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미 글 모음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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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금만 더
이용미
뒤돌아보는 삶이란 항시 아쉽다.
하루든, 한해이든, 길거나 짧은 생애도 마찬가지겠지.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다.
조금만 더 참을 걸, 조금만 더 서두를 걸…….
기다림의 30초는 애를 태울 만큼 길지만 서두름의 3분은
쏘아버린 화살 같다는 말을 실감한다.
아쉬움은 항상 크게 다가오고 만족은 언제나 부족함에 눌려 있다.
3분만 서둘러 챙겼으면 남편 차로 정류장까지 태워다 주기를 바라거나,
깨진 바람으로 서운해서 눈 흘길 이유가 없었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30초를 그토록 초조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헐레벌떡 지름길로 마라토너 흉내를 내며 달릴 이유는 더구나 없었다.
늦게 시작한 점심도 아닌데 도시락 뚜껑을 닫기가 바빴다.
약속했던 시간을 앞당겨 달라는 예약 팀의 전화 때문이었다.
가까이 이웃한 도(道)의 군(群) 관계자들이라 조금 친근한 듯싶지만,
칭찬이나 험담은 으레 가까운 데서 나오고 퍼지기 마련이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오래 하고 있지만 시작하기 전의
조심스러움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다.
10여 분 안에 양치와 매무새, 마이크의 스피커 볼륨을 후다닥
점검한 뒤 휴~우 안도의 숨을 쉬었다.
조금만 더 일찍 연락해 주었더라면…….
대비되는 두 팀이었다.
식사 후 차 한 잔 마실 여유도 없이 부산하게 시작한
예약 팀을 고개 넘어 배웅하고 돌아와 바로 맞은 즉석의뢰 팀이었다.
출입구에 붙은 내 이름을 보고 일행 중 같은 이름이 있어
호기심에 들렀다는 먼 지역의 초등학교교사들이었다.
다시 동행해설을 하기엔 시간도 호흡도 곤란한데 그들 역시 짧은
여유시간으로 간단한 해설을 강조했다.
역시나 잘 된 일이지만 기분은 상황과 일치하기를 거부한다.
그래도 최선을 다한 후 고마움으로든, 끝나서
시원함으로든 받는 박수 크기는 또 다른 내일을 위한 힘이 된다.
여러 사람의 다양한 요구에도 골고루 만족할 수 있도록
조금만 더 노력하리라.
내 얘기를 듣고 의사가 웃기에 나도 겸연쩍게 웃었다.
옆에 소(牛)가 있었다면 같이 웃었을지도 모른다.
며칠 전이었다.
시간 안에 마쳐야 할 일을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서두르다
가까운 식당에서 급한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펄펄 끓는 찌개에서 두부를 건져 입에 넣고 엉겁결에 삼킴과 동시
뒹굴고 싶다고 할까, 까무러칠 것 같은 통증이 전율처럼 이는 것을
찬물 두 컵으로 달랜 후 일을 마쳤다.
그 날 저녁부터 명치 부근에 심한 통증이 시작되었지만
근무일과 휴일 등이 겹쳐 뒤늦게 찾은 병원이었다.
뒤돌아보는 것에는 익숙하면서 앞을 보는 데 둔하다 보니 곳곳에서
실수투성이다.
조금만 더 생각하고 조금만 더 여유로울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렇게만 된다면 어이없고 무안한 웃음이 아니라
진정 웃을 수 있는 날이 참 많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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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격세지감
이용미
사정없이 내리쬐던 해가 어느덧 뉘엿대는 해거름.
곰티 날망을 헉헉대며 달리던 버스가 멈추고 말았다.
오가는 차나 사람이 있을 리 없는 산속 좁은 도로가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로 수런수런 북적였다.
연장을 든 버스 기사가 버스 아래로 반듯이 몸을 뉘어 비비적대며
들어가면 수런거림을 멈춘 사람들이 쪼그려 앉아 고개를 갸웃해서
기사의 하는 양을 보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 몸을 털고 나온 기사가 운전석에 앉고
부릉부릉 소리가 들리면 우르르 다시 버스에 오르기도 하지만
다시 모두가 내려 끙끙대며 버스를 미는 때도 드물지 않았다.
그렇게 두세 시간 걸리던 길이었다.
요즘은 그 길을 저 멀리 바라보며 고속도로를 달린다.
정확하게 구획해서 큰 높낮이 없는 도로는 차안에서 책을 보거나
음료를 마셔도 흔들림이 없다.
며칠 전에는 텅 빈 뒷자리에서 마무리단계에 있던 뜨개 모자까지
여유롭게 마칠 정도였다.
그래 봤자 30분이면 족한 길은 그러나 아홉 개의 터널을 지나게 된다.
읽던 책장을 아홉 번여 닫아야 한다.
시간으로야 5분도 채 안 되지만 그 길이를 더해보면 무려 6km가 넘으니
시오리 길이다.
몰입하는 대목을 읽는 중 터널이 나타나면 왈칵 이는 짜증은 몇 백m에
불과한 그 구간도 지루할 때가 있다.
국도로 달릴 때같이 창 열면 잡힐 것 같은 풍경이 아니라 화면으로
명화 감상하듯 해야 하는 것 또한 아쉬움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휙휙 지나는 바깥 풍경에 빠지면 세상만사
부러울 게 없다.
파릇파릇 연둣빛 돌던 설렘은 금새 각양각색 꽃피우는 무릉도원이 되었다가
오색단풍 수채화인가 싶었는데 어느새 무채색 수묵화로 마음을 다독인다.
이런 파노라마가 어디 있는가.
네 개의 터널을 지나 다섯 번째 터널 들어서기 직전 멀지 않은
산 중턱에 중창한 것 같은 사찰 하나 아담하게 서 있다.
그곳엔 맑은 미소의 비구니 스님이 정갈하게 비질한 모양새가
그대로 나타나는 마당이 있고 그 마당에 들어서면 그런 스님이
말간 미소로 반겨줄 것만 같다.
오늘 아침은 그곳에서 뽀얀 연기가 모락모락 오르고 있었다.
공양 시간은 아닐 텐데 낙엽을 태우는 것이었을까.
낙엽 타는 냄새를 맡고 싶어졌다.
갓 볶아낸 커피 냄새, 잘 익은 개암 냄새, 정말 이효석이 표현한
그런 냄새가 날까? 커피를 떠올리자 갑자기 목이 말랐다.
가방 속에 넣고 다니는 미니 물병을 꺼냈다.
어제 볶아서 끓인 수수차 색깔과 맛이 참 좋지만 차가워서
이젠 보온병에 담아서 다녀야겠다.
토요일 완행버스는 언제나 만원이었다.
청소가 끝나자마자 종례도 못 마치고 부랴부랴 간이 정류장으로 달렸지만,
이미 몸을 비틀기도 어려울 만큼 승객으로 꽉 채워진 버스는 모퉁이를
돌 때마다 심한 흔들림과 좁은 공간에 퍼진 땀 냄새로 구역질과
갈증까지 겹쳐 물 한 잔만 마시면 살 것 같다는 생각이 간절할 때
삐익~음을 내고 멈춰 섰다.
고장으로 버스에서 꾸역꾸역 밀려 나온 사람들 속에 나도 끼어 나와
도롯가에 쪼그려 앉았다.
강하게 내리쬐던 볕이 시나브로 잦아드는가 싶을 때‘토~오옥’하는 작은
소리가 귓가에 연이어졌다.
무슨 소리일까?
두리번거리는 바로 옆에서 노랑꽃잎 벌어지고 있었다.
달맞이꽃이었다.
어디선가 달맞이꽃 피는 소리라는 문장을 읽었던 것도 같고 들은 것도 같지만,
그 소리와 모습을 직접 듣고 본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홀린 듯 정신이 팔렸었다.
“학생, 학생” 차가 떠난다며 연거푸 불러대는 소리를 듣고서야
부리나케 고친 버스에 올랐던 것이 엊그제 같다.
관광 철이 지난 요즘 버스의 좌석은 항상 여유롭다.
뒤쯤에 두 좌석을 차지한 채 여유롭게 두 다리를 주욱 뻗고
두꺼운 차창 커튼을 여미고 눈을 감는데 지~익 휴대전화 진동음이 울린다.
사진 보내는 것에 맛들인 친구가 오늘도 꽃 사진을 보냈다.
어? 그 옛날 곰티 날망에서 꼬부리고 들여다보던 달맞이꽃이다.
토~오옥 피는 소리가 날까? 귀에 휴대전화를 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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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저 평범한 어느 봄날
물 준 일밖에 없는데.
빈 가지로 겨울을 난 남천과 철쭉이 잔가지에 잎을 틔우고,
사랑초와 앵초가 힘껏 환한 꽃을 피워내고 있다.
돈나무의 반짝이는 잎 가장자리에도 작디작은 새순이 도르르 말려
펼칠 날을 기다리고. 키워진 화초 사다가 공들여 옮겨 심지 않아도
올봄 우리 집 작은 거실은 풍성한 정원이 되어있다.
봄은 언제나 오는 듯 가는 듯 실없이 기웃대다가 여름에 넘기듯,
빼앗기듯 그 자리 슬그머니 놓아버리는 듯싶어도 피는 꽃들을 보면
봄은 분명히 왔다가 분명히 간다.
꽃이 피고 지는 분명함 같이 내가 읽는 책들도 그렇게 분명한
줄거리로 입력됐으면 좋겠다.
읽어야 할 책과 읽고 싶어 읽는 책 상관없이, 앞줄 읽고 다음 줄에서
그 내용 잊어버릴지라도 요즘은 재미없는 책이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화분에 물 스며들 듯 읽는 책들의 이야기가 내 안에도 그렇게
고스란히 스며들면 얼마나 좋을까.
스며들어 오래도록 머물면 좋겠다.
촉촉이 물 머금은 화분들 옆에서 오전 내내 책과 동무를 했다.
시장갈 옷차림은 아니고 곧장 귀가하기도 뭣해서 예술회관 2층으로
발길을 옮겼다.
어느 분의 고희기념 사진전 현수막이 크게 걸린 전시장을 먼저 들렸다.
모 신문사 발행 비매품 책을 몇 단계를 거쳐 손에 쥐고
귀가하려는 길이었다.
무언가에 빠지면 나이를 잊는 것일까. 동문회를 비롯해
몇 개의 화분에 이 쓰인 것을 보면 우리 선배로
그 유명한 4회인 것 같은데 참 곱고도 정정하다.
선명하고 화려한 모습의 대작들이지만 대부분이 낯익은 우리 고장
풍경들이라 무게 감과 친근함이 함께 했다.
건강이나 재능 열정말고도 경제적으로도 참 여유가 있나 보다 싶었다.
간단한 팸플릿 대신 사진첩을 만들어 유료 판매를 하기에 아쉽지만,
그냥 나와 옆에 꽃을 주제로 한 한국 화가의 전시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역시 나이 지긋한 전직교사 출신의 단아하고 정교하면서 친숙한
갖가지 꽃 그림에 눈이 환해지는 듯, 부신 듯 마음마저
맑아지는 것 같았다.
방명록에 사인해달라는 말에 미소만 지으며 그냥 나왔다.
무엇을 안다고 무엇이라고 쓸 것인가.
다시 그 옆의 추상화 전에도 들렸으나 내겐 너무 먼 작품들이라
느낌도 궁금함도 없었지만 바로 나오기가 뭣해 삼면을 다 돌고 나왔다.
작가 자신도 전시에 의미가 있을 뿐 내왕 객에는 별 관심도 없는 듯
옆 사람과 대화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구한 책과 팸플릿 무게만큼의 뿌듯함에 느린 걸음으로 눈에 익은
거리와 골목을 걷다 보니 긴 봄날의 해도 뉘엿뉘엿해 지고 있었다.
씻어놓은 쑥은 된장을 넣고 주물러 국으로 안치고,
돌나물은 채 쳐놓은 무와 부추를 넣어 고추장으로 무침을 했다.
엊그제 지인의 기린봉 야생화 사진 촬영하는데 따라갔다가 지루해서
옆에 돋은 것들을 한 잎 한 잎 뜯었던 것이다.
돌아오는 길 술 생각이 난다는 그녀를 내 감기를 핑계로 미루었는데
오늘밤은, 이제는 영감이라 불러도 이상할 것 없는, 이상하지도 않은
사람과 한잔해볼까?
쑥국과 돌나물 무침에 어울리는 술은 무엇일까. 칠선 낭자가 선물한
복분자가 좋을까.
몇 년 전 극히 쇠약해진 내게 오빠가 선물한 산삼주? 아니면
귀하신 나무 마이산의 청실배주? 바라만 보는 이 병 저 병의 술들,
조롱조롱 맺힌 봉긋한 앵두나무 꽃 한창이던 옛집 평상으로 옮겨볼까?
달빛이 환하면 좋으련만, 살랑 봄바람 볼만 스치면 좋으련만,
달 없는 그믐밤, 영감은 오지 않고 아파트 베란다에 부는 바람,
아직은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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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이산의 꿈과 사랑 이야기
이용미
어느 쪽에서 보면 다정한 부부 같고 어떤 쪽에서 보면 돌아선
남남 같기도 한 마이산.
나라를 넘어 세계인들이 찾고 있는 마이산이 내 고장에 있음은 얼마나
고맙고 자랑스러운 일인가.
이곳에 이루어진 꿈과 못다 한 사랑, 이루지 못한 꿈과 더함 없는
사랑의 숨겨진 이야기 속으로 한 번 들어가 볼까?
우뚝 솟은 두 봉우리는 양옆과 앞뒤로 각양각색 수많은 봉우리를
거느리고 있는데 주봉인 마이봉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그럴싸하다.
‘멀고 먼 옛적 금실 좋은 부부가 천신 앞으로 불려갔다.
“아무리 서로 좋기로서니 지켜야 할 예의가 있는 것을, 밤낮을
너희만 사는 곳으로 알고 행동한 죄는 용납할 수가 없구나.
땅으로 내려가 지은 죄만큼의 벌을 받은 뒤 아무도 모르게 올라오너라.
대신 올라올 때 누구에게라도 들키면 너희는 그 자리서 바위가 되고 말 것이다”
어디서 산들 대수인가. 같이만 있으면 되는 것을, 쫓겨나는 설움도
앞날의 두려움도 없이 부부는 죄의 무게로 쉽게 땅으로 떨어져
인간으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하늘과는 또 다른 삶에 힘들 때도 있었지만 아들 둘을 두는 세월에도 둘의
사랑은 변함 없이 드디어 지은 죄만큼의 벌이 끝나는 날 밤이 되었다.
그때는 두고 온 하늘나라가 몹시 그리워지기도 하는 때여서 남편은
아내에게 당장 가자고 서둘렀다.
그러나 조금만 기다리라는 아내 말에 이튿날 새벽녘 하늘로 오르고 있는데 그만,
물을 길으러 나온 옆집 아낙에게 들키고 말았다.
물거품이 되어버린 하늘로의 귀환에 속이 상한 남편은 아내에게 발길질하며
“당신 때문에 영원히 하늘로 오를 수 없는 깨어져 버린 꿈,
난 이제 당신 아닌 이 아이들 둘만 품을 것이요”
생전 않던 남편의 발길질에 아내는 두 말없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이야기가 사실인 양 진안읍에서 볼 때 왼쪽 꼿꼿한 봉우리에는
작은 두 봉우리가 안기듯 서 있고 오른쪽 봉우리는 토라져 돌아앉은
모습이 역력하다.
그러나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 해지면 나란히 물 속에 눕는다.
호수 사양제에 노을이 지면 서서히 드러눕는 다정한 마이산의 그림자는
이루지 못한 꿈이지만 끝나지 않은 영원한 사랑이기도 하다.
이게 무엇인가. 대추인가. 아니면 매실인가. 푸른 잎에 푸른 열매는 익어도
푸른빛을 띠어 붙여진 이름 청실배(靑實梨)가 은수사(銀水寺)
마당 한쪽 우뚝 선 나무에 주저리, 주저리 오지게도 달려있다.
고려의 장수 이성계는 조금만 시간의 여유가 생기면 전국
명산을 돌며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왕권을 갖기 위한 절실한 바람의 기도가 아니었을까.
그 중에서도 기도의 효험이 클 것 같은 이곳 마이산에 들른 이성계.
산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던 이 돌배로 입가심만 하면서 드디어
마음먹은 기도를 마친 증표로 먹고 난 씨 한 개를 묻었다.
그 자리서 돋은 싹이 잎을 틔워 열매를 맺어온 세월 육백 년을 훌쩍 넘겼다.
보통배나무 수명의 열 배를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삼국유사’ ‘보양 이목’편을 보면 보양 스님이 계시는 절 옆
작은 연못에 이목(離目)이란 용이 절의 어려운 일을 도우며 살고 있었다.
그런 어느 해 심한 가뭄에 비를 내려달라는 보양의 부탁을 기꺼이 들어준
이목이를 천신은 월권했다며 죽이라는 명령과 함께 사자를 내려보낸다.
이 사실을 미리 안 보양은 이목(離目)이를 불상 밑에 감춘
뒤 앞뜰에 서 있는 오래된 梨木(배나무)을 가리켜 대신 벼락을 맞자 離目이가
나와서 쓰다듬으니 되살아나 그때부터 배나무는 용의 보호를
받게 된다는 이야기다.
불교와 농경신의 결합한 이야기겠지만 청실배나무 옆에는 수마이봉에서
흘러내려 생긴 우물,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은수정(銀水井)이 있다.
한겨울 이 물을 배나무 아래 떠놓으면 물이 거꾸로 어는 역고드름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왕의 꿈을 이룬 성터의 기현상이라고 할까?
전주를 조선건국의 발상지라고 한다면 진안은 조선건국의 계시지라고 할까.
그것을 상징화한 몽금척도(夢金尺圖)를 단군도(檀君圖)와 함께 모셔 놓은
태극전 또한 은수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1380년 고려장수 이성계는 선인으로부터 금자(金尺)를 받는 꿈을 꾸게 되는데
금자는 길이를 재는 도구를 넘어 왕권을 의미하는 것.
이 자리는 바로 그 꿈의 배경이 되는 자리로 꿈을 꾼 뒤 남원운봉까지
난입한 왜구를 맞아 대승을 거둔 12년 후 조선을 개국하여 태조가 된다.
개국의 개연성과 정당성을 사실화시킨다면 이곳은 성터가 분명할 터.
그런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으면 꿈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은 소리 없이
꼬리를 물고 흩어져 가끔 큰 꿈꾸는 자들의 방문이 잇따르는 시기가 있다.
과연 이루어졌을까, 이루어질까? 꿈은 꾸는 자의 것이거니…….
마이산과 석탑은 불가분의 관계, 그 석탑이 있는 탑사를 싸고 있는 암마이봉.
그 암마이봉을 타고 오르는 능소화는 마이산 속 또 하나의 사랑이다.
7월 중순쯤 장마가 끝났음을 알리며 암마이봉 한쪽을 주황색 자연의
샹들리에 불빛으로 환하게 밝히는 꽃, 능소화. 중국 왕조시대 어느 마을에
얼굴 예쁘고 마음씨 곱던 능소라는 아가씨가 성은을 입고 바로 빈이 되지만
궁중 여인네들 시샘과 모략에 임금을 만날 수 없는 그리움의 병을 앓게 된다.
결국, 능소는 죽어서도 임금님 발걸음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다니시는 길옆 담 밑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는다.
일 년 후 그 자리에서 자란 나무가 담을 타고 꽃을 피워내는데
생전의 능소 모습 같아 능소화라 이름 붙여졌다고 전해온다.
그 능소의 넋이 이곳으로 옮겨온 것일까.
해안가 수분이 많고 따뜻한 곳에서 12m 정도 자란다는 꽃이 어떻게
정반대의 환경인 이 척박한 곳에 둥지를 틀어 그리 높이 오르는 것일까.
크고 작은 돌탑 중 주 탑이 되는 천지탑은 다른 탑들과 달리
자연석 받침돌 위에 쌓여 있다.
그 받침돌에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소원바위, 능소도 그것을 알았을까.
못다 한 사랑을 위해 훨훨 날아온 넋은 소원바위에 임금님 뵙고 싶은
간절한 소원 빌고 넓고 높은 바위 오르면 그 시절 임금님 행여 말 타고,
가마 타고 지나는 모습 보일까, 쉼 없이 오르고 또 오르는
그 모습은 정녕 사랑이다.
애절한 사랑이다.
또 하나 담락당 하립과 삼의당 김씨의 진한 부부 사랑이 있다.
아내가 거처하는 방에 서화를, 뜰에는 꽃을 심어 그에 맞는 <삼의당> 이라는
당호를 직접 지어주는 자상한 남편. 남편의 과거급제를 빌며
머리카락까지 팔아 내조를 하는 아내.
담락당 하립과 삼의당 김씨는 영조 45년(1769년) 남원 서봉방
한 마을에서 한날한시에 태어나 열여덟 살에 결혼을 한 천정배필로
조선 중기의 유일한 부부 시인이다.
담락당 하립은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하연의 12대손이고 김삼의당은
연산군 때의 탁월한 문장가 탁영 김일손의 후손. 두 집 모두 몰락한
양반 가문으로 옛 명예를 되찾기 위한 과거 준비 10년의 부단한
노력이 허사가 되자 거주지를 증조부 때 살던 이곳 진안으로 옮기게 된다.
여기서 농사와 시를 짓다가 생을 마쳐 백운면 덕현리에 쌍봉장으로
모셔져 있고 마이산 봉두봉 아래 탑영제 호숫가에는 첫날밤 주고받은
시를 새긴 시비와 옆 명려각에는 부부의 영정이 나란히 모셔져 있다.
오로지 남편의 과거급제가 소망인 여염집 아낙으로서 갖가지
소재 260여 편 글에‘나 스스로 뒷날에 좋은 거울과 법도를
삼고자 함에 있다’는 서문까지 손수 붙인 삼의당의 글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부부 창화는 시대를 뛰어넘는 부부 사랑이다.
비록 과거급제의 꿈은 이루지 못했어도 둘의 감동적인 사랑의 진한
향기는 마이산에 고스란히 퍼져 있다.
마이산에 남녀의 사랑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라 위해 목숨을 건 거룩하고 숭고한 혼들도 자리하고 있다.
나라를 위해서라면 내 한목숨 총을 맞아도, 목이 베여도 상관없던 사람들,
정재 이석용의병장을 중심으로 호남 의병들이 모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대열을 정비한 곳 용암, 그곳에 세워진 이산묘(?山廟)다.
마이산 남쪽 입구에 세워진 당우(堂宇)는 초라해도 그 안에 모셔진
선열들의 넋은 그 어디 비할 바 없이 값지다.
구한말의 학자 연재 송병선과 면암 최익현이 들르거나 머문 일이 있다.
그때 연재를 따르는 친친계와 면암을 따르던 현현계가 조직되었는데
그 후 이분들이 순국하자 두 계가 합쳐 기금을 모아 이분들 모시는
사당을 짓기로 결의한 것이 시초가 된다.
건물이 완성되어 두 분과 조선 태조 봉안 이후 제를 지낼 때마다
일제의 탄압은 도를 넘어 제관들이 구타당하고 구금되는 수난을 겪게 되지만
제삿날을 바꾸기도 하고 한밤중 저들 몰래 지내기도 하면서
면면히 이어져 왔다.
그 후 독립이 되고 여러 고을 향교의 동의를 얻어 태조뿐 아니라 나라를
처음 세운 단군과 우리 역사와 문화를 우리 글로 기록할 수 있게 한
세종까지 모시게 되었다.
조선의 독립과 자존을 위해 몸부림친 고종은 전주 건지산에 임시
봉안 중이던 것을 각지 유림의 건의로 함께하게 됐다.
그 아래 일본과의 치욕적인 을사늑약 이후 오로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우리가 잘 아는 안중근. 윤봉길 의사 등 34위 선열들의
나라 사랑을 그 어디에 비할 것인가. 비록 생전에 못 이룬 꿈이지만
더함 없는 나라 사랑에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다.
꿈과 사랑이 없는 세상 삶이란 얼마나 팍팍할까.
그렇다고 모든 꿈과 사랑이 다 이루어진다면 또 얼마나 무미건조한 삶일까.
모든 일과 생각에는 양면성이 있고 그래서 세상은 살만하고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모자라면 채우려 노력하고 넘치면 덜어내는 여유, 마이산은 그런 마음의
여유로 꿈을 꾸며 사랑을 생각하는 이야기 동산이다.
거기에 각자의 사랑 이야기 한 자락 넓게 펼치거나 걸쳐놓아도
탓하거나 흉보는 이 없는 너르고 편안한 놀이터다.
원앙도 그것을 아는 걸까.
원앙 부부의 애틋한 사랑이 봄이면 마이산 실개천에 한 폭 그림으로
지나는 사람들 발길을 잡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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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역행이어서 좋다
시대를 역행하면 이단아가 된다. 물이 역류하면 반역의 땅으로
지목 받기도 한다.
도로를 역 주행하거나 산모가 역산(逆産)하면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기에 십상이다.
그런데 역행이어서 신기하고 그래서 주목받는 것이 있다면
이변일 수밖에 없다.
그 이변이 올 겨울에도 마이산에서 일었다.
역고드름 현상이다.
탑사의 탑 주변과 은수사 청실배나무 아래 휘어진 못 거꾸로
세워 놓은 듯 비스듬히 얼어있는 모양새가 옛 사진 속 조금 불량하거나
멋 내기 위한 짝다리 모습을 연상하게도 한다.
쌓인 눈은 꽁꽁 얼어 빙판이 되고 암마이봉 정상에서 밑을 향한
긴 고드름은 돌진하는 창이나 화살 같은 날카로움으로 금방이라도
내리꽂힐 것 같아 조심스럽다.
그 아래 돌탑 사이에서 겨룰 테면 겨루어보라는 듯, 여유를 보이듯 거만한?
자세로 솟아 있는 역고드름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꿈을 이룬 자의 추락과 꿈을 이루려는 자의 조용한 용틀임이라면
지나친 대비일까?
동굴의 종유석처럼 위에서 떨어지는 물이 있는 것도 아닌,
맨땅 양재기에 떠놓은 물이 30cm 가까이 어는 역고드름을 보려는
사람들이 몰려온다.
그 원인과 원리를 밝혀내려는 사람, 이유를 알려는 사람, 그 중엔
그것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소문에
끌린 평범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과학과 문화는 상상 이상 발달하고 발전하지만, 개개인의 소망과
바람까지 맞춰줄 수는 없는 일이기에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스러운 소망과 바람을 역고드름이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이산 역고드름은 우리의 희망이다.
그저 자식들 무사 무탈하게, 부모님 건강하고 부부 화합하게 해
달라는 소박한 바람부터 큰 일꾼, 더 큰 일꾼 되어
‘내 손 안에 있소이다.’ 쥐락펴락하고 싶은 사람들 소망까지
품어주는 소망 덩어리다.
원리나 원인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맡기고 우리는
꼭 이룰 수 있는 소박하고 알찬 꿈과 사랑만 고백하는 신기한
귀물로 올해도 내년에도, 그리고 영원히 이어졌으면 하는 소망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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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오일장에 막걸리 두 잔 마신 여자
이용미
그 날도 작은 군내버스에 승객이라고는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중 여러 개 비닐봉지에 담긴 짐을 양손 가득 든 40대 중반쯤 되었을
아낙은 차에 오르자마자 부스럭대기 시작했다.
들고 있던 봉지를 꺼냈다가 넣고 다시 꺼내고 어디론가 전화를 하는데
어찌나 소리가 크던지 모두가 쳐다보는데도 아랑곳없었다.
무언가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한 모양으로 ‘주지 않으려면
애초에 광고를 말지 왜 사기를 쳤느냐?’
식식대며 한동안 하던 전화를 끊고는 내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꼭 오일장에 막걸리 두 잔 마신 여자 같다.”고 중얼대며 읽던 책을
팽개치듯 의자에 놓는 이는 가끔 버스를 같이 타며
눈인사 정도 하는 사람이었다.
음주단속에 걸리거나 음주로 인한 시비에 휘말리는 것이 남자만이 아닌
요즘 세상에 여자와 오일장과 막걸리, 한잔이나 열 잔이 아닌 두 잔이란
평범한 말에 담긴 어떤 낭만이랄까,
재밌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여러 사람에게 그 얘기를 하며 웃어댔다.
한참이 지나 다시 옛 기억과 함께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 잦아졌다.
초가지붕 아래 네 개의 기둥만 세워진 맨땅에 가마니를 깐 몇 개의
전(廛)과 회색으로 보이는 흰색천막까지 합치면 요즘의 대형할인매장
한 층 넓이는 되었을까.
닷새마다 열리는 시골 장날의 장터. 없는 게 없는, 말 그대로 장날이었지만
내게 또렷이 남아있는 기억과 추억은 아무래도 술과 함께 팔던 국수전이다.
점심시간이 시작되자마자 아이들과 우우 달려나간 장터에는 까만 뚝배기에
둥글게 말린 삶은 국수사리를 담아 쫑쫑 썬 파를 얹어 까만 솥에서
연신 끓고 있는 육수를 부어주던 국수전이 있었다.
네모진 천막 가운데를 긴 바지랑대로 고여 한 귀퉁이를 걷어올린
그곳은 대충 짜 맞춘 긴 탁자와 의자 두 개가 ㄱ자로 놓여 있었다.
평일이면 후줄근한 차림으로 새우젓을 팔러 다니는 아주머니가 흰 앞치마에
수건을 쓴 다른 모습으로 장사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가면 으레 술을 마시고 있는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손님들은 대부분이 남자들로 여자는 우리 엄마와 나뿐일 때가 많았는데
국수를 파는 아주머니나 들고 나는 손님 중에는 엄마께 ‘사모님’ 이란
깍듯한 호칭으로 정중한 인사를 하기도 했다.
엄마는 그때마다 그저 고개만 까딱했다.
난 국수를 먹는 것에 정신이 팔려 그때 엄마가 마신 술이
막걸리였는지는 모르겠다.
평소 엄마는 되들잇병 소주를 정짓방(주방) 찬장에 넣어 두고 큰 컵에 따라서
수시로 마셨지만, 장터 국수전에는 커다란 항아리와 쭈그러진 주전자가 있던
기억으로 막걸리였지 싶다.
엄마가 그 장에 마셨던 막걸리는 몇 잔이나 되었을까.
요즘 난 술을 자주 마시는 편이다.
마시고 싶은 자리, 마실 수밖에 없는 자리, 물론 사양하거나 못 마시는
흉내를 내며 내숭을 떠는 자리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사양하지 않고 마신 후의 기분 또한 좋을 때가 많다.
그 날도 그랬다.
하루 9시간씩 닷새 간 이어지던 교육이 끝난 시간, 두 명의 왕이 기도했다는
전설 속 깊은 산 속이었다.
그 지역의 막걸리가 간단한 안주와 함께 배달되어 있었다.
지칠 대로 지친 심신에 산 속에서 마시는 막걸리 몇 잔의 평온을
어디에 비교할까.
“연~분~홍 치마가~ 보~옴 바~람~~에 휘 날~리더라~~ ”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하는 죄이라서~” 부르고 싶은 노래는 그러나,
입속으로 가만가만 불렀다.
장날도 아니고 내 손엔 짐 보따리도 없고 두 잔이 아닌 석 잔을 마신,
오일장에 막걸리 두 잔 마신 여자가 아니기에.
이용미
2002년 《수필과 비평》등단
수필집《그 사람》《창밖의 여자출간
행촌수필문학상. 진안문학상 수상
한국문협. 전북문협. 수비작가회의. 전북수필 회원
행촌수필문학회 회장. 전북문화관광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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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용미 글 모음 6편
감사합니다.
벌써 한주를 마감하는 토요일
언제나 건강 하시고 웃음과 행복을 동반한
멋진 주말되시길 바랍니다
추천"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