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새 학기가 시작됐다. 장애학생들은 수업, 대학생활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받고자 장애학생지원센터로 찾아든다. 하지만 센터 직원을 1년 계약직으로 뽑는 학교의 관행 때문에 장애학생은 학생대로, 직원은 직원대로 골머리를 앓는다. 이에 한국예술종합학교(아래 한예종) 4학년에 재학 중인 변재원 씨가 센터 직원의 정규직화를 촉구하며 교내에 대자보를 붙였다. 그 글을 비마이너에도 싣는다. _ 편집자 주 |
“안녕하세요. 저는 지체장애 3급, 한예종 4년 차 장애인입니다.”
이 인사말은 제가 매년 신학기, 3월의 봄에 반복하는 말입니다. 제가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지도교수님이 아닙니다. 학과 친구들도 아닙니다. 장애학생지원센터 선생님입니다.
우리 학교에는 장애학생지원센터가 있습니다. 장애학생지원센터는 본관 1층 맨 끝 구석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제가 입학할 2012년 당시에는 장애학생지원센터도 없었습니다. 학생과 직원 한 분께서 ‘장애학생 관련 업무’를 대신해 맡았고, 이듬해 장애학생지원센터가 설립되었습니다. 그나마도 당장 센터를 설치할 자리가 없어 구석에 칸막이 하나 놓고 ‘장애학생지원센터’는 초라하게 개소했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났습니다. 그사이 장애학생지원센터는 본관 맨 끝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장애 학생을 위한 학습 환경도 전에 비하면 정말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장애학생지원센터 선생님이 1년 계약직이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1년 계약직인 장애학생지원센터 선생님이 사실상 유일한 직원입니다. 한예종의 경우, 선생님 한 분이 석관동·서초동 캠퍼스의 모든 장애 학생 지원 업무를 도맡아 하는 실정입니다. 일주일 근무 중 사흘은 서초동, 남은 이틀은 석관동을 오가며 출장 근무를 병행해야 하는 상당히 힘든 직책입니다.
저는 지난 2012년 3월에 한예종에 입학하여 2015년 3월 현재까지 (2012년 당시 학생과 장애 학생 담당 교직원을 포함) 총 4명의 장애학생지원센터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4년째 똑같은 자기소개를 반복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체장애 3급입니다. 다리가 불편해 목발을 짚고 있습니다. 제가 장애를 가지게 된 이유는요… 제가 가진 어려움은요…. 그 외에 이런 이런 점에 대해서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서로 이해하고 신뢰를 쌓기 위해 집안 환경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내 장애가 어디서 왔고, 장애를 가진 뒤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엇이 어려운지 등을 이야기하며 천천히 호흡을 맞춰나가곤 했습니다. 서로를 완전히 의지하고 신뢰하기까지는 한 학기가 꼬박 걸렸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업무는 장애 학생과 친해지는 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동시에 학교의 환경과 특징을 새로이 살피고 이해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가기 전, 학생들과 친해지고 학교 환경을 익히는 데에만 꼬박 반년의 시간이 걸립니다. 단언컨대, 장애학생지원센터 선생님의 역할은 일 년 이내에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절대 불가능합니다. 장애학생지원센터 선생님의 역할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장애학생지원센터 선생님의 임무 (수명 1년)
|
매년 바뀌는 지원센터 담당자, 모든 피해는 장애학생에게
장애 학생 입장에선 매년 바뀌는 장애학생지원센터 선생님께 본인의 장애 정도와 교내의 불편사항을 반복해서 말해야 합니다. 낯선 사람에게 매년 같은 말을 반복하고 그에 적응해야 하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입니다. 또한 학교의 행정 절차는 얼마나 길고 복잡한지, 오늘 부탁한다고 해서 내일 해결되는 문제들도 아닙니다. 만약 2학기에 불편함을 발견한다면 불편하다고 제대로 말할 수도 없습니다. 몇 개월 뒤에 해임될 선생님이 당장 새로운 제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모든 피해는 장애 학생에게 고스란히 돌아옵니다.
우리 학교에는 장애학생 중 자폐가 있는 장애 학생들도 많습니다. 그 친구들은 본인의 전공 실기 외에 사회적 관계와 생활에 있어서 다른 학우들보다 조금 서툴고 때로는 느립니다. 따라서 그 친구들이 대학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장애학생지원센터 선생님의 적극적인 도움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장애학생지원센터 선생님 역시 낯선 교내환경에 처음부터 함께 적응해야 하는 실정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여는데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특수 교육직 선생님의 1년 계약직은 장애학생 당사자에게도 어려움이자 상처가 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장애학생 지원센터 선생님이 장애 학생들과 친해지고 학교 환경을 익히는 것만 꼬박 반년 넘는 시간이 걸립니다. 장애 학생을 보조하는 특수 업무는 교내 업무 중에서도 높은 이해와 숙련도를 요구하는 전문적인 업무입니다. 그런데도 학교에서는 1년 계약직 채용을 고집하여 이러한 비효율적인 제도를 4년째 유지하고 있습니다.
장애학생지원센터가 과연 장애 학생 복지를 위해 설치된 게 맞는지, 아니면 단순히 법령에 따라 억지로 설치한, 실질적으로는 장애 학생에게 크게 도움이 될 수 없는 형식뿐인 장애학생지원센터인지 도대체가 알 수 없습니다. (2007년 제정된 장애인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에 따르면 각 대학은 장애학생의 교육 및 생활에 관한 지원을 총괄하는 장애학생지원센터를 설치·운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_편집자 주)
현재 근무하고 계신 장애학생지원센터 선생님은 이미 지난 2월 말에 퇴임할 예정이었으나 인수인계를 해 줄 후임이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1년 계약직은 장애학생, 선생님 양 당사자에게 비효율적인 제도입니다.
다음 달, 우리는 새로 부임하는 장애학생지원센터 선생님께 같은 인사를 반복해야 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OO장애 O급, 한예종 O년 차 장애인입니다. 제가 장애를 가지게 된 이유는요… 제가 가지고 있는 어려움은…. 제게 필요한 것은….”
‘장애 학생과 함께 예술하기 좋은 학교’ 위해,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저는 이 글을 쓰기까지 무수히 고민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학교를 폄훼하는 것은 아닌지, 소란을 일으키는 것은 아닌지 괜한 걱정도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눈 감고 넘어가도 될 문제입니다. 저는 올해를 끝으로 이곳을 졸업하기 때문입니다. 남은 일 년, 조용히 지내며 좋은 추억만을 안고 가는 일은 너무도 간단합니다. 학교 시설과 절차에도 이미 다 적응하여 딱히 불편할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비효율적이며 불합리한 제도는 무한 반복될 것입니다. 새로운 장애학생지원센터 선생님은 몇 주 내에 새로이 부임하실 것이고 이듬해 해임될 겁니다. 그 뒤엔 또 새로운 분이, 그다음엔 또 새로운 분이, 그다음엔 또 다른 새로운 분이, 매년 새롭게 부임할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매년 도움을 새로이 구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예정된 일입니다.
작년, 청각 장애가 있는 권예린 학생의 대필 도우미였던 방송영상과 이길보라 학생은 총장님께 장문의 편지를 써 장애학생지원센터의 선생님을 1년 계약직이 아닌 정규직으로 전환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학교 측은 예산상의 이유로 보류 조치하고는 지금까지 소식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거절을 이미 경험했기에, 당장 몇 달 내로 학교가 변하지는 않으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제가 졸업할 때까지도 학교는 변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글을 써야 했습니다. 올해를 끝으로 한예종 장애인 4년 차인 저는 졸업하고 떠나겠지만 이제 갓 입학한, 그리고 앞으로 입학할 장애인 후배들에게는 이러한 불편함과 불합리한 제도를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앞으로 부임하실 장애학생지원센터 선생님은 마음 놓고 학생들을 사랑할 수 있기를, 나아가 한예종이 진정으로 학교 측의 홍보대로 ‘장애 학생과 함께 예술하기 좋은 학교’로 거듭나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총장님! 현재 1년 계약직인 장애학생지원센터 선생님을 부디 정규직으로 전환해주세요. 장애 학생들도 마음 놓고 예술할 수 있도록, 입학식에서 말씀하셨듯 학교가 다행(多幸)일 수 있도록 부디 도와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첫댓글 비장애인들도 장애인들을 같이 하였으면 좋겠습니다.-강호진-
앞으로도 장애학생지원센터가 활성화가 되어서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한테 차별을 받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