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실크로드 여행기
허봉조
우루무치로 향하던 중국남방항공기에서는 착륙예정시간을 지나며 중국어와 영어로 안내방송이 들려왔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요.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 다가오니,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될 작년 여름의 기억이 새삼 스멀거리기 시작합니다.
여고동창 3명이 실크로드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낙타를 타고 유유히 사막을 걸으며, 동양과 서양을 잇는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교역로에서 옛 상인들의 발자취를 느껴보고 싶었던 것이지요.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들뜨고 행복한 선물 같은 것이었습니다. 계획을 하는 순간부터 마음은 이미 그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만큼 생활에 활기를 북돋워주는 이벤트가 아닐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 여행은 좀 달랐습니다. 장미가 만발한 5월 초순에, 우리는 여행을 결정했지요. 한 달을 앞두고 여행사와 계약을 하고 여행준비에 한창 물이 오르고 있을 때, 뜻밖의 복병이 나타났습니다.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로 온 나라가 어지러운 혼수상태에 빠져버렸으니까요. 심지어 홍콩과 대만 등 일부 지역에서는 한국인 관광객을 거부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었다니, 예삿일은 분명 아니었지요.
메르스라는 특정 바이러스의 전파 경로나 예방법 등을 정확히 알고 실천한다면, 여행에 특별한 문제가 없으리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파만파로 부풀려진 불안감과 군중심리에 주변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지요. 망설임 끝에 휴가를 내고, 인천국제공항에서 친구들과 만났습니다. 불편했던 마음을 뒤로 하고, 아무 일 없는 듯 점심을 먹고 커피도 마셨지요. 격의 없는 농담으로 깔깔거리며, 두 손가락을 펴고 인증 샷도 찍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출국수속 중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걸림돌을 만났습니다. 친구의 비자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어요. 여행사에서 신청한 여권과 친구가 소지한 여권의 번호가 달랐던 것입니다. 여행사에서는 미리 보관하고 있던 단골고객의 여권사본으로 단체비자 신청을 했고, 친구는 새로 여권을 발급받은 것이 아닙니까. 친구는 새로운 여권 사본을 스마트폰으로 전송을 했지만, 여행사에서는 설마 여권이 바뀌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지요. 여행사와 항공사 간에 여러 차례 전화가 오가며 백방으로 노력을 해봤지만, 결국 친구는 눈물을 머금고 큼지막한 가방을 끌고 돌아서야 했습니다.
그리고 중국남방항공기는 우루무치를 향해 이륙의 굉음을 울렸습니다. 비행예정시간은 5시간 30분 정도였으며, 군데군데 빈 좌석이 어수선한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았습니다. 착륙시간이 가까웠을 무렵 비행기는 잠시 고도를 낮추는가 싶다가 다시 높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요. 눈 아래로 보이는 어마어마한 사막이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는 사이 중국어와 영어로 안내방송이 들렸습니다. 하지만 중국식 영어 발음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는 멀뚱멀뚱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일행으로부터, 우루무치 공항의 강풍으로 둔황 공항에 비상착륙을 할 것이라는 전갈이 왔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더니, 불길한 생각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습니다. 어지러운 사회분위기로 휴가를 내기도 쉽지 않았는데, 출국장 앞에서 친구가 본의 아니게 발길을 돌리게 되고, 기상악화로 착륙을 못한다니요. 기내에서 대기한 1시간 30분이, 하루보다 더 긴 것 같았습니다. 다시 우루무치로 돌아간다는 안내방송에 겨우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중국의 서북 끝,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멀리 떨어진 도시이자 아시아 대륙의 중심이면서 옛날 동서양의 다리 역할을 했던 실크로드의 요충지. 자정이 지나 도착한 우루무치에는, 바람은 잦아들고 빗방울만 살짝살짝 뿌리고 있었습니다. 간신히 여행의 첫 관문을 통과하여, 정해진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정신적 피로에 지쳐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다음날부터는 7일간의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일행은 모두 11명으로,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말 잘 듣는 초등학생처럼 단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모든 과정을 소화해냈지요. 우루무치에서 이틀, 둔황에서 이틀, 하미에서 하루, 선선을 거쳐 투루판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시 우루무치로 돌아가 마지막 밤을 보내는 일정이었습니다.
고속열차와 버스로 이동을 하며, 광활한 대지와 울창한 숲과 자연에 감탄과 놀라움으로 충격을 받았다고 할까요?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만년설로 덮인 거대한 산맥 아래 펼쳐진 사막과 드넓은 초원과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의 대규모 풍력단지, 유적의 형태와 윤곽만을 알아볼 수 있는 오랜 성의 웅장함에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고비사막의 오아시스 도시이자 역사와 문화의 도시, 둔황의 명사산에서 낙타를 타거나 모래산을 걷기도 했습니다. 입자가 매우 고운 모래로 이루어진 산의 길이가 무려 47㎞라니, 상상이 되시는지요? 울 명, 모래 사. 모래와 모래가 부딪혀 우는 소리가 마치 관현악 연주를 듣는 것 같다니, 그 환상적인 소리를 들어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선선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도시와 연결된 쿠무타크 사막에서는 지프차로 롤러코스트를 타듯 모래산을 따라 솟아오르고 내리꽂히는 재미에 배가 아프도록 신나게 웃었고, 햇볕으로 달궈진 모래산을 맨발로 걷는 모험도 강행했습니다. 예순이라는 나이도 잊은 채 말입니다.
여름에는 매우 더워서 화주라고도 불리며, 기후의 특성상 포도의 주생산지인 투루판에 남아있는 불교 석굴사원 천불동 앞에서는 기온이 무려 47도로 땅을 딛고 서 있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둔황에서 남서쪽으로 70㎞ 거리에 위치한 실크로드의 남쪽 관문인 양관에서, 옛 양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박물관의 지도를 통해 우리가 여행하는 거리가 실크로드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실크로드는 남쪽으로 인도까지, 서쪽으로는 멀리 유럽까지 연결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루무치-난주 구간을 운행하는 시속 250㎞의 고속열차(CRH, 총 운행거리 1,776㎞)는 매우 조용하고 깨끗했으며, 편의시설과 물이 펄펄 끓는 온수기도 설치돼 있었습니다. 위구르족의 전통시장 바자르와 둔황의 야시장 관광도 빼놓지 않았으며, 카자흐족의 터전으로 아름답게 펼쳐진 천연 방목지 남산목장에서 승마체험도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에도 우리나라의 메르스 상황은 날로 확산일로를 걷고 있다니,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었지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낙타를 배경으로 찍은 기념사진을 모두 삭제하기도 하는 등 불편함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우여곡절로 시작된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 우루무치에는 다시 많은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실크로드는 눈과 귀가 즐거운 관광지라기보다 ‘체험과 순례의 길’이었습니다. 언젠가 편안하고 차분한 여유를 가질 수 있을 때, 다시 한 번 그 길을 밟고 싶습니다.
/ 1956년 부산에서 태어났으며 2007년 <설중매문학> 신춘문예, 2008년 『시와산문』으로 등단 했다. 에세이집 『즐거운 농락』, 칼럼집 『행복도 즐기기 나름』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