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눈썹
김명화 smile3803@naver.com
오랜만에 친정에 왔다. 엄마랑 나들이 계획에 들떠있다. 화장하던 엄마가 갑자기 검게 그을린 나무젓가락을 가지고 가스레인지로 간다. 약한 불 위에 젓가락 끝을 굽는다. 빙빙 돌리더니 끝에 붙은 불을 훅 불어 껐다. 손으로 살살 비비고는 다시 거울 앞으로 간다. 자세히 보니 곱던 엄마의 눈썹이 보일 듯 말 듯 사라졌다. 그곳에 검정 팬이 된 젓가락으로 눈썹을 그린다. 잠시 후 엄마는 외출준비를 마쳤다. 구십 평생 살아온 노하우를 칭찬해야 하나. 백발에, 주름 가득한 얼굴에, 당연한 민둥산 눈두덩이를 슬퍼해야 하나 딜레마에 빠져버렸다.
“엄마 언제부터 그걸로 눈썹 그렸어?”
묻는 말을 듣기나 했는지 엄마의 혼잣말은 또 한 번 내 가슴을 찡하게 했다.
“성냥이 있으면 좋은데 이제 성냥을 찾아볼 수가 없네.”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방법으로 눈썹을 그렸다는 뜻이다. 화장대를 살폈다. 그곳에는 우리 네 남매가 쓰던 기차 모양 연필 깎기가 소품으로 놓여있다. 저것이 나무젓가락을 눈썹연필로 만들어 주며 엄마를 지켜보고 있었나 보다. 몇 해 전부터 치매에 걸려 단기기억이 없는 엄마다. 언제까지 엄마가 저 방법으로 눈썹을 그릴지 모른다. 아니 그 기억만 오래 남아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처럼 젓가락을 들고 가스레인지에 다가가지나 않을지 걱정되었다.
부끄럽지만 처음으로 엄마의 상태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허리는 반쯤 꺾여 걸을 때마다 두 손을 무릎에 대고 아장아장 걷는다. 괄약근 조절이 약해 항상 기저귀를 차고 있다. 양 귀는 보청기를 껴도 소리가 들리지 않아 말하는 사람의 입술만 쳐다본다. 가만히 엄마에게 다가가 가슴에 안아본다. 가볍고 조그마한 살아있는 미라 같다.
딸도 하나는 적다고 늘 안타까워하던 엄마. 내가 이렇게 무심한 딸이 될 줄 알고 다른 딸 하나를 더 바라신 것은 아닌지…, 허리가 고부라져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는 엄마의 손을 꼭 잡는다. 이 손을 잡는 순간 오늘의 목적지는 정해졌다.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눈썹 문신 잘하는 곳을 추천받았다. 다 늙어서 무슨 문신이냐고 싫다 할 줄 알았던 엄마 얼굴이 환해졌다. 예뻐지고 싶나보다. 아픈 것을 무서워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시술에 임하는 엄마를 보고 안심되었다. 미용사에게 진하지 않게 부드럽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다며 시술하기 전 그려진 눈썹을 보여줬다. 내가 항상 보아온 엄마의 모습이라서 좋았다. ‘저리 좋을까.’ 엄마의 얼굴에 새로 생길 초승달 같은 눈썹이 방끗 웃는다.
다음날 기력이 쇠약해진 엄마를 두고 돌아서기 힘들었다. 며칠만이라도 함께하고 싶어 집으로 모셔왔다. 깊은 밤 내 손을 꼭 쥐고 잠든 엄마를 보며 생각에 잠긴다. 혹 옛날에도 성냥개비를 태우거나 나뭇가지를 그을려 눈썹 그리던 풍습이 있었을까. 아니면 엄마가 혼자 생각해 낸 방법인가. 궁금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 살그머니 일어나 서재로 향했다. 조상들의 화장법, 특히 그중에서도 눈썹 그리는 법이 어떤 것이 있나 찾아본다.
한참 자료를 찾다 보니 일부 특권층이 화장품을 만들어 사용한 흔적을 찾았다. 조선 시대의 여성 실학자 빙허각이 지은 여성백과사전《규합총서》라는 책이다. 그곳에 기초화장부터 색조화장 하는 법과 화장품 만드는 법이 잘 기록되어 있다. 눈썹화장법이 눈에 띈다. 눈썹 그리는 것을 ‘눈썹 미, 먹 묵眉墨’이라 하는데 굴참나무, 너도밤나무로 만든 숯 그을음을 기름에 걸쭉하게 혼합하여 쓰는 것이 일반적이라 한다. 또 다른 방법은 목화에 자색 꽃을 태워 기름연기油煙에 묻힌 것을 참기름에 개서 쓰기도 하고, 솔잎을 태운 유연에 보리깜부기를 짓이겨 혼합한 것을 사용해 붓으로 눈썹을 그리기도 했다고 한다. 밤새도록 역사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태운 나무젓가락이나 성냥개비로 눈썹을 그린 방법이 기술된 곳은 없다. 그것은 아마도 엄마의 창작품 인듯하다. 이는 어쩌면 지난 역사에 마지막 남겨지는 눈썹 그리는 민간요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여자의 욕망은 간절하다. 아침에 눈썹만 잘 그려져도 그날 하루는 왠지 기분이 좋다. 바쁜 일상에 눈썹 그리기 귀찮고 힘들면 눈썹 문신을 해도 된다. 아픔과 불안감을 참으면서까지 눈썹 문신을 하는 이유는 저마다의 사연들이 있을 거라 생각된다. 안방에서 발뒤꿈치로 콩 콩 걷는 엄마의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그녀의 소중한 하루가 동이 트는 것과 함께 다시 시작되고 있다. 갑자기 가스레인지 켜는 소리가 났다. 밤새 함께하던 사색이 마법처럼 사라졌다. 나무젓가락을 굽던 엄마 모습이 떠올라 급히 주방으로 갔다. 불 위에 주전자가 올려져있다. 그린 듯 어여쁜 눈썹이 나를 보고 웃는다.
첫댓글 명화샘. 잘 읽었어요. 역시 명화샘입니다. 합평후 잘 다듬어지고, 쓰고자 하는 내용이 간결하고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가슴이 찡하네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 수필의 묘미입니다.
감사합니다~~♡
하나의 아이디어를 전혀 새로운 맛을 내는 글로 바꾸셨군요.
잘 읽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