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련도 한도 없네 ♥
흔히 황진이 하면,
재예가 뛰어나면서
색기가 자르르 흐르는 여인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옛글에는
황진이의 미모보다는 총명함,
총명함 보다는 호쾌한 성격이 더
뚜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어느 글에는 황진이가 개성에 살던
여자 소경의 딸이라고 전하기도
하고, 또 다른 글에는
황진사의 서녀로
그의 어머니 진현금이 개성 시내에
있는 병부다리 아래에서 물을
마시다가 감응하여 황진이를
잉태했다고도 전합니다.
그녀가 어쩌다가
기녀가 되었는지는 별로
알려진바 없지만 그녀를 몹시
짝사랑하던 이웃집 서생이
상사병으로 죽자 스스로
기녀가 되었다고 전할 뿐입니다.
이렇듯 그녀의 기록이
그다지 많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몇가지 일화는 단번에
우리의 마음을 사로 잡습니다.
🌹
진이는 어느날 천하의 명산이라는
금강산에 가고 싶어서 그의 동행자
를 물색하다가 재산가의 아들
이생을 택하여, 이생에게 하인없이
그냥 둘이만 산행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이생 역시 호탕하고 속기가 없다고
알려진 사람이라 쉽게 뜻이
통했는지 그들 둘은 정말 그렇게
그렇게 금강산으로 떠났습니다.
진이는 이생더러 배옷차림에
초립을 쓰고 몸소 양식을 짊어지게
양식을 짊어지게 하고, 자신도 칡베 적삼과 무명 치마 차림에 소나무 겨우살이풀로 만든 둥근모자
를 쓰고 대나무지팡이를 짚고서 길을 나섰습니다
그들은 주로 절에서 걸식하며
금강산 곳곳을 다닙니다.
때로는 진이 몸을 팔아 중들에게
양식을 얻기도 했는데,
이생은 이것을 허물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진이가 자기를 종이라고 소개해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두사람은 산에서 굶주리고 고생한 끝이라 예전의 용모를 찾아볼 수 없이 초췌한 몰골이 되었을 때, 시골 유생 들이 숲에서 연회를 벌이는 곳을 지나
가게 되었습니다.
진이가 그곳에 가서 술을 한잔 받아
마시고는 술잔을 잡고 노래를 부르자,
그 노래의 맑고 높은 음향이 숲과 골짜기를 울렸습니다.
여러 유생들이 특이하게 여기고 술과 안주를 주니, 진이는
"첩에게 종이 한명 있는데
매우 굶주렸습니다. 남은 음식을 먹이기를 청합니다." 하고는 이생을 불러 술과 고기를 주었습니다.
두사람은 일년 남짓 그렇게 다니다가 다 떨어진 옷에 새까만 얼굴로
여행을 마쳤다고 합니다.
황진이는 자기가 원하는 스타일로 금강산을 유람할 동행자를 제대로 선택했던 것입니다.
♥
명기가 멋진 남자를 알아보는 것인지,
멋진 남자들이 명기를 알아보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황진이 주변에는 멋진 남자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가곡을 잘 부르는 선전관 이사경 이라는 사람입니다.
그가 왕명을 받들고
송도에 가면서 천수원 시냇가에서 안장을 풀고 갓을 벗어 배 위에
얹고는 누운채로 가곡 두 서너
곡을 크게 불렀는데 마침 진이 또한 천수원에서 쉬고 있다가 그 노래 소리를 듣고는,
"이 노래 가락이 매우 특이하니
평범한 촌사람의 천한 곡조가 아니다. 내 듣기에 서울에서 풍류객 이사종이 있어 당대의 절창이라고 하는데,
필시 그 사람일 것이다."
하고서 알아보니 과연 그였던 것입니다.
진이가 그 곁으로 자리를 옮겨 정성껏 대접하고 자기집으로 모셔와 며칠 머물게 했습니다.
그리고,
"마땅히 그대와 함께 6년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고는,
이튿날 삼년동안 살림살이 할 재물을 이사종의 집으로 모두 옮긴 후,
그 가족들의 일체 생활비를 모두
진이가 마련했습니다.
진이는 일하기에 편한 차림으로
첩의 예를 다하면서 이사종의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렇게 3년이 지나자, 이사종이 진이 일가를 먹여 살리기를, 진이가 이사종 집에서 한것과 똑같이 하여
다시 3년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6년이 지난 후, 진이는
"업이 이미 이루어졌으며 약속한 기일이 다 되었습니다."
하며 작별하고 떠났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전무후무한
"여자 주도형 계약 결혼"을 했던 것인데, 진이도 이사종도 쿨! 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돈 많거나 출세한 남자에게 잘 보여서 팔자를 고치려는 여자들이 모래알처럼 많고 흔한 요즘,
정말 그리운 것은
황진이의 주체적 마인드입니다.
어떤 여자가 오직 재벌가에 시집 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몇 며칠 세간의 뉴스에 도배되고,
그것을 자랑삼아 부러워하는 시선은 또 얼마나
끝간데 없이 천한가.
황진이는 윤리 도덕적이지는 않았지만,
몸의 안일과 사치를 위해 자기 마음과 정신을
팔지는 않았습니다."
♥
황진이는 죽음이 가까워 오자,
"나는 살면서 성품이 분방하고
화려한 것을 좋아했소. 죽은 뒤에도 나를 산골짜기에 장사 지내지 말고 마땅히 큰 길가에 묻어 주오"
라고 부탁하였으므로, 그의 무덤이 송도 큰 길가에 있었다고 합니다.
백호 임제가 평안 도사가 되어
송도를 지나면서
진이의 무덤에 축문을 지어 제사 지냈다가
조정의 비방을 받아 파직되었다고 합니다.
진이의 인간됨을 그리워한 것이 아니라면
백호선생이 그녀의 무덤을 왜 찾아 갔으랴!
이목구비에 마음 홀리는 것은
싸구려 사이비 풍류일 뿐,
백호 선생의 풍류에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그리움을 받을 정도면,
진이의 삶에 무슨 미련이며 여한이 있겠습니까?
백호선생이 진이를
그리며 지은 시조 한 편이
있습니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듯 누엇다
홍안을 어디 두고 백골만 무첫이니
잔 들고 권할 이 업써
그를 슬퍼하노라"
<編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