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1장)
9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시대에 깨신 것 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10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받은 자들을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
11 여호와께 구속 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오니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12 이르시되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 곧 나이니라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 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
13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준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
14 결박된 포로가 속히 놓일 것이니 죽지도 아니할 것이요 구덩이로 내려가지도 아니할 것이며 그의 양식이 부족하지도 아니하리라
15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바다를 휘저어서 그 물결을 뒤흔들게 하는 자이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16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이는 내가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며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말하기 위함이니라
묵상)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9)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위로해주시길 간절히 구하는 기도다.
'라합'은 오만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인데, 여기에서는 애굽을 가리킨다(사 30:7). 그리고 '용'은 문자적인 뜻이 악어인데, 애굽인들은 나일강의 악어를 자신의 나라 상징으로 사용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실 때 수 많은 기적으로 애굽을 치셨다.
그런데 옛날 옛적에는 그렇게 강력한 능력을 보여주신 하나님께서 지금은 아무 것도 행하시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는 대단하셨던 것 같은데 지금은 너무나 잠잠하시다.
신앙생활하면서 종종 이런 답답함에 처하는데, 놀랍게도 선지자들도 종종 우리와 동일한 답답함을 느꼈다는 것이 오히려 내게는 참신하고 위로가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신 분이시다. 인류 역사상 홍해를 마르게 하신 일은 단 한번이었을지라도 그 하나님께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동일하신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기쁨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을 믿는다.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 곧 나이니라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 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12)
"나 곧 나이니라"는 말씀은 우리의 정신을 번쩍 나게 한다. 과연 나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위로는 인간의 위로와 비교불가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위로하실 때 나는 진정으로 치유되고 일어설 수 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실 나는 믿지 않고 사람의 위로나 구하러 다니고, 사람의 눈치나 살피고 살지는 않았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하는 자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인식하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믿음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명령하신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 아버지, 제가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알게 해주십시오.
더 이상 사람의 영광을 구하지 말고, 더 이상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과거의 나의 잘못으로 받게 된 사람들의 조롱과 비난이 여전히 치유되지 않는 수치와 상처로 남아있는 이유는 아직도 내 자신이 내 영광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님의 영광만을 추구하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