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격조했습니다.
재판결과 요지와 전문을 읽고, 제 블로그에 썼던 글을 이곳에 다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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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원고(『바람의 나라』) 패소. 법원은 ‘태왕사신기’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먼저 ‘태왕사신기’ 측이 『바람의 나라』라는 작품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1992년 <댕기> 연재를 시작으로 2001년 뮤지컬 공연, 2004년 소설 발간 등 그 저명성과 광범위한 배포성을 인정받았다(‘게임 몇 번 해본 게 전부’라고 얘기했던 건 어디의 누구시더라).
두 번째, 2004년경까지 22권으로 단행본이 발간된 상태인 만화와 실질적인 결과물이 나오지 않은 드라마 시놉시스 사이의 장르/분량/완성도 등의 차이에 있어서 실질적 유사성을 판단하여 저작권 침해여부를 논의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태왕사신기’의 시놉시스는 단순한 아이디어를 넘어 드라마의 대략적인 줄거리, 각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그들 상호간의 상관관계, 에피소드 등을 포함하고 있어 그 분량이나 장르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유사성 판단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여기까지는 그간 숱하게 포스팅해왔던 내용과 별반 상이할 게 없고, 익히 예상했던 것이므로 패스.
다음은 판결요지의 일부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양 저작물은 고구려를 배경으로 하여 고구려 고분벽화인 사신도에 나타난 사방위신, 즉 현무, 청룡, 백호, 주작을 의인화하여 주요한 등장인물로 만들었다는 점, 위 사신을 누군가의 수호신으로 설정하였다는 점, 주인공이 사신의 도움을 받아 어떠한 목표, 즉 부도나 신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러나, 저작권의 보호대상은 학문과 예술에 관하여 사람의 정신적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사상 또는 감정을 말, 문자, 음, 색 등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외부에 표현한 창작적인 표현형식이고, 표현되어 있는 내용 즉 아이디어나 이론 등의 사상 및 감정 그 자체는 설사 그것이 독창성, 신규성이 있다 하더라도 원칙적으로 저작권 보호대상이 되지 않는 것인바, 사신, 부도, 신시와 같은 역사적, 신화적인 소재는 누구나 작품의 소재로 사용할 수 있는 공유의 영역에 해당하고, 사신을 의인화하였다는 표현법도 어문저작물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수사법으로 원고만이 전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사신을 수호신으로 설정한 점도 사신의 개념에서 나오는 한정적인 표현형식의 하나이며, 주인공이 사신을 도움을 받아1) 어떠한 목표를 지향한다는 점도 일반적인 주제로서 모두 저작권에 의하여 보호되지 않는 ‘아이디어’에 불과하다. 양 저작물은 아이디어의 영역에 속하는 위 요소들을 공통으로 할 뿐, 나아가 그 등장인물이나 주변인물과의 관계설정, 사건전개 등 저작권에 의하여 보호받는 창작적인 표현형식에 있어서는 실질적으로 유사하지 않으므로, 피고가 원고의 이 사건 만화에 대한 저작권을 침해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 판결요지서 3쪽 발췌
1) 사신을 도움을 받아 : 판결요지에 있는 것을 그대로 옮긴 것임. 오타 아님.
즉, ‘태왕사신기’와 『바람의 나라』는 아이디어의 영역에 속하는 요소를 공통으로 할 뿐이며, 캐릭터의 개별적인 속성·특성에 있어서도 전체가 아닌 일부,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되지 않는 아이디어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유사한 것이지 실질적으로 유사하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 판결의 요지이다.
그리고 어떻게 그 유사한 부분들이 겹칠 수 있는 확률이 어떤 연유로 1/73728이라는 놀라운 수치를 보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하고 있지 않다(http://mishaa.org/tts/home/140 포스트를 참고하시라) .
이게 현실이라면 현실이다.
그러나 2004년 9월 ‘태왕사신기’의 시놉시스를 접한 순간 단박에 『바람의 나라』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아이디어나 이론 등의 사상 및 감정 그 자체는 설사 그것이 독창성, 신규성이 있다 하더라도 원칙적으로 저작권 보호대상이 될 수 없다’라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판단, 그 실질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디어가 그리도 숱하게 겹쳐야 하는 이유. 그리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그리도 자랑스레 떡하니 들고 나왔던 시놉시스와 대본을 다 뜯어고치고 재촬영까지 하고 있다는 ‘태왕사신기’. 그리고 지금까지 불난 집에 불구경하듯 그리도 악착같이 달려들던 인터넷 언론들이 정작 이 재판결과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잠잠한 지금 상황. 이 사실들의 상관관계가 딱딱 맞아떨어진다고 느끼는 것은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인가?
법원의 판단은 판결문과 같다.
그러나 나의 판단은, 내 머리와 내 마음에 맡기련다.
참고: 판결문 링크(210번 게시물)
//2007년 7월 20일 오전 11시 현재 네이버 뉴스에서 ‘태왕사신기’로 검색시 재판결과를 다룬 뉴스는 이데일리 기사 하나뿐이다(기사 원문 링크 주소: http://www.edaily.co.kr/news/econo/newsRead.asp?sub_cd=DA34&newsid=01594086583196160&clkcode=&DirCode=0020406&curtype=read).
재판결과 나오면 기다렸다는듯 달려들 줄 알았는데 말이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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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7. 20.
오늘도 비가 오는군요...
첫댓글 다음뉴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데일리 기사 하나밖에 없어요. 1심 판결 공개때와 매우 대조적입니다. 1/73728의 겹침가능성이 이 판결문을 쓴 판사에겐 매우 흔하게 느껴지는 모양입니다. 서울은 오늘은 비가 아니오지만 제 심장에는 계속 비가 내리는군요...
네 1/73728의 겹침가능성 ㅋㅋ 그게 작가고유의 창작영역을 베낀 게 아니라, 단지 역사적 아이디어를 공유한 결과니 고소한 게 이유없는 행위라고?? 아무리 법적인 판결이라지만 뭐 어디 타당한 구석이 있어야 고개를 끄덕이지요...
판결문은... 읽으면 읽을수록 열통 터집니다... ㅠㅠ
지난번 판결문은 그나마 시놉대로 드라마 만들면 문제는 있겠다는 식이었는데.. 이건뭐... 이젠 만들어진 드라마가 바람의 나라를 떠올릴만한 내용이 아니길 바래야되겠군요.
당당하게 까놓고 "우리 대본 고친다" 라고 기사에서 떠들었으니 같은 내용이 안나오겠지요. 그래도 같은 내용이 나온다면 송하고 김은 바보인거고 (.....)
우리나라는 표절의혹에 너무도 관대합니다. 정확한 내용을 다 알고 있는 팬들 이외에는, 여기저기 알려봐야 모두들 별로 관심이 없어들 하니... 어떻게든 성공해서 권력을 챙취하고 보자. 그러면 힘이 생기고, 그 다음은 어떻게든 다 해결이 된다고들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한심합니다. 이런 나라이기에 결국은, 태왕사신기는 방영되고 말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