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경도대학 동양사연구회에서 유인본으로 나온 [이학지남]에 대해 소개를 했거니와, 그러고 보니 몇 년 전에 받아둔 최남선본 [가곡원류]의 유인본도 소개를 해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겨서 저 구석에 박혀있던 유인본을 찾아서 소개한다.
최남선의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원래 시조집이 정연하게 정리된 것도 없고 이에 대한 연구가 축적된 것도 없다고 한다. 이러한 가운데 [청구영언] [해동가요]에 짝하는 [가곡원류](원래 이 책은 제목이 있는 것도 아닌데, 첫머리에 소개된 가곡원류라는 용어를 취하여 [가곡원류]라고 명명했다고 함)의 1929년 최남선본을 해방후 경성대학 조선문학회에서 유인본으로 간행한 것이다. 해방 직후의 어려운 출판 사정 하에서 오로지 학문적 열정으로 유인본으로 몇 부 만들어 돌려보았을 것을 생각하면 더 귀중한 책이 아닐 수가 없다. 하긴 이병도(李丙燾: 1896∼1989)의 [자료 한국유학사 초고]도 처음에는 1959년 국사학과 연구실에서 유인본으로 간행되었다.(1937년에 저술을 한 뒤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1959년에 국사학과 연구실에서 후학들에 의하여 간행된 것이다.)
참고로 난삽한 최남선의 서문을 같이 소개한다.
「歌曲源流」 小叙
時調 文籍의 現存이 十指를 屈하기에 足호대 대개 撰者의 原本일 듯한 一本이 僅傳하는 양하고 一書로 流布의 廣하기는 오즉 「歌曲源流」란 것을 볼 뿐이니 余의 眼에 過한 것만도 오히려 四五本을 筭하는도다
대저 時調의 形式的 成立은 高麗에 入한 後의 事일지나 일변 漢文學의 勢力이 이미 暴君과 가튼데 일변 表音術의 不備가 國語를 曲寫하기 어려움 等으로 하야 新羅 鄕歌의 三代目 같은 撰述이 드듸어 出現하지 아니하얐슨 듯하며 李朝에 이르러 作家와 作品이 아울러 多를 加하고 일변 精妙한 國字의 制作이 잇섯스되 國風의 文獻的 作成은 樂學軌範 國朝詞章 等 宮廷 廟庭의 歌頌 이외에 버서나지 못하얏슴은 진실로 遺憾이로다
다만 朝에 樂院의 設이 잇서 鄕唐雅俗을 아울러 收蓄하고 野에 同好의 傳承이 잇서 斷章逸篇이 시러금 이 사이에 保存하니 時調의 文獻이 寥寥하나마 能히 今日을 有함은 이 殘緖餘蔭을 힘닙은 것이라 그러나 事ㅣ 私秘閒漫에 屬함으로 그때그때의 幸傳隨聞을 記存함에 止하고 널리 적극적 採訪의 擧를 보지 못하여 甚한즉 書를 만들되 定名을 붓칠 必要조차 생기지 아니한 듯하도다
이 「歌曲源流」로 말하야도 본대는 書名의 定한 것이 잇지 아니하고 卷首에 다른 參考文字와 한 가지 宋吳曾의 能改齋漫錄 二條를 引用한 中 初一條에 歌曲源流라 題한 것이 우연히 開卷第一에 當하매 이것을 書名으로 錯認하야 이제 破하기 어렵기에 이른 것이며 本文으로 말하면 아모 標題를 設하지 아니하고 바로 羽調云云의 曲目 等으로써 거긔 當한 歌詞를 序次하얏슬 따름이니 이는 一書로의 未成品인 까닭이지마는 또한 그 書로의 重視되지 못한 것을 表함이라 할지니라
이러케 書名조차 부치지 아니한 분수로는 平調 羽調 界面調 等 三大統과 大葉 搔聳 樂 弄 編 等 十五細目으로써 一一의 歌詞를 一一의 曲調에 排當하얏스되 그것이 本質로서 誘導된 오랜 傳統에 依한 듯하야 저 「二後庭花」와 가틈은 거기 繫할 歌詞가 업스되 「今失其調可惜」이라 하야 오히려 그 空目을 擧하기를 이저버리지 아니 하얏스니 이러케 古來의 成典을 把持하기에 謹嚴이 極하고 古曲의 全視野를 周密히 管領하려 한 것은 반드시 깁은 因緣의 잇는 일이오 결코 尋常한 俗間好尙者의 餘事에 기대될 것 아님을 想見케 함이 잇도다
이러케 現存한 여러 時調文獻에 就하야 考驗하건대 그 材料가 대개 共通되는 中에도 採輯의 基調에 석기 어려운 二潮流가 잇서 一은 士紳의 作品을 本位로 하야 曲調의 展開로써 秩然히 排次한 者요 一은 閨巷의 作家를 兼收하야 흔히 人物別로써 輯錄한 者가 그것인데 形式으로 整然한 前者는 아마도 古의 典樂署 慣習都監 以來의 傳統과 밋 그 見識을 承受한 者로 볼 것이오 後者는 필시 好尙을 主로 하는 民間 「歌客」이란 이 사이의 箕裘에 속할 것임을 우리는 想定코저 하노니 이르는 바 士紳本位的 時調總集의 代表書요 아마 이 種類의 書의 母本도 될 듯한 이 「歌曲源流」는 대개 敎坊 自來의 隨得隨錄하든 者로 그 俗樂의 考閱에 備하얏든 것일가 하노라
「歌曲源流」는 撰者와 撰成年代와 아울러 撰輯緣起까지를 傳하지 아니하며 前에 말한 것처럼 그 流布本이 만키도하고 諸本에 詳略의 差도 잇스니 이는 그書ㅣ 본대 公署의 謄錄으로 加除의 變通이 自由러워오고 일변 斯道中心機關의 備本으로 傳寫流通의 便이 自具하얏슴에 말미암음일 것이니 이들은 그 書名의 定한 것이 업슴과 한 가지로 「歌曲源流」의 本地를 삷히는 上의 有力한 暗示가 될 것이니라
「歌曲源流」의 基本은 무론 時調의 最高傳承에까지 溯及하려니와 일변 最後의 收採는 哲宗代의 金汶根 高宗初까지에 걸치는 安玟英 等에 及하야 대강 上下一千年의 時調 全野를 收括하니 이 首尾具足한 內容은 一切 時調書의 本幹 正統 乃至 典範이라 해야 可한 그 本質과 아울러서 廣博이 「靑丘永言」에 遜하고 精確이 「海東歌謠」에 讓하는 채로 此書의 卓邁獨特한 地位를 永遠히 斯界에 保障할 것이며 또 그 偶然한 假冒인 「歌曲源流」의 名에 과히 乖戾되지 아니함을 본다 할지니라
가곡원류의 內容解說 乃至 本文批評 그 時調學上 價値 比較書誌上 地位 等의 詳細는 이제 暇及하지 못하며 다만 우리 一覽閣의 藏本은 本衣의 面에는 「靑邱樂章」으로 題籤되고 그 上의 카버에 「歌曲源流」의 名이 씌워 잇스며 또 卷後에 「女唱類聚」의 附錄과 및 本文의 字허고 異筆되는 數種의 追記가 잇슴을 注意해두노라
己巳(1929)中伏前二日 崔南善
(현대어 윤문본)
「歌曲源流」 小叙
시조 文籍의 현존이 열 손가락을 꼽기에 족하되 대개 撰者의 원본일 듯한 一本이 겨우 전하는 양하고 一書로 유포를 넓히기는 오직 「가곡원류」란 것을 볼 뿐이니 나의 눈으로 본 것만도 오히려 4, 5본에 이른다.
대저 시조의 형식적 성립은 고려에 들어온 후의 일이지만 한편 漢文學의 세력이 이미 폭군과 같은데 한편 表音術의 不備가 國語를 곡진히 쓰기 어려움 등으로 인하야 신라 향가의 「三代目」 같은 撰述이 끝까지 출현하지 아니한 듯하며, 조선에 이르러 작가와 작품이 아울러 많아지고 한편 精妙한 國字의 制作이 있었지만 國風의 문헌적 작성은 樂學軌範 國朝詞章 등 宮廷 廟庭의 歌頌 이외에 벗어나지 못하였음은 진실로 유감이로다.
다만 朝에 樂院의 설치되어 있어서 鄕唐雅俗을 아울러 收蓄하고 野에 同好의 전승이 있어서 斷章逸篇이 하여금 이 사이에 보존하니 시조의 문헌이 寥寥하나마 능히 오늘날에 있음 이 殘緖餘蔭을 힘입은 것이다. 그러나 일이 私秘閒漫에 屬함으로 그때그때의 幸傳隨聞을 記存함에 머므르고 널리 적극적 採訪의 擧를 보지 못하여, 甚한즉 書를 만들되 定名을 붙일 필요조차 생기지 아니한 듯하도다.
이 「歌曲源流」로 말해도 본래는 書名을 定한 것이 있지 아니하고 卷首에 다른 參考文字와 한 가지 宋吳曾의 能改齋漫錄 二條를 引用한 中 初一條에 歌曲源流라 題한 것이 우연히 開卷第一에 當하매 이것을 書名으로 錯認하야 이제 破하기 어렵기에 이른 것이며, 本文으로 말하면 아무 標題를 設하지 아니하고 바로 羽調云云의 曲目 等으로써 거기에 當한 歌詞를 序次하였을 따름이니, 이는 一書로의 未成品인 까닭이지마는 또한 그 書로의 重視되지 못한 것을 表함이라 할지니라
이렇게 書名조차 부치지 아니한 분수로는 平調 羽調 界面調 等 三大統과 大葉 搔聳 樂 弄 編 等 十五細目으로써 一一의 歌詞를 一一의 曲調에 排當하였으되, 그것이 本質로서 誘導된 오랜 傳統에 依한 듯하여, 저 「二後庭花」와 같은 것은 거기 繫할 歌詞가 없어서 「今失其調可惜」이라 하여 오히려 그 空目을 擧하기를 잊어버리지 아니하였으니 이렇게 古來의 成典을 把持하기에 謹嚴이 極하고 古曲의 全視野를 周密히 管領하려 한 것은 반드시 깊은 因緣을 잇는 일이오 결코 尋常한 俗間好尙者의 餘事에 기대될 것 아님을 想見케 함이 있도다.
이렇게 現存한 여러 時調文獻에 就하야 考驗하건대, 그 材料가 대개 共通되는 中에도 採輯의 基調에 섞기 어려운 二潮流가 있어, 一은 士紳의 作品을 本位로 하여 曲調의 展開로써 秩然히 排次한 者요, 一은 閨巷의 作家를 兼收하여 흔히 人物別로써 輯錄한 者가 그것인데, 形式으로 整然한 前者는 아마도 古의 典樂署 慣習都監 以來의 傳統과 및 그 見識을 承受한 者로 볼 것이오, 後者는 필시 好尙을 主로 하는 民間 「歌客」이란 이 사이의 箕裘에 속할 것임을 우리는 想定코저 하노니, 이르는 바 士紳本位的 時調總集의 代表書요 아마 이 種類의 書의 母本도 될 듯한 이 「歌曲源流」는 대개 敎坊 自來의 隨得隨錄하든 者로 그 俗樂의 考閱에 備하였던 것일까 하노라.
「歌曲源流」는 撰者와 撰成年代와 아울러 撰輯緣起까지를 傳하지 아니하며 前에 말한 것처럼 그 流布本이 만키도하고 諸本에 詳略의 差도 잇스니 이는 그書ㅣ 본대 公署의 謄錄으로 加除의 變通이 自由러워오고 일변 斯道中心機關의 備本으로 傳寫流通의 便이 自具하얏슴에 말미암음일 것이니 이들은 그 書名의 定한 것이 업슴과 한 가지로 「歌曲源流」의 本地를 삷히는 上의 有力한 暗示가 될 것이니라
「歌曲源流」의 基本은 무론 時調의 最高傳承에까지 溯及하려니와 일변 最後의 收採는 哲宗代의 金汶根 高宗初까지에 걸치는 安玟英 等에 及하야 대강 上下一千年의 時調 全野를 收括하니 이 首尾具足한 內容은 一切 時調書의 本幹 正統 乃至 典範이라 해야 可한 그 本質과 아울러서 廣博이 「靑丘永言」에 遜하고 精確이 「海東歌謠」에 讓하는 채로 此書의 卓邁獨特한 地位를 永遠히 斯界에 保障할 것이며 또 그 偶然한 假冒인 「歌曲源流의 名에 과히 乖戾되지 아니함을 본다 할지니라
가곡원류의 內容解說 乃至 本文批評 그 時調學上 價値 比較書誌上 地位 等의 詳細는 이제 暇及하지 못하며 다만 우리 一覽閣의 藏本은 本衣의 面에는 「靑邱樂章」으로 題籤되고 그 上의 카버에 「歌曲源流」의 名이 씌워 잇스며 또 卷後에 「女唱類聚」의 附錄과 및 本文의 字허고 異筆되는 數種의 追記가 잇슴을 注意해두노라
己巳(1929)中伏前二日 崔南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