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은 활발한 사회공헌활동과 행복경영이란 구호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좋은 이미지를 지녔다. 이런 그룹 산하 SK에너지 울산공장에 다니는 허인호 씨(49)가 노조 민주화 활동 등 회사에 비판적 활동을 하다 부당한 배치전환과 진급, 호봉, 성과급 차별, 퇴사 압박 등을 당해 우울증에 걸렸다며 산재 신청을 했다.
SK에너지(주)에서 근무하며 회사에 비판적인 활동을 하자 부당한 배치전환, 퇴사 압박 등을 당해 우울증에 걸렸다고 주장하고 있는 허인호 씨.
허씨는 27살이던 지난 1990년 1월 유공(지금의 SK에너지)에 입사해 1997년까지는 생산현장에서만 일해 왔다. 입사 첫 해 노조에 가입했다. 다니기 좋은 회사를 만들려면 노조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나 당시 유공노조는 허씨가 생각하기엔 ‘노동자 편에 서는 노동조합’이 아니었다.
허씨는 1997년 9월 ‘유공노조 바로세우기’(약칭 유노바세) 회원으로 노조 민주화 활동을 했고 회사는 불법 유인물 배포라며 25일간 출근정지 징계를 내렸다. 회사는 징계를 받고 돌아온 허씨를 건물관리직으로 발령 냈고 이어 다음해 5월 부산저유소로 강제전출했다.
허씨는 2001년 8월 다시 울산공장으로 발령났지만 노조원 자격이 없는 ‘민방위 서기’ 자리였다. 허씨가 노조원 자리로 이동을 요구하자 결국 17일만에 ‘발령취소’가 돼 부산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발령취소’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는 머리 뒤쪽이 띵했다. 그 때부터 불면증과 불안증이 시작됐다.
허씨는 한 달여를 참다 결국 2001년 9월 30일 추석 바로 전날 태화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1년간 휴직했다가 2002년 9월 복직을 했고 2달 뒤 울산으로 발령났다. 그토록 원하던 울산으로 돌아왔지만 ‘왕따’ 생활이 시작됐다. 그는 부산저유소 근무 당시 수동지게차 운전, 윤활유 제품 하역, 부산울산 왕복 등으로 몸이 망가졌다며 2004년 산재를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회사의 눈치를 무릅쓰고 산재 신청을 낸 대가는 컸다. 2003년 대리 승진 뒤 2006년엔 선임대리로 승진해야 했지만 그는 승진하지 못 했다. 호봉도 누락됐다. 2007년 성과급 차등 지급이 시작되면서 허씨는 늘 최하 등급이었다.
허씨는 2010년 4월 원유운영팀으로 발령이 났다. 발령이 나기 전 팀장이 그에게 ‘노조활동을 절대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요구했다. 그는 현장으로 가려고 어쩔 수 없이 팀장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고 서명했다. 그러나 육상근무만 했던 그에게 배를 타야하는 ‘해상방재’ 업무가 떨어졌다. 게다가 그해 11월경 주야맞교대 방재원 한 명의 결원이 생겨 그가 임시로 교대근무를 했으나 회사는 사람을 채워주지 않았다.
허씨는 2011년 3월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 제안, 건의서를 사내망에 올리자 업무 PC 사용 제한, 상조회 불참석 요구, 해상방재원 총무자격을 박탈당했다. 당시 그는 3번의 상사 면담에서 퇴사 압박도 받았다고 주장했다. 4월 다시 그의 업무는 육상 도보 순찰과 창고 청소로 바뀌었다. 2011년 5~9월까지 그는 매일 12km씩을 걸어야 했다.
2011년 10월이 되자 다시 원유저장 총반장 산하 주간운전원으로 발령 났다. 섭씨 70도의 가파른 계단을 통해 25m 높이의 원유 저장 탱크에 올라가 기름이 새는지를 점검했다. 결국 그는 잦은 인사 명령이 자진 퇴사를 유도할 목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부당하다며 인사명령 무효확인 소송을 냈다.
원유운영팀장이 지난해 8월 주간근무만 하던 그에게 교대근무를 요청했다. 그는 운영상 필요하면 교대근무를 하겠다고 답했지만 팀장은 그에게 “교대반장들이 반대한다”며 면담을 했다. 그 면담에서 팀장은 허씨의 근무태도에 대해 “개, 돼지처럼 와서 밥 주면 밥 먹고, 점심 먹고... (이건) 아니잖아요?”라고 말하며 허씨에게 모욕감을 줬다.
세 차례 면담 뒤 그는 심한 두통으로 병원을 찾아 ‘신경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허씨는 지난해 9월 17일 “3개월 이상의 안정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정신과 의사의 소견서를 제출하며 병가를 신청했지만 회사는 종합병원 전문의의 소견이 아니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회사는 허씨가 6일 이상 무단결근을 했다며 10월 15일 상벌위원회를 열어 징계면직을 결정했고, 11월 6일 재심의를 거쳐 직무정지 3개월을 확정했다. 결국 허씨는 징계면직 약 2개월과 직무정지 3개월 등 약 5개월의 징계를 마치고 올 2월 8일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진단서를 제출해 휴직신청했다. 허씨는 지난 3월 27일 근로복지공단 울산지사에 산재 요양 신청을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의 아내 역시 허씨의 잦은 발령 등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 폐소공포증을 겪고 있다.
허씨는 승진, 호봉, 성과급 차별에 등에 대한 소송을 제기해 올 1월 18일 울산지방법원으로부터 화해권고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회사가 화해를 거부해 아직 소송이 진행 중이다. 허씨는 “기업들이 성과급을 노조 활동 등 회사에 비판적인 활동을 하는 직원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성과급 차등 지급제는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허씨가 휴직 전에 일하던 울산공장 원유운영팀의 이정묵 팀장은 “허씨의 우울증은 회사 때문이 아니다”fk고 했다. 이 팀장은 “허씨의 직무가 변경된 것은 업무수행 역량이 떨어지고 적응을 못해 스스로 직무변경을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팀 내의 다른 직원들도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여러 업무를 돌아가며 한다”고 했다.
허씨에게 폭언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면담하는 과정에서 일에 대한 의욕과 열정이 없는 것에 대해 지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