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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납팔죽(腊八粥)을 먹는 날이다.
화시도시보의 관영 미니블로그에 따르면 청두(成都) 원수(文殊院)사원에서는 밤 새도록 끓여 만든 납팔죽을 1월 27일 오전 10시에 시민들에게 나누어준다. 납팔죽을 가지러 온 시민들이 수 백 미터 늘어서 장사진을 이루었다.
납팔죽은 음력 12월 8일 부처님의 득도를 기리기 위하여 사원에서 끓여서 부처님에게 공양하고 승려에게 나누어 주는 죽이다. 좁쌀•찹쌀•땅콩•대추•마름•연밥•밤•살구씨 등으로 만든다. 이는 지금까지 민간 풍속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납팔절(臘八節)의 유래와 풍속
전설1
납팔절은 인도에서 전해졌다는 전설이 있다.
최초로 불교를 세운 사람은 고대인도(지금의 네팔)의 고타마 싯다르타 라는 사람이다. 바로 석가모니이다. 여기서 성(姓)은 고타마(Gautama)이름이 싯다르타(Siddhārtha)입니다. 석가모니란 석가족(釋迦族)에서 나온 성자(聖者)라는 뜻이다.
그에게는 불타(佛陀, Buddha : 깨달은 사람이란 뜻), 여래(如來), 세존(世尊), 사주(師主) 등의 존호(尊號)가 있다. 왕족(王族)의 태자(太子)로 태어난 그는 많은 중생들이 생로병사 등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보고, 또 당시 브라만의 신권통치에 불만을 느낀 나머지 왕위를 포기하고 출가해 수행 길에 올랐다.
호흡수련과 단식으로 고행한 그는 얼굴이 초췌해지고 늑골이 드러났다. 정신적 깨달음에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음을 깨달은 그는 고행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강에서 목욕도 하고 또 목장주인의 딸 수자타 여인이 주는 우유죽 공양을 받기도 한다.
이처럼 처음에는 아무런 수확이 없었지만 6년간의 고행을 거쳐 12월 8일에 그는 크게 깨달음을 얻고 보리수 아래에서 부처님이 되었다. 6년간의 고행길에서 그는 매일 일마일미(一麻一米)로 연명했다. 후세 사람들은 그가 겪은 고난을 잊지 않기 위해 매년 음력 12월 초여드레 날 죽을 먹는 것으로 그를 기념하고 있다.
하여 '음력12월 초여드레'는 '석가성불의 기념일'로 되었고 '음력12월 초여드레'는 불교의 성대한 명절로 되었다. 그 후 각지 불교사원에서는 욕불회(浴佛會)를 개최하거나 불경을 읽고 성불전 석가모니를 모방하거나 목장주인의 딸 수자타가 우유죽을 공양한 전설을 되새기며 곡물이나 과실을 한데 섞어 죽을 써서 부처님에게 공양하는 등 행사를 벌이는데 이 죽을 일명 '납팔죽'이라고 부른다.
이날 또 납팔죽을 신도들이나 선남신여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는데 그 후 민간에서 풍속으로 되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전하는데 의하면 어떤 절에서는 음력 12월8일 전에 승려들이 바리때를 들고 길거리를 다니며 동냥하고 12월 초파일날에, 동냥해온 쌀이나 밤, 대추, 열매 등 식재료를 한데 넣어 납팔죽을 써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이 죽을 먹고 나면 불조의 보우를 받는다고 한다. 하여 가난한 사람들은 납팔죽을 또 '불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알려진데 따르면 항주의 유명 사찰인 천녕사(天寧寺)에는 전문 남은 밥을 저장하는 잔반루(棧飯樓)가 따로 있다고 한다. 평소 사원내의 남은 밥을 말려서 잔반루에 보관하는데 음력12월 초파일이 되면 그 말린 밥으로 죽을 써서 신도들에게 나누어 준다고 한다. 이름해 이 죽을 '복수죽'(福壽粥)이라고 한다. 그 뜻인즉 이 죽을 먹으면 복을 더 받고 더 장수한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또 사원들에서 식량을 아끼는 미덕을 엿볼 수 있기도 한다.
전설 2
납팔절은 '붉은 팥 액막이' 풍속에서 왔다는 전설도 있다. 여: 전설에 의하면 상고 5제중의 한명인 전욱씨(颛顼氏)는 세 아들이 죽은 후 마귀로 변해서 전문 어린이들을 괴롭혔다고 한다.
고대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미신을 믿었는데 귀신을 아주 무서워했다. 어른이나 아이들이 병에 걸리거나 몸이 불편하면 모두 귀신이 한 노릇이라고 인정했다.
이런 마귀들은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지만 붉은 팥만은 아주 무서워했다고 한다. 하여 '붉은 팥 액막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하여 음력 12월초파일 날에는 붉은 색 팥이나 자주색 콩으로 죽을 써서 먹는 것으로 병을 예방하고 길함을 바랐다.
전설 3
진시황은 장성을 수축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동원했다. 동원된 민부들은 오래 동안 집에 갈수 없다.
그들이 먹는 쌀은 가족들이 갖다 준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집과 수 천리를 상거해 있어 가족에서 갖다 주는 양식을 받을 수가 없었고 기아와 굶주림에 허덕이다가 장성 기슭에서 죽고 마는 일이 기수부지였다.
어느 해 음력 초파일에 먹을 쌀이 없었던 몇 명의 민부들은 합쳐 여러 가지 곡물 몇 알을 솥에 넣고 멀건 죽을 끓여 사람마다 한 그릇씩 마셨다. 하지만 기아에 지칠대로 지친 그들은 장성 기슭에서 죽음을 면치 못했다.
이처럼 처음에는 장성 기슭에서 굶어죽은 민부들을 추모하기 위해 사람들이 매년 음력 12월8일에 먹던 죽이 오늘의 '납팔죽'으로 되었다는 설도 있다.
전설 4
중국의 서진 시기 아주 게으른 청년이 있었다. 그는 평소일하기는 싫어하고 놀기만 좋아해 가난만 싸여갔다. 그의 신혼 아내가 여러 차례 권고했지만 아무소용이 없었다. 년 말 12월 초파일날이 되자 집에는 먹을 것이 아예 바닥이 났다.
청년은 너무나 배가 고파 집안에 있는 쌀독이나 밀가루 포대 등 곡물이 있을만한 곳은 샅샅이 뒤져 남아있는 곡물 몇 알과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전부 솥에 넣고 끓여 멀건 죽 한 그릇을 만들어 마셨다.
이때로부터 청년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열심히 살기로 큰 결심을 내렸다. 현지 사람들은 이 사례를 가지고 매년 음력 12월 초파일이 되면 납팔죽을 먹으면서 자녀들을 교육하고 있다는 설도 있다.
전설 5
또 한 가지 전설은 납팔절은 사람들이 충신 악비 장군을 기리는 마음에서 생겨났다는 설도 있다. 1140년에 악비 장군은 주선진(朱仙鎮)에서 금군을 대파하였다.
그때는 한창 동지섣달 엄동이라 악가군은 의복과 군량이 떨어져 헐벗고 굶주리게 되었는데 많은 백성들이 다투어 죽을 보내 응원했다.
악가군은 백성들이 보내준 죽(천호죽千家粥)을 포식하고 금군을 크게 이기고 개선했다. 이날이 바로 12월 초파일이다.
악비 장군이 죽은 후 사람들은 그를 기념하기 위해 해마다 납팔절이 되면 잡곡과 과일, 열매를 한데 섞어 죽을 끓여 먹었는데 후에는 그것이 풍습으로 자리를 잡았다.
전설 6
명태조 주원장은 어린 시절 집안이 가난해 돈 많은 집에서 소를 방목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어느 하루 소방목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외나무 다리를 건너게 되었는데 그만 소가 미끄러져 다리 아래로 떨어졌고 소다리가 부러졌다.
화가 치민 돈 많은 주인은 주원장을 한 작은 방에 가두어 놓고 밥을 주지 않았다. 주원장은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다. 갑자기 그는 같혀 있던 집안에서 쥐굴을 발견하고 부랴부랴 파헤쳐 보았는데 바로 쥐의 양식 창고였다.
쥐굴속에는 쌀도 있었고 콩도 있었으며 대추도 있었다. 그는 이 여러 가지 곡물을 한데 넣고 죽을 끓였는데 아주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주원장은 황제가 된 후 갑자기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하여 궁의 요리사를 시켜 각종 곡물을 넣은 죽을 끓이라고 했다. 그 날이 바로 12월 초파일날이었다고 한다. 하여 그 죽을 납팔죽이라고 부른다.
<인민일보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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