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동산 투자기 / 곽주현
고향 시골에 살다가 80년대 중반에 광주로 이주했다. 이유는 아이들의 교육 문제 때문이다. 큰아이는 5학년, 둘째가 2학년, 막내는 유치원생이었다. 큰 도시 학교에 다녀야만 인물이 될 것 같았다. 태어나서 처음 이사를 해서 어디에 어떤 집을 마련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광주 남구 봉선동에 임대 아파트를 구했다.
그 당시 봉선동은 새로운 택지 개발 지구였다. 작은 주택은 구입할 자금이 있었지만, 부동산 가격이 수년 간 제자리여서 집을 사지 않았다. 땅에 투자하기로 마음먹었다. 봉선동 택지가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약 30%만 분양 되었다. 엘에이치(LH)가 개발한 땅인데 그 넓은 땅에 아파트 4동만 있었다. 그중 한 곳에 살게 되었다. 주변에 상가, 병원, 학원 등 몇 십 집만 있을 뿐 시골의 작은 마을 같았다. 2년 쯤 지나자 다시 땅 분양 공고가 났다. 1차에 안 팔린 땅을 다시 내놓은 것이다. 단독 주택 택지를 분양 받으려고 입지가 좋은 곳을 신청했다. 그 시절에는 사람들이 단독 주택에 사는 것을 좋아했다. 당첨이 되면 마당에 잔디를 깔고 담장은 자연석으로 쌓고 주변에 나무를 심고 꽃밭도 만들겠다고 이런 저런 궁리를 했다. 이럴 때 김칫국부터 마신다 했든 가? 얼마 후 추첨 통지서를 받았다. 나는 직장 근무 때문에 아내가 추첨을 했다. 기억으로는 17:1의 경쟁이었다. 꽝이었다. 경쟁이 심한 곳에서 떨어졌기에 별로 서운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서서히 투기 열기가 느껴졌다. 아직도 많은 필지가 남아 있었다.
몇 개월이 지나 3차 분양 공고가 났다. 또 접수했다. 이번에는 일부러 입지가 좋지 않는 곳을 택했다. 3:1의 경쟁이다. 해볼 만했다. 설마 또 떨어져? 기대감이 컸다. 확률이 높으면 사람들을 안심 시키는 마력이 있다. 확률이 높다고 꼭 당첨된다는 보장이 없는 데도 그렇다. 추첨 일이 정해졌는데 그날은 내 직장이 휴무일 이었다. 왠지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들기까지 했다. 추첨을 하는 날이다. 대상자 3명 중 한 명은 부모님 대신 중학생이 나왔고, 또 다른 한 명은 나오지 않았다. 추첨 규정에 의해 미 참석 인 경우 입회 경찰이 추첨 한다고 했다. 나만 또 꽝이었다. 이렇게도 운이 없을까. 내가 한심스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추첨에서 떨어지는 건 무엇을 잘 못한 것이 아닌데도 그랬다. 멍하니 한 참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분양 사무실로 들어갔다. 어떤 분이 자기는 아들 딸 등 3명이 접수했는데 3명 모두 당첨되었다며 담당자에게 어쩌면 좋겠냐고 문의 하고 있었다. “내가 그걸 어떻게 합니까? 당첨자가 알아서 해야지요.” 귀찮아하며 내뱉듯 대답을 한다. 그때 그분을 붙잡고 하나를 내게 넘겨 달라고 했어야 했다. 한 참을 바라 만 보고 있다가 그냥 와버렸다. 그 시절엔 당첨권을 제 3자에게 넘기는 게 쉬운 일이었다. 집에 와서 이런 바보가 없다며 자책을 했다. 이미 끝난 일이다.
그 후 자고 나면 부동산 값이 뛰기 시작했다. 꼭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많이 올랐는데 더 오르겠어’하고 기다렸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값이 뛰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주말마다 시내 곳곳의 부동산 가게를 순례 하듯 방문했다. 집이 맘에 든다 하면 내가 가진 자금보다 훨씬 높아서 난감했다. 어찌어찌해서 20년이 넘은 작은 주택을 8,000만원에 매입했다. 3,000만원의 은행 융자를 받았다. 평생 처음 집을 샀기에 자랑하고 다녔다. 와서 본 사람마다 위치가 좋다며 집을 잘 구입했다고 덕담을 한다. 아내와 둘이 페인트 칠하고 벽지 바르고 보일러도 교체하는 등 집을 열심히 수리를 했다. 몇 년 지나면 집값이 많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에 피곤하지도 않았다. 어머님을 모시고 있어서 여섯 식구가 살기에 너무 비좁아 전세를 놓았다.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도 오르기는커녕 집값이 점점 떨어 졌다. 내가 집을 구입한 이후부터 아파트는 인기가 높아지고 주택은 낮아했다. 그래서 주택 가격이 점점 더 하락했다. 어찌어찌하여 융자금은 갚았으나 아이들이 서울로 대학을 가게 되어 집을 팔았다. 20년 만에 5,700만원을 받았다. 그 만큼 남아도 억울한데 수 천만 원을 손해 봤으니 할 말을 잊었다. 계속 임대아파트를 옮겨 가며 살아야 했다.
부동산 투자로 부자가 된 내 친구 이야기도 해보자. 지인의 소개로 20년 전 서울 강남에 18평 아파트를 6,000만에 샀다. 몇 년 전에 그 아파트가 재개발 되어 40평 아파트를 받았다. 인기 아파트여서 가격이 폭등하여 20억을 받고 매도했다. 그는 백만장자가 되었다. 백만장자는 유럽 사람들의 시각으로 본 부자를 말하는데 백만 달러 재산이면 부자라는 의미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10억 정도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재산이 20억은 되어야 부자라고 생각한다는 통계가 있다. 어쩠든 내 친구는 아파트 한 채 잘 투자해서 많은 돈을 손에 쥐었다.
사진 동호회를 같이 하는 신혼부부가 있다. 살고 있는 아파트가 3억 정도 올랐다고 말한다. 또 아파트를 신랑과 자기가 두 채 분양 받았는데 각각 1억 상승했다며 완공 전에 매도하겠다 한다. 고향에 큰 정미소를 가진 아는 분이 있다. 아들을 결혼 시켰는데 분양 받는 아파트가 5년 지나 5억 올랐다며 아들 것이지만 일할 맛이 안 난다고 웃는다. 대한민국에 이런 사람들이 흔하다는 게 문제다. 봉선동에 살고 있을 때 친구가 40평 아파트를 두 채 분양 받았다며 분양권 한 개를 나에게 주겠다고 했다. 두 아들들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여유가 없어 받지 못했다. 15년이 지난 그 아파트가 10억 올랐다.
자본주의 나라에서 투자로 돈을 벌어 잘 사는 것은 비난 받을 일이 아니다. 다만 노력하지 않고 불로소득으로 부자가 되는 부동산 투기는 정상적인 투자가 아니다. 요즈음 우스갯소리로 대한민국 국민을 땅을 가진 자와 갖지 못 한자로 나눈다고 말한다.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전체 재산의 76%가 부동산이라고 하니 항상 지대한 관심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우리나라는 부동산 문제로 국민들 간에 불신과 위화감이 커지고 정부가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이 정부는 그 많은 부동산 정책을 쏟아 부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2019년 이었던 가?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장면이 TV에 나왔다. 대통령께서 “지금 부동산은 어느 정부보다 안정되어 있다”고 말씀하시기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시중에서는 아파트 값이 계속 상승하고 있는데 관계 장관들은 무엇 하기에 저러 시나 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예측하지 못하고 이미 한계 선을 넘은 후에야 이런 저런 대책을 내놓은 것 같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도 안되는 상태가 되었다. 어떤 정부도 부동산 문제는 어찌할 수 없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면 누가 이 심각함을 풀어낼 수 있겠는가? 이런 정책 제안을 하고 싶다. 생애 처음 살 집을 갖는 사람에게는 땅은 국가가 제공하여 반값으로 공급하고 도시의 모든 빈집을 고쳐서 집 없는 사람에게 무료로 살게 한다. 무주택자에게만 분양권을 주어 처음부터 투기를 차단하고 주택 거래 상황을 촘촘히 점검하여 투기 등의 위법을 저지르면 형사 처벌을 받게 하자. 퇴직하면서 겨우 아파트를 장만했다. 멀리 무등산이 보이고 아래로 광주천이 흘러 전망 좋은 곳이다. 잘 못된 투기로 국민들의 미움을 받고 있는 엘에치(LH)가 분양한 아파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