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만에 고향의 푸른 잔디밭을 밟는 듯 포근하고 아늑하다.
집에 들어오면 대부분의 시간을 반찬 만드는데 매진했다.
일반 먹는 된장에 우선 표고버섯 멸치 다시마 마른새우를, 야채인 고추 둥근 파를 넣어
집된장과 어우러지게 하고 그래도 짜면 두부와 갈은 콩도 넣어 거센 맛을 달랜후 양념한다.
된장찌개는 차돌박이 소고기 한 점과 파만 있으면 굿이다
쇼 스로 먹을 때는 깨소금에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듬뿍 넣어서 낸다.
또한 고추장도 초고추장과 별도로 소고기를 조금 볶아 넣어 양념해 놓았다
쨈도 만들어 놓았다
방부제가 무서워 견과류를 사다 씻고 레인지에 말려 약간 볶고 그것을 곱게 갈아 꿀에 재어놓으니
아주 정성스런 내 손맛 표의 간식용인 훌륭한 견과류 쨈이다.
또한 해독 주스, 좋다는 야채를 채쳐 기름에 부쳐 수시로 한 점씩 내 놓는다.
어디 그뿐인가
반찬으로 각종 김치, 나물, 묵은 지 찌게, 열무시레기를 깐 고등어조림, 등등 냉장고 생각만 하면
마음이 든든해 어느 부자가 안 부럽다.
잡곡에 다진 다시마를 넣어 찰기 흐르는 밥이다.
고향이 서을 본토인 난 음식을 푸짐하게 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얀 접시 위에 딱 한 젓갈씩만
놓인 5첩 내지 7첩 반상을 정갈하게 차려 놓았다.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유일하게 내 곁에 남은 남편을 밥상 하나라도 제대로 보아주고 싶기 때문이다
(많이 먹으라고 성화되는 것은 여전하다)
때때로 친구들은 무릎성할때 나와 놀자고 전화를 준다.
난 못 나간다고 거절하지만 간간이 내 스스로 묻게 된다. 내 남은 생은?
ㅇㅏ무리 남편이 반려자로 아직도 나에게 가정을 이루게 한 소중한 사람이라는것은 알지만
얼마 남지 않은 내 세월을 이렇게 속수무책하게 집에서만 보내다니 좀 억울하다.
또한 나 늙으면 누가 나처럼 나를 보살펴줄 것인가...생각할 수록 서러운 마음이 든다.
어찌 살아야 하나?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게 묻는다
바람 대답은 그냥 나처럼 되는대로 흘러보내라 하겠지 정답이 어디 있느냐고
집에 있으면 밖이 그립고 밖에 있으면 집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우니...
그런데 하루는
병원에 갔더니 의사선생님께서 “ 아주 좋아지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신다.
난 얏 호! 하며 뛸 듯이 기뻐했다.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요즘 남편이 잘 먹고 화장실 잘 가니 얼굴에 화색이 조금 돌고
매일 산책을 해서 그런가 다리에 힘도 붙은 것 같고 어깨도 조금씩 펴지는 것 같아
나도 내심 조금씩 나아지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실 반찬에만 정성을 쏟았지 인삼 녹용은 해 드리지도 않았는데...
난 질병을 조금씩 이겨내는 남편이 신통방통해 고운 자켓을 하나 사 입히고 승용차를 꺼내
녹음이 우거진 아치 터널 속으로 달렸다.
보이는 것은 푸르고 푸른 숲과 강물 그리고 산이다.
모든 생명의 본질인 진초록이 넌출넌출 주위에 흘러 넘치는 것을 보니 가슴이 희열로 벅차오른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시원스레 날린다.
산엔 밤꽃이 흐드러지고 풍겨오는 흙냄새, 나뭇잎, 풀 향기 그리고 오랜만에 맡아보는 아카사아
꽃향기가 정신없도록 밀려와 머리를 쇄락(灑落) 하게 한다
“아! 기분 좋다. 여보. 옆의 강울 좀 보세요. 그림 같아요.”
“산 좀 보세요. 저 푸름이 얼마나 대단해요.” 계속 지절대는 난 숲속에 종달새다
붕어찜으로 맛있는 식사를 한 후 자연을 더 즐기고 싶어 양평 쪽으로 나가다 차를 멈췄다.
주위는 조용하고 고즈넉하다
강물 주위를 삥둘러 병풍처럼 졸라니 겹겹이 업고 품고 있는모습의 장엄하고 웅장한 산.산.산
푸르다 못해 검푸른 녹음은 절정을 이룬다.
산 너머 너머에는 아득한 하늘 아래 꿈결같이 흐르는 능선과 능선 그리고 그 산 위에 걸친 연한
회색빛 안개인가 구름인가 아련한듯 한 모습은 언제 보아도 신비감으로 가득 찼다.
강물에는 숲이 하늘이 구름이 반영되어 잔잔하게 흔들리는 모습은 또다른 절경을 이룬다.
정말 아름답구나!
이렇게 좋은 경치를 두고 날마다 미친듯이 어딜 그리도 쏘 다녔는지...
휙~~ 하얀 새가 물을 차고 오르지 않았으면 내가 이자리에 있는 것도 모를뻔 했다.
산에서 쏱아져 내려오는,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 바람은 강물의 길 하늘의 길을 더듬을 수
있게 해 주어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길도 열어 주는 것 같아 마음에 희열을 느겼다.
심오한 산 빛과 깊은 늪이 우려내는 물빛에 영혼과 육신을 젖시며 감회에 젖고 있는데
어느새 하늘은 서서히 붉게 물들고 있었다.
오늘 저녁노을은 유난히도 붉게 타는구나! 2016년 6월 24일 이호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