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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추(奴酋)와 조선(朝鮮)은, 동(東)쪽으로 국경(國境)을 맞대고 [제2편]
「乃奴之東, 褊與王壤界 : 奴酋의 東쪽으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만큼」
2025년 01월 16일
○ 전회(前回) “1편”에서 「“명(明)과 노추(奴酋)와 조선(朝鮮)”은 “서(西)쪽으로부터 동(東)쪽에 이르는 지리적(地理的) 위치(位置)에 있었다”」라는 것을 설명(說明)하였다.
특히 「광해군(光海君)이 출정(出征)시킨 3만여(萬餘) 병사(兵士)들이 요수(遼水)【도요(渡遼)=도요(度遼)】를 건넜다」라는 기록(記錄)은, 지금(只今)까지의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친일사관(親日史觀)】논자(論者)들인 식민사학자(植民史學者)들의 주장(主張)을 「한판으로 꺾었다(勝)」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제2편”으로 계속(繼續) 해설(解說)해 나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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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편 : 속잡록(續雜錄) / 조경남(趙慶男, 1570~1641) : 〈本文 : 春正月, 楊鎬與諸將, 議定北伐之計, 分付各鎭, 姜弘立等在昌城, 十二日, 率諸將領軍‘渡遼’ : 봄 정월, 양호【楊鎬, 명나라의 요동경략(遼東經略)으로 후금 정벌을 이끌었던 장수】와 제장(諸將)들은, 북벌(北伐)할 계획을 의논하여 정하고 각 진(鎭)에 분부하였다. 강홍립(姜弘立) 등은 창성(昌城)에 있다가, 12일에 여러 장수들과 군사를 거느리고 요수(遼水)을 건넜다. 】에서 이어지는 기록(記錄)이다.
[1편(篇)에 이어, 2편(篇)으로 계속]
(2) -1) 속잡록(續雜錄) / 조경남(趙慶男, 1570~1641)「本文 ➋ : 三月初四日, 提督劉綎等敗沒于胡中, 姜弘立等被執, 左營將宣川郡守金應河力戰死之. : 3월(月) 초 4일(日), 제독(提督) 유정(劉綎) 등은 오랑캐 진중에서 패사(敗死)하고, 강홍립(姜弘立) 등은 잡혔으며, 좌영장(左營將) 선천군수(宣川郡守) 김응하(金應河)는 힘껏 싸우다가 죽었다. 先是, 大軍回自炭峴, 楊鎬改發分付, 月初一日爲師期. 去二十一日行軍, 分三道擬達建州. 劉綎兵由東路, 杜松兵由西路進兵, 俱被敗沒. : 이에 앞서 대군(大軍)이 탄현(炭峴)으로부터 돌아왔을 때, 양호(楊鎬)는 다시 분부하여, 그달 1일 군대를 움직일 기일로 정했다. 그래서 지난달 21일 행군하여 세 길로 나누어 건주(建州)에 도착하려고 하였다. 유정(劉綎)의 군대는 동로(東路)로, 두송(杜松)의 군대는 서로(西路)로 진병(進兵)했으나 모두 패하여 죽음을 당하였다」라고 하였다.
➨ 「去二十一日行軍, 分三道擬達建州. : 21일 행군하여, 세 길로 나누어 건주(建州)에 도착하려고 하였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당시에 건주(建州) 즉(卽) 심양(瀋陽)에는 명(明)의 총사령관(總司令官) 아영(牙營)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치라’는 여진(女眞) 노추(奴酋) 노이합적(奴爾哈赤)은 놔두고 심양(瀋陽)에 모여 “소주(燒酒) 한 잔 캬∼하려 했을까?”
그게 아닌 것이 「양호(楊鎬) 요동경략(遼東經略)」은 바로 “북벌(北伐)”을 하려 했기 때문이다. 심양(瀋陽)에 총관(總管)이 설치(設置)되어 있으니, 이곳에서 집결(集結) 후(後), 곧 북벌(北伐)을 감행(敢行)하려 했기 때문이다. 「여진족(女眞族)은, 오늘날의 만주(滿洲) 땅에 없었다.」라는 뜻이다. 아래의 글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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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谿谷先生集卷之三十.七言律.一百六十首.聞瀋陽不守二首 : 심양(瀋陽)이 함락(陷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지은 시(詩) 두수
《遼河消息不堪聞. 羯虜南來氣若雲. 方略舊稱熊御史. 摠戎新失賀將軍. : 요하(遼河)의 소식을 어찌 차마 들을 수 있겠는가. 오랑캐(羯虜)들 구름처럼 남침(南侵)했다네. 방략으로 이름났던 웅어사 뒤를 이어, 총융(摠戎) 하(賀) 장군을 지금 또 잃었으니, 金戈未蹀氈裘血.粉黛都隨鐵馬群.廊廟諸公皆肉食.擬將何策靜妖氛. : 금과(金戈)에 전구(氈裘)의 피를 묻혀 보지도 못하고, 분 바른 미인(粉黛)들은 철기마(騎馬兵) 무리들에게 끌려갔네. 조정(廊廟)의 여러 대신(大臣) 모두는 고기 먹고 있는데, 장차 무슨 계책으로 요기(妖氣)를 몰아낼 수 있겠는가》하였다.
➨ 여기서 중요(重要)한 것은 :「羯 虜 南 來 氣 若 雲 : 오랑캐(羯虜)들 구름처럼 남쪽으로 왔다네」하는 구절(句節)이다.
이 말은 〈당시(當時) 노이합적(奴爾哈赤)의 수많은 무리들이【후금(後金) 군대(軍隊)】남(南)쪽으로 진군(進軍 : 南侵)하여 명군(明軍)을 쳤다〉라는 이야기다.
위의 글 「속잡록(續雜錄) / 조경남(趙慶男, 1570~1641)」에서 설명(說明)하는 “북벌(北伐)”과 직접적(直接的)으로 연결(連結)되는 기록(記錄)이다.
〈조선사(朝鮮史)는, 오늘날의 “만주(滿洲) 땅에 여진족(女眞族)은 없었다.”라는 것을 일관(一貫)되게 말해주고 있다〉라는 사실(事實)에 주목(注目)해야 한다.
➥ 이상(異狀)하지 않은가? 후금(後金)은, 여진족(女眞族)으로, 노이합적(奴爾哈赤)은, 백두산(白頭山) 동(東)쪽에서 시원(始原)하여, 주변(周邊)의 여러 부족(部族)과 종족(種族)들을 토벌(討伐), 서(西)쪽으로 진출(進出)하여, 건주(建州) 곧 심양(瀋陽)을 점령(占領)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남(南)쪽으로 내려와 심양(瀋陽)을 점령(占領)했다고 할까?
「심양(瀋陽)【연행사신(燕行使臣)들은, “사막(沙漠)의 한 가운데(沙漠之中)에 있었다”라고 하였다】」, 이곳에서 명(明)나라의 웅어사【熊御史 : 웅정필(熊廷弼)】가 후금(後金)의 침입(侵入)을 막고 있었는데, 뒤에 왕화정(王化貞)이 패전(敗戰)과 관련(關聯)되어 사형(死刑)당했고, 뒤이어 총병관(摠兵官)으로 하세현(賀世賢)이 왔으나, 심양(瀋陽)이 함락(陷落)될 때, 전사(戰死)했다고 전한다.
➨ ‘식민사관(植民史觀)=반도사관(半島史觀)’의 설명(說明)대로라면 : 「후금(後金)의 노이합적(奴爾哈赤)은, 동(東)쪽에 있었으므로, 서진(西進)해야 심양(瀋陽)을 점령(占領)할 수 있다.」 그러나 위의 ‘계곡집(谿谷集)’에서 말하는 바에 따르면 : 「남래(南來) 즉(卽) 남진(南進)하여, 심양(瀋陽)을 점령(占領)했다」라고 했으니, 〈당시(當時) 후금(後金)은, 심양(瀋陽) 북방지대(北方地帶)인 내몽고(內蒙古) 또는 외몽고(外蒙古) 땅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친일사관(親日史觀)】논자(論者)들의 주장(主張)대로라면, “역사(歷史)가 아닌 코미디일 뿐이다”
「후금(後金)」, ‘지’들의 역사서(歷史書)인 ‘청사고(淸史考) 본기(本紀)’에서 말하기를 : 〈장백산(長白山) 동(東)쪽의 아막혜(俄漠惠)의 들판 아타리성(俄朶里城)에서 살았는데, 그 부족(部族)을 처음으로 만주(滿洲)라고 불렀다. 만주(滿洲)는 이게 처음이다【居長白山東俄漠惠之野俄朵里城號其部族曰滿洲. 滿洲自此始)】〉라고 하였다.
➥ 곧, 오늘날의 ‘한반도(韓半島) 북방지대(北方地帶)’에 있는 ‘백두산(白頭山)=장백산(長白山)’이 아닌 : 「1만(萬) 5 천리(千里) 서(西)쪽 땅의 ‘백두산(白頭山)=장백산(長白山)’을 말하는 것이다」
여러 글에서 「심양(瀋陽)은 사막(沙漠)지대에 있고, 그 남쪽에 명(明)나라가 있었다」라는 이야기며, 그곳은 북(北)쪽에 사막(沙漠)이 있는 곳으로 이동(移動)되어야 마땅한 것이다. 이게 중요(重要)한 것이다. 대륙(大陸)의 요충지(要衝地)에는, 조선왕조(朝鮮王朝)가 자리 잡고 있어야 올바른 역사(歷史)가 전개(展開)될 수 있다.
(4) 번암집(樊巖集)【채제공(蔡濟恭, 1,720~1,799)】제8권 / 시(詩) 재필록(載筆錄) 고이도대렵가〔古珥島大獵歌〕
「珥島宛一夷夏閾, 豆滿江波囓不得 : 고이도라 완연히 화이(華夷)의 경계, 두만강 물결조차 삼키지 못하였네. 葭葦冥冥長數丈, 雉兔麋鹿成窟宅 : 갈대숲 무성하고 높이는 몇 장, 꿩 토끼 사슴들의 소굴이 되었어라. 評事出號期大獵, 夜宿訓戎晨結束 : 평사가 호령 내려 사냥을 약속하니, 훈융진에서 밤을 묵고 새벽에 모였도다. 중략(中略), 沙磧黯淡殺聲集, 蕩穴擣巢殊不遲 : 모래벌판에 암담히 살육 소리 가득한데, 굴과 둥지 소탕함에 너무도 주저 없네. 중략(中略), 隔江相呼欲有問, 其奈語言皆侏離 : 강 사이로 서로 부르며 묻고자 하여도, 어이하랴 언어가 다 오랑캐(侏離) 말인 것을, 중략(中略).」하였다.
❶ 〈고이도(古珥島)는 이하(夷夏)의 경계(境界)다 : 珥島宛一夷夏閾〉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고이도(古珥島)”의 북방지대(北方地帶)는 하(夏) 곧 화(華)요, 중국(中國)이며, 그 남(南)쪽 땅은 오랑캐 곧 이(夷)였다」라는 말인데,
고이도(古珥島) : 경흥(慶興) 땅 두만강(豆滿江)에 있는 조그만 섬(島)이었으나 뒤에 토사(土砂)가 쌓여 두만강(豆滿江) 남안(南岸) 땅이 되었다는 곳인데, 이곳에 정계비(定界碑)가 전해온다고 한다. AD 1,914년 일제(日帝)에 의한 “조선(朝鮮) 고적(古蹟) 조사(調査)”중에 촬영(撮影)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어째서 이 땅에 있는 수많은 고적(古蹟)이나 비문(碑文)들은 1,900년(年) 이후(以後)에 일제(日帝)에 의해 조사(調査), 발견(發見)되어 촬영(撮影)된 것들만 전(傳)해지고 있는 것이냐?」 하는 문제(問題)를 제기(提起)하는 것이다.
➨➨➨ 결국(結局), 1,900년대(年代) 이전(以前), 이 땅【한반도(韓半島) 땅과 그 북방지대(北方地帶)】에는 문자(文字)도 없었고, 백성들은 100% 문맹(文盲)으로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소통(疏通)하며, 개돼지처럼, 금수(禽獸)처럼 살았다는 것을 강조(强調), 증거(證據)하는 것들 뿐이다. 이게 5,000년(年) 역사(歷史)를 가진 민족(民族)이냐?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친일사관(親日史觀)】논자(論者), “이놈”들에게 물어보자. 반만년(半萬年) 역사(歷史)는 어디에서 전개(全開)되었던 것이냐? 개(犬)처럼, 소(牛)처럼, 돼지(豚)처럼, 금수(禽獸)처럼 반만년(半萬年)을 이 땅에서 살았다는 것이냐?
그 북방지대(北方地帶)에 사는 종족(種族), 부족(部族)을 “되놈이니 오랑캐(胡)”라고 부르는 것은 : 「하(夏) 곧 화(華)요, 중국(中國)을 무시(無視)하는 것이요, 천자(天子)를 욕뵈는 대역죄(大逆罪)를 짓는 일이요, 대역죄(大逆罪)는 기시(棄市)와 더불어 삼족(三族) 또는 구족(九族)의 남자(男子)들은 참수(斬首)되고, 여인(女人)들은 노비(奴婢), 관비(官婢)가 되어 가문(家門) 자체(自體)가 멸문(滅門)된다.」 이래도 조선(朝鮮)의 사대부(士大夫)들이 “되놈이니 오랑캐(胡)”니 하고 불렀을까?
곧, 「반도(半島) 땅에서 이러한 역사적(歷史的) 사실(事實)은 없었다」라는 것이고, 「이는 중원대륙(中原大陸) 땅에서 벌어졌던 일이다.」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➋ 위의 글에서 「당시(當時)의 조선왕조(朝鮮王朝)는 반도(半島)가 아닌 중원대륙(中原大陸)에 있었다」라는 아주 중요(重要)한 단서(端緖)가 있다. 즉(卽) 「隔江相呼欲有問, 其奈語言皆侏離 : 강 사이로 서로 부르며 묻고자 하여도, 어이하랴 언어가 다 오랑캐(侏離) 말인 것을」하였는데,
「이는 당시(當時), 두만강(豆滿江) 건너에 사는 이민족(異民族)은, 오랑캐(侏離)였다」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주리[侏離 : 오랑캐]”는 정확(正確)하게 어디에 있는, 어떤 종족(種族)이나 부족(部族)을 말하는 것일까?
이것만 확실(確實)하게 밝혀도 “조선왕조(朝鮮王朝)”가 어디에 있었느냐? 하는 문제(問題)를 밝혀낼 수 있다. 자! 하나하나 알아보기로 하자.
「고전번역원 DB」에 의하면 : 「관연록(觀燕錄)」은 1,804년 동지사(冬至使)의 일행으로 북경(北京)에 다녀온 아산(牙山)의 선비 “김선민(金善民, 1,772~1,813)”이 이듬해인 1,805년에 정리한 대청 사행 기록이다. 현재 원본은 미국 의회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원문을 일반에 서비스하고 있다.」라고 친절(親切)하게 설명(說明)하고 있다.
이곳에 “되놈 주리(侏離)”가 기록(記錄)되어 있으며, 그 주석(注釋) 편에서 : 《주-D001 / ‘되놈의 것’ : 원문(原文)은 ‘주리(侏㒧)’로 ‘주리(侏離)’를 말한다. 주리(侏離)는 중국 고대 서방의 소수민족, 혹은 그들의 음악을 가리키는 말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오랑캐의 소리를 뜻하기도 한다.》라고 하였다.
옳은 말이다. 「주리(侏離)란 ‘되놈’」을 말하는 것으로, 서방(西方)에 사는 이민족(異民族)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다면 : 두만강(豆滿江) 건너에 있는 이민족(異民族)은, ‘되놈’이라고 불리던 서방(西方)의 이민족(異民族)으로, 또 ‘호자(鬍子)’라고도 불리는데, 수염이 긴 서방(西方)인들을 칭(稱)하는 말이다.
(5) 관연록(觀燕錄) 상(上) / 1,804년(純祖4, 甲子) / 11월 27일 아침에 맑고 저녁에 흐림
※ 觀燕錄 1,804년 11월 27일 원문(原文) 이미지【출처(出處) : 한국고전번역원 DB】
◆ 관연록(觀燕錄) 본문(本文) : 「밥을 먹은 뒤에 후원(後園)에 올라 관제묘(關帝廟)와 여러 제불(諸佛)을 모신 정전(正殿)을 보았다. 돌아서 민가(民家)로 들어가 마려(磨驢 방아를 돌리는 나귀), 바늘〔針〕, 신발〔履〕, 양아(養兒), 주은(鑄銀 주조한 은) 등 각양의 물건을 보았다. 비록 그것에 대해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말이 ‘되놈(侏㒧)’의 것이라 다시 캐묻지 않았다.」라고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臨水埜中飯 : 물에 임해 들에서 밥 지어 먹고, 中略, 侏㒧何所道 : ‘주리(侏㒧)’들이 무엇을 말하거나, 腥臊欲掩鼻 : 누린내에 코를 가리려 했지, 中略, 鞘頭北風利 : 칼집 끝에 북풍이 날카롭다」라고 하였고,
「天寒霜薄坐深更 : 찬 하늘에 서리 내릴 제 밤늦도록 앉았는데, 鬍子當門語不明 : 문 앞에 서 있는 되놈의 말 분명찮네. 來日又從何處去 : 내일은 또다시 어디로 가야하나, 鳳凰山外鳳皇城 : 봉황산(鳳凰山) 밖에는 봉황성(鳳皇城)이 있네.」하였는데, 여기서
❶ 〈주리(侏㒧) : 주리(侏離)〉란 무슨 말일까? 그 주석(注釋) 편에서 : 「주-D001 / ‘되놈의 것’ : 원문은 ‘주리(侏㒧)’로 ‘주리(侏離)’를 말한다. 주리(侏離)는 중국 고대 서방의 소수민족, 혹은 그들의 음악을 가리키는 말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오랑캐의 소리를 뜻하기도 한다.」라고 하였다.
「되놈」이란 ‘호(胡) 또는 호자(鬍子)’를 말하는 것인데, 곧 얼굴에 수염과 구렛나루 털이 많은 서방(西方) 이민족(異民族)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청(淸)」의 여진족(女眞族)을 말하는 것이고, 그들의 몸에서는 누린내가 코를 찌른다고 하였다.
더불어 이들을 지칭(指稱)하여 「주리(侏㒧)=주리(侏離)」라고 하였는데, 「주리(侏㒧)=주리(侏離)」는, ➨「고대(古代) 서방(西方)의 야만족(野蠻族)」을 말하는 것이다.
➨➨➨「여진족(女眞族)【여진족(女眞族)➙말갈(靺鞨)➙물길(勿吉)➙읍루(挹婁)➙숙신민(肅愼民= 肅愼國=肅愼氏)】은, 동북방(東北方) 종족(種族)이 아니라, 서방(西方) 종족(種族)【호(胡)=호자(鬍子)】이었다」라는 것을 확인(確認)시켜주는 아주 중요(重要)한 내용(內容)이다.
여진족(女眞族)은, 「조선인(朝鮮人)과 그 외모(外貌)가 전혀 달랐다」라는 뜻이다. 특히 봉황산(鳳凰山)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이곳은 당시(當時) ‘건주위(建州衛)의 땅’이었고, 건주여진(建州女眞)이라는 말이고, 이는 곧 이들이 바로 ‘올량합(兀良哈)=오량해(烏粱海)’족이라는 이야기다.
「조선사(朝鮮史)」에서 「건주여진(建州女眞)은 곧 오량해(烏梁海)이고, 올량합(兀良哈)」인데, 이들은 본시(本是) 「만주(滿洲)【예니세이강[Yenisei River] 서(西)쪽으로부터 우랄산맥[Ural, Mt=오랍산맥(烏拉山脈)까지의 서(西) 시베리아(Sibera) 저지대(低地帶)】땅」에서 살던 자(者)들이다. 이들을 가리켜 “김선민(金善民)”은, ‘되놈’이라고 하고, ‘주리(侏離)=주리(侏㒧)’로 표현(表現)했다. 100% 옳은 말이다.
➨ 「주리(侏離)=주리(侏㒧)」란 「고대(古代) 서방(西方)의 한 종족(種族)」을 일컫는 말이다.
➋ 위의 본문(本文) 글을 보면 : 「호자(鬍子)」는 또 무슨 뜻인가?
「고전번역원 DB : 그 주석(注釋)」을 보면 :「[주-D003] 되놈 : 원문은 ‘호자(鬍子)’다. 호자(鬍子)는 긴 수염이나 수염이 긴 사람을 가리키기도 하고, 과거 중국 동북 일대에 활동한 토비(土匪)를 일컫기도 한다.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썼다」라고 하였는데,
서방(西方)에 살던 종족(種族)이 갑자기 동북방(東北方) 반도(半島) 북방지대(北方地帶)에서 토비【土匪=土寇=土賊 : 지방(地方)에서 일어난 도적 떼】짓을 할 수 있었겠는가?
➨「호자(鬍子」: 긴 수염이나 수염이 긴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서방(西方)의 이민족(異民族)을 지칭(指稱)하는 말이다. 반도(半島) 또는 그 북방지대(北方地帶)의 종족(種族)들과는 전혀 관계(關係)없는 서방(西方)의 이민족(異民族)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호자(鬍子)」란 : 「뜻을 나타내는 터럭 발【髟(머리털, 수염, 늘어짐) 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胡(호)가 합(合)해진 글자다.】“호(鬍)”자는 오랑캐의 이름으로도 쓰이고, 수염과 구레나룻【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가 많은 이민족(異民族)인 서방(西方) 오랑캐(胡)들을 일컫는 말이다. 동양인(東洋人)과는 전혀 다른 외모(外貌)를 가진 자(者)들이다.
이러한 종족(種族)이나 부족(部族)은, 동북(東北) 지방에 존재(存在)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자(者)들은, 「서방(西方) 종족(種族)」이기 때문이다.
➌ 위의 본문(本文) 글에서 말하는 것은 : 청인(淸人) 역시 몽고인(蒙古人)들과 좀 다르긴 하지만 유사(類似)한 종족(種族)으로, 「되놈(胡 : 鬍子)이며, 주리(侏離)로, 몸에서 누린내가 풍기는 자(者)」들이란 이야기다.
➍ 「필자(筆者) 주(注)」 : 「주리(侏離)」란 「서방(西方)의 악(樂)」을 말하는 것으로, 「서방종족(西方種族)」을 뜻하는 말이다. 많은 ‘고전(古典) 사료(史料)’를 보면 : 『東 曰 韎, 南 曰 任, 西 曰 侏 離, 北 曰 禁 : 동(東)은 매(韎)라 하고, 남(南)은 임(任)이라 하고, 서(西)는 주리(侏離)라 하고, 북(北)은 금(禁)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는데, 「주리(侏離)는 서방(西方)의 악(樂) 또는 서방(西方) 종족(種族)」을 일컫는 말이다.
【혹자(或者)는, 효경구명결(孝經鉤命決)과 통전(通典)을 인용(引用)하여 : 「東 曰 侏 離 : 동(東)은 주리(侏離)」라고 전혀 다르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는 큰 오류(誤謬)다. 고증(考證)에 또 고증(考證)이 필요(必要)로 한다.】
『 韎 』 : ‘동방(東方)의 음악(音樂)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자사전’에서도 설명(說明)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大部分)의 ‘고전(古典) 원문(原文)’을 살펴보면 : 「주리(侏離)는 서방(西方)의 종족(種族) 또는 악(樂)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옥편(玉篇)에서는 : 「매(韎) : 동방종족(東方種族)의 악(樂)의 이름이다.」라고 하였다.
【동사강목(東史綱目)·周禮卷24 四夷之樂·선화봉사고려도경 제40/악률(樂律)·해동역사(海東繹史) 주례(主禮) 주(注)·樂書(四庫全書本)/卷173·五禮通考(四庫全書本)/卷071 외(外) 많은 사료(史料)가 「서방(西方)의 것을 주리(侏離)」라고 하였다.】
【해동역사(海東繹史) 제22권 / 악지(樂志) 악제(樂制)와 악기(樂器)를 보면 : ➀ 동이(東夷)의 음악은 매(佅)라 하는데, 창을 잡고서 시절에 맞게 자라나는 것을 도우며, ➁ 남이(南夷)의 음악은 임(任)이라 하는데, 활을 잡고서 시절에 맞게 기르는 것을 도우며, ➂ 서이(西夷)의 음악은 주리(株離)라 하는데, 도끼를 잡고서 시절에 맞게 죽이는 것을 도우며, ➃북이(北夷)의 음악은 금(禁)이라 하는데, 방패를 잡고서 시절에 맞게 저장하는 것을 돕는다. 「효경구명결(孝經鉤命決)」】라고 하였다.
또 옥편(玉篇)을 찾아보면 : 「매(韎) : 동방종족(東方種族)의 악(樂)의 이름이다.」라고 하였다.
➥ 「주리(侏離)는 서방(西方)의 종족(種族) 또는 악(樂)을 말한다.」라고 하였고, 위에서 말하는 것은, 당시(當時)의 주리(侏離)는 바로 여진족(女眞族)을 말하는 것이고, “되놈”인 “호(胡)=서융(西戎)=서호(西胡)=호자(鬍子)”들을 일컫는 말로 쓰인 것이다.
〈조선(朝鮮)은 반도(半島) 땅에 없었다. 반도(半島) 북방지대(北方地帶)에 여진족(女眞族 : 되놈 : 胡)은 없었다〉
이러한 역사적(歷史的) 사실(事實)은, 이미 4,000여 년(餘年) 전(前)에 기록(記錄)된 “산해경(山海經)”과 맥(脈)을 같이 하는 것으로, 이를 뒤엎을 만한, 배치(背馳)되는 설명(說明)은, 오직 20세기(世紀) 이후(以後)의 사가(史家)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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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진족(女眞族)은, 반도(半島) 북방지대(北方地帶)에 존재(存在)할 수 없다. 21세기(世紀) 작금(昨今)에도 그들의 후예(後裔)들은 반도(半島) 북방지대(北方地帶)에 존재(存在)하지 않으며, 여진(女眞)의 선대(先代) 말갈(靺鞨)의 후인(後人)들을 이르기를 :「마자르[magyar(ok)]」라고 부리며, 지금도 구라파(歐羅巴) 땅에서 잘 먹으며 살아가고 있다〉라는 사실(事實)이 우리를 격노(激怒)하게 만든다.
또 이들 「마자르[magyar(ok)]」족(族)은, 헝가리[Hungary]를 거점지(據點地)로 하여 살고 있으나, 루마니아[Romania]에 일백(一百) 만(萬) 정도가 있으며, 그 외(外)에도 여러 곳에 살고 있는데, 세르비아[Serbia], 몬테네그로[Montenegro], 크로아티아[Croatia],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osnia and Herzegovina], 슬로베니아[Slovenia], 체코[Czech], 슬로바키아[Slovakia], 우크라이나[Ukraine], 러시아[Russia], 폴란드[Poland], 미국[USA], 캐나다[Canada],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에도 소수민족(少數民族)으로 실존(實存)한다고 하는데, 미국[USA], 캐나다[Canada],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 등지(等地)의 「마자르[magyar(ok)]」족(族)은 아마도 이민(移民)일 것으로 파악(把握)되는 것이다.
〈이들 「마자르[magyar(ok)]」족(族)은, 기원전(紀元前) 3,000년경 볼가강[Volga, R]과 우랄산맥【Ural, 산맥(山脈)=오랍산맥(烏拉山脈)】에 거주하던 ‘피노-우그리아(Finno-Ugric)’ 계통(系統)으로 추정(推定)한다【출처(出處) : 네이버 두산백과 인용(引用)】〉고 하는데,
❶ 이는 기원전(紀元前) 2,200년경(年頃) 우(禹) 임금 때 저술(著述)된 것으로 여겨지는 “산해경(山海經)”속에서도 「“숙신민(肅愼民)=숙신씨(肅愼氏)=숙신국(肅愼國)”은 북(北)쪽과 서(西)쪽 사이에서 살던 종족(種族), 부족(部族)이다」라고 했으며,
➋ 전한(前漢)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BC 179年 ~ BC 122年】이 당시(當時) 방방곡곡(坊坊曲曲)의 빈객(賓客)과 방술가(方術家) 수천인(數千人)을 모아 저술(著述)했다고 전해지는 “회남자(淮南)” 속에서도 「“숙신민(肅愼民)=숙신씨(肅愼氏)=숙신국(肅愼國)”은, “서방(西方)과 북방(北方) 간(間)에 살던 종족(種族)이며 부족(部族)이었다”」라고 하였다.
➌ 「고조선(古朝鮮)【단군조선(檀君朝鮮)】」때는, 고조선(古朝鮮)의 ‘제후(諸侯)와 제후국(諸侯國)’으로 옛 조선(朝鮮)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우리와는 익숙한 종족(種族), 부족(部族)이며, 이민족(異民族)이다.
➍ 「고구려(高駒驪)」는, 「이들 말갈(靺鞨)을 정복(征服)하고, 수당(隋唐)의 전쟁(戰爭)에 투입(投入)했으며, 고구려(高駒驪)가 당(唐)에 의해 무너지자, 또 고구려(高駒驪) 부흥군(復興郡)으로 출전(出戰)하여 당군(唐軍)과 치열(熾烈)한 전투(戰鬪)를 치뤘다.」
이는 ‘역사적사실(歷史的事實)’로 수당(隋唐) 때의 고전(古典) 역사서(歷史書)가 이를 증거(證據), 증명(證明), 확인(確認)해 주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歷史的) 사실(事實)을 왜곡(歪曲), 조작(造作)하여 “조선(朝鮮)은 반도(半島)에 있었다”라고 한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친일사관(親日史觀)】논자(論者)들은 일제(日帝)에 부역(附逆)한 매국노(賣國奴)들이다.
「“숙신민(肅愼民)【肅愼氏)=肅愼國】”은, 본시(本是)“서방(西方)과 북방(北方) 사이에 살던 종족(種族), 부족(部族)으로 서방(西方) 이민족(異民族)이다”」
➨➨➨ 「이러한 ‘여진족(女眞族)=말갈족(靺鞨族)’을 2 만리(萬里) 극동(極東) 땅, 반도(半島) 북(北)쪽에 옮겨 놓고, 그 남(南)쪽에 조선(朝鮮)이 있었다」라고 한 “놈”들이 누군가? 바로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친일사관(親日史觀)】논자(論者)들이다. “이놈”들을 어찌해야 할까?
2025년 01월 16일 [글쓴이 : 문무(文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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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다음 게재 내용은 : 신증동국여지승람[한국고전번역원DB]편에 추가로 삽입{고전번역원에서 임의로 추가한 것임}, 설명되어 있는 "대동지지(大東地志 : 김정호 저술)"속에서 설명하고 있는 "함경도" 땅이, 진짜 "반도 함경도 땅인기?"에 대해 고전원문을 중심으로 알아보고자 합니다.
* "김정호"라는 인물이 실제 인물인가? ... ...그가 저술했다는 "대동지지" 함경도 편을 보면 : 한반도 땅이 아닌 수만리 떨어진 서북(西北) 땅을 말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어이없는 일이지만 팩트는 팩트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문무선생님 감사합니다
매서운 추위에 항상 건강하세요
"대진"님!
감사합니다.
몸도 마음도 추운 때입니다.
모쪼록 댁내 모두 평안하시고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