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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위안부’피해자 기림의 날이었다
-‘위안부’를 다룬 <모래시계가 된 위안부 할머니>(이규희, 네버엔딩 스토리)를 읽고 쓴 최종보고서
김나현 / 광동고 1학년 3반 1번 plick8709@naver.com
조예원 / 광동고 1학년 3반 13번 wmfrj4620@naver.com
원유석 / 광동고 1학년 3반 20번 jock031003@naver.com
이훈희 / 광동고 1학년 3반 23번 hhaura95@naver.com
책대화 주제를 선정하던 시간, 우리는 무언가 의미 있는 주제를 가지고 독서토론을 하고 싶었다. 의견이 ‘전쟁’으로 기울어질 때 즈음, 인터넷에서 ‘위안부’라는 단어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책대화 주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정해졌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유대인이자 심리학자였던 한나 아렌트는 “홀로코스트의 가장 무서운 본질은 희생자가 살해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 있었다는 존재 자체의 기록과 그 사람에 관한 ‘기억’이 ‘망각의 구멍’으로 떨어져 말살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머릿속에 담아두기 위해서 등의 이유로 인간은 기억과 기록을 한다. 우리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주제를 정한 것도 의미 있는 주제를 찾으려던 우리에게 이런 이유에서가 아니었을까? 한 가지 더, 사실 그날은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었다.
‘위안부’라는 잔인한 이름으로 나를 부르지 말아줘요
우리는 몇몇의 사물의 이름을 보고 대강 그 사물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솜사탕은 솜같이 부드러운 사탕으로, 풋사과는 덜 익은 사과로 그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명칭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우리는 현재 쓰이는 단어가 적절한지,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토론했다.
이훈희: ‘위안부’라는 이름에는 ‘위안을 주는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있어. 하지만 그 당시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들은 강압적이었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 위안을 준다는 뉘앙스가 풍기는 ‘위안부’라는 단어가 적절하지 않다고 봐.
김나현: 덧붙여서 말하자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국내에서 2017년에 국회에 공식적으로 법이 통과되었어. 그래서 지금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고 지칭하는데, ‘위안부’에 (‘)를 붙여서 일본이 ‘위안부’에 자발적이라는 의미를 넣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일본군이라는 말을 앞에 붙여서 전쟁의 주체가 누구였는지를 강조하는 의미를 함께 넣었다고 해.
원유석: 나도 나현이랑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어. 그렇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가리키는 단어를 잘 몰라.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정식 명칭을 알려서 기존의 단어와 확실하게 구분을 해야 할 것 같아.
조예원: 위안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같은 단어들은 ‘위안부’를 피해자에 초점을 맞추면서 피해자를 압박하는 것 같아.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에게 가해 사실을 씌우는 단어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도 제일 중요한 건 할머니들의 의사인 것 같아. 그게 할머니를 위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
원유석: 나도 예원이의 말처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사가 담긴 적절한 단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훈희: 그런데 나는 이 단어를 바꾸는 것보다 역사적인 피해 사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더 알리는 것이 훨씬 필요한 것 같아.
조예원: 훈희 말이 맞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위안부’를 지칭할 단어를 정치인들이 조정할 때, 누리꾼들의 여론이 ‘왜 정책을 펼치지 않고 탁상공론만 하느냐’, ‘호칭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나서야 되지 않는냐’는 말들이 많았어. 나도 그렇게 생각해, 단어보다는 일본이 어떻게 사과해야 하고,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역사적 사실을 확실히 짚어야 하는 게 더 중점이 돼야한다고 생각해.
‘위안부’는 직역하면 위안을 가져다주는 사람이란 뜻으로, 강제로 동원되어 온갖 수모를 당한 우리의 소녀들을 일컫기에는 너무 가혹한 단어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단어를 공식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바꾸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이름이 어색하게 들렸다. 피해자를 강조하는 듯한 말과 ‘위안부’라는 단어가 아직도 포함된 것이 마치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회의를 통해 이름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어떻게 바꿔야 할지 이야기를 나눴는데, 개중에는 호칭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지칭하는 단어는 그 사물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광범위하게 쓰이는 것일수록 조심해야 하는 것이 단어이자 언어라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 날아와 꽃이 되었다’라는 김춘수 시인의 <꽃>에서와 같이 이름은 사물의 본질을 나타내면서 사람들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이기 때문에 의미에 맞는 적절한 단어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한 마디의 사과가 천 가지의 행동보다 값지다
‘위안부’뿐만 아니라 역사를 통틀어 벌어졌던 약자들에 대한 학대와 폭력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얼룩이라도 지워보고자 사람들은 사과, 용서, 가해자의 처벌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이것을 우리에게 대입하고 간단하게 말하자면, 피해자 할머니께서는 사과를 받으셔야 한다. 나는 여기서 의문이 들었다. 누구에게? 소녀들을 추행한 가해자들은 이미 죽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사과를 받아야 하는 것인가. 또, 가해자들은 어떻게 사과를 해야 되는지 우리는 서로의 생각이 궁금했고, 이것에 대해 토론했다.
김나현: 내가 먼저 말할게. 사실을 순서대로 따져보자면 당시 일본군이 처벌받아야 하지만 이미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아. 다음으로, 주체였던 일본 정부가 물론 공식적으로 사과를 해야겠지. 하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그 다음으로, 할머니들께서 사과를 받아야 할 대상은 국내에서 ‘위안부’ 강제 동원 역사를 부정하는 사람들 같아. 예를 들어 반일종족 주의라는 책을 쓴 이영훈 교수, 훈희가 읽었던 제국의 위안부를 쓴 박유하 교수와 같이 역사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직접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조예원: 나도 사과를 해야 할 대상이 하나 더 있다고 생각해. 언젠가 ‘동시대를 살아갔던 일본의 노인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게 너무 억울하다’라고 하셨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말씀을 책에서 봤던 기억이 나. 나는 전쟁이 일어나는 동안의 그 참혹했던 일들을 방관하고 침묵했던 그들도 함께 미안함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
이훈희: 추가하자면 일본 정부에게 공식적으로 사과를 받아야 하지만 나는 우리나라 국민도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위안부’의 강제 동원 역사를 잊지 말자고 하면서 사실 우리는 그런 문제에 무관심할 때가 너무 많잖아. 그런 점에서 우리 국민도 항상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 또, 당시의 이익을 위해 10억엔의 ‘보상’금을 가지고 ‘위안부’ 피해자에게 한 푼도 주지 않았던 정부도 할머니들께 사과해야 해.
조예원: 나현이가 보여준 영화 ‘어폴로지’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께서 일본에 사과를 받으러 갔더니 젊은 청년들이 할머니들께 입에 담지도 못할 말들을 하고 있는 걸 보고 어떻게 사과를 받으러 온 사람에게 또 다시 모욕하고, 상처를 주는 그들의 행동에서 정말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자각이 없다고 느꼈어. 그건 아마 역사 교육이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나는 일본이 교과서에 자신들의 범죄를 크게 기록하고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정중하게 사과하는 것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생각해.
김나현: 최근에 영화 허스토리를 봤을 때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일본인이었어. 그리고 ‘위안부’에 관한 책을 찾아보았을 때도 대부분 일본인 활동가들이 쓴 책이 대부분이었는데, 난 그 사실에 굉장히 놀랐어. 이렇게 소수라도 진심으로 사과하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고마움을 느껴야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대다수잖아. 여기에 대해 일본이 해야 할 행동과 사과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독일의 행동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아. 독일은 자신들의 부끄러운 역사에 대해 정중하고 진심이 느껴지는 사과를 했고, 많은 추모관을 세우면서 역사를 되새겼어. 이런 행동을 일본이 본받고 행동해야 해.
이훈희: 나는 일본이 직접 우리나라한테 고개 숙이면서 사과하는 자세가 먼저라고 생각해. 현재 시점에서 일본의 문제를 더 알아보면 최근 일본의 인터넷 방송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 군복을 입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왜곡된 사실에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어. 이런 행동을 보면 나는 이들의 문제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고 봐.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 과거의 일이라 치부하지 말고 무조건 고개 숙여서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해.
어린아이들 사이의 잘못에서도 누군가 잘못을 했다면 바로 사과하도록 배운다. 한 마디의 사과가 때로는 그 어떤 행동보다도 값질 때가 있다. 그러나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일본의 태도는 인간의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도덕적인 소양의 범주에 벗어나 있다. 내가 읽은 책에서 전후 보상에서 꼭 해야 할 7가지는 진상 규명, 명예회복 조치, 손해배상(보상), 원상회복, 갱생,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이라고 나와 있었다. 그러나 이 중에 일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일본이 어떻게 사과해야 하는지, 그리고 일본 정부뿐만 아니라 누가 사과해야할지 토론해보았고, 여러 의견이 나왔다. 토론을 하면서 책에서 봤던 내용이 생각났다.
“우리도 인간의 존엄을 되찾고 싶어요! 이미 죽은 할머니들에게도 제대로 기념비를 세워주고, 교과서에도 제대로 쓰고, 일본 정부가 자기 잘못을 제대로 사죄했으면 좋겠어요”
-김순덕 할머니-
할머니께서는 일본인의 기억과 역사에 일본인, 스스로가 ‘가해자’였다는 사실을 단단히 새기고 다음 세대에게도 전해주기를 바라셨다.
모두에게 알리고 함께하는 것, 그것이 지금 필요하다
사람들은 으레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여러 사람에게 자문을 구한다. 주로 다수의 의견이 겹치는 것이 정답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눈에 띄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이번 시간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어떻게 알릴지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일본 정부’에 대항하는 것이기에 더 크게 생각해서 ‘우리나라 정부’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해 서로 판단한 것을 공유해보았다.
김나현: 유튜브 같은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니다 보면 전범기를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하고 일본을 찬양하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친일 성향의 한국 사람들이 많이 보여. 그런 사람들이 댓글을 달면 유저들이 그들에게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어떤 건지, 입장을 바꾸더라도 그럴 수 있냐고 대댓글을 달아줘. 만약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런 댓글을 계속 달아준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되새겨지고 알려지지 않을까?
이훈희: 나는 다르게 생각하는 게 현재 다양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게임이나 인터넷상에서 전범기를 사용하는 사람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굉장히 많지만 조사해보면 전범기가 가진 아픈 역사를 모르고 단지 멋있다면서 인터넷에서 프로필로 사용하는 일본인이 아닌 외국인들이 대다수야. 또, ‘위안부’나 다른 일본과 한국의 역사로 인터넷 전쟁이 벌어지면 서로의 주장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논쟁이 끝날 생각이 없어. 외국인 유저들이 논쟁에서 어느 한편의 주장에 공감하고 동의하면 논쟁이 끝날텐데, 그렇지 않으니까. 나는 딱히 해야 할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조예원: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같은 인터넷에서 내가 ‘위안부’에 대하여 알리고 싶다면 글이나 ‘NO JAPAN’과 같이 ‘위안부’를 알릴 수 있는 프로필을 사용해도 좋고 아니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카페에서 카페활동을 열심히 하거나 유튜브에서 ‘위안부’에 대하여 알리는 영상을 제작해서 올리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
원유석: 학급 활동으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ucc를 제작하고 있는데, 그게 예원이의 말에 예시가 될 것 같아. 이러 영상을 유튜브같이 전 세계 사람들이 보는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서 ‘위안부’에 대해 알리면 일본의 사과를 받아 내기 위한 한걸음이 될 것 같아. 하지만 사과를 확실히 받아내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겠지? 우리 정부는 과연 최선을 다 한 걸까?
이훈희: ‘위안부’ 문제 해결은 우리나라와 일본이 해결해야 하는 정말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국가 대 국가로 외교할 수 있고, 넓은 범위에서 지원할 수 있는 정부가 ‘최선’을 다 해야 해. 과거부터 우리 정부는 최선을 다했다고는 말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어. 요즘에는 그래도 해결하기 위해서 지원도 하고 여러 단체가 활동하지만 과거 정부들에게 ‘위안부’는 대부분 돈을 받기 위한 이용수단으로 사용됐거든. 그래서 나는 정부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김나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정신대대책협의회’라는 기구가 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다른 일제 강점기 강제 동원의 피해자들도 포함하는 기구이고, 활발하지 않은 활동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아. 그리고 우리나라 교과서에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내용이 단 몇 줄에 불과해. 아픈 역사에 비해 미미한 결과만 내놓는 정부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
원유석: 나는 너희들 의견과 반대로 우리 정부가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게, 정부가 결과를 낼 수 없는 건 정책을 제정한다고 해도 검토와 정책에 대한 많은 회의를 통해 의견을 나눠야 해서 바로 시행할 수 없기 때문일 거야. 그런 복잡한 과정 때문에 정책을 바로 시행하기가 힘들 텐데, 여기까지 끌고 온 우리 정부가 충분히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
조예원: 이제 정부나 우리가 ‘위안부’를 알릴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을 논의해 보자. 나부터 얘기하자면, 우리 세대는 이전 세대에 비해 사고가 유연하고 어떤 비참한 일을 당했는지 잘 알고 있지만,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위안부’에 대해 이미 끝난 문제라며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 문제에 대해 인식해야 문제를 고칠 수 있잖아. 그래서 나는 1차적으로 그런 사람들에게 문제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
김나현: 최근에 책을 읽으면서 수동적인 교육의 무서움에 대해 알게 됐어. 평소,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이 언젠가는 진리가 되고 사상을 이루는 경우가 많은데, 잘못된 교육은 잘못된 사상을 만들게 돼. 그래서 실제로 일본인들도 자신들의 역사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행동하는 경우가 많잖아. 진리가 사상이 되는 과정에서 진리가 결국, 역사 교육이잖아. 그렇기 때문에 나는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깊은 역사 교육이 ‘위안부’ 강제 동원 역사를 제대로 알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원유석: 나는 국외보단 먼저 국내에서 ‘위안부’에 대한 활발한 움직임이 먼저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다른 국가 일로 치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섯부른 홍보보다는 국내의 문제를 끝내고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해.
어떻게 하면 ‘위안부’라는 자신들의 부끄러운 역사에 대해 모르는 일본인들에게 잘 알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어쩌면 가장 중요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문제를 인식시키기란 정말 어려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일본인에게 ‘위안부’에 대해 알릴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해보았다. 다양한 방법들이 나왔고, 일본보다는 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최근에 인터넷에서 수요 집회에 대한 조사를 하다가 자전거로 미대륙 횡단하면서 ‘위안부’에 대해 알린 사람들을 봤다. 어떤 방법이든지 그것이 일본, 전 세계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피해 사실을 알리는 방법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실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ㅇㅇ하기 때문에 저는 이 활동을 합니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예를 들어 태어난 이유, 살아가야 할 이유, 더 쉽게 말하자면, 우리가 밥을 먹어야 하는 이유 같은 것들이 쇠사슬처럼 연결되어 있다. 흔히 ‘성공을 하려면 당신이 이 행동을 ‘왜’ 하는지 찾아라‘와 같은 말들이 자기 계발서에 나와있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리고 이 법칙은 우리가 참여한 수요 집회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에 대한 진상 규명을 하는 활동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우리는 확실히 해야 했다. 왜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 싸워야 하는가, 이 모든 활동이 의미가 있는가, 왜 역사에 무관심하려는 일본인에게 그들의 잘못된 역사에 대해 알리려 이렇게 힘을 빼야하는지에 대한 모든 질문을 이 소제목 아래에 모두의 생각을 밝혔다.
김나현: 다들 내가 수요 집회에서 자유발언을 한 걸 기억하고 있지? 그때 내가, 함께 싸워야 하는 이유의 첫 번째는 영화 허스토리를 보고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게 미안해서’라고 느꼈고, 두 번째 이유는 ‘다수의 목소리는 소수의 목소리보다 크기 때문에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한다’고 말했었어. 그 때 말했던 것처럼 나는 이런 이유들 때문에 우리가 ‘함께’ 싸워야 한다고 생각해.
이훈희: 우리가 함께 싸워야 하는 이유는 간단해.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이야. 언제
또, 그런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일본의 범죄 사실에 대해 싸우는 건 당
연한 거야. 이번엔 이 모든 활동이 의미가 있는지 얘기해 보자.
김나현: 아까 말했다시피 내가 위안부 수요 집회 때 한 자유발언 때 수요 집회를 준비하면서 초반에는 아이들의 반응이 좋지 않아서 이것이 정말 도움이 될까? 이 행동을 하는데 의미가 있을까? 괜히 애들 시간만 뺏는 게 아닐까?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해봤다고 했잖아? 그 뒤에 더 생각해봤는데, 결국에 들던 생각이 우리가 나쁜 일을 하는 게 아니잖아. 그리고 작은 행동이었지만 좋은 영향을 끼친 것에서 의미를 찾았어.
원유석: 나는 그 활동의 의미를 특정하기보단 수요 집회를 하면서 그 과정 자체가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해. 우리가 다 같이 함께하고 누구를 위해 한국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노력한 과정이 너무 보람찼잖아.
조예원: 나도 너희들과 비슷해. 내가 봤던 영화 귀향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몸 판 여자라고 비난하는 장면을 보고 ‘가해자에게 창이 씌워져야 하는데 피해자에게 너무 포커스가 맞춰진 게 우리는 피해자를 매도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우리 반만 봐도 ‘위안부’라고 하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 슬퍼하고 당연히 일본이 잘못했다고 말하잖아.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해.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가 한 것에 대해서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거라고 나는 믿고 있어.
조예원: 일본인에게 ‘위안부’를 알릴 필요가 있을지 얘기해 볼 거야.
이훈희: 난 당연히 일본인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더 나아가서 외국에도 많이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 최근에 전범기를 보여주는 영상을 봤는데, 전범기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 역사에 대해 설명해주니까 ‘하켄크로이츠와 같은 의미인데 어떻게 일본인들은 이걸 자랑스럽게 사용하냐’는 의견이 많았어. 하지만 일본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자신들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보고 있어. 이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역사를 하나의 일대기로 자랑스럽게 여기니까 일본에 알리는 것 보다는 국제적으로 알려서 국제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고 생각해.
조예원: 일본은 젊은 층이든 노년층이든 그들에게는 우월한 역사가 그들의 사상을 구축하고 있어. 그런 걸로 봤을 때, 일본의 역사 교육은 잘못 됐어. 그렇기 때문에 일본인들에게 더욱더 ‘위안부’ 강제 동원의 역사를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
우리는 이번 책대화를 통해 처음으로 한 주제에 대해 많은 경험을 해보았다. ‘위안부’에 대해 책을 읽고 조사하고, 수요 집회에 참여하고, 이렇게 ‘위안부’ 문제에 대해 토론도 해봤다. 그런데 문득 우리가 하는 이 활동들이 모두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매주 수요 집회를 하고 있음에도 변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태도와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우리의 활동이 부질없는 활동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의 생각이 궁금해졌고,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우리 모두는 그동안의 활동들이 누군가를 도왔다는 점과 작지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점점 줄어져가는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우리는 더 많이 이런 의미 있는 활동을 하며 일본에게 당당히 사과를 요구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세상에서 보기를 바라는 변화, 스스로 그 변화가 되어야 한다
‘세상에서 보기를 바라는 변화, 스스로 그 변화가 되어야 한다’ 평화 시위를 주장했던 간디가 함께 시위하는 사람들에게 한 말이다. 우리 반 모두는 ‘위안부’에 대한 사과를 받는 국내의 모든 활동 중에서 그 중심이 되고 있는 현장체험학습으로 수요 시위에 참여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우리가 준비한 것들이 큰 힘을 발휘할 거란 큰 기대를 품고 갔던 우리 반 친구들 중 우리 국어 모둠은 특히 더 실망했다. 적은 사람들의 숫자와 구석진 장소, 일렬로 줄 세워진 경찰들의 바리게이트는 상상했던 그 시위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 주제를 가지고 우리는 토론해보기로 했다. 그 전에 ‘시위가 만약 홍콩에서 중국에 독립하기 위해 폭력 시위가 일어난 것처럼 수요 집회도 유혈 사태가 필요할 때가 오지 않을까’로 시작한 나의 질문으로 우리는 수요 시위에 대해 전반적으로 토론해보았다.
조예원: 나는 ‘위안부’는 인권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폭력이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봐. 피해자의 인권을 위해서 하는 평화 시위인데 폭력으로 변질되면 수요 집회의 의미 자체가 없어지지 않을까?
김나현: 그렇긴 해. 사실 홍콩 시위와 수요 집회는 ‘자유’와 ‘인권’이라는 것에서 둘의 본질은 다르지만 언젠가는 폭력 시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이렇게 정당화를 시키기에는 위험하지만 그들이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의 잘못을 알리기 위해서는 가장 효과적이지 않을까? 홍콩시위가 이렇게 폭력사태로 점점 확대되면서 많은 외국인 기자들이 취재를 통하여 세계에 알려지기도 했잖아.
이훈희: ‘폭력’은 언제나 정당화될 수 없어. 나현이가 말했다시피 홍콩시위와 수요 시위는 본질에서부터 차이가 나잖아. 만약 폭력 시위로 변질된다면 일본은 더욱 사과를 하지 않을 거고, 그럼 관계가 지금보다 악화될 거기 때문에 나는 찬성하지 않아.
원유석: 나는 중립적인 입장이야. ‘인권’, ‘자유’라는 목적도 어차피 둘은 같은(인류의 가치를 위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방향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면 시위에 ‘폭력을 쓰거나 쓰지 않거나’는 문제가 되지 않다고 생각해. 누구도 시위에 대해 비판하거나 문제를 제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조예원: 수요 집회의 개선과 유지 방안에 대하여 논의해 볼 건데, 저번 주에 수요집회를 갔잖아.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았고, 집회 동안에 잡음과 소음 때문에 집중도 잘 할 수 없었어.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면 일본의 대사관도 익숙하단 반응만 얻을 거야.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2주일에 한 번 하더라도 좀 더 계획적이고 좀 더 크게 집회를 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이훈희: 나는 수요 집회에서 개선될 점을 찾는 것보다 어떻게 유지를 할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불매운동의 열기가 조금씩 식는 것처럼 곧 수요 집회도 참여 인원이 조금씩 감소할 거야. 그러니까 꾸준한 홍보와 봉사자 모집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김나현: 집회 중간 중간 일본 대사관을 볼 때마다 대부분의 닫힌 창문이 눈에 띄었어. 그 때문에 시위를 하면서도 하나의 벽 앞에서 시위를 하는 기분이었어. 또, 법적인 문제 때문이었겠지만 무력 시위를 하러 온 것도 아닌데 경찰들의 바리게이트가 만들어낸 위압감이 기분이 좋지 않았어. 그리고 사람이 많이 다니는 광화문도 아니고, 일본 대사관 뒤쪽 구석에서 시위를 해야 해서 시위가 제대로 되는 것 같지도 않다고 느꼈어. 나는 이런 문제점을 개선해야 된다고 생각해.
원유석: 나도 나현이의 말처럼 더 개방된 공간에서 집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또, 앞으로는 충분한 언론이 제공되어서 질 좋은 취재가 활발히 이루어져서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
영화 ‘레미제라블’의 마지막 부분에서 프랑스 혁명을 재연한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이 하나 되어 부패한 왕정에 시위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결국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신분제 폐지라는 결과를 얻게 됐고, 전 세계에서 3번째로 진보적인 국가가 되었다. 시위는 사회의 고정적인 방식을 바꾼다. 악습을 폐지하고, 민주적인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게 한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의견을 알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에 많은 국가에서 정부에 대항하기 위해 사람들은 시위한다. 그러나 수요 시위는 그 역사가 20년이 다 되어가는 것에 비해 마땅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수요 집회의 개선 방안과 만약 폭력 시위로 확장된다면 어떨 지에 대해 토론해 보았고, 질문에 대한 여러 좋은 의견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 만약 계속되는 이 수요 집회가 우리들의 생각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개방된 공간과 참가하는 사람들의 수 유지, 더 좋은 기기와 적극적인 활동과 같은 방향으로 개선된다면 우리의 의견을 더 잘 표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가 느낀 것은
주제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정했던 것에는 같은 민족, 같았던 나이로서 그들의 아픔, 슬픔과 고통을 잊지 않기 위함이라는 이유가 있었다. 우리는 이 이유를 되새기면서 수요 시위에도 참가하고, ‘위안부’에 관한 책도 찾아보고, 영화도 보고, 토론을 하는 등의 그동안에는 해본 적 없는 ‘기억’을 위한 여러 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으로 각자가 느꼈던 감정, 생각을 공유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 전에 만약 우리가 원하는 결과가 나타난다고 해도 모든 것이 끝날지 대화해 보았다.
김나현: 갑자기 든 생각인데, 우리나라의 ‘위안부’와 비슷한 홀로코스트에 대해 유럽이 요구했던 교과서 기재, 박물관 설립, 추모관 설립, 범죄자에 대한 처벌, 나치군의 만행에 대한 사죄 등 모든 것이 해결됐는데 그렇다고 이게 끝난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해?
조예원: 만약, ‘위안부’에 대해 종지부를 찍는다고 하면 일본의 사죄를 할머니께서 받아들이시는 것과 역사 교과서에 전범국으로서의 만행 기재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역사는 반복된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잊어버리지 않도록 항상 기억하는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완전한 해결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해. 그래도 일본의 모른척하는 태도보다는 훨씬 성숙한 태도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본론으로 돌아가보자.
김나현: 그동안 우리의 주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됐어. 모든 것은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지게 되는 거니까, 사라지지 않도록 더 열심히 기억하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훈희: 당연히 알아야 하는 문제인데 일상생활 속에서 잠시 있고 살았던 게 부끄러웠어. 국어 수행 평가의 주제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되니까 이제야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공부하게 돼서 안타까움을 느꼈어.
원유석: 훈희가 말한 것처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께서 당하신 고통을 잊고 살았던 게 부끄러웠어. 책, 인터넷뿐만 아니라 생생하게 체험한 수요 집회를 통해서 소수가 다수가 될 때, 우리도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걸 깨달았어.
조예원: 처음에는 ‘위안부’에 대해 막연했고, 뭘 할 수 있을지 몰랐는데, 책과 영화를 통해 생생하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비참한 감정과 고통을 느끼고, 수요 집회에 참여하면서 이제라도 이런 활동을 할 수 있게 돼서 기뻤어. 또, 앞으로 나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금 놓인 상황을 알고 뭘 할지 알게 됐으니까 앞으로 더 좋아지지 않을까?
10대 초반에서 20대 초반까지의 어린 소녀들이 조선에서 각자의 꿈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었다. 암울한 시기였지만 누군가는 학교에 가는 것이, 누군가는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으리라. 그 아름다운 나이에 받은 치욕과 수치심으로 한평생을 살았다.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으로서 시험, 수행평가, 동아리 활동 등 많은 일을 해야 한다. 하루하루가 무미건조하고 목표 없이, 의미 없이 지나가는 이런 일상 속에서 대부분 처음이었을 ‘위안부’에 대한 책을 읽고, 공부하고, 수요 집회에 참여하면서 부끄러움, 기쁨, 슬픔, 무서움, 두려움 등의 다양한,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나는 꿈을 이루기 위해 치열한 이 시기에 그들은 생존하기 위해 치열했다. 잘못 말할까봐 조심스러웠고, 영화를 보면서 슬퍼서 눈물을 흘렸고, 일본의 무관심한 태도에 분노를 느꼈던 이 기간 동안 나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책대화)-위안부-_모래시계가 된 -위안부-피해자 할머니_최종_김나현,조예원,원유석,이훈희.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