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11월 20일(수) 이사야 57:14-21 찬송 620장
14. 그가 말하기를 돋우고 돋우어 길을 수축하여 내 백성의 길에서 거치는 것을
제하여 버리라 하리라
15.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16. 내가 영원히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끊임없이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지은 그의 영과 혼이 내 앞에서 피곤할까 함이라
17. 그의 탐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 또 내 얼굴을 가리고
노하였으나 그가 아직도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걸어가도다
18. 내가 그의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그를 인도하며 그와 그를
슬퍼하는 자들에게 위로를 다시 얻게 하리라
19.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
20. 그러나 악인은 평온함을 얻지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구쳐 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21.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개역 개정)
- 회개자(悔改者)에 대한 회복과 위로 약속 -
남유다 사회의 타락의 근본 원인이
여호와를 생각하지 않고 경외치 않는데 있음을 지적했던 어제 말씀에 이어
오늘 말씀에서는 여호와 앞에서 겸손하며 통회하는 자들에 대해
회복과 위로의 약속을 주고 있다.
여기서 하나님은 남유다 백성들의 탐심의 죄악으로 인하여 진노하긴 하셨으나(17절)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에게는 결코 영원히 진노하지 않으시며(16절)
곧 회복하게 하며 위로와 평강을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14,-15, 18-19)
이는 결국 택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목적은
그들을 영원히 멸망케 하는데 있지 않으며
죄에서 돌이켜 구원과 평강을 얻게 하는데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회개치 않는 악인들은
영원히 평강을 얻지 못하고 멸망에 떨어질 것을 본문은 말한다.(20-21절)
이러한 내용의 본문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4:17)고 외치신
우리 주 예수님의 메시지를 연상케 한다.
또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고 한 사도 바울의 메시지도 떠올리게 한다.
회개의 기회는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잠시 징계하실 그 때가 회개의 절호의 기회이다.
그 때를 놓치고 난 후 하나님께서 최후 대심판의 손을 높이 드실 때까지
회개치 않는 악인들에게는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만이 있을 뿐이다.(마24:51; 25:30,46)
우리 모두 이 경고를 결코 소홀히 여겨서는 안된다.
15절)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하나님께서는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하나님의 높으심, 그리고 겸손한 자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동시에 말씀한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자로서 지존무상(至尊無上)하신 분이다.
따라서 피조물이자 죄인인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세상을 초월하여 계시기만 하고
또 죄인들과는 전혀 상종(相從)도 하지 않는 분이 아니다.
비록 죄인이라 할지라도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신다.
‘통회한다’는 것은 자신의 죄에 대하여 처절하게 뉘우치며 슬퍼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마음이 겸손하다’는 것은 단순히 다른 사람 앞에서
잘난 체하지 않는 겸손한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그의 높으심과 의로우심을 절대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낮음과 연약함, 허물 많음을 시인하는 가운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죄사함을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될 줄로 알아서
하나님 앞에 낮아질 대로 낮아져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은 이처럼 자기를 낮추며 자신의 죄를 처절하게 슬퍼하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간절히 사모하는 자와 함께 하신다.
왜 그럴까? 자기를 낮추는 자들은 자신들을 낮추는 이면에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하나님의 높으심을 인정하는 자세가 전제되어 있다.
하나님의 높으심을 알기에 자기를 낮출 수밖에 없다.
아울러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감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삶을 살아간다.
이러한 자들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들이며
하나님은 그러한 자들을 가까이하시고 그들에게 필요한 은혜를 공급하여 주신다.
이같은 삶을 살았던 대표적인 인물이 있다.
그는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으로 추앙받는 성군 다윗이다.
그가 이처럼 위대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한결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세를 견지했기 때문이다.
시편 곳곳에서 그가 하나님을 가리켜 ‘나의 주’,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란
고백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시5:2; 16:2; 18:2; 35:23; 86:12; 145:1)
이는 자신이 왕이었음에도 하나님 앞에서는 주인을 섬기는 종에 지나지 않으며
왕이신 하나님의 명령을 떠받드는 신하에 지나지 않으며
절대자 하나님 앞에 한없이 초라한 인간에 지나지 않음을 고백한 것이다.
또한 그는 자신의 연약함, 허물 많음을 알고 하나님 앞에
그러한 것들에 대해 자복하는 자세, 통회하는 삶을 살았다.
시편에 기록된 그의 시를 보면 이에 대해서 명백하게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시34:18에서는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라고 하였고,
시51:17에서는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지극히 존귀하신 분이요 거룩하신 분이다.
하나님은 자기를 높이는 자들을 물리치시고
당신 앞에서 자기를 낮추며 통회하는 자,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신다.
그리하여 그의 영혼을 소생시키신다.
영혼만 소생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와 함께하시며 온갖 축복을 베푸셔서
마음이 겸손한 자의 육체와 삶도 소성케 하시고 번성케 하신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인정해주는 자와 함께 하기를 원한다.
이는 하나님 역시도 마찬가지다.
그분 역시도 당신의 높으심을 인정하는 자들, 고백하는 자들,
그 높으심과 영광스러움을 찬미하는 자들을 사랑하시며
그들과 함께 하시기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실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는 교만한 자는 절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없다는 의미이다.
물은 아래서 위로 흐르지 않고 반드시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하나님의 은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은혜도 지극히 높은 곳으로부터 지극히 낮은 곳으로 흐른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추면 낮출수록 하나님의 은혜는 풍성하여진다.
반면 자기를 높이면 높일수록 고갈된 삶을 살다 패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지존하신 그분 앞에 자기를 낮추며 그분의 은혜를 구하는 겸손한 삶,
은혜받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약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