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산(修仁山 561m)은
장흥군의 유치면 대리와 강진군 병영면 상락리에 걸쳐 있는 고려말 남해안으로
침략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쌓은 수인산성을 비롯해,
조선 병마절도사가 거주하던 병영터가 있는 국방상의 요충지에 자리잡은 천혜의 요새다
정상은 노적봉으로 천연의 평탄지가 있고 샘이 많으며 높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웅장하고 오묘한 산세를 지닌다.
자연적인 산세를 이용하여 쌓아 올린 수인산성 정상부는 드넓은 고원지대를 형성하며
조릿대와 어울리는 억새가 황금벌판을 펼친다.정상인 노적봉의 조망은 일품으로
무등산, 지리산, 두륜산, 천관산, 흑석산, 월출산이 둘러싼다.
가까이는 장흥벌과 병영벌이 훤하게 내려다보인다.
정상부는 고려말부터 조선말까지 전라 병영성의 전략적 요충지로서
왜구가 침략할 때마다 주민들의 피난처로 이용되었고,
병영면의 지명은 조선 태종때 왜구를 막을 목적으로 병영을 설치한데서 유래된 것이다.
<1872년지방도>에 수인산(修仁山)으로, <여지도>에 수인산(修因山)으로 표기하고 있다.
<해동지도>에는 수인산은 표기되어 있지 않으나, 수인사와 봉대, 수인산성이 기재되어 있다.
봉수대가 있어서 동쪽으로 전일현(全日峴), 남쪽으로 천관산,
북쪽으로 강진의 수인산(修仁山) 봉수에 응하였다
수인산 봉수에서 쓰는 홰를 만드는 군대가
장흥군 유치면 덕산리(분둔·분등·덕산)에 주둔하여 있었다 한다.
수인산은 강진군 병영면 소재지에서 바라보면 알을 품은 듯한 형상인 노적봉을
가운데로 주위가 온통 암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천혜의
요새로 손색이 없는 철옹성같은 산세를 보여준다.
1982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수인산성(修因山城)’이라고도 한다.
유치면 대리에서 강진 병영면에 걸쳐 산마루를 이어쌓은 포곡식(包谷式) 석성으로,
주위 둘레는 약 6㎞, 높이 4∼5m, 너비 4m이며, 세 개의 성문이 있다.
성의 축조는 천험의 산세를 이용한 협축식(夾築式 : 중간에 흙이나 돌을 넣고
안팎에서 돌 등을 쌓는 것)으로 양면이 거의 수직에 가까운 석성인데,
성내에는 봉수대와 수인사지(修因寺址)·군고지(軍庫址)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수인산성이 언제 어느 정도의 규모로 축조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으나,
《세종실록》 지리지에 장성 입암산성(笠巖山城), 담양 금성산성(金城山城),
나주 금성산성(錦城山城)과 함께 수인산성이 기록되고 있어
이 성의 축조연대는 고려 시대로 추측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인산성은 둘레가 3, 756척(尺)이고
본래는 도강현(道康縣) 때의 성인데 본조에서 다시 쌓았다.”
하였는데 현 강진군을 고려 시대에 ‘도강(道康)’이라 불렀던 점을 감안한다면,
이 성은 고려 시대에 쌓았음이 분명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