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분 / 한글자막>
=== 프로덕션 노트 ===
갈리나 울라노바, 유리 즈다노프, 콘스탄틴 세르게예프, 마야 플리체츠카야
Galina Ulanova, Maya Plisetskaya, Konstantin Sergeyev, Yuri Zhdanov
세 개의 무대 중에서 두 번째 무대는 발레 역사상 아주 특별한 무대이다. 발레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고 알려져 있는 갈리나 울라노바와 마야 플리세츠카야 두 명이 동시에 등장하여 환상적인 실력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 영상은 유일하게 두 명이 동시에 등장하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두 명의 전설들이 자신만의 스타일로 공연을 하기 때문에 그들의 다른 스타일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영상이다.
이 영상의 첫 번째 부분에서는 갈리나 울라노바가 등장하는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이다. 환상적인 시각 효과와 카메라 기술들을 볼 수 있다. 그저 평범하게 발레를 촬영한 것과는 다르다.
위대한 벡탕 차부키아니가 세 번째 무대에서 등장한다. 세 번째 무대는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하는 <파리의 불꽃>이다.
갈리나 울라노바 Galina Ulanova
1910년 St. Petersburg 출생. Leningrad Choreography School 에서 발레를 배웠으며 1928년 졸업 후 키로프 발레단에 입단하여 1944년까지 단원으로 있었고, 그 후 볼쇼이 극장으로 이적했다.
울라노바는 볼쇼이 르네상스를 이끈 일등공신 중 한명이다. 울라노바는 러시아와 서방세계의 발레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지젤>, <로미오와 줄리엣>, <잠자는 미녀>, <레 실피드> 등의 작품에서 그녀는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역할이다.
그녀의 춤은 테크닉보다는 표현력이 특출한 탓으로 장엄한 이미지와 신체를 잘 나타내기는 하였으나 반대로 까다로운 테크닉을 선보일 기회는 많지 않았다. 신체조건 또한 썩 좋지 않은 편으로 짧은 목과 팔, 부정확한 테크닉 등은 울라노바의 약점이었으나 그녀는 이런 자신의 약점을 오히려 역으로 이용하여 친근하고 소박한 이미지를 만들어 냄으로써 러시아 최고의 발레리나로 성장했다.
울라노바의 이런 활약은 구소련의 정치적 내막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당국의 집중적인 보호와 지원 아래 최고의 영예를 누린 갈리나 울라노바는 그녀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마야 프리세츠카야와 대조되는 부분이다.
러시아 발레사를 통틀어 울라노바 만큼 집중적인 조명을 받는 발레리나는 드물었다. 울라노바의 무대는 정치적 성향을 띤 작품이 올랐으며 그녀 자신도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쓰여졌다.
스탈린 상을 4회 수상, 구소련 최고의 훈장이라고 할 수 있는 레닌 상을 두 번 수상함으로 그녀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1959년 무용수의 삶을 접고 발레 지도자가 되었으며 니나 아나니아 쉬빌리, 나탈리아 마카로바 등의 발레스타를 두루 배출해 내었으며 1998년 3월 21일 세상을 떠났다.
유리 즈다노프 Yuri Zhdanov
유리 즈다노프는 키로프 발레단에서 이적해온 볼쇼이 발레단의 프리마 갈리아 울라노바의 파트너로 활약하였다. 그가 출연하는 영상물은 <로미오와 줄리엣>과 <바흐치라사이의 샘>이 있는데 둘 다 울라노바가 파트너이다. 왕자형 이기보다는 근육질을 연상시키는 듬직한 체구를 지녔으며, 짧은 출연시간에도 불구하고 바흐치사라이의 샘에서 보여준 폴란드의 기사 바슬라프역에서 강한 인상을 보여주었다.
콘스탄틴 세르게예프 (1910-1992) Konstantin Sergeyev
Mariinsky Ballet(키로프 발레단)의 영원한 댄서이자 마스터
소비에트 시대의 마린스키 극장의 뛰어난 남성무용수이자 갈리나 울라노바(후에 볼쇼이로 이적)의 파트너로, 동료이자 아내인 스타 나탈리아 두딘스카야와 함께 활약하였다. 레닌그라드 발레학교를 수학하고 1930년에 키로프 발레단에 합류하였으며, 서정적인 로맨틱 스타일을 구사하여 클래식 발레의 주요 배역을 포함 <바흐치사라이의 샘>, <가야네> 등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였다. 특히, 러시아에서의 <로미오와 줄리엣> 초연시 울라노바와 함께 로미오역으로 열연하였다. 무용수 이외에도 안무가로서 <신데렐라>, <햄릿>을 포함 <백조의 호수>, <라이몬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같은 마리우스 쁘띠빠의 고전 작품들도 키로프 발레단을 위해 다듬었다. 행정가로서의 세르게예프는 레닌그라드 발레학교(바가노바 발레학교로 추정됨. 1951-1956)의 예술감독, 키로프 발레단의 단장(1972-1982)으로 역사적인 키로프 발레단의 첫 서구공연을 이끌었다.
마야 플리세츠카야 Maya Plisetskaya
마야 플리체츠카야(1925~2015)는 러시아 발레, 특히 볼쇼이 발레의 전설이다. 한 사람의 발레리나를 넘어서 안무가로, 행정가로도, 심지어 배우로도 일가견을 이룬 인물인 것이다. 플리세츠카야는 연약한 발레리나가 아니라 카리스마 넘치는 무용수였으며 소비에트 시절에는 권력의 시녀로 봉사하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스타일을 끝내 지켜냄으로써 더욱 많은 찬사를 받았다. 2005년에는 그녀의 80세를 기념하는 갈라 공연이 러시아뿐 아니라 서구에서도 펼쳐졌는데, 이때도 춤을 추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또한 러시아의 유명 작곡가 로데온 셰드린이 플리세츠카의 남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