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역으로 순례하는 여행.”
- 관상적 연합예배를 드린 후 -
성 주은
“내 …하는 그 시간 그때가 가장 즐겁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위치한 람원교회 병설유치원 시절 주일예배. 목재 장의자가 열을 맞추어 가지런히 늘어선 예배당. 밝은 조명 아래 모여 앉은 사람들. 그 중간 어디께 계신 엄마 옆에서 열심히 노닐던 때가 생생합니다. 어렸던 터라 예배가 뭔지 알 길이 만무했고, 설교 내용 하나 기억나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 예배 시간과 공간만 떠올리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곤 합니다. 어느 성탄일, 20여 년 만에 ‘그 자리’를 다시 찾아 가 보기도 했지요. 기억 속 풍경과 크게 달라지지 않아 좋았습니다. 고향집을 찾은 것 마냥 따뜻했고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그 자리’에 한참을 머물러 앉아있다 돌아온 날을 떠올리니 문득 누군가 “예배(는) 곧 여행”이라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세속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역으로 순례하는 여행. 이 순례를 통해서 우리는 일상과 세속에서 분리되어 다른 차원의 삶을 경험하기 시작”한다고 했는데, 그 말의 의미를 어렴풋 알 것도 같은 순간입니다.
요즘 부쩍 ‘그때’가 그립습니다. 유리컵 속 부유물들이 물과 함께 흔들리며 혼탁해 지는 것처럼, 요동치는 불순물에 마음을 빼앗긴 채 흘려보내는 예배 시간이 수두룩한 요즘이라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역으로 순례하는 (예배)여행”은커녕, 설교내용에 꼬투리를 잡고 생각의 고리만 잇고 있습니다. 아예 생각을 묶고 귀를 닫아버릴 때도 있지요. 또 어떤 때는 설교자의 입가, 눈가, 미간 주름을 멍하니 세어보며 ‘세월이 유수 같다. 어느새 저렇게 늙으셨다…’ 감성에 젖기도 합니다. 심지어 앞에 앉은 사람의 헤어스타일이나 차림새에 대한 품평을 하느라 정신이 팔릴 때도 있지요. 이렇듯 잡념을 걸러내거나 가라앉히지 못한 채 예배의 문턱도 밟아보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 날이 수두룩합니다. ‘예배를 드렸다, 예배에 참여했다’기보다는 예배의 ‘방관자’ 혹은 ‘훈수 두는 자’로 전락해 버린 것 같습니다. ‘그렇게 그 자리’에 앉아 있다가 일상으로 돌아온 날이면 회환이 뒤섞여 제 마음은 더욱 요동칩니다.
불순물이 둥둥 떠 있는 채로 지난 4월, <고난주간에 함께 드리는 관상적 연합예배>에 다녀왔습니다. 지금 참여 중인 ‘한국샬렘영성훈련원-개인영성심화프로그램’의 선생님이신 김오성 목사님의 권유도 있었고, ‘관상적 예배’에 대한 호기심(의심?)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예배 ‘그 자리’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 이끌림 때문이었습니다. 한편, 가기까지 주저했습니다. 낯선 장소, 성공회 대학로교회 입구에 다다를 즈음 급격히 느려지는 발걸음을 느끼며 머뭇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여길 들어가 말아….’ 개신교 중에서 장로교 그중에서도 한 교회에서만 20년 넘게 출석하며 고착된 ‘예배 형식과 틀’이 깨지는 것에 대한 저항감도 올라왔습니다. 그래도 문턱을 넘었지요. 어두웠습니다. 그윽한 조명의 실내가 흡사 금요철야 때 통성기도 직전 분위기 같기도 했습니다. 이내 무반주 찬양이 시작되더군요. 조용하고 매우 단순한 형식의 곡을 여러 번 반복적으로 부르도록 이끌었습니다. 누군가 잔잔하게 연주하는 (피아노나 오르간도 아닌) 기타와 리코더(아마도?) 소리까지 더해졌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곡, 부르는 형식 또한 ‘가톨릭적’이라는 생각에 처음엔 선뜻 목소리가 나오지 않더군요. ‘잘못 왔나?’ 잠깐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반복’이란 게 묘했습니다. 거듭될 때마다 조금씩 ‘유연케 하고, 확장시켜 주는 듯하다’ 여기며 예배 중간 중간 침묵했고, 공동기도 사이사이 “주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함께 읊조렸습니다. 설교자의 미간 주름이나 차림새를 면밀히 훑어볼 수 있는 조도도 아니었던 터라 일찌감치 ‘보는 것’을 단념하고 ‘듣는 것’에 더욱 집중했습니다.
그 흐름 속에 머물렀던 당시를 다시 떠올리니 엉뚱하게 우리나라 민요가(?) 중첩됩니다. 매기는 소리와 받는 소리, 서로에 대한 응답으로 진행되는 민요. 청자와 창자가 구분 없이 함께 만들어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식. 기뻐서도 부르고 슬퍼서도 부르고 그냥 여럿이 함께 부르며 굽이굽이 흘러가는 과정들이 절묘하듯, 저는 그렇게 예배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낯선 장소와 낯선 형식, 한 교단의 전통이나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비롯된 저항감, 여기에 갖가지 걱정과 근심까지…. 어지러이 뒤엉켜있던 불순물들이 침전되고 정화되는 느낌을, ‘그 자리’에서 또 다시 ‘하나님과의 조우’에까지 잇닿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랜만의 맛본 ‘그 자리’의 여운은 여전하나, 안타깝게도 갖가지 회환 역시 여전합니다. 어쩜 이리 한결같은가 싶을 정도로 혼탁한 상태입니다. 그저 지난 4월, 관상적 연합예배 때 불렀던 찬양 중 기억에 남는 한 곡을 읊조리며 ‘그 자리’에 대한 열망과 묵상을 이어갈 뿐입니다. “내 맘과 생각 당신께 이끄소서/ 빛이신 주님 잊지 마소서/ 나를 도우시고 기다려주신 주/ 나는 주의 길을 몰라도/ 주는 내 길을 아시나이다”<내 맘과 생각 당신께 이끄소서-디트리히 본회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