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재료와 같은 조리순서를 거친다 해도 센 불에 춘장과 재료를 볶아서 쓰는 중식당과는 달리 가정과 공동급식시설에서는 낮은 온도에 볶은 후 끓이듯 소스를 만들기에 그 맛을 제대로 낼 수가 없게 되어서다.
그렇다고 중식당 들의 짜장면이 다 제 맛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주문 시 마다 소스를 만들던 예전 짜장면과는 달리 요즈음은 미리 잔뜩 만들어 둔 후 퍼 주는 형식이 일반적이다 보니 갓 볶아내서의 고소한 불 맛을 충분히 느낄 수가 없게 되었고, 그런 부족한 맛을 메우려 화학조미료와 설탕을 더욱 많이 퍼부어 자극적인 맛에 채소와 춘장 등의 재료 사용량을 줄이려고 녹말가루를 과하게 넣어 미끄덩한 죽 같은 소스가 되어버린 게 요즈음의 중식당 짜장면이다.
짜장의 재료와 조리과정이란 게 여느 음식들에 비해 매우 단순하여 그 자체로 대단한 맛을 이끌어 내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에도 중독성 있는 끌림을 주어왔던 데에는 ‘바로 만들어 내었을 때의 풍미가 주는 매력’이 숨어 있어서이다.
기름으로 볶거나 튀기는 종류의 음식들에 공통으로 들어있는 ‘불 맛’은 조리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라지게 되는데, 식당에 직접 찾아가서 살아있는 불 맛을 느끼며 먹던 중국음식이 80년대부터 오토바이에 실려 골목 구석구석은 물론이고 산과 들로도 배달을 다니기 시작하며 그 의미를 잃게 되었다.
옛날에는 졸업식을 마치고서나 먹어볼 수 있었던 맛있는 짜장면이 지금은 그때만 못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람들의 입맛이 변해서이기도 하지만, 재료에서 라드(lard)가 사라지며 춘장이 달라지고 불 맛이 사라진 들큰 씁쓸한 조미료 폭탄죽이 되어버렸기에 국민음식으로서의 높은 인기는 옛말이고 이제는 간편하게 싼 맛에나 먹는 서글픈 신세가 되었다.
그 탓을 중식당이나 소비자에게 전가하면 안 되는 이유는 물가인상 억제를 위한 집중관리 품목의 첫 번째로 짜장면을 넣어 가격인상을 강제로 막아온 정부당국에 가장 큰 책임이 있어서다. 원가상승의 압박 속에 가격인상을 못하고 있으니 재료와 조리과정을 바꿔 손실을 피해야만 하는 중식당들의 고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게 오늘날 우리가 먹고 있는 허접한 짜장면이다.
그러다 보니 돋보이게 되는 게 짜장면 보다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간짜장면이다. 사람들은 짜장면과 간짜장면의 차이를 ‘짜장을 끼얹어 주느냐 따로 담아 주느냐’로만 구분을 하는데 그 보다는 ‘소스에 녹말가루를 넣느냐’가 더 명확한 구분법이다.
사람의 침에 닿으면 물처럼 변해버리는 녹말가루(전분)의 특성 탓에 짜장면을 먹다 보면 그릇 바닥에 물이 흥건히 고이게 되지만 간짜장면은 그렇지 않은 게 녹말가루가 없어서인데, 짜장 소스의 녹말가루 첨가는 맛이 더 있기 위해서가 아닌 재료비 아껴보려는 속셈에 그러는 것이며 그 증거가 더 비싼 가격을 받는 간짜장면이다.
일반 짜장면이 재료가 부실하며 미리 잔뜩 만들어 두어 불 맛을 잃게 된 반면, 간짜장면은 재료가 푸짐하면서 아직도 상당 수의 업소들이 주문과 함께 바로 볶아서 만들어 주어 ‘불 맛’을 즐길 수 있기에 필자는 짜장면 보다 간짜장면을 더 좋아한다.
두 종류간의 차이에 큰 영향을 주는 것에는 양파도 있다. 양파는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기름에 볶거나 굽게 되면 독특한 고소한 풍미가 생겨나는데 이게 참 매력이 있어서 고기구이 집 불 판에서 고기와 함께 익혀진 것을 맛 본 이들은 그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서양인들도 튀기거나 구워 먹는 것을 흔히 즐기고 있으며 햄버거 집의 감자튀김 자릴 빠르게 빼앗고 있고, 기름진 음식에 곁들이면 건강에도 유익하다 하여 그 인기가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기특한 식 재료이다. 양파를 많이 사용하는 간짜장면은 양파의 강한 단맛 덕분에 일반 짜장면에 비해 설탕과 화학조미료의 의존도가 낮아서 그런 쪽으로 부담을 느끼는 이들에게 나은 선택이 된다.
우리에게 단순한 외국음식이 아닌 소울푸드(Soul Food)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짜장면의 옛 맛과 본질에 더 가까이에 있는 것은 도리어 간짜장이 아닌가 싶다.
언젠가는 짜장면도 더 나은 재료에 더 나은 조리법과 살아있는 불 맛으로 옛날의 가치를 되찾을 날이 있으리라 진심으로 바라지만 그 날이 오기 전 까지는 나는 간짜장면을 심하게 편애하며 지낼 것이다. 그러려면 짜장면이 싸구려 음식이라는 우리의 고정관념부터 깨트려야 하고 제대로 만드는 짜장면에는 그에 맞는 대가를 지불하며 기꺼이 사 먹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하겠다. 만 원짜리 짜장면도 잘 만들면 팔려야 한다. ‘그깟 짜장면을 무슨 만원씩이나 받아먹어? 짜장면이 짜장면이지 별 것 있겠어?’라는 식이면 곤란하다.
간짜장면을 파는 중식당이라고 다 제대로는 아니다. 일반 짜장처럼 잔뜩 만들어 뒀다가 퍼서 준다던가 양파를 줄이고 대신 양배추를 잔뜩 넣는다던가 화학조미료와 설탕의 사용량이 보통 짜장면과 별 차이 없는 집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기에 제대로의 집을 고르려면 발품도 팔아야 하고 시행착오도 겪어야만 한다.
필자는 볶음밥 맛있는 집에서는 간짜장면을 꼭 시키곤 하는데 그 반대도 가능하다. 볶음밥이 맛있는 집은 대부분 식용유 보다는 라드(Lard)를 쓰는데 그로 인해 특유의 풍미와 고소함이 강하게 느껴져서 이다.
볶음 미학(美學)의 결정체랄 수 있는 볶음밥과 간짜장면에 있어서 라드의 사용은 화룡점정 같은 중요한 요소지만 중식당 숫자로 전국 제일인 서울임에도 라드를 써서 간짜장면을 만드는 중식당은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가장 오래된 중식당이라는 을지로의 안동장에 가더라도 동네 중국집과 별 차이가 없는 짜장면을 만나게 될 뿐이니 말이다.
반면, 부산역 건너편의 차이나타운은 상당수의 업소들이 라드 사용에 거리낌이 없으면서 설탕과 화학조미료의 과다사용에 따른 불편함이 상대적으로 적은 구수한 맛의 간짜장면을 선보이는데, 그 중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 원향재(051-467-4868 중구 초량동 561)로서 불 맛 가득하고 라드의 고소한 풍미가 주는 행복함에 한껏 취할 수 있는 간짜장면은 국내 최고 수준이다. 차이나타운을 벗어나 동광동의 화국반점(051-245-5305 중구 동광동 3가2)도 간짜장 맛으로는 첫 손가락에 꼽히는 곳 중 하나이니 시간여유가 있으면 두 집을 비교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제대로 만드는 옛날식 짜장면이나 간짜장면을 찾아 보려는 이들이 짜장면의 발생지라는 인천 차이나타운의 중식당들을 찾게 되는데, 부산과는 달리 뜨내기 관광객 상대로 지난 수년 사이에 급조된 곳들이 대부분인 탓에 예상과는 달리 허접한 수준들이라 그쪽으로는 기대를 않는 게 좋다. 특히, 짜장면을 처음 시작했다는 집과 같은 상호를 쓰는 공화춘에서 큰 기대들을 하는데, 옛 이름만 남아있고 옛 맛은 종적을 감춘 곳이기에 그런 꿈은 깨라고 일가친척을 동원하여서라도 강력히 뜯어 말리고 싶다.
출처= (주)아시안푸드·월간외식경영 공동 기획
기고자= 박태순(Gundown) 음식칼럼니스트 (kr.blog.yahoo.com/igundown)
첫댓글 저는 입맛이 소박한지 간짜장보다는 그냥 짜장면이 더 맛있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