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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다음 이미지 및 인물 백과
이이제이 문익환편
목메는 강산 가슴에 곱게 수놓으며- 문익환 저
민중을 기록하라 -작가들이 발로 쓴 한국 현대사 중
<문익환- 걸어서라도 갈테야>
'기린갑이와 고만녜의 꿈'(삼인출판사)
-문재린(1896-1985) 목사와 김신묵(1895-1990) 여사 부부의 회고록
-기린갑이와 고만녜는 문재린 목사와 김신묵 여사의 어릴 적 이름 -
장준하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민주화 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서며
내 왼쪽과 오른쪽에 윤동주와 장준하가 있다
나는 대타다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사는 것 뿐이다.
난 그저 대신 하는 것 뿐이다
라고 말씀하신 문익환 목사님
세친구 이야기중 마지막 분 문익환 목사님의
어린 시절 부터 민주화 운동 전까지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볼까함
문익환 목사님은 만주에서 태어나서 자라셨는데
그곳에 살게 된것은 아버지때 일로
고조 할아버지가 실학자셨는데
함경북도에 사시다가
"북간도가 비옥한 땅인데 버려두면 중국이 차지해 버리게 된다
그러니 우리가 가서 개척하자 "
이렇게 생각하시고 자신의 가족포함 4가족
약 140여명을 이끌고
만주로 건너가셨다고 함
이때가 문재린 목사님<문익환 목사님 아버지> 4살때로
어머니 김신묵여사도 같이 가족들하고 건너오셨음
<김신묵여사님이 한살 연상 ^^ 연상연하 커플>
<이곳이 만주에 있는 명동촌 문익환 목사님이 자란 집 >
이후 명동촌에는
최초의 신식학교가 들어섰고 이를 통해 기독교 선교가 이루어졌으며
그 영향으로 문재린은 신학을 공부하고
한국인 최초로 1928년 캐나다로 신학유학을 가게 되었고
후에 그 아들 문익환도
1950년대에 프리스턴 대학으로 신학유학을 다녀오게됨
<윤동주 시인 아버지도 이곳에 사셨는데 그분도 목사님이셨음 >
이 두분이 문재린 목사님과 김신묵 여사님
16살과 17살에 결혼 하신 두분의 장남이 문익환 목사님이신데
아버지인 문재린 목사는 독립신문 기자로 활동
어머니 또한 명동 여학교등을 다니며 여성지도자로
독립운동을 하셨는데
1919년 3.1운동 이후
문재린 목사님은 마을이 피해 입을까봐
자진해서 출두해 옥고를 치르셨음
<이후에도 4번의 옥고를 치르심>
이때 어머니도 끌려가셨는데
1918년에 태어난 문익환 목사가 한 살때라
어머니 등에 업혀서 같이 연행되었다고
한살때부터 독립운동가 부모님등에 업혀
독립운동 조기 교육을....
문익환 목사님이 집안이 이러니 조선일보가 엄청나게 싫어함
집안 대대로 훌륭하니까
조선일보에서는 집안이 훌륭하다고 씹음
뭐라고 했냐면
월간조선에서 이런 기사를 썼음
문익환은 낮은대로 임하지만 그 집안은 성골이다
<태생이 다르다 하며 돌려까기>
그리하여 그는 부모님 예찬을 많이해서
주변인으로 부터 지적을 받을 정도다
부모님 자랑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 ㅎㅎㅎ 이걸 기사라고 썼음
아버지 어머니 자랑 그만하라고 월간조선이 씹음
근데 이 기사가 왜 나왔냐면
이 기사쓴 기자가 인터뷰 하려고
문익환목사님에게 전화를 했음
"아 여기 월간 조..."하는데
바로 "조" 자만 듣고 문익환 목사님 끊어버리셨다고 ㅎㅎㅎ
한없이 인자하신 목사님이시지만 쟈가울땐 쟈가운 남자
그래서 이 졸렬한 기자가 대놓고 이렇게 씹었던 것임
다물라 다물라 그 입 다물라
얼마전 조선일보 부장이
사설로 간장종지 두개 안줬다고 중국집 음식점 까던 그 졸렬함이 생각남
애네는 졸렬함과 비겁함이 전통처럼 이어지는 가봄
아니 아버지 대단하고 어머니 대단하고 아들까지 훌륭한걸
그럼 니들도 그렇게 살던가
지들은 부끄러운 친일파 집안이라 부러웠던지
문성근씨는 집안이 대대로 조선일보에 씹힘
암튼 이후 문익환 목사님은
1925년 명동소학교란 곳에 들어 가는데 윤동주 시인과 같이 다니셨음
그리고 은진 중학교에도 윤동주와 같이 입학함
-이 은진 중학교 출신으로는
송몽규시인
< 윤동주시인 사촌으로 같이 옥고를 치르고 돌아가심 ㅠㅠ>
나훈규 등 여러 인물들이
이 중학교를 나왔음 -
그러다 평양숭실중학교로 윤동주와 같이 전학를 가서 장준하를 만나게 됨
-이 학교에는
황순원 안익태 그리고 김일성(북한의 그 김일성)의 아버지도 여기 다녔다고 함 -
그리고 북간도 광명학원으로 전학을 가는데
여기도 윤동주 시인과 같이 다님
둘이 아주 완전 단짝임 단짝
-당시 장준하 선생님은 평양 숭실 신학교에 다니다가 전학을 가는데 광명학원은 아니였고
중간에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고 중학교 교사 생활을 잠깐 하게 됨
< 이때 만난 것이 하숙집 주인 딸이자 제자였던 부인 김희숙 여사 > -
그리고 나서 문익환 목사님은
1938년 도쿄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는데
<동생 문동환 목사님도 같이 다니셨음 >
여기서 다시 장준하 선생님과 만나게 됨
<교사 생활을 접고 장준하 선생님이 신학교 진학을 하셨음>
근데 이때는 윤동주시인은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해서 한국에 계셨음
짱절친과 헤어짐 ㅠㅠ
<나중에 도쿄로 오시는 데 신학학교 아니고 정지용 시인 존경해서 그가 다녔던 학교로 가심 >
문익환 목사님은
이 도쿄 신학대학에서 평생 사랑한 박용길 여사님을 만나게 됨
문익환 목사님은 어머니 김신묵여사에게
아내를 만난 것이 내 인생에서 최고의 보화를 얻은 것
이라고 편지 쓸정도로
엄청나게 부인을 사랑하셨음
처음 봤을 때 연분홍 코스모스 같았다고
평생 금슬이 좋으시고
편지를 쓸때도 항상 존경어를 쓰셨음
편지를 잠깐 한 소절만 보면
“오늘 새벽에 당신을 만났었죠.
그 꿈이 아쉬워서 오래오래 누웠다가 늦게 일어났지요.
지난 번 접견 때의 그 신선한 아름다움이
봄길의 향기로 코끝에 그대로 남아 있는 거죠.
30대의 젊음이 내 몸에 옮아 온 것 같군요.
이 편지를 많은 사람들이 보리라고 생각되어
이 정도로 우리의 젊음을 토로하고
이야기를 다른 데로 옮기기로 하겠소.”
이때가 76년 3.1민주구국선언으로
감옥 계셨을때 쓴거
문익환 목사님 환갑 때 였음
그리고 문익환 목사님만 이렇게 하신게 아니고
박용길 여사님도 남편에 대한 사랑이 극진하셨음
목사님이 감옥에 계시는 동안에
종류가 다른 이야기를
번호를 매겨가며
편지를 쓰실 때 꽃잎을 눌러서
매일 매일 편지 보내셨다고 함
“(지인의) 청첩장 표지에 하나가 된다는 것은 더욱 커지는 일이라고 써 있군요.
통일되는 것은 이 겨레가 더 커지는 일이라 생각하며 한 말인데
그게 두 젊은이가 한 가정을 이루는데도 의미있는 말이 되리라고는 미처 생각 못했군요.
그러고 보면 우리가 한 가정을 이루어 1년이 모자라는 50년을 살았는데
우리도 꽤 커졌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나는 당신을 만나 엄청나게 커졌다고 주저하지 않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이편지는 89년 방북하시고 감옥에 가셨을때
박용길여사가 문익환 목사님에게 쓰신거니까
일흔살이 넘으셨을때 셨음
문익환 목사님 호가 늦봄 이신데
박용길 여사님 호는 봄길 이심
>.<
1994년 문익환 목사님이 돌아가셨을때 김일성도 죽는데
이 때 서로 원수라고 싸우던 시기라 조문이나 그런거 없었음
근데 박용길 여사님은 오히려 방북을 결심
1주기때 다녀오심
“남편을 통일 제단에 바친 사람으로서
지도자를 잃은 북쪽 동포들과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었다.”
라고 말하셨다고
문목사님 돌아가신 후에
박용길 여사님이 그 삶을 그대로 이어서 사심
고은 시인은 이런 두분을 보며
"문익환이 박용길이고 박용길이 문익환이다 "
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함
첫번째 편에서 말했지만
문익환 목사님이 도쿄에서 공부하던 중에
강제징집 명령이 떨어지고
이것이 세분의 운명의 갈림길이 됨
문익환 목사는 학교 교장과 단판을 짓고 퇴학처분 받아 만주로 돌아갔고
장준하 선생님은 김희숙 여사가 위안부로 끌려갈 위기에 처했기 때문에
돌아가서 혼인을 올리고
<결혼한 여자는 잡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장준하 선생님이 공부하던 중간에 돌아가서 결혼하심>
결혼 2주만에 학도병으로 가게 되는데
아내에게 편지 말미에 돌베개라고 적으면 내가 탈출한 줄 알아라 말하고
실제 탈출해서 광복군이 되었으며
윤동주 시인은 내부 반란을 도모하다가 송몽규시인과 일본에서 잡히게 되었던 것임
그렇게 1943년 광복을 2년 앞두고
생체실험으로 윤동주 시인은 돌아가시게 되었고
어렸을 적 한동네에서 같이 나고 자란 윤동주의 죽음은
문익환 목사님에게 큰 충격이었고
어떤 부채감 같은 것도 있으셨던 거 같음
문익환 목사님은 늦봄이란 호를 쓰신
시인이시기도 했는데
젊은 시절에 시를 쓰지 않았던 이유가
너무 뛰어난 친구가 옆에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그리고 호를 늦봄으로 지은 이유는
장준하 보다 늦게 민주화 운동에 나섰다는 미안함에
늦봄이라고 지으셨다고 함 ... ㅠㅠ
이후 1945년 광복되자
아버지 문재린 목사님은
<그 당시 엘리트중에 엘리트셨으니 이승만 정권이 모셔가려고 함 >
우리나라 광복 되고 나서 이름을 "동진" 이라고 하려고 논의 하던 때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을 만나러
만주에서 서울로 가셨는데...
이승만을 만난후
그냥 돌아 오셨다고
아무런 말씀은 안하시고 그저
큰일이다 큰일이다.. ...
하셨다고
그 이후 분단으로
문재린 목사님과 문익환 목사님 동생인 문동환 목사님이
<목사님이 세분이라 목사님 목사님 어지럽 @.@>
먼저 서울로 내려왔는데
이승만정권에서 계속해서 모셔가려고 했음에도
다 거절하시고
문동환 목사님을 데리고 막노동을 하셨다고 함
힘들게 사시면서도 이승만 독재정권에 참여 하지 않으셨다고
<일제때 앞장서서 독립운동가 잡아가고
광복후에 기회주의로 이승만 독재정권에 편승해 또 한자리 하면서
그 자식들 모두 호의호식하고
그 돈으로 부유하게 살며서
연좌제 하지 말라는 말
어.쩔.수.없었다 라는 말
문재린 목사님과 문익환 목사님 같은 집안이 있는데
그분들 앞에서 이런말은
참 ... 비겁하다고 생각함 >
이런 아버지뿐 아니라 어머니도
89년 문익환 목사님이 72세 되던해 방북으로 재판받고 감옥에 갈때
95세 되던 어머니 김신묵 여사는 재판장에서
민족위해 일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재판을 받아라
라고 외치셨는데
문성근 아저씨 (이분의 할머니 되시니까) 말에 따르면
이 95세 할머니는 돋보기로 봐야 글이 보일 정도로 눈이 침침해 지셨을 때도
한겨레신문을 1면부터 끝까지 다 읽으시고
거기서 보고 전태일 열사 등 민주화 운동하다 고인이 되거나 옥고를 치르고 있는 사람들
다 써놓고 매일 기도하셨다고 함
돌아 가실 때에도
'나 죽거든 박수치며 보내 달라' 라는
유언을 남기셨다고
이런 부모님밑에서 어찌 잘못된 자식이 나올 수가 있겠음
이러니 조선일보가 그리 싫어 했지
45년 아버지와 동생이 먼저 내려오고
1946년에는 만주에 있던 문익환 목사님도 부인과 함께
서울로 내려 오게 되는데
그 동네 남아 있던 사람들과 같이 만주에서 부터 서울까지 걸어서 내려 오셨다고
오는 길에도 공산당 때문에 엄청나게 고생하시고
또 모두 먼저 보내고 가장 나중에 오셔서
3.8선 넘기전 마지막까지 고생을 많이 하셨음
그런데
문익환 목사님은 통일에 힘쓰셨던분이라
그걸 나쁜 독재 정권이 이용해서 빨갱이로 몰았음
사실 장준하 선생님이 엄청난 반공주의자 였던 것처럼
<그 원인이 광복군에 합류전에 공산당에 당하고
또 6.25전쟁에서 어머니와 큰딸을 잃고 이래서 였는데 >
문익환 목사님도 공산당에게 많이 당하셨음
공산당은 기독교를 허용 안했기 때문에 그 씨를 말릴려고 다 죽이고 그랬음
그래서 아버지 문재린 목사님이
중국과 소련 공산당에 피박당하고
죽임을 당할 뻔 했었고
46년에 문익환 목사님도 고향을 등지고 내려 온것이
공산당 때문이었음
6.25전쟁 날때 자원해서
UN 군에 입대해서
방첩부대 암호 첩보 통역 활동 하던곳에서 활약하심
공산당에 좋은 감정이나 경험이 없으심
그렇지만
북한하고 대화하고 그럴려면
그쪽 체재를 인정을 먼저해야한다
싫은 건 싫은 거고 안그러면 통일을 어떻게 하냐 하시면서
대화를 위해서 체제 인정을 한것뿐임
이런 분인데
진짜 공산당 남로당 당원이었던 박정희가
UN군 첩보대원이었던 문익환 목사님을 빨갱이로 몰아서
엄청난 피박을 받으셨음
이걸 이어 전두환도 빨갱이 두목으로 몰았고
김수영의 시중에 내가 좋아하는 시가 있는데
김일성 만세 -김수영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 대니
나는 잠이 올 수 밖에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 이란
관리가 우겨 대니
나는 잠이 깰수 밖에
<1960.10.06>
- 나는 이 시 읽을때 김일성 만세 이부분에 움츠려 들었음
그리고 그러는 날 보며
스스로 얼마나 검열하는지
그리고 경직되어 있는지 새삼 느끼게 됨
이 시가 1960년 때 지어진 시인데
박정희가 5.16 쿠테타 일으키기전 장면 정권때 지어진 시임
근데... 지금 2015년 55년이 지났는데
어쩌면 더 경직되어 있지 않나 생각이 들기도 함
종북이 뭔지도 모르면서 종북거리면서 그게 하나의 신호처럼
누군가에게 종북딱지를 붙이면 그 이후 사회가 이지메 하듯
매장하고 몰아가지
이 종북 딱지가 얼마나 유용한지
55년이 지나도 쌩쌩하네 ..
문익환 목사님의 삶을 돌아보다 보니 이 생각이 많이 듬
1945년 광복후에는
1947년 한국신학대학 <현 한신대학> 졸업하시고
프리스턴 대학으로 유학가셔서 55년도에 학위를 받고 돌아오시게 되는데
그 이후에는 한빛교회에서 목회자로
한신대학교랑 연세대에서 강의 하시면서
신구교 공동구약번역 책임위원으로 8년간 성경 번역을 하심
이전에 말했듯이
그전까지 번역이 허용되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번역이 허용되었고
그 번역자로 문익환 목사님이 맏으시게 되었으니
목회자로서 정말 중대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
이 일에 매진하셨는데
이 번역이 끝나갈 즈음 장준하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그 다음해 3.1 민주구국선언을 주도해서
감옥에 들어가시게 되면서
마지막 감수 작업을 못하시게 된것임
ㅠㅠ
감옥에서 성경책만 보게 해달라고 했는데
그걸 허용안해줬다고
<진짜 치사하고 나쁨 이쪽 졸렬함도 대를 잇는거 같음>
그래서 목사님은 평생 소명으로 생각하셨던 일인데
이 마지막 작업을 못하신게 못내 한이 셨다고 함...
다음은 박정희 정권 몰락의 시초 - 3.1 민주구국선언
집안이 다 훌륭하니 이야기가 끝이 없구먼... ㅠㅠ
1.< 그때 그시절 > 독립운동에서 민주화 운동까지 프롤로그 그리고 윤동주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27019
2.<그때 그시절> 독립운동에서 민주화운동까지 반드시 알아야할 인물 장준하 <feat 박정희가 가장 두려워한 인물>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27207
3.[그때 그시절] 독립운동에서 민주화 운동까지 - 김구와 장준하 (feat 일본군이 먹다 남은 음식을 개처럼 받아먹은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27704
4.[그때 그시절] 독립운동에서 민주화 운동까지 - 1950년판 컨트롤비트 첫번째 (feat.사상계)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29356
5. [그때 그시절] 독립운동에서 민주화 운동까지 - 1950년판 컨트롤비트 두번째 (feat.사상계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29468
6. [그때 그시절] 독립운동에서 민주화 운동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 (feat. 장준하 죽음의 키 김용환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31057
7.[그때 그시절]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의문사 그것이 알고 싶다 < feat. 사건의 재구성 김용환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31934
8.[그때 그시절]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의문사 그것이 알고 싶다 < feat. 사라진 9시간 >
9.[그때 그시절]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의문사 진상조사 위원회 < feat. 근접한 진실 >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33340
10. [그때 그시절]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의문사 (feat .오후 3시 의문의 괴전화 )
11.[그때 그시절] 세명의 거짓말쟁이와 유골이 말해준 진실 (feat.장준하 죽음 그후)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38763
12.[그때 그시절] 친구를 가슴에 묻고 민주주의 투사가 된 목사님 문익환- 프롤로그 (feat.문성근)
http://cafe.daum.net/subdued20club/ReHf/1143159
첫댓글 대박이다...
진짜 막힘없이 정독했어 이런 글 너무 고마워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잘보고 생각날때와서 또보고 할게!!
우와 진짜 좋은 글이야
와... 멋있다... 정독했어! 이런 글 올려줘서 고마워 가슴이 찡하다 ㅠㅠ
와 진짜 고맙다 이런 글!
여시 좋은글 써줘서 고마워 ㅠㅠ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2.08 17:46
여시야 지금 1편부터 읽고 오는 길이야... 진짜 이런 글을 정리해서 써주다니 대단해 정말로... 다시 역사 공부를 하고 있고 이제 근현대사를 공부하고 있는데 알고있으면서도 다시 보니까 너무 소름돋는다 이밤에.. 윤동주시인부터 장준하선생님의 죽음까지... 어느 하나 그냥 넘어 갈것이 없는데.. 오늘 동주 영화를 또 보고 오면서 더 느끼는 것이 크네 다음글이 올라 올지 안올라 올지는 모르지만 이런글 써줘서 너무 고마워ㅠㅠ 혹시 괜찮은 책 있으면 또 추천도 해주고 그래줘ㅠㅠㅠㅠ 여시같은 사람이 많아져야 대한민국 미래도 밝을텐데... 댓글이 너무 없네..ㅠㅠ 너무 너무 고마워!!! 정말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