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 날짜는 다가오고.... 유네스코 인천 협회의 올 하반기 문화유산 답사 자료를 사전에 축적하기 위한 현장 확인 발길에 막바지 불이 붙었다. 산성(山城)을 중심으로 방학 중에 한 스무 군데쯤은 준비를 해놓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 요리 조리 시간을 나누고 게으름을 피우다가 아직 채 열 군데를 채우지 못했다.
바쁜 마음에 한 번에 두 군데씩을 해치워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8월 18~19일 이틀에 걸쳐 고른 곳이 험난하고 규모가 장대하기로 소문난 담양의 금성산성과 영광 법성포의 법성진성(法聖鎭城)이다. 법성진성은 산성은 아니지만 금성산성을 돌고난 남은 뒷심으로도 돌아볼만한 평지 진성인데다가 이제 우리나라를 통틀어서 몇 군데 남지 않은 진성과 산성을 비교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싶어서다. 게다가 법성진성은 그 위치와 남아있는 상태, 몇 몇 역사적인 흔적들이 문화재적인 가치가 높다고 알려져 있어(문화재청) 이쪽 방면을 들르는 길에 돌아볼만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법성포의 굴비백반 맛을 어우를 수 있으니 문화유적 답사지로서는 최적이다.
그러나 오후 두 시나 돼서 타기 시작한 금성산성을 기진맥진 근 일곱 시간 남짓의 사투 끝에 답사를 마치고 영광읍의 모텔에 들어서니 내일을 생각할 여력이 없다. 선잠으로 날을 새고 물먹은 솜같이 무거운 몸을 달래 일으켜서 법성포로 향하는 길에 내비게이션에게 길을 물으니 그런 목적지를 모른다고 잡아떼지를 않는가. 아뿔싸. 언제부터인가 이 영악스런 문명의 이기에 기대사노라 지도의 고마움을 잊은 죄가 크다.
별호가 난 그대로 맛난 법성포 굴비백반집 담벼락에 붙은 영광군 관광 안내지도에서도 그런 문화재는 외면을 당하고 있다. 할 수 없이, 몇 번인가 기대가 배반을 당했던 기억이 있기는 하지만, 면사무소를 찾는 길이 그래도 유일하게 확실하고 안전한 길 찾는 수순이다.
면사무소에 길 찾는 사람 응대하는 담당자가 있을 리는 만무한 일이고...크든 작든 관청은 찾는 사람을 주뼛대게 하는 곳이라서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더듬는 내게 뒷자리에서 웃음이 얼굴 하나 가득한 여성계장(공개적인 글에 공직자에 대해 더 이상의 외모 묘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유감이다)께서 다가서며 물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이 간단하고 흔한 한 마디의 질문이 어떤 음성의 톤으로 어떤 표정과 함께 던져지느냐에 따라 어설픈 내방객의 심정은 천지간을 왕복하게 마련이다.
나는 과거 공직 생활시절에 한 중앙부처의 공무원으로서 공무원 친절교육의 교관노릇을 했던 경험이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참으로 곤혹스러운 것이었다. 상부의 “뭣도 모르는 주문”과 현장의 피곤한 실정, 상업적이고 형식에 매달리는 민간 강사들의 어처구니없는 “쇼” 사이에서 “친절은 인정에 관한 것이고 한 인간의 인격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배출되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라는 지론을 가지고 있던 내게 그 경험이 즐거울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런 내게 있어 그 계장님의 첫 조우(遭遇)는 아주 상쾌함 그 이상이었다. 상세한 지도를 그려주며 진행된 안내에 이어서 매우 자연스럽게 “제가 지도를 잘 못 그려서요... 제 차로 모셔다 드리면 어떠실지...”라는 배려에 이르러 나는 송구스러움을 느낀다.
법성진성의 버려진 듯한 지금의 모습에서는 크게 섭섭한 마음을 감추기 어렵지만 어설픈 숲쟁이 공원의 콘크리트 정자에 올라 내려다보는 법성포구의 아름다움이 바로 직전 친절의 경험에 얹혀 한층 새삼스럽다.
이러한 준비된 친절 위에 문화재에 대한 깊이 있는 개안(開眼)의 기획력이 업혀 숲쟁이 언덕 위에 보석 같은 법성진성 역사 문화공원이라도 만들어진다면.... 이 나라가 그런 생산성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지....어느 사이 먼 여정이 집 앞에 다다르고 있다.
유네스코인천광역시협회장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겸임교수
경제학박사 하석용
추신, 혹시라도 번거로울까 싶어 직접 고맙단 전화를 드리지 못하고 유네스코 인천협회 사무국을 통해 인사드린 졸렬함을 정계장님께 이렇게 전자지면을 통해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