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춘천 이야기21
최고의 별미 춘천 송어 이야기
<대통령의 만찬 샘밭 송어>
장학리 소양강 옆에 위치한 강원도내수면연구소에 가면 함준식 씨가 기증한 스치로폼 상자가 하나 놓여 있다. “1965.1.3. 華川”이라 써진 원본 상자이다. 이것을 함준식 씨는 복제품으로 “華川 ‘65.1.3. Kamloops eggs. 10.000개”라고 써서 보관하고 있다. 미국 컬럼비아 캄루프에서 온 알 만개라는 뜻이다. 이 상자에는 우리나라에 처음 보내온 송어알이 담겨 있었다. 1만 개의 송어알이었다. 이 상자를 보면서 송어회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감회가 새로웠다. 이 상자는 송어양식 연구에 평생을 보낸 함준식 씨가 보관하고 있다가 내수면연구소에 기증한 보물이었다.
그 상자가 계기가 되어서였을까. 필자는 우리나라 송어양식이 궁금해서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10년 춘천문화원의 배려로 신북읍 지명조사를 하게 되었다. 산천리 밤물이라는 장소에서 한 어르신이 말씀하셨다. 1966년에서 1967년 이곳에 송어양식장이 있었다고 했다. 당시 이원규 춘성군수가 박경원 지사의 특명으로 이곳에서 군수 여동생에게 부탁해서 송어를 길렀다고 했다. 물론 치어를 들여와서 성어로 키웠다. 아주 귀한 고기였다. 그래서 밤이면 헬리콥터가 와서 서울 워커힐까지 송어가 실려 갔다. 대통령의 만찬용이었다. 일반인은 송어 맛을 볼 수 없을 때였고, 대령 계급 이상의 군인들만 먹을 수 있었다고 했다. 송어에도 시대의 아픔이 서려 있다.
<화천에서 평창으로 간 송어>
“산으로 가자 바다로 가자”
이 구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벌써 시간이 꽤 흐른 구호이다. 1963년에서 1969년까지 강원도지사를 지낸 군인 출신 박경원 지사가 낸 구호였다. 산에 나무를 심어 개척하여 이익을 내고,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어패류를 양식하여 소득을 내자는 개척의 구호였다.
이때 추진했던 사업 중의 하나가 무지개송어 양식이었다. 1965년 1월 3일 미국에서 송어알이 김포공항으로 해서 강원도 화천댐 아래 구만리 강원도립배양장으로 수송된 사연이었다. 물론 이때 송어양식은 실패했다. 사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겨우 살려낸 송어 15마리는 춘천댐 상류에 풀어줬다. 아마도 그때 풀어준 송어의 후손이 춘천댐 이곳저곳에서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양식을 담당했던 사람 중 한 명인 함준식 씨는 이후 춘천 의암호와 동해바다 등에서 양식을 위해 수없이 연구했다. 그러다가 일본 송어양식 연구가의 도움을 받아 송어 사료를 개발하여 평창 미탄에서 양식과 산란과 부화에 성공했다. 정말 끈질긴 노력의 덕분이다. 이 노력의 덕분으로 전국에서 송어를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춘천 별미로 자리 잡은 송어>
춘천에는 소양강댐이 있다. 송어는 섭씨 7~20°C의 차가운 물에 서식하는 냉수 어종이다. 소양강 하류에 발전을 위해 흘려보내는 물의 온도가 8°C로 일정하여 송어양식에 제격이었다. 춘성의 맥에 의하면, 1972년 춘천 동면 지내리 소양강댐 아래에 소양강송어장을 안동흠 씨가 세웠다. 이때 치어 2만 마리를 구입하여 송어양식을 시작했다. 어분(魚粉), 콩깻묵, 어유(魚油), 종합비타민 등으로 사료를 만들어 사육했다.
이렇게 이어진 송어양식은 춘천의 별미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끈질긴 노력은 뭐든 이룰 수 있다는 교훈이 송어양식에서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