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116) 동승 일족의 참살(斬殺)
조조가 동승에게 말한다.
"이젠, 옥대의 밀서를 내놓으시오!"
그러자 동승은 놀라면서도 시치미를 떼고,
"옥대 밀서라니? 모르는 일이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조조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한다.
"폐하께서 당신에게 내린 혈지 말이오! 내가 모르는 줄 아는가?"
하고 쏘아붙이 듯 말하였다.
그러자 동승은 고개를 흔들며,
"없소, 그런 것은 없소!"
하고 재차 부인하였다.
그러나 이같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정자 밑에서 부터 한 병사가 뛰어 올라오며,
"보고드립니다! 동승부에서 찾았습니다."
하고 소리를 지르며 다가오는데, 그의 손에는 핏자국이 선명한 혈지가 들려있는 것이 아닌가?
조조가 문제의 문서를 받아들고 펼쳐본다.
그리고 ,
"으흠 , 의맹서(義盟書)? ...여기에 피로 서명을 했겠다, 거기 장군 동승(車騎 將軍 董承),서량태수 마등(西凉 太守 馬騰), 장수교위(長水 校尉) 종집, 공부시랑 왕자복(工部侍郞 王子服), 장수교위(長水校尉) 충집, 의랑 오석(議郞 吳碩), 소신장군 오자란(昭信將軍 吳子蘭), 좌장군 유비(左將軍 劉備), 역시 이놈도 있군! 내 이놈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조조는 의맹서(義盟書)에 피로 쓴 맹세의 서명을 한 유비의 이름에 이르러서 분통을 터뜨리며 혈지를 손아귀로 구겨 동승의 앞으로 집어던졌다.
그리고 술잔을 들며 말했다.
"자, 들게."
모든 것이 드러난 동승은 조조를 경멸하는 눈으로 쏘아보며 <흥!> 하고 비웃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정자밖으로 나가니 뒤에는 무장한 병사가 뒤를 따랐다.
이렇게 동승을 비롯한 왕자복, 오자란, 충집,오석등 혈지에 의맹을 서명한 자들은 모두 삼족에 이르기까지 참형을 당했으니, 이때 죽은 자가 무려 팔백명에 달했다.
이날 동승의 혈족으로 죽음을 면한 사람은 오직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천자의 애비(愛妃)인 동 귀비(董 貴妃)였다.
동 귀비는 천자의 애총을 받아 귀비가 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임신 육 개월의 몸이었다.
그러나 극도로 격분한 조조가 천자의 귀비라고 해서 그냥 살려둘 리가 만무하였다.
조조는 동 귀비를 죽이기 위해 맹장 허저를 비롯한 무장한 군사를 이끌고, 몸소 갑옷과 칼을 차고 궁중으로 들어갔다.
이미 사가(私家)의 부친을 비롯한 일족의 참살 소식을 알게 된 동 귀비는 헌제의 무릅에 얼굴을 파뭍고 떨고있었다.
그러나 떨고 있기는 헌제도 마찬가지였다.
조조를 비롯한 장수와 군사들은 신성한 장락궁을 군화발로 그대로 들어왔다.
<저벅저벅!..> 그들이 걷는 소리가 가까워지자, 동귀비는 극심한 불안에 휩싸였다.
이윽고 허저가 황제 시종을 밀치고 황제와 귀비가 떨고있는 내실로 성큼 들어섰다.
그리고 늘어진 발을 걷어 동 귀비를 노려보자, 귀비는 헌제의 발을 붙잡으며 <으흑!>하고 놀라, 소리를 내질렀다.
허저는 헌제를 분연히 쏘아본 뒤, 아무런 말도 없이 다짜고짜 그의 발치를 끌어안고 있는 동귀비를 우악한 손으로 잡아당겼다.
"폐하!"
"귀비!"
헌제로 부터 떼어진 귀비는 다급하게 헌제를 부르며 다른 병사에게 끌려나갔다.
"귀비, 귀비!"
헌제는 동귀비의 뒤를 따라가며 애타게 불러댔다.
그렇게 동귀비가 끌려간 헌제의 용상앞에는 이미 조조가 물끄러미 앉아 있었고, 끌려온 귀비는 조조의 앞에 내동댕이쳐졌다.
뒤따라 온 헌제가 투구와 갑옷을 입고 살벌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조조를 보자, 그만 주눅이 들어 어쩔줄을 몰라하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앞에서 안절부절 하였다.
그러자 조조가 입을 열어,
"폐하, 동승이 모반한 것을 아시오?"
하고 따지듯이 물었다.
그러자 헌제는 두 손을 모아 보이며,
"짐은 모르는 일이오."
하고, 울상을 지으며 대답하였다.
그러자 조조는 한 손으로 혈지를 펼쳐보이며,
"이 혈지를 벌써 잊으셨소, 엉?"
하고 아이를 다루듯이 헌제를 향하여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동 귀비가 두려움에 떠는 목소리로 고개를 흔들며,
"제가 꾸민 일이라 폐하는 모르십니다."
하고 말하자,
"당연히 네년의 짓이지!"
동 귀비에 대한 조조의 대꾸는 종년에게 하는 말투였다.
그리고 이어서 동 귀비에게 손가락질 하며,
"너는 동승의 딸년 아니더냐!"
하고 냉혹하기 이를 데 없는 언사를 퍼부었다.
"부녀가 공모했지?"
...
조조가 아무런 말도 못하고 떨고만 있는 헌제에게 말한다.
"폐하! 신의 충언을 들으시오. 이번에는 동 귀비만 처벌하지만, 또 이런 일이 있으면 폐하도 엮일 것이오. 아시겠소?"
그 말을 들은 헌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벌벌 떨기만 하면서 조조의 눈치만 보기에 급급하였고, 동 귀비는 그 자리에 엎어졌다.
그러자 군사들이 동 귀비의 한쪽 팔을 각각 잡아서 그대로 질질 끌고 나간다.
조조가 그들의 뒤를 따라 나가자, 헌제는 황급히 조조의 뒤를 따라가며 사정한다.
"승상! 동비는 회임 중이니 왕자라도 낳은 후에..."
여기까지 말하자 조조는 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선채, 헌제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손에 든 의맹서를 들어보였다.
그러자 헌제가 조조에게 다가가 공손한 몸짓으로 피로 서명한 혈지를 받아들려 하자, 조조가 고개를 헌제 쪽로 기울이며 귓속말을 하듯이,
"왜? 아들놈 에게 복수를 해 달래 게?"
하고 나지막한 소리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헌제의 손목을 움켜잡은 조조가 그의 손에 의맹서를 쥐어주며 어른이 아이를 다루듯이 헌제의 손을 <탁탁>쳐보였다.
다시 돌아선 조조가 장락궁 입구에 다다르자, 우악스런 조조의 병사가 동 귀비의 목에 무명천을 걸어서 뒤에서 바짝 당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동 귀비는 목이 졸린 채 신음소리를 내며 헌제를 향하여 살려달라는 손짓을 해보였지만, 헌제는 안절부절하며 벌벌 떨기만 할 뿐 어떻게든지 살려줄 형편이 아니었다.
마침내 동 귀비는 목에 졸린 채로 바닥에 쓰려져 죽어버렸고, 헌제는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숙여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살벌한 정적이 내전에 감도는 가운데 한 귀인이 시녀를 대동하고 조근조근 걸어 들어와 천자와 조조의 가운데에서 걸음을 멈추고 조조를 돌아다 보았다.
그러자 지금까지 눈을 감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앉아있던 조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황제를 향하여,
"누군지 아시겠소?"
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헌제는 당황한 빛을 보이며 말한다.
"승상의 따님이자 짐의 조 귀비요."
헌제의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지자 조조는 딸에게,
"이리오렴"
하고, 다정하게 불렀다.
그리하여 딸의 손을 잡고, 용상에 앉아 안절부절하고 있는 헌제 앞으로 데리고 가서 헌제의 옆에 앉으라는 손짓을 하며 어깨를 눌러주는 것이었다.
헌제는 어떨떨한 얼굴이 되었다.
사실 헌제가 조조의 강압에 못이겨 낙양에서 허창으로 천도를 한 뒤에 조조의 딸을 후궁(後宮)으로 맞은 바 있었다.
그러나 헌제는 조조의 딸을 말로만 후궁이었지 제대로 같이 밤을 보낸적은 없었다.
이런 것은 조조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조조는 동승의 모반을 빌미로 동 귀인까지 깨끗이 죽여버린 뒤에 자신의 딸을 장락궁으로 부른 것이었다.
조 귀인은 아버지 조조가 시키는 대로 헌제의 옆에 앉으며 헌제에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조조가 자신의 딸을 손으로 가르키며 천자에게 물었다.
"마음에 드시오?"
"물론이오."
"그럼 됐소."
조조는 사가(私家)의 장인이 사위에게 하는 말투로 대답했다.
그리고 뒤로 돌아서며 허저를 향해, 오라는 손짓을 하였다.
그러자 허저가 숨이 끊어져 바닥에 엎어져 있는 동 귀비의 머리위에 얹힌 화관(花冠)을 거두어 가지고 조조의 앞으로 다가와 바친다.
조조가 허저에게 화관을 받으며 헌제에게 말한다.
"중궁전도 황후 자리도 비워둘 수 없으니 어진 조비를 황후에 봉하시오."
하고 말하면서 헌제의 탁자앞에 화관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돌아서 말한다.
"역적의 딸년을 치워라! 그리고 모두 들어오라 해라!"
명령일하, 동 귀비의 사체는 치워지고, 조조의 장수와 부하들이 내전에 들어왔다.
헌제는 조조의 말대로, 탁자에 놓인 황후의 상징인 화관을 떨리는 손으로 조 귀인의 머리위에 얹어주며 말한다.
"짐은 조비를 중궁전 황후로 봉하노라."
헌제의 말이 끝나자 조조가 입시한 병사들의 앞으로 가서 천자를 향해 돌아서서 무릎을 꿇으며,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황후 마마 만세, 만세, 만만세!"
하고, 선창하자, 대청에 모여든 문무백관 일동이 조조를 따라 한소리로, 만세 삼창을 외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