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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달해 인턴기자·연세대 신문방송학과 4년 끝* 끝까지 읽어보세요 |
주말은 제기동에서
업소를 운영하는 강명수씨 또한
초반에는 취재 중이던 나를 막아섰다. 설득 끝에 인터뷰에 응한 강씨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예전에 영등포에서 더 큰 콜라텍을 했었다는 그는
3년 전 제기동에서 새 업소를 오픈했다. 영등포 업소는 사고가 나는 바람에 문을 닫았다고 했다. “노인들 수백 명이 놀고 계신데 누군가
‘불이야!’라고 거짓으로 고함을 질렀어요. 그 바람에 노인들이 당황해서 뛰쳐나가다가 압사당하는 사고가 있었어요. 경찰에 불려다니면서 고생했던 거
생각하면 이제는 남한테 가게 안 맡겨요.”
강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콜라텍을 돌며 곳곳을 점검한다. 오래 앉아 있는
노인들이 있으면 한 번씩 몸을 만져본다. 혹시나 쓰러져 있는 것은 아닌지 체크하는 것이다. “여기 그런 사람 진짜 많아요. 119도 엄청 자주
출동해요. 당뇨나 심장병으로 쇼크 와서 실려 가는 거야. 다들 재밌게 놀고 계신 것 같아도 하루아침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여기 계신
분들이에요.” 강씨는 노인들을 위한 콜라텍이나 놀이시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이렇게 건전한데도 다들 와보지도 않고 무조건
‘쌍팔년도 카바레 같은 곳’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런 곳에 지원을 해줘서 더 잘 운영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노인들을 위한 거
아닌가요?”
홍대 클럽과 마찬가지로 제기동역 콜라텍도 주말에 더 붐빈다. 젊은 세대들은 학교나 직장 때문에 주말을 이용해
여가를 즐긴다 치지만, 일을 안 하시는 어르신들은 왜 굳이 주말에 더 많이 밖으로 나오는 것일까? 강씨의 설명은 이렇다. “평일에는 손자손녀들
돌봐야지, 여기 와서 놀 시간이 어딨어요? 주말이나 돼야 자식들한테 손주들 맡기고 여기 와서 쉬시는 거지요.” 진짜 제기동은 인터넷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외로운 노인들의 해방구, 1호선 제기동역에 오면 오늘도 수많은 우리들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을 만날 수 있다.
▲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나비 콜라텍’에서 노인들이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고 있다. 콜라텍은 노인들에게 멀티플렉스 같은 공간이다. photo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
“아니, 아가씨가 이런 데 왜 관심을 갖나? 여기는 최소 60은 먹어야 오는 데야.”
지난 11월 30일,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소재의 한 콜라텍을 찾은 나에게 상가 경비원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최소 60대라. 50대는 미성년자 취급을 받는 신기한 동네 제기동에서 20대 중반의 나는 완전한 이방인이었다.
지하철 ‘제기동역’은 지난해 노인들이 가장 많이 내리는 서울시 지하철역 2위로 꼽혔다. 서울 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집계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동안 제기동역에 내린 65세 이상 이용객은 344만명을 넘는다. 하루 평균 9400명 이상의 노인들이 제기동역에 내린 셈이다. 1위는 509만여명이 이용한 종로3가역. 종로3가는 3개의 노선(1·3·5호선)이 통과하는 환승역이기에 애초에 유동인구가 많고, 탑골공원이나 낙원상가와 같이 이미 잘 알려진 노인들의 메카다. 그렇다면 제기동역은 왜 노인들의 선택을 받는 것일까. 약령시장과 경동시장만이 제기동의 매력이 아니다. 직접 찾아가 본 ‘노인들의 홍대’ 제기동에는 노인들을 위한 멀티플렉스가 있었다.
지난 12월 1일 오후, 지하철 1호선 열차가 제기동역에 다다르자 백발의 노인들이 우르르 하차했다. 일명 ‘불금’에 한껏 치장한 젊은이들이 홍대입구역에 우르르 내리는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은빛 인파’에 떠밀려 개찰구에 도착하자 한바탕 시비가 붙은 두 남자가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야 임마!” 다툼이 몸싸움으로 번지려던 차에 다행히 각자의 일행인 여성들이 싸움을 말렸다. 연령대만 다르지 홍대입구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익숙한 장면이었다.
제기동에서 홍대를 떠올리게 되는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다. 홍대입구 역사에 액세서리 가게와 화장품 로드숍이 인기를 끌듯, 제기동 역사 안에도 노년 여성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옷가게가 즐비하다. 붉은색 코트부터 보들보들 털 내피를 장착한 패딩까지 패션 스타일이 홍대와는 다를 뿐이다. 가던 길을 멈춰 서서 코트의 옷감을 만져보던 한 여성의 시선이 곧 ‘2만5000원짜리 열 레깅스 단돈 만원’이라고 쓰인 광고 종이로 옮겨 갔다.
제기동의 중심은 제기동역 2번 출구다. 이곳은 홍대로 치면 홍대입구역 9번 출구 격으로 엄청난 인파가 몰리는 지점이다. 곧장 한약재 전문시장인 약령시장이 시작되고 그 길이 농산물시장인 경동시장과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약령시장은 국내 한약재의 70%가량이 거래되는 시장으로 입구가 13개나 될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약재상들을 비롯해서 건강원, 한방 찻집, 의료기 체험실, 병원 등 건강과 관련된 서비스 업체들이 많다는 점도 노인들의 발길을 끄는 이유다. 이곳에서 수년째 노점상을 하고 있는 최모씨의 말이다.
“젊은 사람들은 이 동네 잘 안 와요. 죄다 노인들이죠. 병원부터 시작해서 노인들한테 필요한 건 웬만하면 다 있잖아요. 또 여기 시장들이 마트보다 가격이 훨씬 싸고 싱싱한 것들이 많으니까 장보러도 많이 오세요. 이런 것들이 지하철역에서 나오자마자 다 모여 있으니까 노인들한테는 제기동이 딱이죠.”
‘1000원의 행복’ 제기동 콜라텍
제기동역 2번 출구 인근이 ‘홍대’스러운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제기동의 독보적 핫플레이스, 노인 전용 콜라텍이 바로 이곳에 있다. 콜라텍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인터넷에도 안 나오고 간판도 제대로 없었다. ‘별 이상한 아가씨도 다 있다’는 시선을 온몸으로 받으며 물어물어 콜라텍의 위치를 알아냈다. 콜라텍이 있다는 건물을 바로 눈앞에 두고도 건물 주변을 뱅뱅 돌았다. 건물을 세 바퀴쯤 돈 끝에 겨우 찾아낼 수 있을 만큼 콜라텍은 꼭꼭 숨어 있었다.
경동시장 맞은편 건물 지하 1층, 겉보기에는 평범한 상가 건물이지만 이 일대에서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건물 중 하나다. 건물 내부에는 자그맣게 ‘스포츠 체육단련장, 나비 콜라텍’이라는 표식이 걸려 있다. 물론 이 건물을 찾는 노인들은 표식을 볼 필요도 없이 곧장 지하 1층으로 향했다. 나비 콜라텍 사장 강명수(56)씨는 이곳을 “택시기사들의 기사식당 같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입소문을 타고 아는 사람들끼리만 모이게 되는 곳이라는 의미다. 처음 발을 딛는 나에게 이곳은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굴’ 같은 신세계였다. 나는 트로트 선율에 이끌려 지금까지 그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진짜 어른들의 세상을 목격했다.
콜라텍이라고 해서 ‘콜라나 마시고 춤만 추는 곳이겠거니’ 생각하면 오산이다. 댄스홀은 기본이고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부터 쌍화탕·마차 등 건강차를 파는 찻집, 다양한 안주를 갖춘 실내 포장마차까지 하루 종일 먹고 놀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야말로 노인들을 위한 멀티플렉스다. 이 콜라텍의 입장료는 단돈 1000원. 게다가 일 년에 4번 정도는 무료입장 행사가 진행된다. 홍대 인근 클럽처럼 가드들이 입구를 지키고 서서 신분증 검사를 하는 것도 아니어서 원할 때 언제든 드나들 수 있다. 아침 10시에 오픈해서 오후 6시에 폐점한다. 입장해서 가장 먼저 지나치는 곳은 바로 짐 보관소이다. 홍대 클럽과 똑같다. 무거운 외투를 벗어 가방과 함께 잘 정리해서 직원에게 맡기고 보관증을 받으면 된다. 보관료는 1인당 500원. 짐이 너무 많으면 1000원을 받을 수도 있다.
짐까지 맡겼다면 이제 진짜 시작이다. 댄스홀에 들어서자 수백 명의 노인들이 음악에 취해 춤을 추고 있었다. ‘7080세대’가 아닌 ‘7080세’의 사람들. 강씨는 “간혹 60대나 최고참 90대가 출입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강씨의 표현에 따르면 이곳에서 60대는 “새파랗게 젊은 축”에 속한다. 사정이 이러니 20대 중반인 나는 그곳에서 ‘여탕에 들어온 남자’ 혹은 ‘외계인’이 된 것처럼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집 나간 할아버지를 찾아 헤매는 척해야 했다.
오직 노인들만을 위한 무도회장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가만히 보니 댄스 플로어에 들어서기 전, 손님들이 모두 이상한 나무틀에 올라갔다 내려오곤 했다. 다름 아닌 낙상 방지 송진가루를 신발 바닥에 묻히기 위한 과정이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넘어지면 바로 골절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매끄러운 나무재질 댄스 플로어에서 춤을 추다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였다.
이곳에서 홍대 클럽처럼 심장이 터질 듯한 비트소리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집에서 가끔 할머니 등 너머로 듣던 ‘뽕짝’이 주로 흘러나왔고, 중간중간 색소폰을 베이스로 한 짙은 블루스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빠른 박자의 뽕짝이든 블루스든 장르에 상관없이 무대 위를 가득 채운 ‘댄서’들의 춤사위는 한결같았다. 파트너와 한쪽 손을 맞잡고, 아주 천천히 각자 제자리를 도는 동작이 춤의 전부였다. 포인트는 한 바퀴를 도는 데 대략 30초는 족히 걸릴 정도로 천천히 움직인다는 것이다. 수백 명의 노인들이 일제히 이 ‘정체불명’의 댄스를 추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온몸을 흔들어대는 젊은이들의 춤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어른들의 심정이 약간 이해가 됐다. 오후 1시경부터 슬슬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피크타임은 오후 3시경이다.
말이 필요 없는 부킹
댄스홀에서 나와 찻집에 앉았다. 메뉴를 보니 쌍화탕, 대추차, 마차 등 카페에서는 볼 수 없는 종류가 적혀 있었다. 내가 아이스크림을 주문하자 주인 아주머니는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아가씨, 여기는 밖이랑 달라. 아이스크림은 팥 들어간 거 하나밖에 없어.” 나는 결국 이곳에서 제일 잘나간다는 마차를 주문했다. 모든 메뉴는 1000원 안팎이었다. 주문한 차를 기다리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행끼리 왁자지껄 떠드는 무리도 있었고, 수줍게 즉석만남을 갖는 남녀 커플도 있었다. 어르신들의 즉석만남은 매우 조용했다. 한 커플을 보니 1000원짜리 마차를 앞에 둔 채 서로 대화도 없이 먼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홍대에서라면 앉자마자 “이름이 뭐야? 몇 살?” 신상 캐기부터 들어가지만, 제기동에서는 다 필요 없는 말이다. 이름이 뭔들, 나이가 얼마인들 무슨 상관인가. 어르신들은 그저 같은 테이블에 누군가 함께 마주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이해하고 교감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들은 20대 중반의 나와는 교감을 거부했다. “뭐여? 아가씨 피디 아니여? 지금 뭐 찍고 있지?” 노인들은 하나같이 나를 경계했다. 나쁜 현장을 들킨 것도 아닌데 자신들의 노출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즉석만남을 갖던 박모(85)씨는 나를 불러 나무랐다. “이런 거 알려서 뭐하려고 왔어? 우리 자식들은 이런 데 오는 거 싫어해. 우리는 그냥 갈 데가 없어서 여기 오는 건데. 천원, 이천원이면 하루 종일 따뜻하게 있을 수 있잖아.” 이렇게 말하고는 나에게 삶은 계란 하나를 먹으라고 건넸다.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전쟁세대, 그들은 이제 제기동 콜라텍 세대가 됐다. 지난해 국민적 호응을 얻었던 영화 ‘국제시장’이 바로 그들의 이야기였다. 자신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홍대앞의 젊은 세대와는 달리 ‘노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은 듯했다. 평생 놀아 본 적이 없는 그들은 보는 눈이 없는 제기동에서, 지하 콜라텍에서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업소 주인 강씨는 “종로3가부터 청량리, 제기동으로 이어지는 어른들의 메카가 있는데 최근에는 종로에 젊은이들이 많아지면서 노인들이 점점 제기동으로 밀려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