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산이 흰눈에 폭 쌓였을 땐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그땐 아름답다 생각한 산을 걸어오를 마음이 들지 않았다. 마음은 아니었을지라도 몸은 조금 지쳐 있었다. 그 후 그 산에 눈이 녹았다 새로운 눈이 내렸다를 몇 번인가 한듯 하다.
겨울산을 좋아한다. 이유는 사방이 다 잘 보여서다. 잎이 무성한 계절에 산길을 걸으면 나무만, 사람들만, 꽃들만 보인다. 먼 풍경이 보이질 않는다. 하지만 겨울은 다르다. 잎을 다 떨군 가지 사이사이로 산 밖의 풍경이 보여, 거리감이 분명해지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가늠할 수 있어서 좋다. 내가 다니는 집 앞 검단산은 겨울이 되어야, 아 산이 참 아담하구나 느껴진다.
산길은 먼지 섞인 눈과, 얼음으로 덮혀있었다. 능선 하나에 도달하자, 가끔 들르던 오솔길을 막는 팻말이 하나 서있었다. 문구도 우습다. <실종이 잦아 위험한 지역이라 길을 폐쇄합니다>. 실족도 아니고 실종이 잦다니.... 공무원들 하는 일은 참 문명의 발잔을 못 따른다는 생각이 들어, 한숨도 나고 짜증도 난다. 짜증이 난 이유는 이렇다.
그 오솔길은 초봄에 눈 사이에서 피어나는 노루귀와 여러 야생화를 보기 위해 가는 길이다. 높은 곳도 아니고 위험한 길도 아니다. 물론 산길이라 한 쪽은 절벽이지만, 모든 산길이 다 그렇지. 위험한 걸로 치면 모든 산이 다 위험하고, 모든 길이 다 위험한 것이다. 어떤 길에선 산양이 나오고, 어떤 길에선 멧돼지도 나오니 위험하지 않은 산길이 어디있으랴. 그런데도 저런 문구를 적어 산길 하나를 폐쇄하는 건 어이없는 일이다. 지난 가을에 실종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그 산에서. 그 여파인듯 하다. 만일 산길이 정말 위험해서 붙인 거였다면 <길이 좁고 가파르니 조심하세요> 가 맞다. 그런게 아니니, 어처구니없는 폐쇄 안내문을 부끄러움 없이 설치하는 것이다. 그걸 보고 그냥 화가 많이 났다.
오늘은 그 오솔길을 가려고 나선것이 아니라 높은 곳으로 걸어 올라갔다. 정상. 오후 2시. 길이 미끄러워 천천히 천천히 걸었다. 잠시 쉬며 간식도 먹고. 산을 내려와선 미나리전에 막걸리를 마셨다. 동행한 지인이 물었다, 이 식당에 와 본 적이 있냐고.
-- 5-6년 전에 지인이 미나리 전이 맛있다고 가보자고 해서 한 번 와봤어. 그땐 세상 모든 음식이 맛없던 시절이었지.
세상 모든 음식이 전부 맛없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인생이 너무 쓰고 매워 하루하루가 버거웠다.
-- 운길산 역 가까운 곳에 미나리전 맛있는 곳이 있는데, 날 풀리면 한 번 가자, 나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