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커밈데이
코로나의 덫에서 벗어난 대학 동기들이 옛 추억을 더듬자며 모교를 찾았다. 복현동에 자리한 k 대학으로 오십여 년 만에 찾은 대학의 변모는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복현 동산에 우뚝 솟은 ‘글로벌 프라자빌딩 SKY 17’ 레스토랑으로 갔다. 대구 시내가 한눈에 보였으며 대학의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찬 모습이 보였다. 웅장했던 본관 건물이 초라한 모습이고 길 건너편 당시의 ‘경북실내체육관’이 아담하게 보였다. 확 트인 조망과 맛있는 뷔페를 먹으면서 그간의 소식을 나누었다. 일흔을 넘긴 나이라 오가는 얘기가 건강에 대한 것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그곳 대학에서 교수로 퇴임한 친구의 안내를 받으며 대학 곳곳을 둘러보았다. 우리가 대학에 다닐 때보다 건물이 엄청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학생의 숫자가 네댓 배나 많다고 한다. 당시에는 단과대학마다 건물 동이 하나로 띄엄띄엄 있어 공간이 많았는데 지금은 곳곳에 건물로 들어찼다.
요즘은 개교기념 축제 기간이다. 본관 앞 로터리를 중심으로 주변에는 천막이 설치되어 있어 축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우리가 수학했던 과학관으로 갔다. 3층 건물로 낡았으며 아직도 걸어서 오르내리고 있다. 지금은 자연대 과학관으로 자연대 물리과와 사범대 물리과 전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가 사용했던 화학과 3층은 신과학관으로 옮겨져 자연대와 사범대가 같이 사용하고 있었다.
1층 건물 앞 측백나무가 당시에는 가슴팍에도 못 미쳤는데 지금은 2층 높이까지 자라 있었다. 오십 년의 세월이 무상함을 느끼게 했다. 그때를 회상하며 ‘팔팔했던 이십 대의 청년이 이렇게 세월에 부대끼어 성치 않으니 너희인들 오죽하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우리 함께 버텨보자며 기념사진을 담았다.
오가는 젊은이들을 보니 감회가 새로우며 우리도 저런 때도 있었는가 싶었다. 곳곳 벤치에 남녀 학생들이 모여 소곤대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당시에 우리는 같은 과 남녀 동급생이라도 수업 외에는 잘 어울리지 않았는데 말이다. 오늘의 젊은 학생들은 자유분방하여 스스럼없는 행동을 느끼게 했다. 또 대학 내에 웬 건물과 차들이 그렇게 많은지 놀랐다.
오늘 울산에서 온 친구, 포항에서 온 친구, 김천에서 온 친구 그리고 대구의 친구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고 기뻤다. 20명 졸업했는데 소식이 끊어진 친구들이 더 많다. 다들 어느 곳에서 잘살고 있겠지. 석양의 노을처럼 기울어져 가는데 보고 싶구려. 우리가 다들 시골에서 송아지 팔아 등록금 충당해서 만난 인연인데 말이다. ‘시절 인연’은 때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오도록 만들어야 한단다. 20명이 다 함께 만나 ‘홈커밍데이’를 이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