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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일/집결장소 : 2017. 05.28(일) / 3호선 신사역6번출구(07시 10분)
◈ 참석자 : 15명<갑무, 종화, 창수, 기인, 경식, 원무, 재웅, 삼환, 전작, 정한, 문형, 김영훈, 양기, 천옥 + 조영훈(뒤풀이)>
◈ 산행코스 : 배티재-낙조대아래-정상삼거리-마천대-삼선계단-금강구름다리-케이블카(매표소)-주차장
◈ 동반시 : "우리가 눈발이라면" / 안도현
◈ 뒤풀이 : 아구찜에 소주 및 맥주 / "첨벙 家"(신사동 본점, 02-543-8873)
오늘은 시산회 원거리 산행일이라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집을 나섰다. 어제 저녁부터 만반의 준비를 해둔 덕에 약속시간 안에 신사역에 도착하여 문영이를 만나고 관광버스를 찾아 버스 에 오르니 우리 시산회원들이 여럿 타고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산우들이라 반갑게 인사하고 지정석에 앉으니 한 총장이 직접 만든 주먹밥을 하나씩 물티슈와 함께 나누어 준다. 배고픈데 고맙기도 하고 센스가 있어 보였다. 그러더니 갑자기 오랜만에 나왔으니 오늘 기자를 하라고 한다. 주먹밥을 먹고 떠드는 사이에 관광버스는 약속한 시간에 출발한다.
오늘 원거리의 산행은 산수산악회의 산길에 우리가 참여하는 방식으로 참여를 하였다. 먼저 산악대장(일명 마추픽추)이 나와서 죽전에서 전회원의 탑승이 끝나면 일정을 안내하겠다고 한다. 죽전에서 정한, 기인 및 영훈이 산우가 탑승을 하고나니 웬걸 삼성제약 홍보사원의 약 선전이 시작되었다.
과거 세일즈 생활을 한 적이 있는 산악대장이 옛 생각이 나서 거절을 못 했다고 양해를 구한다. 주요 내용은 혈관청소를 하여 질병을 막아주는 약을 개발하여 판매하는 내용인데, 샘플도 나누어 주고 주문서도 배포하며 특별 판매 가격이 시중가의 1/2 이란다. 매번 원거리 산행 때 들은 이야기라서 별 흥미가 없다.
약 선전이 끝나고 산악대장의 일정 발표가 있었다. 버스에는 시산회 회원 14명과 다른 산악회원이 약 15명 합쳐서 30명 정도 타고 있었다. 배티재에 도착하면 도착시간 부터 5시간 30분간 시간을 줄 테니 등산하고 주차장까지 그 시간 안에 도착하라고 한다. 가이드나 코스 설명은 전혀 없이 도착시간만 강조하니 조금 이상하다. 그러나 그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배티재에 도착하여 신발끈도 조이고 점심꺼리도 준비하느라 모두들 바쁘다. 고갯머리에 있는 대형 아치간판에는 ‘호남의 금강, 완주 대둔산’이라는 글귀가 보인다. 배티재 들머리에 들어서면서부터 보통일이 아니다. 첫머리부터 나무 계단이 시작되는데 끝이 없다. 모두들 불평이 터져 나온다. 숨을 헐떡이며 저기쯤엔 능선이 보이겠지 하고 올라서면 또 계단이 연결되어 있고 끝났나 싶으면 또다시 오른쪽으로 나무 계단이 끝이 없이 이어진다. 겨우 나무 계단을 벗어날 즈음에 이정표가 보이는데 배티재에서 겨우 570m 올라 왔고 낙조대 까지는 1,700m가 남았다.
능선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내리막이 편한 것 보다는 후환이 두렵기까지 할 정도였다. 약 2시간 넘게 땀을 흘린 끝에 정상 삼거리에 도착했는데 주변의 산죽들이 모두 꽃이 피었다. 대나무는 꽃이 피면 모두 말라 죽는데 무슨 이변이 있는 것일까? 멀리서 낙조대를 바라만 보고 우리는 마천대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첫 들머리처럼 힘들 지는 않으나 갈수록 점점 경사가 심해지는 것 같다. 배티재 출발 후 약 3시간 만에 마천대(대둔산 정상 약 878m)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등산객들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어 기념사진 촬영기도 어렵다. 정상에는 '개척탑(開拓塔)'이라는 글귀가 적힌 커다란 탑이 서 있는데 연유를 알 수가 없다. 증명사진을 촬영한 후 되돌아서 다시 왔었던 길을 오다가 삼거리 갈림길에서 금강구름다리 쪽으로 내려오다 시간을 보니 점심시간을 지나 지치고 허기가 진 모양이다.
좋은 자리는 모두 등산객이 진을 치고 있으니 자리 잡기도 어려웠다. 겨우 자리를 잡아 점심을 먹는데 홍어무침, 족발, 모시떡, 죽순나물, 김밥 등 푸짐하다. 막걸리와 더불어 한 총장의 진도 홍주를 곁들이니 분위기가 매우 좋다. 오늘의 산행시는 ‘우리가 눈발이라면 (안도현 작)’인데 기자인 나더러 낭송하란다.
종전처럼 유인물이 아닌 핸드폰 메시지에 있는 시를 보고 낭송하니 그 맛이 괜찮다.
"우리가 눈발이라면" / 안도연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서 쭈삣쭈삣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 든 이의 창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위에 돋는
새살이 되자
산악대장의 말 처럼 산세가 험해 막걸리는 적게 준비한 것 같다. 점심을 먹고나니 벌써 2시가 지났다. 도보로 하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서둘러서 삼성계단과 구름다리를 멀리서 보고 휴게소에 도착했다.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많은 산객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아차 싶었는데 다행히 케이블카가 대형이라서 금방 차례가 돌아왔고, 무사히 케이블카로 하산하였다.
주차장에 기다리는 관광버스를 승차하여 정확히 15시 30분에 출발을 하였다. 천안휴게소에 잠깐 들렸다가 서울까지는 막히지 않고 쉽게 도착하여 신사역 부근 '첨벙가 (정한 산우 단골)'에서 아구찜에 소주와 맥주로 심신을 달래고 차기의 산행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모처럼의 원거리 산행은 즐거웠었다.
2017년 6월 5일 임삼환 씀.
※ 대둔산(大芚山)
대둔산(878m)은 '호남의 금강산'이라고 불리며, 천여 개의 암봉이 6㎞에 걸쳐 이어져 수려한 산세를 자랑한다. 대둔이라는 명칭은 '인적이 드문 벽산 두메산골의 험준하고 큰 산봉우리'를 의미한다.
대둔산 동쪽 2㎞ 지점에 있는 350m의 배티(梨峙)는 과거 전라도와 충청도를 연결하는 주요 통로였고, 지금도 여수∼청주를 잇는 17번 국도가 통과한다. 이 고개는 임진왜란 당시 완주군 소양면 신촌(新村)의 곰치대첩과 함께 전라북도를 지켜낸 격전지였다.
당시 황해로 진출하는 수로가 막히자 전라도의 곡창지대를 침공하려고 무주(茂朱)·금산(錦山)·진안(鎭安)·용담(龍潭) 등에 집결하여 있던 왜군이 배티와 곰티(熊峙)로 진격하면서 큰 전투가 일어났다.
완주목사 권율(權慄)이 큰 승리를 거둔 것을 기념하여 진산면 묵산리에 이치대첩비를 세웠다고 하나 일제가 폭파하여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대둔산은 전라북도와 충청남도에서 각각 도립공원으로 지정하였다.
즉, 1977년 3월에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일대의 38.1㎢가 전라북도 도립공원으로, 1980년 5월에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양촌면과 금산군 진산 일대의 24.54㎢가 충청남도 도립공원으로 각각 지정되었다.
전라북도 쪽에는 임금바위와 입석대를 연결하는 높이 70m, 길이 50m의 금강구름다리가 널리 알려져 있고, 마왕문·신선바위·넓적바위·장군봉·남근바위 등의 기암과 칠성봉·금강봉 등의첨봉(尖峰)이 경승지를 이룬다. 주요 사찰로는 안심사(安心寺)와 화암사(花巖寺) 등이 있다.
안심사는 1759년(영조 35)에 세운 것이나 6·25 때 소실되었고, 지금은 석종계단(石鐘戒壇)과 부도전중건비(浮屠殿重建碑)만이 남아 있다. 화암사에는 보물 제662호인 우화루(雨花樓)와 명부전·극락전·대불각 등이 있다.
충청남도 쪽에는 낙조대(落照臺)의 일몰이 장관이다. 진산의 태고사(太古寺)와 벌곡의 신고운사(新孤雲寺) 등 고찰이 있었으나 모두 6·25전쟁 때 소실되었다. 특히 태고사는 신라 신문왕 때 원효(元曉)가 이 절터를 발견한 뒤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는 12승지(勝地) 중 하나이다.
한용운(韓龍雲)도 "태고사를 보지 않고는 천하의 승지를 논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태고사는 절 뒤에 의상봉·관음봉·문수대 등이 기묘하게 솟아 있고, 앞에는 오대산과 향로봉이 막고 있어 절경 속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에는 달이산성·성봉산성·농성(農城) 등의 산성과 묵산리의 성터가 있다. 또 신흥리에는 삼국시대의 산성과 백제의 고분군이 있고, 신기리에는 20여 기의 고인돌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