다 저렴한 완행열차를 자주 탔다. 대학에서 만난 남편은 나를 바래다준다는 핑계로 토요일마다 기차여행을 즐겼다. 함께 기차를 타고 김천에서 내가 내리면 다시 대구로 돌아갔다. 일요일 오후면 내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역에 마중을 나오는 것도 잊지 않았던 그이였다. 돌아보니 순수했던 그때가 그립다.
9)차를 주문하자 친구가 가방에서 책을 한 권 꺼냈다. 시집이었다. 두 권을 가방에 넣었는데 무거워서 한 권만 가져왔단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래도 고마웠다. 그녀는 몸이 부실해서 무거운 걸 들고 다니지 못한다. 여행을 가도 남편이 캐리어를 끌어줘야만 한단다. 그 체력으로 교직 생활을 그렇게 오래 했다는 게 본인도 기특하다고 했다. 시집에 사인을 하는 친구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10)어차피 인생은 간이역이다. 잠시 머물다 가는 곳. 숱한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도 하면서 그렇게 산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기억 속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면 그것 또한 충분히 값진 삶이 아닐까.
11)기찻길 옆 간이역 카페는 남편과의 추억에, 친구의 추억이 더해진 공간이 되었다. 훗날 이곳을 다시 찾게 된다면 켜켜이 쌓인 추억들로 미소 짓게 될 것이다. 그때도 지금의 저 센티멘털한 주인장이 그대로 자리를 지켜준다면 더 따뜻한 공간이 되리라.
12)“삼십 년 세월이 급류처럼 다가왔지만, 우리에게 흘러들며 시냇물처럼 잔잔해졌어.” 친구가 보내온 문자 내용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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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문우님들의 작품이 넘쳐나서 즐겁습니다.
1학기 합평작은 최대 5편입니다.
일정을 고려하여 4편 이상 올리신 분들은 글을 천천히 올려서
순서를 조금씩 양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주 20일 작품 합평 예정 순서는
임성림2
손정희3
심묘락2
루남옥2
임미림3
이며
첫 작품을 내는 문우가 있으면
우선해서 변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1차 합평작품 수는 5-6편입니다.
차례가 빠지신 분은 댓글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