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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후> 너는 어떻게 부드러워지니?:울산광역매일
골목엔 지정과 비지정이라는 히스테릭한 규정이 있어 차와 차 사이, 차와 담 사이끼어 있는 깻잎 한 장 나는 키보드와 상상력 사이를 좋아해 틈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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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엔 지정과 비지정이라는 히스테릭한 규정이 있어
차와 차 사이, 차와 담 사이
끼어 있는 깻잎 한 장
나는 키보드와 상상력 사이를 좋아해 틈 사이에 두꺼운 이야기를 얇은 문장으로 배치한다든지 또는 물기 뚝뚝 떨어지는 직유를 몇 볼트의 전기가 묻은 자판으로 식자하는 일 같은
이상해
자꾸 부딪히는 글자들을 모았는데
주차된 문장이 왕창 구겨질 때가 있어
알다시피 문자는 구겨지지 않아 다만
기술(記述)의 방식을 구기고 펴는 것은 실력이라 하지
편파적 백미러를 믿은 것이 잘못이었어
모든 장소는 선점으로 반듯해지거나 삐뚤어지는 것을 알아야 해
흰 천을 덮어놓은 궁금증을 휙 걷어버린 듯한
지정된 장소들과 사이, 그 사이들
남은 글자들로 식탁을 차리려고 고기를 샀어 고깃집 주인이 쌈을 먹을 때 깻잎을 뒤집어 먹으면 부드럽다고 했어
사이와 사이가 부드러워져야 하니 아니면 사이들이 부드러워져야 하는 거니
뒤집지 않은 한쪽은 지정일까 비지정일까
부드러움은 어느 쪽이든 다 배울 수 있어야 하잖아
그러니, 중간쯤이라 말하면 곤란해
한쪽은 다른 한쪽을 규정하니까
<시작노트>
Caps Lock 켜진 줄 모르고 자판을 두드리다가
퇴고하지 못한 시가 녹색주의를 받는다
글자들도 알맞게 식혀 먹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익숙한 단어들을 걸러냈으니 커서를 끌어와 행을 포개면 그럴듯한 시가 될 것도 같았지만,
키보드와 식욕은 애인이 될 수 있을까 아무것도 쓰지 않으면 아무 말도 못 하는 식욕만 남게 되잖아 키보드와 식욕 중 누가 더 불온할까
ㆍ경남 통영출생. 삼육대, 한신대 문예창작대학원 석사졸업
ㆍ2011년 시인동네 신인상으로 등단
ㆍ시집 『분간 없는 것들』, 『2퍼센트 동화』, 『너는 어떻게 부드러워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