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110)
2부(60)
필봉(筆峰) 선생(先生)의 고백(告白)
"필봉(筆峰) 선생(先生),
별안간(瞥眼間) 왜 이러십니까?
농담(弄談)이 너무 지나치십니다.“
그러나 필봉(筆峰)은
성품(性品)이 음흉(陰凶)하면서도
솔직(率直)한 일면(一面)이 있었다.
그는 김삿갓의 손을 힘차게 움켜잡으며,
이렇게 고백(告白)을 하는 것이었다.
"내 이제 선생(先生)께 무엇을
숨기겠소이까.
선생(先生)이
시(詩)에 그렇게도 능(能)하신 것을 보니,
선생(先生)은 사서삼경(四書三經)에도
능통(能通)하신 분이 확실(確實)합니다.
부끄러운 고백(告白)이지만,
나는 천자문(千字文)을 뗀 뒤에 고작해야
"명심보감(明心寶鑑)"밖에는
읽지 못한 놈이옵니다.
그러니 내 어찌 선생(先生) 같은 어른을
스승으로 모시지 않을 수 있으오리까?"
맑은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는 듯한 고백(告白)이었다.
그러나 김삿갓은 필봉(筆峰)의 말을
액면(額面)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선생(先生)은
사람을 놀려도 분수(分數)가 있지
공맹재(孔孟齋) 훈장(勳章) 어른이
"명심보감(明心寶鑑)"밖에 읽지 않았다고
하면 그 말을 누가 믿겠습니까?"
"나는 다른 사람은 다 속여도
선생(先生)만은 속일 자신(自信)이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사실(事實)로 고백(告白)을 한 것입니다.
선생(先生)이 조금 전에
시(詩)를 지으실 때 마지막 구절(句節)에서
산골 훈장 놈이 알고 있는 글자는
오로지"팽"자 뿐이냐?하고
호통을 치셨을 때, 나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瞬間)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이처럼 예리(銳利)한 형안(炯眼)을
가지고 계신 선생(先生)을 감히 나 같은
놈이 무슨 재주로 속일 수 있겠습니까?"
김삿갓은 일시적(一時的)인 화풀이로
"팽(烹)자 밖에 모르느냐?"고 했을 뿐인데,
그 구절(句節)이 상대방(相對方)에게는
커다란 충격(衝擊)을 주게 된 줄은 몰랐다.
그리하여 김삿갓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무심(無心)코 그렇게 읊었을 뿐이니,
그 말을 너무 고깝게 생각지 마십시오."
"고깝게 생각하다니요, 무슨 말씀입니까?
이왕(已往) 말이 나왔으니
내가 이 산중(山中)에 들어와
훈장(訓長) 노릇을 하게 된 경위(經緯)를
모두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필봉(筆峰)은
김삿갓에게 자신(自身)의
과거(過去)를 아래와 같이 털어놓았다.
필봉(筆鋒) 선생(先生)의 본명(本名)은
김정은(金正銀)으로, 평양(平壤) 인근
(隣近)순안(順安)에서 건달패(乾達牌)로
살아왔었다.
그러다가 스무 살 먹은 누이동생을
홍 부자(富者)에게 소실(小室)로 주게
되면서 집을 한 채 얻어 가지게 되자,
그 집을 이용(利用), 일약(一躍)
서당(書堂) 훈장(訓長)으로 둔갑(遁甲)
을 했다는 것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밖에 읽지 못했다는 분이
어떻게 훈장(訓長)이 되실 생각을 하셨소?"
"팔자(八字) 좋게 살아가면서 세상(世上)
사람들에게 존경(尊敬)을 받을 수 있는
직업(職業)이 훈장(訓長) 이외(以外)에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한 해 전부터 매부(妹夫)인
홍 부자(富者)의 도움을 받아 훈장(訓長)이
된 것이지요."
협잡성(挾雜性)은 있어도 머리만은
비상(非常)하게 돌아가는 사람임이
분명(分明)하였다.
필봉(筆峰) 선생(先生)으로
자처(自處)하던 김정은(金正銀)
훈장(訓長)은 자신(自身)의
허위(虛僞) 생활(生活)을 툭 털어놓고
나더니 가슴이 후련해 오는지,
김삿갓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양심(良心)이 있어서,
날마다 허풍(虛風)만 떨며 살아간다는 것은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었어요."
김삿갓은 웃으며 대답(對答)한다.
"누구나 거짓말을
적당(適當)하게 하면서 살아가는 게
인간(人間) 생활(生活)이 아니겠습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하나에서
열까지 거짓말만 하면서 살아오자니
양심(良心)이 너무나도 괴로워요.
훈장(訓長)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허울뿐이고,
의원(醫員)으로 행세(行勢)하며 남의
병(病)을 고쳐 준다는 것도 멀쩡한
연극(演劇)이었고."
"선생(先生)은 머리가 너무도 좋아,
여러 방면(方面)으로 욕심(慾心)을
부려서 그렇게 되신 모양(模樣)이군요."
"한마디로 말하면 마을 사람들에게
존경(尊敬)을 받고 싶은 욕심(慾心)에서
이렇게 된 것이지요."
"아무리 그렇기로 서당(書堂) 방에
약국(藥局) 간판(看板)까지 내건 것은
어떻게 된 일이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눈병을 비롯하여 잔병치레를 많이 겪었어요.
할아버지께서는 그럴 때마다 어린 아기의
오줌을 받아 눈에 넣어주면 눈병이
깨끗하게 낫곤 하더군요.
또, 잔병치레를 겪으며 썼던
약(藥)의 종류(種類)도 매우 많았고요.
그런 경험(經驗)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밑천으로 삼아 약국(藥局)
간판(看板)을 내걸게 된 것이지요.
산속에 사는 의원(醫員)들이란 대게
저처럼 돌팔이 의원(醫員)이 아니겠어요?"
김삿갓은
자기 입으로 "돌팔이 의원(醫員)"이라고
인정(認定)하고 나오는데 할 말이 없었다.
"약국(藥局)을 찾아오는 환자(患者)의
병(病)이 천차만별(千差萬別)일 텐데,
처방(處方)을 어찌하셨단 말입니까?"
"그런 경우(境遇)라도
적당(適當)히 약(藥)을 지어 주게 되면,
시간(時間)이 지나면서 대개가 낫게
되더군요."
"아무리 그래도
약(藥)을 적당(適當)히 지어 주다뇨?
어떤 병(病)에 무슨 약(藥)을 써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계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 것까지 모를라고요.
시골 사람들은 배앓이 환자(患者)가 찾아오면
익모초환약(益母草丸藥)을 주고,
감기(感氣)몸살로 왔을 때는 패독산
(敗毒散)을 지어 주지요.
젊은 사람들은 대개 방사(房事)
과도(過度)로
찾아오게 되는데, 그런 사람에게는
가미쌍화탕(加味雙和湯)을 지어 주고,
산모(産母)가 찾아 왔을 때는
불수산(佛手散)을 지어 주고,
늙은이가 몸이 허약(虛弱)해 찾아 왔을
때는 육미탕(六味湯)이나 팔미탕
(八味湯)을 지어 주고,
봄과 가을에 보약(補藥)을 지으러 오는
사람들에게는 십전대보탕(十全大補湯)을
처방(處方)했지요."
필봉(筆峰) 선생(先生)은 의원(醫員)
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기본적(基本的)
인 약명(藥名)을 말했다.
그러나 그런 약(藥)들은
단순(單純)히 사람들의
몸을 보호(保護)할 뿐이지,
정작 병(病)을 치료하는 약(藥)은 아니다.
그럼 에도 불구(不拘)하고
이 돌팔이 의원(醫員)은 그런 약(藥)들이
치료(治療)하는 약(藥)으로 알고 있었으니,
김삿갓은 기가 찰 노릇이었다.
"실례(失禮)의 말씀이지만,
선생(先生)은 동의보감(東醫寶鑑)
이라는 책(冊)을 읽어 보셨소?"
"동의보감(東醫寶鑑)이라뇨?
그런 책(冊) 이름은 처음 들어 보는데,
그 책(冊)은 ”논어(論語)"나 "맹자(孟子)"와
같이 "사서삼경(四書三經)"에 들어있는
책(冊)입니까?"
김삿갓은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어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동의보감(東醫寶鑑)이라는 책(冊)은,
우리나라에서도 최고(最高)의
명의(名醫)였던 허준(許浚) 선생(先生)이
쓰신 만고(萬古)의 명저(名著)인데,
약국(藥局)을 경영(經營)하시는 분이
"동의보감(東醫寶鑑)"도 안 읽어 보셨다면,
그야말로 놀라운 일이군요."
그러나 돌팔이 의원(醫員)은
김삿갓의 말을 일소(一掃)해 버렸다.
"꿩(雉) 잡는 게 매(鷹라)고,
의원(醫員)이 병(病)만 고쳤으면 그만이지,
그까짓 "동의보감(東醫寶鑑)"인가
서의보감인가 하는 책(冊)을 읽어 보지
않았기로 어떻다는 말씀이오?"
"동의보감(東醫寶鑑) 같은 의서(醫書)를
읽어 보지도 않고 어떻게 병(病)을
고칠 수 있단 말씀이오?"
그러나 무식(無識)하기 짝없는
돌팔이 의원(醫員)에게 그런 말은
마이동풍(馬耳東風)이요,
우이독경(牛耳讀經)이었다.
돌팔이 의원(醫員)은 코웃음을 치면서
김삿갓을 넌지시 나무랐다.
"무슨 병(病)이나 적당(適當)히
시간(時間)을 끌어가노라면,
열에 아홉은 저절로 낫게 마련이라오.
따라서 그런 이치(理致)를 알고
잘 활용(活用)하게 되면
명의(名醫)가 되는 것이지,
따로 명의(名疑)가 있는 줄 아시오?"
언젠가 만났던 돌팔이 의원(醫員)과
같은 소리를 했다.
("그렇다! 사람의 몸은, 병(病)을 스스로
치료(治療)하는 면역체계(免疫體系)가
되어 있다. 다만 사람이 병(炳)으로부터
하루속히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기에,
돌팔이 의원(醫員)조차
돈 벌 일이 있지 않겠나?)
이런 생각이 든 김삿갓,
쓸쓸한 미소(微笑)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