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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얼굴
조 정 래
그 산골 마을에서는 밤마다 귀신의 울음 소리가 번져나왔다. 발길을 더듬거려야 할 만큼 어둠이 짙어지기만 하면, 그 습하고 음산한 울음 소리는 영락없이 마을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이른 저
녁을 해먹고는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문이란 문은 모두 닫아 걸었다.
마을은 밤만 되면 공동 묘지와 다를 게 없었다. 사람의 통행이 완전히 끊긴 데다, 불을 켠 집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적막한 어둠 속에 어렴풋한 형체를 드러내고 있는 집들은 흡사 묘지와 같았고, 그 어둠을 헤치고 귀신의 울음 소리가 간헐적으로 휩쓸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아이고오…… 아이고오…….
목을 놓아 우는 때도 있었고,
―웬수야아…… 웬수야아…….
발악적으로 소리칠 때도 있었고,
―잉잉잉…… 응, 으응, 응…….
섧게 느껴우는 때도 있었고,
―이히히히…… 히히히히…….
간드러지게 웃는 울음을 울 때도 있었다.
그 어떤 울음도 견디어낼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적막한 어둠을 타고 흐르는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과 메마른 통곡과 섬뜩한 웃음소리는 하나같이 마을 사람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옥죄고 있었다.
그 울음 소리는 계속 들려오는 것이 아니었다. 한바탕 찬물을 끼얹고 나서는 못 견디게 지루한 시간 동안 잠잠한 것이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이히히히…….” 전신의 피를 바지직바지직 마르게 하는 웃음소리가 싸늘하게 퍼져오는 것이다.
그 소리는 어디서 들려오는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어떤 때는 왼쪽 같기도 했다가, 어떤 때는 오른쪽 같았고, 또 어느 때는 바로 등 뒤에서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잔뜩 주눅이든 낮은 목소리로 왼쪽이니 동쪽이니, 오른쪽이니 서쪽이니 우김질도 하긴 했지만, 차차 그것도 멈추고 말았다. 백날 우김질을 하면 무얼 할 것인가. 동쪽이면 어떻고 바로 등뒤면 어떻단 말인가. 그런 우김질로 귀신이 울기를 멈추지 않는 한 그것처럼 부질없는 일이
없었다.
“엄마 무서…… 불 켜.”
파랗게 질린 애가 가슴으로 파고들며 애원했다.
“알었다. 엄마가 꼭 안아줄게, 어서 자그라.”
여인은 애를 감싸안으며 동그랗게 뭉친 솜덩어리를 집어들었다.
“엄마 불 켜, 나 무서.”
“알었어, 이 솜으로 귀 막아줄 테니 어서 자.”
“싫어, 답답해. 빨랑 불 켜어.”
“이 원수야, 불을 켜면 어찌 되는지나 알어?”
여인은 낮게 틀어잡은 목소리로 애를 꾸짖으며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러고는 사정없이 솜을 애 귀에다가 틀어박았다. 그런 여인의 한 손은 우악스럽게 애의 입을 덮고 있었다. 머리를 쥐어박힌 애의 아픔은 그 손바닥에 짓눌려 억지로 삭여지고 있는 참이었다.
집집마다 소등(消燈)을 한 것은 결코 자의 (自意) 에서만이 아니었다. 처음 귀신이 울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마을 전체를 대낮처럼 밝게 불을 밝히기를 원했었다. 그건 짐승이나 귀신은 불이나 밝음을 무서워하기 때문이었다. 밤마다 불을 밝히자면 나무도 엄청나게 들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남쪽을 제외하고는 마을은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던 것이다. 그 산에 빽빽하게 자라고 있는 나무는 다 어디다 쓸 것인가. 그러나 이 의견은 좌절되고 말았다.
“그 무슨 철부지 애들 같은 말들을 하시오. 저 나무들을 가꾸느라고 우리가 얼마나 피땀을 흘렸는데, 그까짓 귀신을 쫓는 데 불쏘시개로 태워 없앤단 말이오. 저건 당신네 어른들의 재산만은 아니오. 애들, 자손한테까지 남겨야 할 재산이란 말이오.”
이장(里長)이 화가 난 어조로 말했다.
사람들은 말을 잃고 말았다. 이장의 말이 맞았다. 이장의 의견에 따라 민둥산에 나무를 심고 가꾸기 15년여. 그동안 겪은 고생과 들인 정성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이제 한 아름씩이 다 되어가다시피 하는 나무들을 멋대로 쳐내려 귀신을 쫓자고 밤새껏 일삼아 태워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장도 귀신 곡성을 듣긴 들었을 건디, 이대로 밤마다 험한 꼴로 지낼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노인은 이장에게 해결책을 강구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그렇지요. 이대로 시달릴 순 없는 일이죠.”
젊은 이장은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무거운 표정이 되었다.
“한 품고 오신 귀신을 사람 완력으로 이긴 법은 없답디다. 그저 달래야 해요, 달래야.”
어느 여자가 말했고,
“그렇잖구요. 원귀를 잘못 몰아세웠다간 날벼락 맞아요. 천상 비위 맞춰서 구슬려야 한다구요.”
옆의 여자가 생기 도는 목소리로 맞장구를 쳤다.
“그렇담, 굿을 해얀단 말이렷다.”
처음 말을 꺼냈던 노인이었다.
“그렇지요. 굿을 해야죠.”
“원귀 달래는 데야 굿 말고 더 신효한 처방이 어디 있나요.”
두 여자가 자신만만하게 강조했고, 좌중의 모든 사람들은 완전한 해결책을 찾아낸 기쁨으로 술렁거렸다.
“그거 괜찮은 방법입니다.”
이윽고 이장이 동의를 표했다.
“하루라도 빨리 길일(吉曰)을 잡아야 해요.”
“그럼, 그럼. 돼지도 큰 놈으로 통째 올리고…….”
“그렇지, 집집마다 추렴을 해서 떡 벌어지게 차려 올려야지.”
여자들은 처음에 모였을 때의 침울한 기분을 싹 털어버리고 굿 차릴 이야기로 빠져들고 있었다.
“모두들 조용히 하십시다.”
이장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 말을 멈추었다.
“에에, 굿을 하는 건 백번 좋은데, 굿은 무당이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 마을에는 무당이 없잖습니까.”
이장의 이 말에 사람들은 모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는 듯 서로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러나 그 시간은 지극히 짧았다.
“고게 무슨 걱정입니까요. 기별만 띄우면 얼씨구나 올 걸 가지고.”
어느 입빠른 여자가 말했고,
“그러 게, 무당 없는 동네가 어디 우리 동네뿐인감.”
다른 여자가 입을 삐죽해 보였다.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술렁거리는 분위기를 잠으려는 듯 이장의 목소리는 사뭇 컸다.
“에 또, 무당을 불러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무당의 입으로 우리 동네에 귀신이 붙어서 동네 굿을 했다는 소문이 나는 게 염려다 그 말입니다. 어느 한 집도 아니고, 동네 전체가 귀신이 붙었다, 그래서 귀신 붙은 동네라고 소문이 퍼져봐요. 그런 날엔 우리 동네 꼴은 뭐가 되겠소. 우릴 귀신 붙은 것들이라고 상대하기 꺼려하고, 우리 동네 농작물을 귀신 붙은 물건이라고 사려 들지 말라는 법 없잖겠소. 그럼 우리네 신세가 어떻게 되겠소. 십년공부 도로아미타불 아니오. 나는 바로 그게 걱정 이란 말이오.”
좌중에는 갑자기 냉기가 돌았다. 이장의 말은 구구절절이 옳았다. 역시 이장은 예사 사람은 아니었다. 젊은 나이에 비해 언제나 생각이 깊고 넓었다. 이장이 이 산골 마을을 아끼고 염려하는 것만큼이나 사람들은 제각기 애정과 애착을 지니고 있었다. 이장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하더라토 이 산골 마을의 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고작해야 산자락 아래를 타고 일구어진 밭뙈기에서 거둬들인 고구마로 산골의 긴 겨울을 나기란 반쯤은 죽어 있는 꼴이었다. 그나마 돈 구경을 할 수 있는 것은 봄이면 고사리, 가을이면 밤을 따내서였다. 그러나 그 돈이란 것이 간에 기별도 안 갈 만큼 시장스러운 액수였다. 없어서는 안 될 소금이나 실 등속을 가까스로 장만할 뿐, 간고등어 한 손 선뜻 사들 수 없었다. 그런데 젊은 이장이 자리를 차고 앉으면서부터 동네는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젊은이가 처음부터 이장은 아니었다.
그가 동네에 모습을 나타내게 되었을 때만 해도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사람 사는 곳에 옛사람이 떠나거나 새사람이 들어오는 것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런 이치였다. 그 젊은 내외는 극성스
러울 만치 부지런했다.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돌과 잠풀투성이의 땅을 일구는가 하면, 나뭇가지와 칡줄기로 닭장을 얽어 만들었고, 사시장철 흘러가는 맑은 냇물을 옆에다 놓고 한사코 우물을 파는가 하면, 자기 산도 아닌데 낑낑거리며 나무를 줄지어 심어나가는 것이었다.
이런 그들 내외의 행동은 심심찮은 웃음거리였다. 그러나 그들은 귀라도 먹 었는지 도무지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몇 개월이 지나고 해가 바뀌게 되자, 사람들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돌과 잡풀투성이였던 땅은 어느새 자신들의 밭보다 몇 배 넓은 밭으로 변해 있었고, 그 엉성하기 이를 데 없던 닭장에서는 새하얀 달걀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들 내외에게 꽤는 호의적이면서도 아첨기 어린 웃음을 보이며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귀머거리거나 벙어리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묻는 말에 다정스럽게 대답했고, 알고 싶어하는 것은 친철하게 가르쳐주었다.
사람들은 시샘이라도 하듯 그들 내외처럼 되고 싶어했고, 그러다 보니 그들 내외는 사람들을 이것저것 시키는 자리에 놓이게 되었다. 그 젊은 남자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힘을 합쳐 일할 수 있기를 은근히 바랐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내세우지는 않았다. 언제부턴가 모르게 마을이 공동으로 처리할 문제가 생기면 젊은이의 의견대로 따르게 되었다. 그만큼 젊은이는 생각이 깊었고, 사심이 없이 행동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임에서 젊은이는 갑자기 이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김 씨가 이장을 맡지그래.”
누군가가 불쑥 말했고,
“그래, 난 늙어서…….”
나이가 든 이장은 당황하고 궁색한 표정으로 어물거렸다. 그때 뜻하지 않은 박수가 산발적으로 짝짝짝 터져나왔고, 젊은이는 이장의 직책을 맡게 되었다. 사람들은 놀랐다. 그전에 있으나마나 했던 이장이란 자리가 그처럼 빛나고 크게 느껴진 사실에 사람들은 두 번 세 번 놀라고 있었다. 그는 무서운 열성으로 일을 해나갔다. 그는 마을 전체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모두 힘을 합해 줄 것을 역설했다. 그는 어마어마하게 느껴질 만큼의 계획을 세워 사람들에게 알리고는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남쪽을 빼고는 빙 둘러싸인 3면의 민둥산에 나무를 심는다는 계획 같은 것이었다. 그는 몇몇의 반대를 가차 없이 묵살했고, 일을 진행해 가는 동안 일어나는 사소한 불평 같은 것은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이 일을 이룬 다음의 이익이 무엇인지를 누누이 강조했다. 그는 결국 2년에 걸쳐 나무 심기를 완료했고, 첫해에 심었던 나무가 숲을 이루는 것을 본 사람들은 비로소 다음해에는 무슨 열매든 열리리라는 사실을 확인하며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 해가 바뀌고 열매를 따게 되었을 즈음엔 이장의 말은 그대로 법이었다. 이장이 한 일은 실로 많았고, 또 그 결과가 대부분 좋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사람들도 예전 같지 않게 이 산골 마을에 사는 것을 떳떳하게 내세웠다. 대단한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십년공부 도로아미타불이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장의 말마따나 귀신 붙은 동네 물건이라고 외면을 해버리는 날에는 옛날의 꼴로 되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 허기진 가난에 다
시 묻히느니, 차라리 귀신의 울음에 시달리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제각기 이런 생각에 빠져 난감해져 있었다.
“이장, 무슨 묘책이 없겠소?”
노인이 마른 음성으로 두꺼운 침묵을 깼다.
“글쎄요,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한데…….”
이장이 신중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고, 사람들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눈길을 일제히 이장에게로 보냈다.
“이빨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했습니다. 우리 힘으로 굿을 올리는 겁니다. 우리의 정성만 지극하면 원귀도 마음 풀고 떠날 겁니다.”
이렇게 해서 다음날로 굿을 준비했다. 아낙네들은 모두 목욕을 했고, 생리일을 맞고 있는 여자들은 아예 음식을 장만하는 데 얼씬도 못했다. 어둠이 내리는 것과 동시에 상을 차렸다. 걸게 차린 굿상 앞에 동네 사람들은 모두 모여섰고, 이장을 선두로 깊은 절을 올렸다. 그럴 때마다 둘러선 사람들은 하나같이, 제발 원혼을 풀고 우리 동네에서 멀리멀리 떠나가주십소사 하며 정성껏 빌었다. 귀신도 그 정성에 감복했음인가. 바라징이 울리지 않는 굿인데도 그 소름 끼치는 울음을 그친 것이었다. 굿이 파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와서도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 조마조마 가슴들을 조이며 귀를 세웠지만, 귀신은 울지 않고 자정이 넘어갔다. 사람들은 무턱대고 절을 하고 싶은 안도감에 충만되어 생애의 처음인 것 같은 다디단 잠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다음날은 밝기가 바쁘게 밖으로 몰려나와 자신들의 정성을 거두어준 귀신에게 감사하고 고마워했다. 그런 그들의 얼굴에는 전에 볼 수 없었던 밝은 웃음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게 어찌 된 일일까. 해가 지고 어두워지자 또다시 귀신이 울기 시작했다.
一이히히히…… 으응, 응, 응, 응…….
사람들은 이틀 전보다 더 오금이 저리고 등골에 찬바람이 이는 공포에 휩싸였다. 자신들의 정성을 물리쳐버 린 귀신이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선 느낌이었다.
다음날로 사람들은 다시 모였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갔지만, 뾰족한 방법 이 강구되지는 못했다.
“이장님, 그 쌍놈에 귀신을 우리 남자들이 나서서 때려잡읍시다.”
불쑥 튀어나온 이 말에 장내는 아연 긴장했다. 그 말을 한 사람은 춘배였다. 그는 뼈대가 굵은 기운깨나 쓰는 사내였다.
“나, 귀 떨어지고 귀신 울음소리는 생전 처음 듣는데 말요. 그걸 잡아 열두 토막을 내고 말아야지, 언제까지 이꼴로 바들바들 떨고만 있을 거요.”
“맞는 말이오. 헌데 귀신이 사람 눈에 보여야 때려잡든지 말든지 할 게 아뇨.”
이장이 고개를 저 었다.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역력하게 우는 귀신이라면 별종(別種)일 게 틀림없어요. 그 울음 소리 나는 곳으로 쫓아가 보는 겁니다. 가보면 머리를 헤풀었는지, 하얀 옷을 입었는지, 다리도 없이 하늘을 날아다니는지 알 거 아닙니까.”
사람들은 춘배에게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여자들은 대개가 귀를 막고 있었고, 옆의 남자들도 자꾸 멀리 떨어져 앉으려 하고 있었다. 그런 춘배의 말을 귀담아 듣거나 옆에 가까이 있으면, 그에게 떨어질 귀신의 화가 자신들에게도 미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인 게 분명했다.
“글쎄, 그 용기는 좋은데, 괜히 그러다가 화를 입는 게 아닌지 모르겠소.”
이장이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그럼 이장님도 귀신이 있다고 믿는단 말요?”
“뭐 꼭 그런 건 아뇨. 허지만 밤마다 울고 있으니 전혀 안 믿을 수도 없는 일 아니겠소.”
“참 웃깁니다그려. 난 꼭 귀신을 때려잡고 말 게요.”
“자아, 너무 성급하게 굴지 말고 내 말을…….”
춘배는 이장의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외쳤다.
“어디 나와 함께 떠날 사람은 나서시오.”
사람들은 누구 하나 동조하지 않았다.
“좋소, 다 그 정도라면 오늘 밤 나 혼자 귀신을 때려잡도록 하겠소.”
날이 어두워지자, 귀신은 어김없이 그 소름 돋는 처절한 울음을 울었고, 춘배는 늙은 어머니의 쓸쓸한 만류를 뿌리치며 집을 나섰다. 몽둥이를 들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머니는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
고 있었다. 그러나 차마 소리 내어 울지는 못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춘배네로 몰려든 사람들은 밤새껏 한잠도 자지 못한 것이 틀림없는 퀭한 눈의 춘배 어머니만 툇마루에 조그맣게 쪼그리고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을 뿐이다. 행여나 행여나 했지만 춘배는 하루 해가 다 빠지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공포의 바람이 써늘하게 마을을 휘감았다. 귀신은 장정 한 사람을 덥석 잡아가고 만 것이다.
“강요하진 않습니다. 자원하십시오. 춘배를 찾아내야 하지 않겠어요?”
이장의 말에 누구 하나 선뜻 나서는 남자가 없었다. 행여 이장과 눈이 마주칠까 두려워 고개를 푹 떨구고들 있었다.
구출대 조직에 실패한 이장은 엄명을 내렸다. 소등령 (消燈令)과 금족령 (禁足令)이었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일절 불을 켜지 말라는 것이었다. 굿도 효험이 없이 발악하고 있는 귀신의 비위를 건드리지 말고 제물에 지쳐서 물러서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금족령은 어두워진 다음에 나다니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낮에 맘대로 동네를 벗어나지 말라는 것이었다. 괜한 소문을 퍼뜨려 귀신 붙은 마을이라는 피해를 자초하지 말자는 뜻이었다.
그래서 모든 집들은 그 희미한 석유등마저 밝힐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러니 공포감은 한층 더해졌고, 밤은 견디기 어렵게 길어졌다. 천상 애들의 귀를 솜으로 틀어막아 재운 다음, 어른들도 귀를 막고 잠을 청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춘배 어머니는 낮에도 집 안에 들어앉아 있어야만 했다. 괜히 아들을 찾는다고 아무 데나 쏘다니다가 어머니까지 화를 입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 이장의 마음씀에 사람들은 또 큰 고마움을 느꼈다. 그러나 춘배 어머니 마음은 그 반대였다. 말이 위해주는 것이지, 그건 징역살이나 마찬가지였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었다. 무슨 수를 쓰든 찾아내야 했다. 이제 자기는 눈감을 날이 머잖은 나이였다. 비록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아들은 찾아내야 했다. 그 기운 실한 아들이 귀신한테 홀려 변을 당했을 것 같지가 않았다. 필경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 같은 생각을 쉽사리 떼칠 수가 없었다. 위로를 한답시고 진종일 옆에 붙어 앉아 있는 여편네들만 아니었다면, 진즉 동네 언저리며 산속을 샅샅이 뒤졌을 것이다. 아들이 변을 당했더라도 그렇다. 어서 시체를 찾아 장례를 치러야지, 언제까지나 여우나 까마귀 밥이 되게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 이었다.
춘배 어머니는 아들이 집을 나간 그날 밤부터 사흘째를 조그맣게 웅크리고 앉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러다가 퍼뜩 머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으레 귀신은 자정이 넘어 발동을 하기 시작해서 새벽 닭이 울기 직전에 쫓겨간다고 하지 않았는가. 크래서 제사도 자정이 넘어 차리지 않던가. 그런데 이건 어찌 된 일일까. 귀신은 초저녁부터 울기 시작해서는 정작 자정이 가까워졌다 싶으면 울음을 그치는 것이 아닌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밤이 바뀔수록 울음 소리가 탁해지고 기운이 빠져가고 있었다. 처음엔 잘못 들었는가 했다. 나도 귀신한테 홀리고 있는가 싶었다. 그래서 살을 꼬집어 비틀며 정신을 가다듬었고, 그것이 시원찮아 바늘로 허벅지를 찔러대며 귀를 곤두세웠다. 그러나 그건 틀림 없는 사실이었다. 귀신도 지치고 목이 쉬는 것일까.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귀신이 울기 시작하고 이레째가 되었다. 사람들은 핼쑥하게 지쳐 있었고, 동네에는 습한 냉기가 가득 흐르고 있었다. 애가 있는 집들은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밤마다 무서움을 견디다 못한 아이들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어떤
심한 아이는 경기를 일으켜 파랗게 까무러치기도 했다. 진달래꽂을 태워 술에 타먹인다, 토끼 꼬리를 과서 먹인다 했지만, 병세는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들은 무당을 불러들여 진짜 굿을 하든지, 애들을 들쳐업고 병원을 찾아가
기를 노골적으로 바라게 되었다.
“내가 다녀오도록 하겠소. 애들 놀란 데는 청심환이 젤이니까 내가 구해오겠소.”
이장은 손수 약을 구하러 떠났다. 역시 이장은 장하고도 고마운 사람이었다.
춘배 어머니는 마음을 단단히 사려먹었다. 하늘처럼 믿었던 아들이 없어진 마당에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까짓 귀신―, 맞닥뜨려 함께 머리 산발하고 덤비다가 기운이 모자라 잡아먹 혀도 그만이었다.
해가 떨어지자 춘배 어머니는 옷을 갈아입었다. 몸에 흰색 옷을 남기지 않았다.
귀신의 첫 울음이 싸늘한 바람을 일구며 어둠 속에 퍼지자 춘배 어머니는 서둘러 사립을 나섰다. 더 확인할 것도 없이 그 소리는 서쪽 산허리짬에서 퍼져오고 있었다. 그동안 바늘로 허벅지를 찔러가며 마당 한가운데 서서 찾아낸 소리의 방향이었다.
춘배 어머니는 잰 걸음질을 쳤다. 손에는 낫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 낫으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목숨을 앗아간 귀신의 목을 싹둑 쳐버릴 작정 이었다. 춘배는 유복자였다. 남편은 춘배를 자신의 배에 담아놓고 전쟁터에 끌려가서는 영영 못 올 목숨이 되고 말았다. 눈물로 눈이 썩도록 울었지만, 남편에 대한 사무친 정이 다스려지지 않았다. 울면 울수록 눈물로 가려진 흐린 시야 저편에 남편의 모습은 선하기만 했다. 견디다 못해 남편의 전사지(戰死地)를 수소문하기 시작했고, 시댁의 만류도 뿌리치고 젖먹이를 업은 채, 이 산골 마을을 찾아들게 되었던 것이다. 이 마을이 남편의 품이거니 여기며 아들 하나만을 키우는 보람으로 반평생을 살아왔다. 그런데 그 아들이 난데없는 귀신 발동에 제물이 되고만 것이다.
― 히히히히…….
귀신이 또 한바탕 웃어젖히고 있었다. 춘배 어머니는 반사적으로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틀림없이 어제보다 좀더 탁해진 소리였다. 그 소리는 분명히 서쪽 산허리인 장군묘께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춘배 어머니는 산골의 돌 하나하나를 손으로 만지듯 환히 알고 있었다. 아들의 배를 곯리지 않기 위해서 그 누구보다도 부지런히 산을 뒤지고 오르내리며 보낸 60년이었다. 그래서 어디에 가면 고사리가 부드럽고, 어느 골짜기에 가면
송이버섯이 많고, 어느 바위 밑에 더덕이 실팍한지 남모르는 것을 알고 있기도 했다.
장군묘께에서 귀신이 울다니. 그럼 장군묘에서 나온 귀신일까. 장군묘가 얼마나 오래됐는데, 이제야 귀신이 나올까. 나오더라도 그렇지, 어쩌자고 장군이 여자로 둔갑한 귀신이 됐을까. 그럴 리가 없는데. 장군묘 자리는 더없는 명당이라던데 뭐가 모자라 원귀가 되나. 옳지, 자손들이 제사를 안 지내서 그러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그럴지도 모른다 싶었다. 장군묘는 앞이 탁 트인 양지바른 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어느 명절 때라고 한번 젯밥이 놓이는 적이 없었다. 옛날에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장군이 묻힌 자리라고 말을 듣고 유심히 살펴야 묏자리인 것을 알지, 그렇지 않고서는 무심코 지나치기 십상이었다. 그만큼 묘는 평지와 구분이 안 될 지경으로, 으레 높았다 낮았다 하는 산등성이의 굴곡쯤으로 황폐해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둥그스름하게 이어진 묏자리는 실히 보통 것의 서너 배는 넘어 보였다. 사람들은 그 장군묘가 동네를 지켜주고 있다고 믿고 있었고, 아이들에게도 자기네의 자랑스런 선조나 되는 것처럼 아무 주저 없이 그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그러면서도 그 누구도 봉분을 새로 돋우는 일은 고사하고 명절 때 젯밥 한 그릇 올리는 일 없이 지나쳤다. 그렇다고 여태껏 한 번도 노여워한 일이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뒤늦게 우리 춘배를…….
춘배 어머니는 어느덧 산자락을 밟고 있었다. 낫을 쥔 손아귀에다 힘을 주며 부르르 떨었다. 장군 아니라 임금님 망령이라도 어림없다. 내 새끼 춘배를 빼앗아갈 순 없다. 목숨을 내걸고 사생결단 싸우리라 다시 이를 앙다물었다.
―히히히히…… 응응, 으응…….
귀신은 날카롭게 웃음을 뿌리다가 이어 울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바로 코앞에서 들리는 것처럼 가깝고 선명했다. 춘배 어머니는 부르르 떨었다. 이렇게 끝을 못 보고 죽는다는 서러움이 귀신에 대한 증오로 타올랐다.
몸을 바싹 웅크리고 비탈을 기어올랐다. 얼마를 올랐을까. 땅바닥에 찰싹 몸을 붙였다. 숨소리를 죽였다.
―달그락, 달각…….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분명 쇳소리였다. 어디서 들려오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쇳소리인 것만은 툴림없었다. 한동안 그대로 엎드려 있었다. 눈에 익은 어둠 속에서 나무들만이 쭉쭉 뻗어올라 있었다.
―달각, 달가락…….
왼쪽이었다. 장군묘가 있는 읜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춘배 어머니는 새로운 공포에 떨었다. 저건 또 어떻게 된 소릴까. 무슨 귀신들이 요동을 치는 것일까. 우리 춘배가 이런 무섬증에 가위눌려 어디론지 끌려가고 만 것인가: 춘배 어머니는 입술을 깨물며 부르르 떨었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오금이 뻣뻣해 오고 눈앞에 무수하게 많은 색색의 불똥이 오락가락했다. 춘배, 내 새끼 춘배 원수를 갚아야 해. 여기까지 와서……, 여기까지 와서…….
춘배 어머니는 장군묘를 향해 다시 기기 시작했다. 남편은 자상한 사람이었다. 결혼 생활이라곤 고작 다섯 달 남짓 하고 사별을 해야 했지만, 그 다섯 달의 정을 못 잊어 마시고 되마시며 살아온 육십 평생이었다.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이라고 했다. 그 말은 꼭 자신을 두고 한 말이었다. 시부모들은 자식을 두고 개가(改嫁)하라고 했고, 이 마을로 옮겨와서도 남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춘배를 친자식처럼 아끼던 강 서방이 그렇게 목을 놓았지만 영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모질고 정이란 게 그다지 질긴 줄을 알고 스스로 놀랐었다. 남편이 숨을 내린 땅에 찾아들어 아들을 키우고, 그 아들을 다시 그 땅에 묻고 이제 마지 막으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게 된 것이다.
―덜그럭, 덜컥…….
춘배 어머니는 사지를 딱 멈추었다. 쇳소리는 바로 저 앞 어둠 속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
“……”
그리고 알아들을 수는 없지반, 두런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귀신들이 저희들끼리 하는 소리인가. 혹시 사람들은 아닐까. 사람……? 이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동시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새로운 무서움이 몰려들었다. 그건 귀신이라고 생각했던 한기 나는 무서움과는 또다른 무서움이었다.
사람이든 귀신이든 가릴 것이 없었다. 어차피 죽기로 작정한 목숨이었다. 춘배 어머니는 다시 소리 나는 쪽을 향하여 기기 시작했다.
―덜컥, 달그락·…….
“아직 멀었어요?”
여자의 목소리 .
“조금만 더하면 돼.”
남자의 목소리.
“오늘은 뭐 좀 색다른 게 있어요?”
여자의 목소리 .
“갈수록 괜찮아.”
남자의 목소리.
“오늘은 그만 해요.”
여자의 목소리 .
“곧 끝낼 테니까 한 번만 더 외쳐.”
남자의 목소리.
“목이 아파 죽겠단 말예요. 이러다간 피 넘어오겠어요.”
여자의 짜증스런 목소리 .
“난 힘 안 드는 줄 알아? 나 혼자 잘살자고 하는 짓인가?”
남자의 퉁명스런 목소리. 그리고 길게 울려퍼지는 귀신의 울음 소리. 춘배 어머니는 어둠 속에서 눈을 부릅뜬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남자는 삽으로 장군묘를 파헤치고 있었고, 여자는 조금 떨어진 돌 위에 서서 귀신 울음을 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것들이 누군가, 저것들이 누군가. 춘배 어머니는 비 오듯 식은땀을 흘리며 소리 없이 그들에게로 접근하고 있었다. 저것들이 내 자식을…….
조그만 바위 뒤에 몸을 숨긴 춘배 어머니는 고개를 늘여빼며 눈꼬리에 힘을 모았다.
“아니…….”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저건 이장 내외가 아닌가. 춘배 어머니는 여태껏 틀어쥐고 있던 낫을 놓치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낫이 떨어지면서 돌에 부딪혀 쇳소리를 냈다.
“여보, 이상한 소리가 들렸어요!”
여자가 외쳤고,
“뭐? 어느 쪽이야!”
남자가 삽을 치켜들며 경계 태세를 취했다.
“저기, 저 바위 뒤에 누가 있어요!”
여자가 날카롭게 소리 쳤다.
“누구야. 썩 나와! 죽기 전에 썩 나와!”
남자가 한 발짝 한 발짝 옮기며 위협했다.
“내다, 춘배 에미다. 느이 년놈이 설마 우리 춘배를…….”
춘배 어머니는 낫도 들지 않은 채 넋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리고 서 있었다.
“이 할망구가 기어코 여기까지…….”
삽을 치켜들고 한 걸음씩 다가서고 있는 어둠 속의 남자는 이제 그렇게 믿음직스럽고 인정스럽던 이장이 아니라, 얼마든지 사람을 해칠 수 있는 흉악한 짐승이었다. 춘배 어머니는 뒷걸음질 치며 질정 없이 중얼대고 있었다.
“우리 춘배를……, 우리 춘배를…….”
〈197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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