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
전교 회장으로 초등학교 졸업하고 배치고사 1등으로 사립고 합격한 13세에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에게 캐스팅되어 자퇴하고 2주 만에 중학교 검정고시 합격 3달 만에 고등학교 검정고시까지 패스.
이수만은 "보아가 실패했다면 SM은 존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고 말했을 정도로 중요했던 SM의 30억 프로젝트를 보아에게 시행한다. (보아는 30억 다쓰기 전에 성공하고 흑자전환 하면서 한국 연습생 문화의 시초가 됨)
3년동안 하루 10시간 이상씩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친 보아는 데뷔 앨범 ID; Peace B를 발매, 15세의 어린 나이에 파워댄스와 노래를 소화하면서 화제를 몰고 일본에 진출한다.
하지만, 그 당시 일본내에서 '한국'이란 나라는 그저 '적'일뿐이였고 한국과 북한을 구분도 못할뿐더러 제일교포를 포함한 모든 한국 사람들을 무시하는 분위기였다.
그 때 SM은 작은 회사였기에 어린 보아는 3만원을 들고 혼자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갔다. 처음에만 매니저랑 살았지 나중엔 혼자 살면서 개인차도 없이 대중교통을 타고 일본의 지방 하나하나를 직접 찾아가 홍보를 했다.
그러던 중 에이벡스(일본 대형 기획사)의 행사에 출장 하게 되어 비메인스테이지에 서는 조건으로 폭염 속에서 2곡을 열심히 부르며 춤을 췄는데 일본스텝들이 "그렇게 하다간 넌 10년이 지나도 콘서트는 못한다"라며 비난했다.
그 당시 보아는 만 14세의 나이였다.
결국 쓰러져서 입원을 했고 일주일에 10kg이 빠질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회사는 홍보에 바빴고 일본에 아는 사람도 없어 입원해 있던 2주 동안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이 때 보아가 깨달은것
"아프면 자기손해이고, 세상에는 나혼자 밖에 없으며 울어도 힘든 일은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게 한국 사람들도 일본의 벽이 너무 높다며 보아를 잊어가던 연말 氣持ちはつたわる라는 노래로 나오면서 '디지털 슈퍼 드림 라이브' 라는 프로그램을 만나게 된다.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를 보기 위해 TV를 보던 일본사람들은 보아의 무대를 보게 되고, 일본에선 파워풀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여자가수가 없었는데, 보아가 피땀을 흘리며 연습했던 재즈댄스를 접목시킨 氣持ちはつたわる를 보고 지금 노래를 부르는 여자가수가 누구냐며 문의전화가 왔다.
보아의 오리콘순위가 뛰어오르고 홈페이지는 마비가 올 정도로 수많은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氣持ちはつたわる는 무려 10만장의 판매고를 올린다.
그 후 보아의 가능성을 믿고 모험을 했던 j-pop 스타일이 아닌 난해한 곡 Listen to my heart를 첫 정규 앨범으로 발매했는데 결과는 대 성공. 일본 댄스 음악의 판도를 바꾸며 한국 가수 최초로 오리콘 일간, 주간 앨범 차트 1위, 100만 장 이상의 앨범을 판매해 밀리언 인증을 받았다.
같은 해 2002년 한국에서 발매한 보아 최대의 히트곡 No.1과 valenti는 엄청난 인기를 끌며 연속으로 대박을 치고, 연말 서울가요대상, SBS 가요대전, 엠넷 Music Video Festival에서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대상을 수상한다.
2003년 일본에서도 정규 2집 Valenti를 발매하는데 이 앨범은 일주일만에 60만장을 넘고 총 130만장의 판매고를 돌파하면서 보아는 일본 콘서트 투어를 하게 되고 일본 총리까지 팬을 자처하며 공연을 보러 방문하였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생각했던 한국의 이미지와 전혀 다른 천재적이고 긴 생머리인 보아의 모습을 보며 5:5 가르마의 헤어스타일을 따라했고, 보아는 '대세'가 되면서
일본 최고의 인기 가수들만 출연할 수 있다는 NHK '홍백가합전'에 6년 연속으로 출연한다.
홍백가합전에 출연하는 대부분의 가수들은 일본 전통의상인 '기모노'를 입지만 보아는 단 한번도 입지 않았다.
항상 방송에 나올때마다 '나는 한국에서 왔다'라는 말을 해오며
2005년 mkmf에서 일본 일장기가 붙어있는 옷에 일장기를 떼고 태극기를 달아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또 보아가 일본에서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일본인들이 저렇게 어린 소녀가 영어, 일어를 잘 하는 것은 물론 문화,예술, 정치, 경제 시사 전반에 두루두루 막힘없이 잘 알아서 매우 놀라워 했다.
나오는 앨범마다 히트를 치며 각종 금상,본상을 휩쓸었고, 통산 1000만 장에 가까운 앨범 판매고를 올렸다.
그리고 총 6장의 정규 앨범이 모두 연속 오리콘 앨범차트 1위를 차지하면서
세계 음반 시장 2위인 일본에서
역대 2위의 기록을 가진 가수가 된다. 현재까지도.
(1위는 일본 가수 Hamasaki Ayumi인데
2위가 '한국인'보아..)
동아일보&구글이 31개국을 상대로 한국을 대표하는 10대 키워드를 조사한 결과 삼성, LG, 현대 등의 대기업과 도자기, 김치, 태권도 등과 함께 유일하게 인물로써 꼽혔다.
얼마전 아는 형님에서
라고 했던게 진짜인게
당시 보아는 뉴스에서 경제적 가치 1조원, 움직이는 기업으로 보도 되곤 했다.
매년 10일도 안쉬었다고 한다.
그 밖의 보아의 기록들
-한국 가수 최초이자 최연소로 칸 영화제 초청 (옆에 팝스타 에이브릴라빈)
- 미국 데뷔 앨범이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127위를 기록 (한국인 최초 빌보드 200 진입)
-영국 옥스퍼드 대학 출판국에서 출간한 영어교재 《Totally true 토틀리 트루》의 국제적인 스타의 성공 사례로 실림
-보아의 입지적 스토리 일본 영어교과서에 실림
-일본 밀레니엄 셀러 기록
-지금도 보아의 경제적 가치는 2000억
-연습생이라는 단어를 생기게한 장본인
(그래서 프로듀스101 pd가 시즌1때부터 보아를 0순위로 섭외하고 싶었는데 본인생각도 스텝들도 보아가 당연히 안할꺼 같아서 미루다가 시즌2에 용기내서 손 편지로 섭외)
등등....
보아의 성공으로 수 많은 한국 연예인들이 일본진출의 꿈을 품고 일본에 진출하게 되었다.
보아와는 다른 '한류'라는 이름으로.
"몸이 피곤할 때도 있지만 일에 대한 짜증은 내지 않는다. 일에 지친다는 것은 자만심이라고 생각한다."
"연예인의 삶은 화려해 보이지만, 분명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그간극을 메우기 위해선 상당한 노력과 고생이 따른다. 선택에 책임지는 자세는 기본이다."
"굉장히 연습량이 많았거든요. 춤연습만 한.. 10시간은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춤추면서 실수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정말 연습을 많이 했기 때문에 안무는 제 머리가 아니라 제 몸이 기억하고 있거든요"
주영훈 말대로 비포장 도로였던 해외시장에
아스팔트를 깐 한류의 원조이자
'보아'였기에 가능했던 결과
보아 초기 활동 보면 난 꼭 뜨고말거야!!!라는게 보여서 안쓰러우면서도 참 대단함. 데뷔할 때 한밤의 연예tv에서 인터뷰 한 거 보면 겨우 중학생이면서 당차고 멋있어.
보아는 그냥 사회현상 아니었나...그 당시 대중가요계에서 보아는 하나의 장르였지. 보아 모창도 엄청 하고, 축제 때 춤도 죄다 보아...ㅋㅋㅋ
갓보아
진짜 멋있는 사람.....
멋지다ㅠㅠㅠ초등학교때부터 팬이었음ㅠㅠ
멋지다 ㅠㅠ 쭉팬이었지만 너무너무멋지다ㅜㅜ
진짜 울언니 너무 멋있어ㅠㅜㅜ최고야 그러니까 다들 최근에 나온 원샷투샷 들어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