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가 사람의 일에 개입하면 일어나는 일
“난리가 난 중국기원”
최근에 바둑계에서 <춘란배>라는 세계대회가 진행 중이다.
현재 4강이 끝나고 결승전을 앞두고 있다.
준결승전(4강)에서 A조에서는 한국의 ‘신진서’ 기사와 중국의 ‘리샨하오’ 기사가
그리고 B조에서는 한국의 ‘변상일’ 기사와 중국의 ‘탕웨이싱’ 기사가 대국을 치뤘다.
그런데 믿지 못할 일이 발생하였다.
예상했던 일과는 전혀 다른 결과가 주어졌다. 당연히 승리할 것이라는 신진서 선수가 리샨하오에게 졌고, 또 탕웨이싱 선수가 이길 것이라 예상과는 달리 변상일 선수가 이긴 것이다.
사실 변상일 선수가 탕웨이싱 선수에게 이긴 것은 예상을 벗어난 것이긴 하지만 누가 보아도 업치락 뒤치락 치열하게 둔 바둑이었고, 마지막에 탕웨이싱 선수가 실수를 몇 번 하는 바람에 변상일 선수의 뒷심이 빛을 보았던 게임이었다.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신진서 선수와 리샨하오 선수의 대국과 관련하여 발생하였다. 결승전을 앞두고 8강에서 탈락한 양딩신 선수가 ‘리샨하오 선수의 치팅(인공지능을 사용하여 컨닝한 것)’을 문제 삼고 들고 일어난 것이었다.
양딩신 선수가 리산하오 선수의 게임에 이의제기를 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양딩신 선수가 올린 위 SNS의 글을 요약하자면, 아래 4가지이다.
1) 자신과 리샨하오의 20번기 대국을 신청한다.
2) 하루에 한판씩을 두되, 어떠한 전파수신이 불가능한 곳 이어야 한다.
3) 시간은 무제한 사용해도 되지만 절대로 자리를 떠나서는 안 된다.
4) 20번기에서 자신이 진다면 자신은 바둑기사로서 은퇴를 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이의제기에 동감하는 중국의 기사들은 ‘커제’ ‘렌샤오’ ‘구링이’ ‘왕하오양’ ‘천야오예’ ‘장외이제’ 등 중국랭킹 1위부터 10위까지의 상위권에 드는 선수들이다.
게다가 이미 대국을 하는 중에 알파고의 개발에 참였고 아마 5단 정도의 실력을 가진 ‘아자 황’ 박사가 리샨하오 선수의 ‘치팅’을 암시하는 글을 올렸다. 그 내용은 “자신이 평생 바둑 경기를 지켜보았지만 사람이 이렇게 완벽하게 바둑을 둘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는 내용이었다. 한 마디로 ‘리샨하오’가 둔 바둑은 인간이 둔 바둑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실상 이러한 문제제기는 이미 예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리산하오 선수의 게임은 도저히 사람이 둔 수라고는 할 수 없을 만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실수 한 번 없이’ 인공지능이 추천하는 수와 일치하는 일치률이 85%나 되었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세계 랭킹 1위인 신진서 선수도 인공지능 추천수와의 일치율이 70%를 넘지 못하며, 프로기사들의 평균 일치율은 60%를 넘지 못한다. 그러니 확률상으로 보자면 치팅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300수 이상을 두는 바둑 게임에서 거의 260수 이상을 인공지능과 동일한 수를 찾아낸다는 것은 상상이 불가능하다. 양딩신 선수가 이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자신과 리샨하오가 둔 8강에서도 거의 동일한 상황이 발생하여 자신이 리샨하오에게 졌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자면 누가 보아도 리샨하오와 신진서의 대국에서 ‘리샨하오’가 부정행위를 했을 것이라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세계 정상급 선수인 프로선수가 설마 치팅을 하였을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리샨하오는 지난해에도 대국 중에 치팅의심을 보여 커제선수가 문제제기를 하여 몸수색을 당하는 일까지 있었고, 한국의 떠오르는 신예기사인 ‘김은지 선수’도 2년 전 대국 중에 ‘치팅’을 하여 ‘1년 자격정지’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 ‘발각되지만 않는다면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1등을 하고 싶다’는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인간이란 그렇게 나약한 존재인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한 입장에 처한 것은 중국기원일 것이다. 자국의 랭킹 2위인 선수가 다른 선수의 ‘부정행위’를 자신의 ‘프로은퇴’를 걸고 문제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떠오르는 신예인 ‘리샨하오’를 버릴 것인지, 현재 중국랭킹 2위인 선수를 버릴 것인지 어느 하나를 선택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바둑은 태권도나 육상 스포츠처럼 스포츠 정신이 생명인 게임이다. 만일 ‘프로선수들이 부정행위를 하여도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된다면 더 이상 바둑은 바둑이 아니다. 아무도 바둑을 구경하거나 감상할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그 시간에 차라리 인터넷 게임을 보는 것이 더 날을 것이다.
그래서 중국기원이 특단의 대책을 내렸다. 그 내린 결정은 다음과 같다.
"둘이서 7번기의 바둑을 두고 승부를 보아라! 누구든 지는 사람이 은퇴를 해야 한다!"
20번이 아니고 7번을 두라고 한 것은 두 선수 모두 2월에 세계대회 결승전을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일본사무라이들이 목숨을 걸고 진검승부를 하는 것 같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지든 이 사건은 참으로 세기의 대결, 실력으로 진실을 밝히는 진검승부가 되었다.
누가 이기든 한 기사는 명예와 프로의 생명에 치명적인 것이 될 것같다.
흥미진진하기는 하지만, 왜 이같은 일이 발생하였는지 씁쓸하기도 하다!
아마도 앞으로 보다 기술이 발전하고 인간의 모든 삶의 영역에 ‘IT가 도입되는’ ‘기술주의( technologism)’사회가 된다면 이 같은 문제들은 보다 더 빈번히 발생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 ‘사람이 먼저(human first!)’가 아니고, ‘기술이 먼저(techno first!)’라는 생각이 일상을 지배하게 될 것이고, 누가 보다 좋은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모든 삶을 결정하게 되고 말 것이다. 인간은 더 이상 인간적인 삶을 기대할 수가 없게 될 것이며, 기계가 인간의 삶을 대신 살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하고, 인생의 주인은 인간이어야 한다. 기계는 어디까지나 기계일 뿐이고, 기술은 아무로 탁월해도 어디까지나 인생을 도와주는 기술일 뿐이다. 인간의 삶에 기계와 기술이 개입할 수 있는 정도에 한계를 두어야 한다. 단순히 법률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교육적 차원에서 기계보다는 인간이, 인공지능보다는 사람의 지성이 삶을 이끌고 보다 휴먼하게 삶을 형성하고자 하는 윤리 도덕적인 삶의 분위기를 형성하여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