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음은 진실하고 주체적인 것이다
‘강도들도 자기 가족은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사실이다. 범죄자의 많은 경우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범죄를 저지르며, 가족을 겁박할 때 많은 가장들이 거짓과 타협하게 된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정직하고 진실하고 정의롭게 살기를 원한다. 인간에게는 선천적으로 주어진 양심이란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정이라는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회인들이 자신의 양심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다. 오늘날 정치인들이나 범죄를 저지르는 사회인들을 보면 무서움이 든다. 너무나 태연하게 더 이상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좀 더 이익을 보기 위해 아무 거리낌 없이 범죄행위를 하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거짓을 퍼뜨리고 너무 쉽게 악을 행한다. 악은 전염되는 것이다. 한 번 억울하게 자신의 재산을 빼앗긴 사람은 자신도 쉽게 악을 행할 수 있게 된다. 사회가 타락했기 때문에 사회 속에 있는 사람들이 쉽게 타락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아직 학생이며 사회적 삶에서 면제되어 있거나, 사회적 삶에 진입했다고 해도 사회 초년생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순수할 수 있다. 순수할 수 있기에 거짓을 싫어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다. 세상이 타락하였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타락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세상이 타락하면 젊은이도 타락하게 된다고 믿기 때문에, 바로 그 생각 때문에 타락하게 되는 것이다. 6~70년대 군사독재로 온 국민이 고통당하고 있을 때, 그 완고한 폭력의 벽을 허문 것은 젊은이들 이었다. 당시 ‘학생운동’으로 알려진 민주화 운동은 대학에서 시작되었고 거의 모든 대학생이 ‘자유’와 ‘정의’를 외치며 데모에 참여하였다. 그 결과 한국사회는 마침내 ‘문민정부’를 가질 수 있었고, ‘민주화’를 이룰 수가 있었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민주주의를 굳건히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젊은이들의 젊음 덕분이었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민주화 운동은 너무나 쉽게 그 길을 잃어버렸다. 민주화란 다만 군사독제를 무너뜨렸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민주화는 모든 영역에서 기존의 잘못된 관습과 타락한 문화를 바로 잡는 것을 지속적으로 이루어 갈 때 유지되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그 젊은 대학생들이 정치가가 되고, 경영인이 되고, 법조인이 된 지금 한국사회는 ‘헬조선’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비참하다. 모든 부분에서 범죄율이 증가하고, 보이스 피싱, 인터넷 사기, 스미싱 범죄, 전세 사기 등 온갖 범죄들이 너무나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문을 닫는 자영업자가 속출하며, 일자리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이 모든 일들의 종합적 결과로 한국사회는 세계에서 출산율 꼴찌라는 부끄러운 수치를 가지게 되었으며, 국가소멸이라는 무서운 용어가 보통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
한국사회는 젊음을 잃어버린 사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생들이 젊음을 상실해 버린 것 같다 안타깝다. 강의 시간에는 활기가 없고, 쉬는 시간에도 생기가 없다. 알고자 하는 순수한 의욕보다는 오직 점수에만 관심이 있다. 어떤 젊은이들은 이미 사회인처럼 처세술을 배우고 있으며, 끼리끼리 뭉쳐 집단화하고, 거짓말을 너무 쉽게 하고, 선동을 일삼는다. 진영논리에 갖혀 그 어떤 말을 해도 진정성을 보기 어렵다. 정당하고 당당하게 사랑으로 대면하기보다는 비겁하고 어둠 속에 숨는다. 축제 때의 웃음도 잠시의 즐거움을 의미할 뿐 가슴 깊이 솟아나는 삶에 대한 기쁨의 없다. 이러한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젊은이들이 젊음을 상실하면 한국사회는 미래 비전이 없다. 젊음을 상실하게 되면 삶이 우울하게 된다. 처세술로 거짓으로 이 세상을 다 얻는다 해도 젊음이 상실된 마음은 기쁨을 가질 수가 없고, 삶의 환희를 가질 수가 없다. 젊음은 순수하다는 그 이유만으로 진실하다. 젊음의 특징은 모든 것을 액면 그대로 주시하고, 젊음이란 현실이 아무리 고통스럽다고 해도 그것을 숨기거나 눈치를 보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 볼 수 있는 힘이다. 젊은이란 비겁하게 어둠 속에 숨지 않고 항상 공명정대하게 사물과 사람들을 마주하는 사람이다. 세상이 아무리 타락하였다고 해도 젊은이들이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면 그 사회의 미래는 밝다. 언젠가는 젊은이가 사회의 주역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역이란 주인 됨을 말하는 것이다. 주인은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사람이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젊은이는 무엇보다 자기 삶의 주인인 사람이다. 아직 누구의 부하도, 어떤 조직의 일원도 아니기에 젊은이는 자유롭고 주체적일 수 있다. 주체적이라는 것은 스스로 확인하고, 스스로 판단하며 스스로 자기 행동과 삶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오직 자기 삶의 무게만을 가진 젊은이는 누구보다 주체적일 수 있다. 타인의 거짓에 선동되지 않고, 집단이나 조직 속에 갇혀 휩쓸려 가지 않고 또 가족을 위해 불의와 타협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젊은이는 누구보다 주체적일 수 있다. 현대문명이 아무리 젊은이들을 평균화된 숫자의 틀 속으로 가두고자 해도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면, 주체적일 수가 있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세상 전체와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정신이란 나이와 무관하게 젊음을 가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사람은 서른에도 늙을 수 있고, 여든에도 젊을 수가 있다. 바로 사유하는 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무어라고 해도 자신의 길을 당당하게 갈 수 있는 힘이 젊음이다. 젊음도 전염되는 것이다. 이렇게 젊음을 잃지 않은 청년들이 한 둘씩 생겨나고 더 많은 젊은이들이 생기 가득한 젊음을 회복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그래도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