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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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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여울 소리(자유 글) 스크랩 천상병이 그린 의정부
고리아이 추천 0 조회 22 14.05.21 23:3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천상병 시인에 관해서는 말그대로 전혀 모르는 제가 단지 의정부에 둥지를 틀고 있다는 이유 딱, 하나만으로 오늘 의정부자원봉사센터에서 나누미촉각연구소 회원님들과 더불어 천상병이 그린 의정부를 나누었습니다

나누미촉각연구소 회원 분들은 천상병의 시를 시각장애인들을 위하여 촉각도서로 만들어 보고자 하는 어머니 회원님들이지요

강연 내용을 간단하게나마 소개하면서 소감도 넣어볼게영~~~

 

 

 

 

먼저 경기지방의 명승사적(1937)ㆍ≪광여도≫ㆍ≪대동여지도≫ㆍ≪대동지지등의 자료를 통해 의정부의 인문학적 접근을 이야기했습니다

 

 

△ 1908년의 의정부시 약도

구전의 내용에 대해서는 당시 양주라는 큰 읍_그래서 고려 때에는 양주와 광주의 첫 글자를 딴 양광도가 있었다_의 일개 리 지명을 일제가 대한제국_의정부는 1907내각으로 바뀔 때까지 최고 정무 기관이었다_을 폄하하고, 양주의 전통을 무시하고자 하는 간악한 의도로 해석한 사례와 구전이 정리된 때인 1937년이라면 일제가 만주사변 이후 제국주의의 마수를 드러내며 본격적인 대륙진출을 위해 중일전쟁을 기획하던 시기로 식민지 조선에서는 악랄한 사회경제적 착취의 시기였음에도 양주의 면 단위에 불과한 의정부에 이러한 전설이 당시 민중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음은 과거 왕조에 대한 단순한 그리움이나 복벽으로만 볼 수 없고, 나아가 이 전설의 주인공은 태종이라기보다는 조선 왕조를 세운 태조라 할 수 있다면, 여기에 역사적 상상력을 더해, 적어도 숙종 이후 국가적으로 공작한 태조 사적의 정비 작업(윤정 2013 국왕 숙종, 잊혀진 창업주 태조를 되살리다, 여유당출판사)에 대한 민중의 자취이자 바람으로 풀어보자고 소개하였어요

대동지지議情阜표기와 관련하여 의순공주의 정이 있는 곳또는 의순공주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새겨보고자 제안하면서 회원님들의 다양한 견해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어 시문을 중심으로 천상병이 그린 고향에 관한 내용을 소개하면서 고향과 타향_새로운 주거 공간으로서의 의정부_에 대한 회원님들의 생각을 함께 나누어보았습니다

천상병의 시문 가운데 <고향사념(故鄕思念)>에 나타난 시인의 바람처럼 흙 한 줌이라도 천상병의 고향 당산에 뿌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끝으로 천상병에게 의정부란 어떤 그림일까에 대한 이야기를 풀었는데요

지난 해 천목사랑예술제 때 언급한, “‘의정부시이지만 서울특별시나 마찬가지다.’라는 마지막 구절이 참으로 의미심장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서울지향의 투라 할 수밖에 없다. 그의 글벗 박봉우(朴鳳宇, 19341990)는 과감하게 서울을 하야했음에도, 천상병 또한 엄밀하게 따지자면 의정부에 자리하였음에도 그가 남긴 글에는 서울 지향이 보이고 있다. 그래서 천상병이 세대와는 무관하게 그냥 그대로 공존하더라도 무관한 때라면 공간 또한 그의 글벗 박봉우처럼 과감하게 벗어났으면 하는 아쉬움을 술회하였다.”고 다시 한 번 제 생각을 드러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특강의 큰 열매는 천상병 선생이 마치 자신의 시문과 산문을 저_역사학을 공부한 놈_에게 꼭 읽어보라는 듯한 구절이 곳곳에 조약돌처럼 박혀 있다는 사실이어요

당신의 노래()의정부 장암동 384번지라는 주소와 “8735661”이라는 전화번호까지 넣은 것도 놀랍거니와 “811119이라는 날짜까지 담아둔 것에서 굳이 관공서 자료를 찾지 않더라도 당신의 의정부 안착이 언제 어디임을 바로 알려주고 있는 것이지요

천상병이 그린 의정부와 관련한 노래 몇 구를 소개하는 것으로 데데한 이 글을 마칠게영

 

서울에서 백 미터 떨어진

이곳 의정부시는

수락산 밑이어서

공기가 참으로 좋다.(<신록이 한창이다> 부분 천상병전집398)

 

서울시에서 백오십 미터 떨어진 자리.

의정부시지만

서울특별시나 진배없소!(<우리 집 뜰> 부분, 같은 책, 401)

 

서울과 의정부 시가 맞붙은 곳에

자리잡은 이 집은 가난한 집이다

……

언제나 푸르고 녹색인 뜰

맑고 곱고 아담한 뜰

나는 생각나면

이 뜰에서 쉰다

그 포근함이며

깨끗한 공기여(<우리 집 뜰> 부분, 같은 책, 402)

 

우리 집은 방이 세칸밖에 안되는데 한 방은 셋방으로 주고, 두 방만 쓴다. 한 방은 우리 부부의 방이고, 한 방은 장모님과 조카딸 영진의 방이다. 의정부시라지만 서울특별시와 150미터 밖에 안 떨어져 있다. 지금 이 시를 쓰고 있는 89912일은 뜰에 녹음이 살며시 한창이다.

평화롭고 따뜻한 우리집은 공기좋고 인심좋고 말할 나위가 없다.(<우리 집> 전문, 같은 책, 425)

 

내가 사는 곳은 수락산 밑이다…….

수락산이 동쪽에 우뚝 서 있고 서쪽으로는 도봉산이 바라보인다. 비가 아무리 와도 물 걱정 없는 우리집은 깨끗한 지하수를 쓰고 있다. 뜰에는 산록이 우거져 참으로 좋은 경치다…….

우리집에는 전화가 있는데 의정부시 8735661이다. 가끔 전화 좀 해줬으면 좋겠다.

위치는 노원교 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도봉산 있는 데서 상계동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어 파출소 앞(막다른 곳)에서 왼쪽으로 꺽어져서 한참 가면 군인들이 있는 곳에 이르고 살짝 가면 동네가 있다. 그 동네 옆길로 걸어서, 동네가 끝나는 데까지 걸으면 한 채밖에 집이 없다. 그 집이 바로 우리집인 것이다.

여러분들, 특히나 문학을 좋아하는 분들께서는 서슴 없이 놀러와 주시오.

나는 직업이 없으니까 매일같이 하도 심심하오. 여러분들 되도록 많이 만납시다.

많이 기다리고 있겠소. 언제든지 와도 좋으니까요.(천상병 2001 <내가 사는 이런 곳>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1920)

 

서로 만나 잠시 즐긴 초산의 봄 / 相逢暫樂楚山春

다시 헤어지려니 눈물은 수건에 가득하네 / 又欲分離淚滿巾

바람결 슬퍼하며 바라봄을 괴이히 여기지 말라 / 莫怪臨風偏?望

타향에서 고향사람 만나기 참 어려운 것을 / 異鄕難遇故鄕人

(최치원(崔致遠 857?) <산양 땅에서 고향 친구와 작별하며[山陽與鄕友話別]> 고운집1)

 

마을은 쓸쓸하고 사람은 많이 바뀌었네 / 里閭蕭索人多換

집이 기울고 담장은 무너져 풀이 거반 우거졌는데 / 墻屋傾頹草半荒

오직 문 앞의 그대로 있는 돌우물 / 唯有門前石井水

변하지 않았어라 옛날의 달고 서늘한 맛 / 依然不改舊甘?

(최유청(崔惟淸 10951174) <처음 고향에 돌아와[初歸故園]> 동문선19)

 

오늘 강연을 마치고 나서 강연준비자로서의 스스로에 대한 책망이 있네영

고향’과  '현 거주지'에 대한 전통적인문학적 인식 뿐만 아니라 최치원의 노래처럼 타향 또는 현 거주지에 대한 전통적인문학적 이해도 더 하여야 함을 느꼈습니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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