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 2023. 3. 30. 07:00 - 23:00
-. 장소 : 영주 삼판서 고택과 무섬 외나무다리.
-. 카메라 : Sony a6400
-. 내용 : 느림보산악회의 삼봉 김길영선생의 고향 영주지역을 돌아보고 왔습니다.
부석사, 소수서원, 삼판서 고택과 무섬마을과 때마침 만발한
봄꽃등을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삼판서고택은 구성산(龜城山) 아래 남쪽기슭에 영주를 대표하는 선비의 가옥으로
오랜 세월 견뎌오다가 1961년 영주 대홍수로 일부 붕괴된 후 철거됐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지역 유림(儒林)들이 1999년 삼판서고택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복원사업을 펼쳐 현재 서천이 내려다보이는 구학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2008년 준공해 영주를 찾는 방문객들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고 있다.
삼판서고택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연이어
세 사람의 판서가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삼판서 고택은 고려말 형부상서 정운경, 고려말 공조전서
황유정(정운경의 사위), 조선초 이조판서 김 담(황유정의 외손자) 등
3명의 판서를 배출한 가옥이다.
가장 먼저 그 집에 살았던 사람은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의
부친으로 봉화가 본관인 정운경이다.
고려 공민왕 때 형부상서(형조판서)를 지낸 정운경은
사위인 황유정에게 자신의 집을 물려주었다.
황유정은 평해황씨로 조선태조에서 태종에 걸쳐
공조판서, 형조판서, 예조판서를 두루 지냈다.
황유정은 다시 사위인 선성김씨 김소량에게 이 집을 물려주었고
김소량의 아들이 이조판서를 지낸 천문학자 김담이다.
그렇다면 같은 집에서 자란 정도전과 김담은 어떤 사이였을까?
정도전에게 김담은 누이의 외손자가 된다.
김담의 외할머니 정씨는 정도전과 오누이 간이다.
현재 김담의 후손이 사는 무송헌종택은 영주시 무섬마을에 있다.
삼판서고택은 구성산(龜城山) 아래 남쪽기슭에 영주를 대표하는 선비의 가옥으로
오랜 세월 견뎌오다가 1961년 영주 대홍수로 일부 붕괴된 후 철거됐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지역 유림(儒林)들이 1999년 삼판서고택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복원사업을 펼쳐 현재 서천이 내려다보이는 구학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2008년 준공해 영주를 찾는 방문객들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고 있다.
무섬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水島里)의 우리말 이름으로
삼면이 내성천과 접해있는 전형적인 물도리 마을로 마을 앞을 돌아나가는 내성천은
맑고 잔잔하며 산과 물이 태극 모양으로 서로 안고 휘감아 돌아 산수의 경치가 절경을 이룬다.
마을 내에는 해우당고택과 만죽재고택 등을 비롯하여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ㅁ'자형 가옥, 까치구멍집**, 겹집***, 남부지방 민가 등 다양한 형태의 구조와
양식을 갖춘 가옥이 있어 전통 주거 및 민속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영주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마을로 들어가는 아름다운 외나무다리이다.
내성천이 마을을 휘감고 돌아 마치 섬같은 지형을 하고 있는 무섬마을과
외부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던 다리이다.
다리는 길이 약 150 m, 폭 20 ~25 cm, 높이 60 cm로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다리이다. 다리 중간에 비껴다리를 만들어 마주 오던
사람이 비껴갈 수 있게 만들었다. 1979년 마을로 들어오는 수도교가
세워지면서 없어졌다가 최근에 복원되었다.
옛스런 고택들이 모여있는 무섬마을을 운치있게 만들어주는
아름다운 다리로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영주 무섬마을은 17세기 중엽이후 반남박씨와 선성김씨가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집성촌이다.
마을은 삼면이 내성천에 접해 있어 ‘물 위에 떠 있는 섬’이라는 의미로
무섬마을이라 불린다.
마을에는 해우당고택을 비롯하여 규모가 큰 저택을 비롯하여 까치구멍집,
겹집 등 다양한 형태의 한옥들이 남아 있다.
1979년 수도교가 건설될 때까지 마을과 바깥세상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통로였다.
마을 앞 제방에서 내려다 보이는 외나무다리.
마을 앞에는 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으며,
맑은 내성천이 마을을 휘감으면서 흐르고 있다.
무섬마을에 총연장 180 m, 폭 5.5 m의 현대식 콘크리트 다리인 수도교가 놓인 것은
1983년이다. 수도교가 건설되기 전까지만 해도 외나무다리가 바깥으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외나무 다리는 지난 350여 년간 무섬마을과 뭍을
이어준 유일한 통로로 애환어린 추억의 역사를 지녔다.
사려졌던 외나무다리가 무섬마을에 다시 놓인 것은 2005년이다.
조상들의 삶을 후손들에게 보여주자’는 생각에서 옛날방식으로 복원하여 만들었다.
새로 복원된 외나무다리는 폭 20 ~ 25 cm 길로 높이는 하천바닥에서 60 cm로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큼이다.
무섬마을 사람들의 여유를 닮은 비껴다리
폭 20 ~ 25 cm의 좁은 외나무다리 위를 걷는 것은 쉽지 않다.
다리는 폭 20 ~ 25 cm로 한사람이 겨우 건널 수 있다.
외나무다리 위에서 보이는 내성천. 멀리 마을로 들어오는 통로인 수도교가 보인다.
첫댓글 영주 무섬다리는 TV에서 소개해 보게 되었고
언젠가 한번은 저 아름다운 다리를 건너 보아야겠단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리 아래 강물으 흘렀다면 더욱 아름다웠을거 같아요.
세분의 여행 모습이 미소짓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