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도 식후경, 샹그리라는 없다]
1. 배고팠던 그때 그시절)
근래들어 게엄이니 뭐니하여 흐릿한 사계절색 은하수(?)들이 눈앞에 어른거리는걸 보니 문득 그옛날 일들이 생각났다.
논산훈련소 입소 3일만에 부사관후보생으로 차출되었다. 그해따라 유난히 무더웠던 7월말, 훈련소 대기실에서는 장정 모두가 팬티 바람으로 다녔는바, 팬티 색깔 더 누런(황산벌 계백장군 본거지?)일수록 입소일자가 빠른 고참이었다.
군번은 못받아도 그 누런팬티가 선임 노릇을 톡톡히 하였는데, 머리 회전빠른 서울 장정들이 우리를 보고 바보들이라고 히죽거리는 것을 들었다.
어차피 30개월 남짓 사병으로 근무하다 집에갈걸 6개월씩이나 빠지게 개고생하며 고된훈련을 받을게 뭐있냐는 것이었다.
그들은 힘든부대 차출이 예상되는 요일에는 잠시 피해다니며, 한달 가까이 좋은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하였다.
그건 그렇다치고...비맞아가며 5일장 소팔려가듯 트럭에 무더기로 실려 도착한 훈련소는 30개 가까운 중대로 편성되어 있는데, 내가 속한 곳은 25중대더라.
어차피 이한몸 국가 소유(시신은 군대 보급품중 10종으로 분류됨)가 되어버려 그걸로 때우면 되지만, 오히려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
도착순서와 무관하게 취사장앞 연병장에 모든 중대가 도착하면 배식을 시작하며, 그것도 중대 편제순(1부터~)이었다.
밤10시 취침, 중간에 보초 1시간 남짓, 아침 6시 기상하여 점호와 청소 마치고 식사집합하면 7시가 훨씬 넘는다.
밥먹고 야외교장까지 4km넘게 군장 갖추고, 구보하다시피 달려가려면 밥은 언제 먹느냐고? 그런데 우리는 25번째이니 아침마다 짠밥과의 전쟁을 치루어야 했다.
중대내 순서는 선착순(청소끝나면 식판 옆구리끼고 건물 구석마다 숨어 대기하고...)이라 뒤에 줄선 넘은 밥도 굶는데, 와중에 새치기 해가며, 두번씩이나 밥줄을 서는 눈치꾼 화상들도 있었다.
그렇게 배가 고프니 눈에 헛것까지 보인다는건 심한 표현이고, 하여간 인상들이 총알 스쳐간 야전병원 부상병 형국이었다.
그판에도 약삭빠른 인간들은 집에서 가져온 돈을 몰래 숨겨두고, 파라다이스 같은 PX(군데 매점)를 선배기수들 눈치 봐가며 드나들었다.
어느 일요일 오후, 나는 내무반을 나와 선배들의 눈치를 살펴가며, 숨어든 곳이 높은사람이 사는 관사주변이었다. 들키면 두들겨 맞기 십상이어서 잔뜩 위축되었다.
뭐가 없나? 두리번거리며 다가간 건물 담밑에는 익은 토마토를 따내고, 버린 줄기가 있었다. 그곳에는 채익지않은 퍼런 새끼 토마토들이 달려있었고, 나는 그걸 몇개 따다가 막사주변 은밀한 곳에서 배를 채웠다.
높은사람 방문하면 "정량 먹었습니다"를 외쳐야 했다. 밥그릇 저울달아 밥먹어 본적도 없는데, 누가 떼어먹지 않았음을 왜 배고픈 우리가 배꺼지게 고함쳤을까?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는 어릴적 가난한 시골에서 보릿고개를 겪었지만, 살아오며 그때의 기억은 모두 사라졌고, 고생하셨던 부모님께 고마움을 느끼는 반면, 군대시절 그때의 추억만이 지금껏 마음속 웃음꺼리로 남아있다.(군대애기는 하면 싫어한다 했는데 배고팠던 시절을 들먹이다 보니...)
2. 대체재와 보완재
배부른 군인들을 보니 지금 내 머리에 떠오른 것, 세상 삶은 '좋은 것과 덜좋은 것의 비교'에서,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양극화'로 변해가며, 갈수록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이 심화될 것이란 생각에 머물렀다.
흔히 회자되는 대체재와 보완재의 개념, 예를들면 대체재는 내가 마시는 막걸리와 소주, 두 술의 가격과 수요의 상승관계를 말하는데, 막걸리나 소주중 한쪽 술값이 오르면 대체 관계에 있는 다른 술이 많이 팔린다. 다른 예는, 쌀과 밀가루, 만년필과 연필 등이 있다.
반면에 보완재는 사람들이 막걸리 안주로 두부찌개를 먹는다면, 막걸리 가격이 오르면, 콩의 수요가 감소(비싸져서 귀해진다는?)하는 것으로 예를들면, 삼겹살과 상추, 피자와 콜라, 자동차와 휘발유 등이 있다.(비유가 맞긴 맞나? 경제학은 항상 내게는 너무 어려워 그래서 평생 돈을 못버는 거 같다)
그렇다치고, 위에서의 내가 말한 '좋은 것과 덜좋은 것의 비교'란, 생활정도가 향상되어 더 좋은 메이크의 운동화를 사고자 비교 경쟁하는 단계이고, 양극화를 촉진하는 '있는 것과 없는 것'중 있는 것이란 지금처럼 자동차와 휴대전화, 피자 통닭과 같이 여유가 있어 누리는 것이고, 없는 것이란 말그대로 우리가 어린시절처럼 식량이 모자라 제대로 먹지 못하거나 자동차나 휴대전화가 없어 불편했던 것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영국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의 연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갈수록 세계의 중산층 비율이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중산층이란 국가마다 그 기준이 다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가구의 소득이 중위(전체중 제일 가운데)소득의 75~200%인 가구를 중산층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세계은행은 현지 가격을 환산했을 때 하루에 10~20달러(한끼 식사비가 1달러도 안되는 나라포함)를 버는 사람들을 중산층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 중산층이 줄어들면, 돈이 없어 소비를 하지않아 내수가 위축되고, 후진국에서는 나이키 신발을 사지 못하는게 아니라, 식량 살돈이 없어 밥을 굶어야 하는 현실이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3. 샹그리라는 없다
경제학자들은 세계경제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경제지표들은 우하향이란다. 그중에는 우리나라의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처럼 장기간 침체의 늪에 빠져들 것이란 예측을 내어 놓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급격한 경제 성장과정에서 소득 불평등 문제가 심화됐다.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 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간 처우 차이 등이 빈부격차를 확대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우리나라 내년 경제성장율을 1%대를 예측 한단다. 일본의 그 0%를 닮아가는 것 같다. 경제성장율 0%는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물가는 오르니 상대적으로는 거꾸로 가는 것이다. 서민들의 고통이 눈에 선해 보인다.
있어 보이는게 품위 높아 보였던 지난 시절, 우리가 언제부터 부유했던가? 중국의 티벧과 언젠가 가보았던 윈난성 리장 고성, 부처님 손바닥에서 장난치던 손오공이 갇혔었더라는 위룽쉐산의 산자락...그곳 관계자도 샹그리라는 없단다.
예전엔 옥수수와 감자뿐이던 곳이 관광객이 늘어나니 5성급 호텔이 생겨나고, 일자리가 늘어나 먹고 살만하니 그걸두고 샹그리라라고 불리운단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배가 불러야 헛것이 안보이고, 숨어있던 볼거리도 눈에 띈다는 것이다.
먹는 것도 뭐든 먹어본 넘이 잘먹듯, 고난도 겪어본 사람이 잘견딜 것이다. 우리세대는 고난도 잘 참아낼 것이란 의미다.
어차피 세상은 롤러코스트와 같다. 내려가서 또 열심히 하면 올라갈 수 있다는 각오로 살아가야 할 것 같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신을 향한 나의 기도 마지막은 "이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전쟁과 기아에서 해방되게 해주시옵소서"이다. 그렇게 되기를 기도한다.(A-men)
* 글을 길게 쓰는 사연은 살아온 세월을 회상하며, 남은 시간 헛되이 살지 않겠다는 각오로 써본 온라인상의 글이니, 흘려읽고 내용에 개념치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