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명절이 지나고나니 무슨 큰 태풍이 하나 지나간 것 같다.
즐겁고 기쁜 사람도 있겠지만 괴롭고 고통스러운 사람도 있다.
나는 즐겁고 기쁜 날이었는가? 회상해본다. 기쁘지도 괴롭지도 않고 그렇게 지나간 것 같다.
딸아이가 외손자둘을 데리고 추석 며칠 전에 다녀갔다. 살기도 빳빳한데 용돈을 챙겨준다고 고생이라는생각이 들었다.
양가 부모들에게 체면 치례를 할려면 쉽지 않다. 아내는 이미 그런 것을 알고 갈 때는 넉넉히 용돈을 챙겨서 주머니에 넣어준다.
벌초하느라 고생하는 사람 친가 처가 챙기느라 마음 고생하며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않은 민초들은 마음과 몸 고통이 심하다.
어떤이는 하소연 하듯이 명절은 누가 만들었느냐고 넋두리를 하기도 한다.
그래도 명절이 없다면 보고 싶은 얼굴을 보기 어렵고 고향 산천도 부모 산소도 가기가 쉽지 않다. 추석이니 한 번 가보는 거다.
우리집은 수년 전에 명절을 나누었다. 큰집인 우리집이 안을 내었다. 추석에는 각자 명절을 보내고 설날에 모두 모이기로 했다.
모두 좋아했다. 특히 여성들이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친정도 가고 여행도 가고 자유다. 나역시 그렇게 말하고는 첫 추석에 부부가 여행을 가버렸다. 행여 아우들이 집에 오는것을 사전에 차단해 버렸다. 다음 해부터는 알아서 잘 다닌다.
작가 김훈은 "허송세월"이라는 책에서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않기 위해서 처가와 친가 부모들의 묘를 파묘해서 완전히 소각헤버리고 제사를 전격적으로 폐지했다고 했다. 정말 선각자 답다. 자식이 한 둘이다. 어디가서 살지도 모른다. 외국 수만리 밖에 가버릴지 아니면 외동딸이 태어난다면 조상묘나 제사는 거의 불가능하다. 아니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비혼주의가 된다면,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않는 "Dink"족이 된다면 조상도 고향도 끝이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해본다.
별서 부근에 조금 산으로 올라 가면 멀리있는 조상들의 묘를 이장해서 표지석을 하나씩 세워두고 앞에 제단을 만들어 둔곳이 몇곳있다. 조성해준 K씨를 가끔 만나 보면 그렇게 해두고 벌초를 하러오지 못하고 자기에게 부탁을 해서 올해 수십기의 묘의 벌초를 해주었다고 했다. 세상이 너무 빨리 달라지고 있다. 옛날에는 조상묘를 방치하면 불효한 사람이라고 입방아를 찧었지만 근래는 말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아마 지금 벌초하거나 조상을 섬기는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모든 것이 가가예문이다. 자기가 하는 것이 최고라고 우기기도 어렵고 정도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몇 년전에 안동 도산서원 퇴계가문에서 밤중에 지내던 제사를 초저녁에 지내도록 바꾸었다. 아마 옛날이면 절대 불가 할 일이지만 시대의 변천을 어쩔수 없다. 공자도 시류를 따라라 했다. 또 세상이 어떻게 변해갈지 두고 봐야한다.
추석 명절 이제 지나갔다. 행여 마음에 서운한 것이 있다면 털어버리고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었다면 오래 마음에 담아 둘수 있다면 좋은 일 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가을 바람이 조금씩 올라 옵니다. 곧 겨울이 올 것 같습니다. 환절기에 독감 코로나 전부 주의 하면서 멋진 글을 한편씩 쓰시기 바랍니다.
2024.9.26.
별서에서 김정호 드림
첫댓글 모두가 가가예문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