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토끼처럼 웅크리고 앉아 형의 작은 입을 바라보았다. 그 입에선 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형한테선 지난여름 바닷가 냄새가 나, 이름을 모르는 물고기들 몇 마리 그 입속에 살고 있을 것만 같다. 무너지는 파도를 보러 가자, 타러 가자, 말하는
형은 여기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미래를 이야기했다. 미래가 아직 닿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형을 들뜨게 했다. 미래는 돌 속에 있어, 우리가 아직 살아보지 못한 이야기가 번져있어, 우리가 이 돌을 미래로 가져가자, 그때
우리는 서로를 바라본다.
그동안 우리는 몇 번 죽은 것 같아. 여름, 여름 계속 쌓아 올린 돌 속으로 우리가 자꾸만 죽었던 것 같아. 여기가 우리가 가장 멀리까지 온 미래였는데 보지 못하고 보이지 못하고 우리가 가져온 돌 속으론 지금 눈이 내리는데
내리는 눈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내리는 눈 속으로 계속 내리는 눈 이야기.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우리가 우리들 속으로 파묻혀가는 이야기들을
우리가 했다.
전화벨이 울렸다, 계속 전화벨이 울리고 있다
출처: 동아일보(www.donga.com)
자, 지난 여름의 돌 이야기입니다. 들어가 볼까요?
나는 토끼처럼 웅크리고 앉아 형의 작은 입을 바라보았다. 그 입에선 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형한테선 지난여름 바닷가 냄새가 나, 이름을 모르는 물고기들 몇 마리 그 입속에 살고 있을 것만 같다. 무너지는 파도를 보러 가자, 타러 가자, 말하는
토끼는 겁쟁이입니다. 귀가 크고 오물오물 풀을 뜯어 먹는 토끼 말이죠. 토끼의 입은 작습니다. 형제 사이니까 서로가 닮았겠죠. 형의 입에선 미래가 흘러나옵니다. 토끼 같은 형이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미래를 이야기하는데 형에게선 철 지난여름의 바닷가 냄새가 나고, 지난여름의 이름 모를 물고기도 살고 있네요. 과거에 속해 있는 사람이 미래를 이야기하는 모순이 보입니다. 그러면서 무너지는 파도를 보러 가자, 타러 가자 합니다. 무너지는 파도를 뒤집어쓰고 파도타기를 하자는 군요. 이것도 모순입니다.
형은 여기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그럴 때 보면 형은 현실에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현실에서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거죠.
미래를 이야기했다. 미래가 아직 닿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형을 들뜨게 했다. 미래는 돌 속에 있어, 우리가 아직 살아보지 못한 이야기가 번져있어, 우리가 이 돌을 미래로 가져가자, 그때
하지만 형에게는 미래가 있습니다. 아직 닿아있지 않은 사실은 우리를 희망에 차게 하죠. 과거에서 가져온 돌 속에 미래가 있습니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죠. 그 돌을 미래로 가져가자고 합니다. 그때
우리는 서로를 바라본다.
둘은 서로를 마주 봅니다. 동생은 형, 또 뻔한 얘기 하는 것 아냐? 미래는 없어, 전에도 형이 그랬는데 미래가 있었나? 하고 쳐다보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몇 번 죽은 것 같아. 여름, 여름 계속 쌓아 올린 돌 속으로 우리가 자꾸만 죽었던 것 같아. 여기가 우리가 가장 멀리까지 온 미래였는데 보지 못하고 보이지 못하고 우리가 가져온 돌 속으론 지금 눈이 내리는데
여름의 돌을 미래로 가져가자고 했는데, 그런 시간이 벌써 몇 년이 지난 것 같습니다. 여름, 여름, 계속 쌓아 올린 여름의 돌 속에 과거가 쌓였습니다. 오늘이 가장 멀리 온 미랩니다. 그런데 돌 속엔 눈이 내립니다. 과연 미래가 있을까요? 여름의 돌 속에 눈이 내립니다. 이것도 모순이죠.
내리는 눈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내리는 눈 속으로 계속 내리는 눈 이야기.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우리가 우리들 속으로 파묻혀가는 이야기들을
이제 눈 이야기를 하는군요. 현실을 직시하는 것 같습니다. 모순에서 벗어납니다. 하지만 미래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암울하게 현실의 이야기 속에 파묻힙니다. 쌓이는 여름의 돌, 우리들 속으로 파묻혀가는 이야기는 대조를 이룹니다.
우리가 했다.
전화벨이 울렸다, 계속 전화벨이 울리고 있다
전화벨이 울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과거에서 그만 깨어나라는 울림일까요? 아니면 현실을 바로 보라는 의미일까요?
시인은 이 시를 “구직요망의 시일는지 모른다.”라고 당선 소감에 적어놓았습니다. 구직하려 하였으나 어느 사업체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는 이 말을 이렇게 읽었습니다.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기다렸으나 연락이 오지 않았다.’라고 말이죠. 한편으로는 말이죠. 이근석 시인이 자신의 이름인 근석(根石)을 불러와서 ‘여름의 돌’이라고 하지 않았나 모르겠어요. 쌓인 돌이 몇 개나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마지막 정점에 올려진 돌이 ‘여름의 돌’이라는 시겠지요. 아마 시인과 같이 공부하는 여러 신춘문예 작가 지망생들이 있을 겁니다. 그들의 돌들이 ‘여름의 돌’ 위에 얹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