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친구 사이의 우정이 강할까, 연인 사이의 사랑이 강할까? 마치 어린아이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하는 질문 같기도 합니다. 좀 성격이 다르기는 하지만 비교하기 어려운 상황 아닌가 싶습니다. 그 어느 쪽이든 때로는 목숨을 걸기도 합니다. 친구를 위해서 또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서.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오래도록 유지되면 그 세월만큼이나 단단해집니다. 물론 둘 다 신뢰가 바탕이 되지요. 흔히 고난 중에 우정이 빛나고 고통을 견디며 사랑이 다져지기도 합니다. 그 어느 쪽도 우리 인생을 아름답게 그리고 풍요롭게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평생의 친구요 인생의 반려자가 생기는 것입니다.
친구도 그렇고 애인도 그렇고 서로 아주 비슷한 사람이 모일 수도 있고 전혀 다른 성품의 사람이 엮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장단점은 있습니다. 하지만 갈등은 서로 다른 쪽에서 더 자주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둘이 비슷하다면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다만 권태가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속된 말로 재미가 없는 것이지요. 서로 다르면 오해가 발생할 여지가 많습니다. 상대를 이해하기 어려워질 때 말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을 수용해가며 자신의 감정의 폭이 넓어집니다. 서로가 성장해가는 것입니다. 물론 이해하기 어렵고 수용이 되지 않는다면 서서히 멀어지기도 합니다. 상대를 바꾸게 되지요.
‘미소’와 ‘하은’이는 서로 매우 다릅니다. 미소는 매우 개방적이고 활달하며 멋대로 입니다. 반면 하은이는 다소 참하고 소극적이면서 고소공포증까지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지 못합니다. 제주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기야 배를 타고 나갈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렇게 나가야만 하는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주에 계속 살고 있습니다. 그런 하은이가 제주를 떠난다는 것은 대단한 변화를 예상하며 또한 대단한 계기가 있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결혼식장에서 갑자기 돌변하여 도망쳐 나오고는 비행기에 오릅니다. 놀란 어머니가 그래도 딸을 이해하고 떠나보냅니다. 처음으로 제주 밖으로 나가는 딸이 무사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며.
초등학교에서 만난 미소와 하은이는 학교생활부터 다릅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하은이에게 반하고 멋대로, 아니 자유롭게 비상하는 미소의 삶에 반하여 서로는 단짝이 됩니다. 어느 날 하은이는 미소에게 너도 그림을 그려보라고 권합니다. 연필로만 그리는 하은이와 다르게 미소는 크레용으로 그립니다. 사람 같기는 한데 묘합니다. 이게 뭐야? 하은이가 묻습니다. ‘마음.’ 그때 하은이가 깨닫습니다. 마음도 그릴 수가 있구나. 여태 하은이의 그림을 보면 있는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것도 연필로만 그리니 마치 흑백사진을 보는 듯합니다. 감탄이 절로 나오지요. 하지만 나타난 그대로이지 속을 어찌 알겠습니까? 미소의 대답에 뭔가 깨달음이 생겼습니다.
그들 앞에 ‘진우’가 등장합니다. 하은이의 눈에 먼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미소는 즉각 눈치를 챘습니다. 미소는 적극 나서서 둘의 만남을 주선합니다. 왜 좋아해? 이유가 있습니까? 아무튼 진우의 눈빛에 반한 하은이는 그 눈빛을 그림에 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가까워지고 세 학생은 같이 다니며 시간을 보냅니다. 미소는 학교생활보다는 스쿠터를 타고 배달을 합니다. 학교공부보다 삶의 현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미소의 가정환경도 그렇게 미소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엄마를 떠난 미소는 갈 데도 없고 하은이와 함께 생활하게 된 것입니다. 긴 시간 붙어 지내며 자매보다 더 끈끈한 정을 쌓아갑니다. 그런데 이성이 그들 사이에 껴들었습니다.
분명 진우와 하은이 서로 좋아하는 사이입니다. 어느 날 숲속에서 아주 가벼운 한 사건이 생깁니다. 남자란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도 순간의 감정변화를 겪을 수 있습니다. 실수? 그럴 수 있습니다. 그 후 진우의 목에 걸려있던 행운의 목걸이가 미소의 목에 걸려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내내 하은이의 마음속을 뒤집어놓습니다. 즉 의심 분노 그리고 이해와 용서 사이를 오갑니다. 미소는 답답함을 이유로 제주를 벗어납니다. 하은이와 진우는 동거하며 살다가 결혼으로 결정합니다. 그런데 식장에 입장해야 하는 시간 현장을 도망칩니다. 나도 자유롭게 날고 싶어, 미소처럼. 미소가 바라던 이국의 풍경을 마음에 그리며 찾아 나섭니다.
하은이가 그린 한 소녀의 얼굴이 바라보는 사람을 너무 또렷하게 응시합니다. 매우 인상적입니다. 전시하는 관장이 수소문하여 미소를 찾아냅니다. 그 얼굴은 바로 미소입니다. 그리고 미소를 통해 원작자를 찾으려 애씁니다. 미소도 본지 오래 되었습니다. 하은이의 아기를 키운 지도 꽤 시간이 흘렀지요. 남겨둔 인스타그램을 통하여 과거를 돌아봅니다. 지나온 30년 어간의 세월이 활동사진처럼 지나갑니다. 웃고 울고 분노하고 원망하고 했던 시간들이 이제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겨졌습니다. 그리고 그들 세 사람의 사랑의 열매로 예쁜 딸이 자라고 있습니다. 영화 ‘소울메이트’(Soulmate)를 보았습니다. 그림처럼 배우들의 예쁜 연기와 애틋한 마음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