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병학 조별모임으로 있을 예정이었던 조별과제가 개별과제로(레포트)로 대체되었습니다..
교수님이 다음주에 개별과제 주제를 말씀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기일 내에 레포트를 제출하시면 되겠습니다..
토양학책에 대해서 알려드립니다..
오늘부터 책을 돌아가면서 보게 되었습니다 3권밖에 없으니 한 사람이 하루 이상 가지고 있지 마시고 교수님이 줄 쳐주신 부분 올려놓을 테니 참고해서 보시기 바랍니다..그리고 2권은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니 분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몇권의 책은 제가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교수님이 줄 쳐놓으신 부분-책 속에 짧은 부분이라 전체적인 내용을 알아야 이해가 되실 것 같네요..책 열심히 읽으시면서 참조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p99 북미에서 1백년도 채 안되어 일어난 놀라울 정도의 토양 파괴는 단순히 기술적으로 가능하였기 때문이다. 순수한 토양사회는 철제 도구뿐만 아니라 곧 기계로 장비된 고도 문화를 가진 사람에 의해 침범을 당하였다. 더욱이 이 파괴는 또한 심리적으로 가능하였음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원시 토착사회의 자연환경은 어느 정도 신화와 전통에 의하여 그 인간들로부터 보호되었다. 이러한 신화와 전통은 그들이 수목, 동물, 초본류와의 접촉에서 축적되었으며, EH한 새 세대가 민속과 의식으로서 물러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고도의 문명인이며, 특별한 ‘소크라테스 혁명’의 산물이며, 신비적 영감의 영향을 받지 않은 개화지식인들은 토양사회에 대한 공격에 있어서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았다. 그들은 비록 지배적 존재이지만 그 사회의 단순한 구성원이라고 생각지 않고, 자연의 밖에 있으면서 지주의 재산을 자유로 처분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라조 생각하였던 것이다.
p103 최소한 두가지 아주 다른 식물을 이러한 반건조 토양에서 경작하여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식물은 본래 형편없는 토양에서도 살 수 있도록 스스로 적응할 수 있는 것, 혹은 본래는 비옥한 토양에서 왕성하게 자라도록 되어 있지만 만일 빈약한 조건으로 이식하여 그 습성을 몹시 억제하면 몸의 생장의 저지를 보상하기 위하여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다.
유실수가 숙성하려면 꽃싹의 형성, 과일의 생산이 인산염과 칼륨의 흡수가 질산의 그것보다 비교적 많을 때 자극이 되는 데 자연의 기준에 비춰볼 때 불균형하게 많아질 때까지 촉진된다.
척박한 토양의 도전에 대한 아테네인들의 반응은 그들로 하여금 헬레니즘 도시국가 중 가장 뒤진 나라로부터 그리스의 교육을 이끌어 냈고, 가장 보수적인 나라에서 가장 급진적인 나라로, 가장 빈곤한 나라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로, 가장 평화적인 나라에서 가장 호전적인 나라로 만들었다.
p105 아티카의 황폐한 토양의 일부는 포도나무를 재배함으로써 개선되었다.
p111 스파르타의 목적은 생계를 위하여 해외무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안정된 인공의 토양사회로서 그들을 부양할 수 있는 그들의 토양을 집요하게 지키는 것이었다.
p113 스파르타인들은 토양에 의해 창조적 반응을 얻도록 도전하는 대신에 기름진 토양과 농노를 소유하는 이유로 해서 은총을 받았으며, 전력을 그들의 정신적 굴레에 대항하는 데 기울여야 했다. →그 아래 스파르타의 피폐한 생활 모습이 그려져 있어..결국 토양의 침략에만 주력해온 스파르타의 문화적 양상을 보여주는 모습인 것 같아..
p119 인공 토양사회는 크건 작건 농업 지역이지만, 어느 경우이건 토양의 비옥도를 유지,향상시키는 한지방의 자연 균형이 오랜 기간에 걸쳐서 야생식물 대신에 재배 식물에 의한, 또 야생 동물 대신에 가축에 의한 인공적균형에 의하여 성공적으로 교체된 완전한 사회를 말한다.
p120 [대지의 강탈]에서 현금작물경제에 있어서 경제적으로 효율이 높은 농경은 효율이 낮은 자급농보다 토양의 비옥도를 파괴시키는데 훨씬 더 책임이 많다는 것이 잭스와 화이트에 의하여 인지되었다. 그것은 놀라운 일이 못 된다. 자급농의 이점은 토양의 비옥도에서 볼 때, 토양과 토양에서 일하는 인간의 요구와 이익과의 관계속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자급농은 토양 그 자체뿐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농민에게 유해한 단작을 실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작은 농지를 갖고 있는 자급농민은 곧 윤작을 채택하고 분뇨를 비료로 사용하고 배수를 하는 것이 필요하며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요컨대 자급농민은 자신의 필요와 토양의 요구 때문에 진정한 농경을 하게 된다.
p121 그 결과 영주의 가신들에 의하여 경작되고 있는 대규모의 봉토를 포함하는 로마의 영토는 토양을 참담할 정도로 소모시켰다는 사실을 덧붙여야겠다.
p121~122 로마의 소농민들은 윤작에 예민하여 자운영, 알팔파, 다른 콩과식물 같은 질소고정 식물을 잘 이용하였다. 그러나 미국 중서부 밀의 대농장같이 대규모 현금작물의 경작에서는 단일 경작이 개척자에게 더 유리하다. 왜냐하면 개척자라는 말의 뜻에서처럼 그들은 농부가 아니라 부자가 되어 도시에서 사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p130 옛날 과학 농업에 대해서 이제부터 나는 산업농업이라는 말을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철학의 분야에 속하는 모든 성실성, 초연, 상상이 풍부한 이해력을 가지고 토양 문제에 생물학적으로 치우친 지식을 적절히 사용하게 하기 위하여 과학농업이라는 어구는 보류되어야 한다.
본질적으로 도시적이며 애착심이 없는 분석을 토양문제에 적용한 최초의 논문 즉 경영농업에 대한 최초의 논문은 그것이 비록 진실로 과학적인 것이 아닐지라도 카르타고인인 마고에 의해 발표되었다.
아마도 카프타고보다 토양과 더 순수한 그리고 인공적 관계를 형성한 사회는 없을 것이다.
p133 시인의 통찰력은 과학과 경제의 신중한 경험보다 진리에 접근하는 데 보다 직접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토양이 갑작스런 질병에 허덕이고 있다.
부가 축적되고 인간들이 줄어갈 때
왕과 귀족들은 번영을 누리기도 하고 타락하기도 하며,
한가닥 숨결이 그래왔던 것처럼, 그들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자부심있는 농민과 농촌의 자랑은
그것이 한 번 파괴되어 버리면 다시는 복원될 수 없다.
그런데 카르타고는 자랑스런 혹은 그렇지 않은 농민을 가진 적이 없다. 카르타고인들은 토양과 어떤 작업 관계도 갖지 않았다. 농경에 대한 기술적으로 칭찬할 만한 마고으 lcor은 누구에게 말하는 것이었는가?바커스같은 지도적 카르타고인에게 외치는 것일 것이다.
p134 사실 인간사회는 다른 생물의 사회와 마찬가지로 그의 구원을 위해 토양위에 세워져야 한다.
p136 그는 야전에서 패하지는 않았지만 이탈리아에서 결국 철수를 하고, 아프리카에서 스키피오에게 패해서 자기 도시의 굴욕을 목격하고, 로마인에 대한 복수를 포기해야 했으며, 그 복수심이 자신을 사로잡았으며, 그는 자신의 피난처를 구해주었던 왕의 손에 팔려 로마인의 손에서 죽느니 자기 손으로 죽어야 했다. 그러는 동안에 로마는 문명과 문화의 위대하고 찬란한 승리를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노예에 의해 지지되는 제국주의의 최악 상태로 서서히 파멸과 타락의 길을 밟게 되었다.
로마인의 성격의 기초는 토양사회였다. 한니발은 그것을 파괴했으며 그리하여 로마로 하여금 관대와 자비로써 행동하도록 하였다. 로마는 처음에는 위대한 힘으로 무엇이든 이룩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어떠한 국가로도 만들 수가 없었다. 로마는 단지 정신적으로 무능하고 예술적으로 멸시당하며 사회적으로 부패해 가는 괴물로 될 뿐이었다.
p138 로마의 토양은 주로 노예가 지배하는 광대한 농장이었고, 노예는 물론 카르타고의 전쟁포로에서 얻은 것이다.
p143 반대로 인디언들은 토지를 재산으로 생각지 않았다. 그들은 토지를 개별적으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종족이 소유하며,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동의 것이었다.
p159 삼림의 벌채는 기후를 변화시킴으로써 토양사회의 성질을 변모시키는 데 영향을 주었다.
은나라 정부는 겨우 4백년간에 무려 다섯 번이나 수도를 옮겨야 했다. 그 이유는 군사적이거나 정치적일 수도 있고 또 경제적일 수도 있다.
p160~161 갑골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기후가 벌목된 호아토에서 괴상한 성격을 띠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변화의 일부는 적어도 평원에서보다 산기슭에서 대규모의 벌목이 이루어진 데 연유했을 것이다.
강우의 문제는 종교적 의식의 주제이다. 갑골문은 “비가 내릴 것인가”를 묻고 있다. 이러한 물음은 그 지역이 점차 건조해져 가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 다음에는 “비가 몹시 내릴까”
라는 물음이 있다. 왜 몹시라고 할까? 아마도 강우는 일반적으로 너무 적어지고 때로는 폭으로 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황토지역의 황토에 폭우가 내린다는 사실은 재해를 가져 오는 고랑 침식과 위험한 홍수를 의미한다.
피와 밀, 벼등이 재배되었다. 아마도 어떤 종류의 벼는 건조한데서만 재배할 수 있기 때문에 논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양사오 토기에 찍힌 쌀의 모양으로 보아 벼는 대규모의 관개사업이 거의 이루어질 수 없었던 때 재배되었다고 추측할 수가 있다. 은시대에 여성우위의 경제적.사회적 활동의 흔적이 매우 드물다는 것이 이미 알려졌다. 그러나 은나라 시대의 왕위는 아들에 의하여 계승되지 않고 아우에 의하여 계승되었으며 아우가 없을 때에만 자식이 승계했다. 인류학자들은 이것을 씨족지배의 한 표시라고 말하며 정착농민이 병사족속이나 아마도 유목민에 의하여 정복된 유물일 것이라고 한다.
p164 자연적 초원토인 체르노젬은 경작하면 수목이 없으므로 인간에 의하여 특별한 주의를 취하지 않으면 불안정해서 침식에 의하여 매우 쉽게 소실될 수 있다.
p167 이 기마족들의 생업은 밭을 가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농경을 막는 것이 그들의 일이었던 것이다.
p176 유목민들이 이 토양을 자신들이 기대어 살 말먹이를 위한 초지로 다루었던 반면에 농민들은 특히 개척시대에는 매우 비옥해 보이는 토양이지만 거의 미래를 생각지 않고 빨리 그리고 빈번히 말을 걷어갔다고 말할 수 있다.
농노는 필연적으로 토양을 악용하게 되었다. 토양에서 실제로 노동하는 사람들은 그것의 상태에 대해 거의 또는 전적으로 흥미를 갖지 않은 반면에, 토지를 소유하는 자들은 그것은 공동의 것이 아니라 단지 개인의 부의원천으로만 생각하였다.
p177 농민들의 유목민을 누르고 그 승리를 급속히 이용한 결과를 [대지의 강탈]속에 간결하게 기술하였다.
흑토지대의 회복과 보존을 위해 막대한 양의 자본과 에너지, 노동, 시간의 소비를 요구하고 있다.
p180~181 토지를 잘못 이용하는 자는 점유하는 토지를 빼앗긴 후에 촌락에서 추방되는 수가 있었다. 토지에 대해 절대적인 소유권을 가졌다고 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정상적으로는 토지를 세분하게 함으로써 그의 실시는 토양의 급속한 소모를 가져오는 경향이 있었을 것이다.
p184 농민과 주정부간의 계약은 농민이 정부로부터 외침과 내란, 치안 질서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고, 교회가 있는 곳에서는 선린의 중재를 받을 수 있으며 모든 현재의 주나 옛날의 주에서도 공공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런 것은 인도의 라이야트들과 추장들 사이의 묵계였으며, 정복에 의해 변화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러나 추장들은 따로 공물과 무역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래서 토지세가 1/6에서 약1/3까지 올라갔던 것이다.
이 방법의 나쁜 면은 할당제에 의해 더욱 악화되었다. 황제가 관리에게 상을 주거나 호의를 베풀려 할 때에 그는 그들에게 어느 지역이나 촌락을 떼어준다. 그러나 그럼으로써 그 토지를 왕싱에서 영구히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수탁자에게 그 지역의 수익을 수집하는 전권을 주고, 왕실에서 들여올 것을 납부한 후에는 나머지를 간수할 수 있게 하였다.
p185 돈만 마련된다면 왕실은 그들이 영토에서 맘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불행한 수탁자는 농민과 토지가 다 소모될 때까지 착취하였으므로 그의 영토로부터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할 뿐 아니라 국가에 대한 의무도 다하지 못하여 결국은 벌을 받게 되었다.
p187 자민다리 체제는 부패하고 가혹했으며, 사정은 토지의 생산력이나 농민들의 능력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 농민들은 무거운 부담에 눌려서 거의 농노로 전락하였다.
p189 농노들은 세금 때문에 끊임없이 괴롭힘을 받았으며, 마침내 그들은 황폐된 토지로부터 밀려나거나 도망쳐 나와 강도로 변하고 말았다.
p190 토지보유제가 붕괴된 후 인도의 토지는 혈연의 기초위에 맺어진 자치 농민들의 촌락사회에 귀속되었다.
p191 그러나 수세기 동안 토양이 악용되면서 세금-농민과 자민다르들은 자기 토양이 아니지만 토양보유자로 간주되었고, 라이야트가 내게 되어 있는 세금은 지대로 변하였으므로, 라이야트는 소작인으로 격하되었다. 이러한 사태에 대하여 법적으로, 혹은 행정적으로 아무런 처벌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일은 토양에 큰 피해를 가져왔다....
지난 3세기 동안 고향에서 그들은 농민을 착취하였고 공유지를 구획하고 가로막았으며, 토지에서 일하는 임금 노동자를 고용하거나 농장을 소작인에게 빌려주는 대토지보유제를 만들었었다.
p193 농민들의 권리와 토양의 비옥도의 보존과 회복에 관한 인도의 문제를 영국인을 위해 만들어졌다.
이러한 결과에서 볼때, 흔히 일어나는 토양의 소모와 판상 침식에 의하여 생기는 기근, 또 관개사업이 이루어지지 않는 곳에서 강우의 불신에서 생기는 그 기근은 인도 토양 위에서 생긴 두개의 위대한 문화의 쇠퇴와 제 3의 문화의 출현에서 생긴 토지보유제와 세제의 변화에, 전적은 아니나 단독적으로 기인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대체로 그것들이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p195 에스키모인들은 가혹한 환경속에서 사회를 건설하는 놀랄 만한 업적을 이룩했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가는 데에 모든 정력을 소비해 버렸으므로 그들의 운명을 더 개선할 수가 없었다.
북쪽의 툰드라와 빙하의 과도한 도전은 에스키모로 하여금 고도의 문화로 응답할 수 없게 하였다.
p200 공유지를 경작하고 수확할 때는 법적으로 미망인과 연로자, 병약자에게 우선권이 주어졌고, 이러한 법을 무시하는 감독관은 교수형을 받아야 했다.
그들의 자갈이 깔린 도로는 전제국에 뻗어있고 산맥과 사막을 가로질러서 구세계에서는 적당치 않은 존재이나 그들의 수도관과 수도시설은 일반적으로 로마것과 비슷하지만 수적으로 우세하다. 이렇게 위대한 공사에는 부역이 따르지만 공공사업의 노역은 군복무가 면제되어 있어서 절대로 가정의 이익을 해치지 않았으며 그의 힘이 자라는 한도에서 잘 할 수 있도록 주의깊게 계산되었다.
p207 쉽게 영양적으로 번식하는 식물의 경작은 독창성과 노동성을 그다지 자극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농업만을 하는 사람들은 후진으로 남게 된다.
근채류의 재배는 옥수수나 쇠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공격을 받을 때 힘과 정신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p209 어린이의 먹이가 되는 젖을 내는 동물의 부족으로 어린이가 빨리 이유할 수 없으므로 인구가 증가하는 속도를 억제할 수 있었다. 감자와 카사바가 있기 때문에 아프리카인들이 얌에 유혹되듯 아메리카인들은 안일하고 무리력하며 자극이 없는 생활을 하도록 유혹되었던 것이다.
p210 토양의 소모는 옥수수와 함께 자라는 옥수수대를 자방 주는 콩을 혼작함으로써 시간적으로 늦추어졌다.
p211 토양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자연적이지 않음이 없이 지능적으로 되었고 또 그들은 살아 있는 토양과의 관계에서 그들의 높은 수준의 농업과학에 의해서 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감각과 본능과 혹은 전통에 의하여 스스로를 지도하도록 계속 노력하였다.
그들의 토양을 창조하도록 강요되었다는 것이다.
기계의 부족 혹은 노예에 의한 경제의 부진 때문에 축대를 쌓고 개간과 관개와 같은 대규모의 사업은 공동 노력에 의하여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공동 노동의 체제는 협동을 위한 수완과 강력한 중앙집권의 발달을 필요로 한다. 원시사회에서는 종교적 제재에 의하여 그러한 집권이 확립될 수 있다. 원시사회에는 종교적 제재에 의하여 그러한 집권이 확립될 수 있다. 농업에 의하여 융성을 누린 사람들의 종교는 근본적으로 농업종교일 것이다. 모든 아메리카인들에게 토양은 신성한 것이고 땅은 애초부터 만물의 모신이었다. 특이한 것은 모신이 개명된 시기까지 왕좌에 머물러 있었고 마지막에 예수에 의하여 폐위되었을 때 아메리카의 토양은 불우한 시기를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p214 인간의 배설물은 일찍부터 거름으로 쓰여졌다.
해안지대의 안데스인들은 오늘날 중요한 비료로 쓰이는 죽은 생선의 거름으로서의 가치를 발견한 최초의 사람들이다.
p216 대지는 인민을 희생시키면서 토지를 몰수하지 않고 왕실의 수입을 증가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새로운 영토가 왕실에 합병되거나 정부의 사업에 새로운 비용이 들 때에는 언제나 평지는 전과 같이 종족의 보유로 남기는 한 편, 산기슭에는 재정을 채울 수 있는 산물을 마련하기 위하여 대지를 만들거나 혹은 증가시켰다.
p220 저지른 행동 즉 다량의 구아노를 외국의 알 수 없는 불유쾌한 문화의 소재와 바꾸어서 외국으로 팔아 버린 행동같은 것은 국가에 대한 범죄적 모독이며, 과학적 사실에 있어서, 생태학적으로 괘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p223 토지의 비옥도가 떨어지고 있음을 알아챈 농민들은 새로운 곳으로 가서 개간하고 경작을 시작한 후에 새로운 지역으로 주거를 옮겼으며 결국 옛날의 지역을 저버리고 말았다.
p227 온대지방의 토양의 비옥도가 풍요한 초목을 키우지는 못하였지만 수세기 동안 서서히 썩으면서 축적된 부식질 속에 비옥한 자본이 갇혀 있었다.
p228 나무는 강한 토양에서만 빽빽이 자라고, 어디서 자라건 나무는 계속되는 비옥도의 원형을 만들어 내서 토양을 유기질과 완전히 섞음으로써 진흙을 응고시켜 토양에 푹석푹석한 과립구조를 만들게 한다. 더욱이 나무는 매우 땅 속 깊이까지 뻗어서 토양을 갈아엎는 결과를 가져온다.
p229 깊은 뿌리는 첫째 기계적으로 중요하지만 표토를 만드는 데 중요한 일을 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비는 표토로부터 양분을 하토로 흘려내리는 데 특히 질산염은 쉽게 용액 속으로 사라져 간다. 더욱이 새로운 무기양분의 무궁한 공급은 하토 속에 있는 새로 분해된 바위로부터 가능한 것이다. 나무의 깊은 뿌리는 아주 깊은 곳에서 양분을 끌어내어, 그것을 잎으로 보내면 가을에 잎이 떨어져서 표토를 비옥하게 한다.
p233 한 가정을 먹여 살려야 하는 소유지가 너무 작아져서 토양의 악용은 생존을 위협하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p236 포도 재배가 개인의 재배자에게는 확실히 토양 이용에 있어서 가장 유리한 방법이지만 사회를 위해서는 잘못이므로 로마 정부는 포도밭이 곡물 재배에 필요한 토양으로 퍼져가는 것을 막는 법을 자주 만들었다.
p243 토양의 비옥도가 매우 서서히 소모되었고 장원의 토지 보유의 안정성과 그것의 영속성은 순한 독성을 스스로 품고 있는 것 같다.
p245 발전을 위하면서 자유와 평등과 질서를 조화시키는 문제는 너무 어려워서 아직 해결 된 적이 없다. 잉카의 제도는 토양을 만드는 데 있어 완전히 질서가 있었으며 공평했고 진보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고대 남미에서 볼 수 없었던 자유과 관대의 대가로 달성되었던 것이다.
미국사회는 유례가 없는 개인의 자유를 향유했지만 그것은 토양사회의 유산에 대한 엄청난 손상을 입히고 또 질서와 평등을 희생한 대가로 얻어진 것이다. 영국의 복지국가의 창조자들은 이같은 문제에 대하여 큰 어려움을 당하였고, 자유를 희생하여 평등을 택하는 데서 역시 어려움에 빠졌음을 당하였고, 자유를 희생하며 평등을 택하는 데서 역시 어려움에 빠졌던 것이다. 그리고 만일 영국인들이 독특한 정치적 재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면 그것은 전혀 해결되지 않았을 것이다.
p246 장원과 공유지 제도가 토양을 보존했지만 토양을 거의 개량시키지는 못하였으며, 그것은 공평하긴 했으나 반드시 진취적인 것은 아니었다.
p247 네덜란드는 봉건제 붕괴와 새로운 국가주의를 탄생시켰다. 토지를 목장으로 한 것이다. 대지주와 소농민들은 털실에서 부를 얻었으나 빈천한 농부는 가난에 허덕이었고, 전 고을의 토지는 양 때문에 인구의 감소를 가져왔다.
p250 낡은 사고방식은 생계작물에만 집중되었고, 구식 농민들은 아마 혹은 대마같은 현금작물이 아니라 헛가에 쌓이는 식량을 보기를 원했다.
p251 그는 자기 토지를 목초지로 만들거나 구획함으로써 그의 토지를 개량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기 보다는 하루종일 아무 이득도 없이 자신의 공유지에서 자신과 가족들을 혹사하며,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면서 자신과 가족을 매일 되풀이 되는 일에 끌어들여서 피곤하게 한다.
p252~253 경작이 충분한 곳에서는 동물의 분뇨가 필요없다고 믿고, 그런 불쾌한 물질은 식물을 오염시킬 따름이라고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공간이 넓은 줄에 맞추어 씨앗을 파종하고 식물이 자라는 동안 토양을 깊게 유지하는 방법을 고안하여 놀랄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털의 발견이 일반에게 응용되기까지는 약 100년이 걸렸는데 그 동안에 농민들은 그들의 땅에 비료주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다른 개량자들은 동물의 분뇨가 항상 생각되어 온 것보다도 비옥도를 높이는 데 유익하다는 것을 발견하였으므로 털의 잘못된 결론은 해를 끼치지 않았고 그의 올바른 결론은 큰 득이 되었다.
p253 토양 조직에 이로움을 주는 윤작에게 휴경을 빼어버릴 수도 있음을 증명하였다.
p258 리비히와 다른 화학자들은 식물은 녹아 있는 무기염류를 먹고 산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미량원소는 전혀 들어본 적 없고 광합성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다.
질산염의 중요성을 확인했으며 칼륨과 인산염의 중요성을 발견했다.
인간의 배설물은 흙에서 자란 옥수수의 무기물뿐 아니라 소에서 나오는 무기물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우리가 토양에 이 배설물을 저장할 수 있다면 식물과 동물의 생활에서 완전한 순환이 이루어질 것이고 우리의 논밭은 영원히 비옥한 상태로 보존될 것이다.
p259 그러나 그들은 옛날의 집약농업을 버릴수가 없었다..
거름에서 자란 농작물은 여러 가지 병충해에 걸리지 않고, 화학비료로 자란 작물은 여러 가지 질병에 걸린다는 사릴이 밝혀졌다.
거름을 주지 않은 토양보다 거름을 준 토양은 더 활기있고 더 유연하다.
p274 남을 위하여 희생되었으며 인간을 위해 죽는 존경받을 만한 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기독교는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산업과 상업의 정신을 농촌에 들여옴으로써 농촌을 파괴했다.
p278 생태학자들과 그들의 계획에 띠라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은 자연의 균형잡힌 토양사회를 재생시킴으로써 죽은 토양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음을 알 게 되었다. 그들은 가장 소모된 토양에 정착할 수 있는 잡초를 먼저 도입하고 점차로 고상한 식물을 도입하고 있다. 그들은 매우 조심스럽게 통찰력을 갖고 일해야 하며 종 사이의 균형을 유지시키며, 그들이 심은 나무들이 다른 식물과 함께 스스로의 생활을 이룩하도록 방도를 찾아 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