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 두 돌판에 기록된 문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준 십계명 두 돌판에는 어떤 문자로 기록되어 있었을까?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는,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인 “히에로글리프”로 기록되었을 가능성이다(사진1).
행7:22을 보자.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학문)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모세는 애굽의 왕자였기 때문에 “히에로글리프”를 읽고 쓰기에 능숙했을 것이다.
그러나 “히에로글리프”를 읽고 쓰기에 능숙했던 히브리인들이 또 있었다.
출5:14을 보자.
“바로의 감독들이 자기들이 세운 바 이스라엘 자손의 기록원들을 때리며”
“기록원”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쇼테르(שֹׁטֵר)는 “數를 세는 사람” 즉 서기관을 뜻한다.
이 기록원들은 히브리인들이었지만 그들도 히에로글리프를 읽고 쓸 줄 알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종살이 하던 나라의 언어로
십계명을 기록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둘째는, 고대 시나이반도에서 사용하던 “Sinaitic 상형문자”이다(사진2).
모세는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의 사위였기 때문에 “Sinaitic 상형문자”를
이드로에게 배웠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그곳에서 40년을 살았다.
따라서 십계명은 이 문자로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는 가나안 땅으로 유입되지 못했다.
그 이유는 거대한 유프라테스강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굽에서 출발한 왕의 大路는 시나이반도와 미디안을 거쳐
“가나안”을 통과했고, 또 아라비아반도에서 출발한 무역로도 미디안과
“가나안”과 페니키아를 거쳐 소아시아반도로 향했기 때문에 “Sinaitic 상형문자”는
쉽게 가나안 땅으로 전파될 수 있었다.
“Sinaitic 상형문자”는 가나안과 특히 지중해 연안의 페니키아 성읍들인
두로, 티레, 사렙다, 시돈, 트리폴리, 우가리트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된 이유는 페니키아인들이 해상 무역에 뛰어나 누구보다도
문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후 이 문자는 아람어와 히브리어의 조상 문자가 되었다.
p.s.
위의 글은 BC1,500년 경에 사용된 “Sinaitic 상형문자”와 페니키아
아히람의 석관 문자, 게젤 달력의 문자, 메사와 텔단 石碑의 문자,
실로암 石文 등의 문자들을 조사한 후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