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의 동백, 그리고 절창(絕唱)
혹시 동백꽃이 지는 걸 본 적이 있습니까?
동백꽃이 지는 건 독특합니다 꽃잎이 바람
에 날리거나 시들고 빛깔이 바래서 지는 다
른 꽃들과는 달리 동백은 너무나도 멀쩡한
상태에서 문득 봉오리 전체가 뚝 떨어져 버
립니다
그러니 떨어지는 소리까지 귀에 들릴 정도
입니다 그래서 동백꽃이 지는 걸 본다고
하지 않고 듣는다고도 말합니다
이 광경을 소설가 김훈은 이렇게 표현합
니다
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
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떨어져 죽
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
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버린다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져 버린다'
동백이 선운사가 사람들에게 더 알려지게 된
것은 바로 미당의 시‘선운사 동구’때문입니다
‘시의 정부’라는 소리를 듣는 미당 서정주-
1942년 고향에서 부친의 장례를 마치고, 상경하
는 길에 허허로운 마음을 달래려고 잠시 선운사
동구 주막집을 들르게 됩니다 거기에서 마흔쯤
되어 보이는 인생도 알고 사랑도 알 아직도 미색
이 남아있는 주모와 술에 취하게 됩니다 미당의
나이는 서른 정도
그날따라 손님도 없는 주막-
주거니 받거니 하는 술잔 속에서 시인과 주모는
요즘 말로 ‘썸 타는 눈빛’도 은근히 주고받았겠
지요
말이 통하는 사내를 만나자 술기운을 빌어 주모
는 구성지게 육자배기를 불렀습니다
미당은 술과 육자배기에 취해
'내 생애에서도 이것이 최고 정상이었네'
이 말에 주모는 시인에게
'동백꽃이 피거들랑 또 오시오, 이~'
화답을 합니다
시인은 슬그머니 화가 났지요
‘내일 오라고 하지…’
미당은 술에 취해
독일어 '이히 리베 디히'(난 당신을 사랑해)
를 몇 번 쏟아냈지요
주모가 그 뜻을 알든 모르든
우리말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에는
무엇보다 쑥스러웠던 게지요
사랑한다는 말조차 제대로 못 하고
그들은 헤어집니다
시인은 10년 후쯤 이곳을 다시 찾습니다
주모는 전쟁통에 빨치산에 희생되었다는
이야기만 전해 듣습니다
다시는 들을 수 없는 소리 인생은 늘 이렇
게 뒤늦게 알게 되지요 목이 멘 절창이 불리
게 된 배경이라 하지요
선운사 동구(禪雲寺 洞口)
/ 서정주
선운사(禪雲寺) 고랑으로
선운사(禪雲寺)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
여인과 동백과 육자배기가 섞인, 흐드러진
감정의 추억은 이런 절창의 시를 낳게 됩니다
(자료 :정순훈)
선운사 동백꽃
/ 김용택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김용택 시집《그 여자네 집》
창작과비평사, 1998
선운사에서
/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첫댓글 좋은 글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하신 나날 되세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선운사 동백과 설경
지금쯤 절경 일탠데...
선운사 동백꽃 詩 세편
편집하면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발자국 고맙습니다
미당쌤과 마주한 주모의 유자백이 타령이 귀에 삼삼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멋있네요
감사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가져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