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젊어서 건설회사에서 기사노릇하다 몸이 아파 그만두고 귀농해서 조그마하게 구들 놓고 옛집과 같은 집을 몇 채 지었더니 입소문으로 발전해서 집 짓는 직업이 되어버렸다.
처음 서울에서 노동일을 시작할 때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건설붐이 일어나던 때라고 했다. 삼일고가도로가 건설되고, 마포구 창전동 와우산에 군인들이 퇴역해서 무리하게 돈 벌려고 시민 아파트를 짓다가 불실공사로 34명이 사망하여 서울 시장인 최현옥시장이 물러나고, 그 다음에 서울의 인구 분산 정책으로 암사동 말죽거리가 개발되고 다시 성남에 도시가 개발되던 때였다.
암사동에 아파트가 들어설 때 나는 단종면허로 아파트 한동씩 맡아 짓은 건설회사에서 기사노릇을 했다.
건설회사 현장에는 여러가지 계급이 있다
본사에서는 각 지역마다 몇 개의 현장이 있는데 가장 높은 현장소장 그 밑에 세화 그리고 각 분야의 오야지 그리고 기공과 잡부 순서다. 그리고 밥집인 함바가 세워져 모든 먹거리를 제공한다.
나는 조금 배웠다고 본사의 기사로서 현장소장 바로 밑에서 총무같은 일을 맡아하였다.
그 뒤에 서울본사에서 지방으로 옮겨 전북 군산 익산 전주 중심으로 건축하는 곳의 소장을 맡아 많은 건물을 지었다.
그리고 본사는 서울에서 다시 강원도 원주로 내려와 대대적으로 발전해서 현재는 우리나라 100개 건설회사에 등록된 요진건설 주식회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나는 옛집에 관심과 취미가 있어 한국에서 찾지 못하는 것을 네팔의 히말라야에서 등반하다가 본 것을 찾아 한국에서 집짓는 일에 참고하면서 히말라야 전지역을 많이도 헤매었다.
기억이 남는 곳이 여러 곳 있는데 몇 곳을 소개하면 탄센(tansen) 지역이다.
탄센(tansen)은 싯달타 하이웨이를 타고 포카라에서 룸비니(Lumbini) 쪽으로 가다 보면 거의 마지막 산군이 모여있는 곳인데 산비탈 서쪽으로 돌집이 한없이 많이 모여 있고 그 중앙에는 왕궁인 더르바르 광장(Durbar Square)도 있다.
탄센(tansen)은 그 옛날 네팔국이 인도지역까지 다스리던 시절에는 팔파(palpa)라는 이름이었는데 지금도 그곳 사람들은 탄센(tansen)보다 팔파(palpa)라고 부르며 버스의 로선지 이름도 팔파(palpa)라고 써 붙이고 있었다. 싯달타 하이웨이에서 탄센(tansen)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내려 지프차로 다시 탄센(tansen);으로 들어가면 정류소가 있는데 이곳에서 다시 여러 갈래로 들어가는 버스가 있어 탄센(tansen)은 중간지역에서 교통의 센터역할을 하고 있었다.
또 한 곳은 고루카(Goruka)인데 이곳은 왕궁이 산 위에도 있고 산아래도 있다. 이곳도 돌집에 관한 자료가 많은 곳이다. 현재의 네팔왕국이 구르카 Guruca) 왕조에서 통일을 이루었다고 해서 자존심도 대단히 크다.
또 한 곳은 포카라에서 안나푸나 베이스캠프로 차량으로 가다 보면 처음으로 고봉 설산이 보이는 곳이 행자(Hangja)인데 뒷산 능선을 타고 가다 보면 아스탐(Astam) 그리고 디털(Didel)과 바스콧마을이 나오는 곳에 옛집들이 많이 모여 있다.
또 한 곳은 포카라(Pokhara)에서 카트만두(Kathmandu)로 가다 보면 룸레(Dumre)라는 곳이 나오는데 이곳은 안나푸르나 라운딩(Annapurna Rounding)과 마나슬루봉( Mt. Manaslu(8,163m)으로 가는 갈림길이라 여기서 죽 올라가면 베시사하르(BESISAHAR)가 나오는 곳이다.
이 룸레(Dumre)에서 반대로 지를을 이용 해서 산길을 타고 오르면 산 정상에 넓은 분지가 있는데 여기가 딴띠쁘르(Bandipur)다.
이곳에는 멀리 마나슬루봉( Mt. Manaslu(8,163m)이 잘 보이고 이곳은 그 옛날 티베트(Tibet) 방향으로 무역로가 있을 당시 인도로 넘어가는 길목이라 산정상에는 산적들이 살면서 통행세를 받는 곳이라고 한다.
지금은 그 당시 산적 두목이 살던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호텔로 사용하는데 집 외부를 검은색을 칠해 밖에서 보면 음침하다. 여기도 돌집자료가 만다
그 당시는 딴띠쁘르(Bandipur)까지 지프차가 왕래하였는데 지금은 관광지로 탈바꿈하면서 길의 남쪽방향의 건물들은 호텔로 모두 개조 신축해서 사용하고 길의 북쪽으로 도로는 주로 음식점이나 술집으로 사용하며 외길의 입구를 돌로 막아 차량통행을 못하게 계단식으로 개조해서 관광객 중심의 도로로 해 버렸다.
그리고는 건물을 짓는다든지 큰 물건을 운반하기 위해 동쪽으로 해서 도로를 다시 내고 그 도로의 마지막 산 위는 넓은 운동장으로 해서 주위는 내가 보기에는 우리의 당상나무와 같은 네팔에서 가장 큰 나무가 많아 옛날의 모습을 하고 있다.
또 한 곳은 돌집자료를 많이 확보한 곳이 시루바리(Sirubari)다
지명이 우리와 친숙한데 그 뜻은 모르겠으나 시루는 우리의 떡 찌는 '시루'와 같았고 "바리"는 우리말 밥그릇을 연상케 한다
실제로 그곳에 들어가면 항아리 같은 지형이라 사방이 산으로 막혔어도 넓어 답답하지도 않고 오히려 포근하다
2023년 지금은 관광사업의 일환으로 마을 중앙에 라이온스클럽에서 기념비도 세우고 주위를 많이 개조해서 소개되었는데 내가 처음 찾을 당시에는 옛 모습 그대로였다.
내가 4개월 동안 네팔에서 돌집 흙집자료를 찾아야 책을 내는데 자료를 구하지 못하고 헤맬 때 지인이 네팔정부 관광담당자한테 돌집이나 옛집이 있는 곳을 문의해서 주소만 알려 주어 처음 내가 시루바리(Sirubari)를 찾을 당시에는 버스가 닿는 어준자빠리(Arjunchaupari)에서 걸어서 6시간씩 다니던 곳이다
이곳이 부처님의 설산고행의 모델이 되는 곳이라고 구전되어 오는데 산 정상에는 석가모니 불상이 아주 크게 조성되어 있고 시루바리(Sirubari)에는 3개의 불교 사원이 있다.
네팔이 석가모니가 탄생한 나라지만 현재 불교사원은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다,
유튜브 검색에서 시루바리를 검색하면 절 중심으로 된 돌 마을에서 템플스테이와 홈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이번에 3년 만에 방문하니 아주 규모가 큰 3층자리 호텔까지 지어졌었다
내가 소개하는 돌집과 오래된 둥근 흙집은 이곳 티베트(Tibet) 계통의 구릉(Gurung)족이 사는 곳이 아니고
이곳에서 한참 내려가면 아리안(arian) 계통의 민족이 모여사는 변두리 마을이고 불교 사원이 모여 있는 마을은 주로 티베트계통의 민족이 살고 있는데 이곳은 주로 돌집 흙집을 짓고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