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경남 합천의 해인사 들어가는 홍류동계곡을 따라가는 소리길을 다녀왔습니다. 몇분은 백운동 휴게소주차장에서 내려 만물상을 보고 내려오는 코스로 갔는데 그중 몇분은 가야산 정상을 거쳐 해인사로 내려왔다고 합니다. 나머지 대부분은 청량사주차장에서 부터 해인사를 들러 치인주차장으로 내려왔습니다.
▲백운동주차장에서 등산팀이 내려 등산 준비를 합니다.
▲건물 뒤로 가야산 능선이 보입니다.
▲소리길 팀이 청량사주차장에서 내립니다.
▲홍류동계곡 가야천을 건넙니다.
▲해인사방향으로
▲소리마실 다리를 건너가도 될 듯한데...
▲이쪽은 텐트촌인 것 같네요. 다시 건너갑니다.
▲발밑을 보니 좋은 글귀들이 있습니다.
▲해인사 일주문입니다.
▲농산정입니다.
狂奔疊石吼重巒(첩첩바위 사이를 미친 듯 달려 겹겹 봉우리 울리니)
人語難分咫尺間(지척에서 하는 말소리도 분간하기 어려워라)
常恐是非聲到耳(늘 시비하는 소리 귀에 들릴세라)
故敎流水盡籠山(짐짓 흐르는 물로 온 산을 둘러버렸다네)
홍류동이 최치원의 상징 공간이 된 이유는 바위에 새긴 시(詩石)에 기인한다. 고운은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이라는 시를 짓고 손수 물 가운데 평평한 바위에 썼지만 여물물이 사납고 새긴 것이 깊지 않아 마멸되고, 다만 狂奔 故敎의 네 글자만 분별할 수 있었다. 우암 선생이 계곡 북쪽 바위 사이에 다시 그 시를 모사해 새겨놓았다. 농산정은 시의 말미에 있는 籠山에서 따 온 것이며 ‘온 산을 둘러버렸다네’라는 산은 가야산을 지칭하는 것이리라.
42세 최치원은 가족을 데리고 가야산에 들어가 살게 된다. 그 곳을 치원촌, 이후 치인촌(治仁村), 지금은 가야면 치인리가 됐다. 68세에 비문을 써준 ‘지증대사비’가 건립되었다. 여러 지역에서 말년을 보냈다는 설이 전해진다.
고운의 입산시에서 ‘한번 청산에 들어가면 다시 나오지 않으리니’라고 선언했다. 과연 세속의 是非 소리가 들리지 않는 그 山은 어느 산일까?
쌍계사 홈페이지 시문 편에 입산시를 소개하고 ‘고운 최치원 선생이 지리산에 들어갈 적에 남긴 입산시이다.’로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이 같은 근거에 하동공원 시의 언덕 첫 번째 시비로 자리 잡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바위에 새긴 글을 찾아보려고 건너편 암반을 당겨 보았으나 웬 잘난 분들의 이름만 즐비하네요.
▲이것도 아닌것 같습니다. 자연보호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