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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교육기본법안’ 철회 권고문
선진 대한민국의 새 역사를 창조하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하고 있는 오늘,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고자 몸부림치는 시대착오적인 세력이 있어 깊은 우려와 함께 경고의 뜻을 담아 우리의 견해를 밝힌다.
필요 없어서 안 쓰고 안 쓰이니 필요 없게 된 한자교육을 억지로 되살리기 위하여 발의한 ‘한자교육기본법안’은 너무도 생각이 모자라고 위험하니 즉시 철회하기 바란다.
“한자교육을 소홀히 하여 한자어에 대한 문해 불능자가 급격히 늘어나서 우리말을 사용하는 데 많은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국어교육에서 읽기교육․듣기교육을 더욱 강화할지언정 한자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너무도 엉뚱하고 터무니없다. 모든 말은 문맥 속에서 쓰이는데, 그 쓰임을 바로 가르쳐야지 단어의 어원을 일일이 밝혀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은 근본이 잘못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쓰는 말 가운데는 영어는 물론 희랍어, 스페인어, 만주어에서 온 말들도 적지 않은데, 그렇다면 그것도 일일이 어원을 밝혀 가르칠 것인가. 예컨대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일이 낭패다’ 같은 고루한 말투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일이 딱하게 되었다’와 같이 쉬운 우리말을 쓰도록 지도할 것이지 ‘驚愕’, ‘狼狽’ 같은 한자 어원을 가져와서 지도할 것인가. 말의 뜻은 언제나 말소리에 묻어오지 글자 속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도대체 한자를 몰라서 문해 불능자가 많다는 생각은 너무도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광복 이래 수십 년 동안 한자교육을 소홀히 해 왔다고 했는데, 그러면 지금 교육받은 사람들이 모두 ‘문해 불능자’들이란 말인가. 최고의 논리와 지성을 자랑하는 신문의 사설․논설․칼럼에 한자라고는 찾을 수 없는데 그 필자들과 독자들이 모두 문해 불능자들인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한자교육기본법안’에는 따로 한자교육개발원을 설립하고, 한자 및 한자어 개발 단체의 지원은 몰론, 한자 및 한자어 관련 행사의 개최와 지원, 한자 및 한자어 교육에 소요되는 경비의 지원을 명문으로 내세워 요구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이 제사에 관심이 있는지 제삿밥에 관심이 있는지 부끄러운 속마음이 너무도 명백히 드러나 있다.
이 시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들이 이 따위 법안을 의결하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 믿으며 법안의 철회를 강력히 요구한다.
2011. 5. 24.
한글학회 회장 김 종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