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이대란 책을 접하게 된 계기는 2학년 때의 일이다.
한참 한국단편에 관심을 가질 때여서 많은 단편을 보게되었는데, 그 때 수난이대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제목부터가 뭔가 비장하거나 많은 뜻을 품고있으리라 생각하고 첫장을 펴면서 수난이대를 접하게 되었다.
수난이대는 암울하였던 일제시대와 6*25사변등 우리나라의 근대 사회모습을 전반의 배경으로 삼고있다.
그래서 그런지 겉으로 풍기는 분위기와 전개는 일반소설과 다를바 없지만 속에 내포하고 있는 속 뜻이나 의미는 암울하거나 비장했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만도는 아들진수가 돌아온다는 기쁨에 설레는 마음으로 일찍이 역으로 향한다. 오른쪽 팔만을 흔들며 왼쪽 소매는 항상 왼쪽 쪼기 주머니에 꽂힌 채였꼬 소맷자락 속에는 아무것도 든 것이 없었다. 아들 진수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려고 곰곰히 생각하다가 고등어 한 손을 사들고 대합실로 들어가 아들이 올 차를 기다린다. 박만도는 바로 이 대합실을 통해서 십이삼 년 전에 일제에 의해 강제로 징용에 끌려가던 옛일을 회상한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 오점과도 같은 때이지만 생생하게 기억나는 그 때를 만도는 잊으려 한다.
만도는 난생 처음 바다를 보고, 며칠씩이나 배를 타고 주먹방 두 덩어리로 하루의 허기를 채우면서 어느 섬에 도착하여 숨막히는 무더위와 강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험난한 산과 산 틈바구니에다 비행장을 다듬어내고 산허리에 굴을 파서 비행기와 모든 시설을 연합군의 공습에 대비해서 숨기기 위한 힘든 작업이었다.
공습이 있을 때는 땅바닥에 엎드리어 피하곤 하였다.
그때만이라도 작업을 쉴 수가 있어서 은근히 공습이 있기를 바라기도 하였다. 어떤 때는 공습 경보가 울리기도 전에 연합군 비행기들이 산등성이를 넘어 달려들 때도 있었는데, 그런 때가 가장 위험하고 휴식 시간도 갖지 못해서 손해를 보는 때이기도 하였다. 박만도가 오른팔을 잃은 것도 바로 그런 때였다.
굴을 뚫을 때 다이나마이트를 장치하고 성냥불로 점화를 끝내고 굴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순간, 공습이 시작되었다. 만도는 그만 굴 바닥에 엎드릴 수밖에없었꼬 '꽝' 소리에 정신을 잃고 깨었을 때는 팔뚝 하나를 잃은 뒤였다.
자신의 팔을 억울하게 잃은 만도는 현실을 탓한다. 암울한 시대에 태어난게 죄라고....
'꾀액' 하는 기차 소리에 현실로 돌아온 만도는 고등어를 집어들고 울렁거리는 마음으로 대합실 밖으로 뛰쳐나가 아들 진수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따. 그때 등 뒤에서 '아버지'하는 소리에 돌아본 만도는 그만 입을 벌리고 만다. 옛날의 진수가 아니었다.
양쪽 겨드랑이에 지팡이를 끼고 한쪽 바지가랑이가 펄럭이는 진수의 모습에 만도는 눈물을 흘린다. 자신이 당했던 고통을 자신의 아들에게까지 되물림해야하는 현실에 너무나 원통하고 울분이 찼다.
두 사람은 울분과 슬픔을 달래며 집으로 향한다.
진수는 쩔룩거리는 다리를 앞세우고 열심히 걷지만 만도보다 역시 느리다. 자신을 따라오지 못하는 아들을 보며 만도는 슬픔을 느낀다.
그리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외나무 다리에 이르자 다리가 성한 아버지는 아들을 업고, 팔이 성한 아들은 고등어 묶음을 들고 다리를 건넘으로써 서먹함에서 벗어나 부자간의 따뜻한 정과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할 이유를 확인하고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일깨운다.
동시에 저자는 암울한 시대상과 두 인물을 대조시키며, 두 인물의 변화로써 앞으로 우리에게 있어 희망과 가능성을 제시한다.
처참한 현실과 여러가지 고난과 역경을 딛어넘어 살아가려는 의지와 맞물려 작가가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는 삶의 희망이라 할 수 있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던 우리의 민족과 그런 시대상에 맞게 이 소설의 내용도 힘든 시절을 살아나가던 우리내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적어도 내가 사는 지금 우리시대엔 이런 일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수난이대를 읽으면서 우리민족이 살아오면서 겪었던 다소 암울한 시대를 한 가지 이야기로 접하면서 우리 50~60년대의 시대상과 그 시대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작가가 진정으로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는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보게되었다.
단순히 암울하고 어려웠던 우리의 모습과 시대를 나타내려 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만도와 진수를 통해서 삶에 있어서의 희망을 나타내려했던 것일까?
내가 보기엔 작가의 진짜 의도는 이런 고난과 역경속에서도 피어나는 만도와 진수의 사랑과 희망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암울했던 50~60년대의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점은, 단순히 우리의 어려웠던 일상이나 이야기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을 통해서 진정으로 나타내려는 의도는 바로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우리의 이야기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