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랑이 속에 핀 냉이 꽃
이 미 화
순풍이라 하였던가! 누군가가 자기도취에서 지어낸 말은 아닐지.
그 해 봄의 길목에서 만났던 봄바람은 사납게 흙바닥을 쓸어 먼지를 일으키며 휘몰아쳤다.
방어진 앞바다에서 거친 파도를 잠재우지 못하고 화가 난 기세로 새로 개발한다고 파 헤쳐진 주택단지 공터에 흙바람을 일으키며 시도 때도 없었다.
야산을 깎아 밀어낸 넓은 둔덕에 하나, 둘 지어지는 주택들은 세를 놓기 위해 설계되어 있어 이주민들처럼 살림을 챙겨 각지에서 오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비스듬한 길을 가다보면 언뜻언뜻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가 눈에 들어와 낯선 객지임을 각인시켜주는 것만 같았다. 현대중공업에서 쏟아져 나오는 작업복을 입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신랑이었다. 대문에 들어서면 통로에 나란히 미닫이문들이 하나도 다르지 않고 똑같았다. 어떤 집은 우유주머니가 달려있고, 어떤 문에는 주간으로 나오는 유치원 시험지를 꼽는 함이 달려 있어서 그 집안의 분위기를 말해주고 있는 듯 했다.
우리 바로 옆문을 밀고 들어가는 새댁은 전라도 댁이었다. 그 옆집은 언양이 집인 경상도, 유난히 세련된 서울 댁. 한 지붕아래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라 부르는 주인댁만이 방어진 본동 댁이었다. 출입문들은 열려있을 때가 거의 없었고, 통로에서 마주쳐도 눈인사를 할뿐 선뜻 말을 걸기가 서먹했었다.
잠잠했다가도 불어 닥치는 바람 때문에 밖에 나가려면 날씨의 낌새를 살펴야 했으니 옆집과 옆집이 어색한 이유도 아마 바람 탓이었으리라.
당시 젊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취업자리 울산 현대중공업, 그 곳에서 엘리트로 구분되는 자재과에 있다는 것이 다른 사람들과 알게 모르게 구분이 되어있었다. 은근히 부러운 눈치를 느끼고 있었는지. 나를 불편하게 했었다.
별로 할 일이 없으니 방안에서 책을 읽거나 뜨개질을 하는 것이 거의 일과였고, 창밖에 부는 붉은 흙바람 을 보며 아지랑이가 아른아른 피어오르는 고향 들녘을 그리워했고, 봄나물들이 눈에 어렸다.
그렇게 낯을 익혀갈 무렵이었다. 교대근무를 하고, 아침에 퇴근을 할 사람이 저녁이 되어도 집에 들어올 줄을 몰랐다. 잔일이 있나보다 하며 기다림이 길어지자 불안한 생각에 어찌해야 될 바를 몰랐다.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부시시한 눈으로 밖으로 나오는데, 세상에 ! 나는 기절하다시피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얼굴에 하얀 붕대가 칭칭 감겨있어 사람을 알아볼 수가 없었고, 검은 잠바 속 힌와셔츠에 붉은 핏자국이 선연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음이 터져 나왔다.
사고가 났는데 연락할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자재과 급여에 비해 중장비 운전을 하면 수익이 높다는 이유로 틈틈이 중장비 운전을 배워서 급한 인력자리를 충당할 욕심이었다. 운전이 익숙해져서 작업을 하던 중, 화물추레라트럭이 뒤에서 친 것이라 했다. 두 달여 진단이 나왔고 치료가 끝나갈 무렵, 공단 내에 휘오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인력감원 조치가 내려지며 대치하는 공원들의 농성대란이 벌어졌다. 치료비를 포함해 보상이라는 꼬리표를 단 권고퇴직 조치라는 예감했던 암담한 결과 통보가 내려질 수밖에. 구조조정 조치는 울산뿐 아니라 온 나라 안에서 경제 위기바람이 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점 배가 불러오던 옆집새댁 눈이 벌겋게 부어 외면하고 통로를 지나는데, 감원명단에 올라있다는 감이 느껴와 조심스러웠다.
그 날 저녁,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어 반가운 마음으로 맞아들였다. 말걸리 한 병을 손에 든 옆집 사람이었다. 연신 겸연쩍게 웃고 있었으나 희심에 미소가 그런 것이었을까?
“어이구 잘 왔소이다. 이거, 벌써 이렇게 했어야 하는걸”
“다 제가 못나서 그렇소이 아 우리가 전라도먼 어떻구 갱상도먼 어떻소”
“다 같이 한솥밥 먹는게 아니요이 허허”
물꼬가 터진 격으로 주거니 받거니 흘러나오는 얘기들이 실타레처럼 풀어져 방안을 빙빙 돌아 바람 부는 창밖으로 새어 날아갔다. 두 사람만의 공간이었던 방안에는 옆집 또 그 옆집 비집고 앉아 이집 저 집에서 주워 나르는 안주가 상에 올랐다.
얼마 뒤, 여자들도 따끈한 부뚜두막에 옹기종기 앉아 무거운 미소를 서로에게 보내고 있었다. 새댁들도 어쩔 수 없이 걱정이 가라앉아 있었지만 방안에 남자들을 동조하는 분위기였겠지.
가려졌던 마음의 베일을 벗겨내는 듯 같은 마음이 서로에게 전해지고, 처음으로 그 지붕아래에서는 사뭇 정이 돋는 시간이 흘렀다.
이튿날, 모처럼 햇살이 밝았다. “ 이게 무슨 꽃이에요? 너무 예뻐요” 서울 댁 목소리에 새댁들이 모였다. 담 밑에서 비집고 올라온 냉이가 잘잘하게 노란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봄나물이 군데군데 힘겹게 싹을 내밀고 있었다.
옆집 새댁과 나는 빨간 소쿠리 안에 작은 칼을 담아 봄나물이 있는지 보러나갔다. 뒷길을 지나 낮은 산자락아래 흐르는 옹달샘 물줄기를 따라 난 길, 논두렁에서 바라보이는 푸릇푸릇한 밭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혹한의 겨울보다 더 무서운 구조조정이란 휘오리 바람 속에서도 그 울안에서는 담 밑에 피어나는 냉이꽃처럼 서로를 보듬어주던 작은 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경상도나 충청도에서도 긴 겨울을 보내고 아지랑이 속에 피어나는 냉이꽃처럼….
지금 그 새댁은 어디서 어떻게 늙어가고 있을까? 그 새댁의 미소가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