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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러분 사랑해요 문봉수 원문보기 글쓴이: 김상우(중문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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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장의 국가중심적 패러다임과 2장의 시중중심적 패러다임 중에서
1문제가 출제 된다고 하구요
2. 나머지 5장과 6장에서 2문제 출제 된다고 합니다
3. 총 3문제 출제중에서 2문제를 서술하라고 할것 같구요
4. 여기에선 제외된 3장의 구조주의 7장의 지식구조는 확실히 출제 안되구요
[1장] 국가중심전 패러다임으로 바라본 국가와 시장과의 관계
국가 중심적 패러다임 혹은 중상주의는 국가안보의 독립을 유지하고 보호하기 위해 부와 권력을 축척하고자 하는 모든 민족국가의 기본적 욕구를 반영한 이론적 관점이다.
중상주의의 역사는 15세기 - 18세기에 이르기 까지 유럽(특히 , 서유럽)에서 근대민족국가의 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이 시기는 국가형성과 민족국가의 안보를 위해 국가에 의한 경제 간섭이 요구되는 시기였다. 민족국가들은 국제체제의 조직과 기능에서 국가안보와 군사력의 우월성을 가장 중요시하였고, 이는 중상주의를 국가중심적인 패러다임으로 만들었으며, 경제에 대한 정치의 우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초기 중상주의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①수출증진과 수입제한을 통해 금. 은화의 축적을 도모하는 것이다. ② 국고 재정을 충실히 하여 군비강화를 꾀하는 것이다. ③ 군사력의 모체가 될 공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중상주의는 정치경제적 변화와 함께 18세기이후 경제민족주의의 형태로 나타난다. 대표적 경제민족주의자인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모든 국가들이 자국의 경제 발전 정도에 상응 하는 경제제도 채택을 강조했고, 후진국이 차차 경제발전 속도를 높여 영국과 같은 수준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자유무역, 국제 분업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리스트는 경제발전을 네 가지 단계로 구분하였다. 1단계는 농산물 및 원료의 수출과 외국 공업제품의 수입을 통해 국내공업 발달, 2단계는 보호무역으로 국내산업 육성, 3단계는 보호무역아래 국내공업이 대부분의 국내시장 장악, 4단계는 국내산업의 대량 수출과 해외로부터 원료 및 농산물의 수입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특히 이 단계에 외서는 식민지와의 무옥이 유리해진다. 리스트는 4단계에 이른 나라는 영국뿐이고 독일과 미국은 2단계에 있다고 보았다.
제 2차 세계대전 종결이후 패권국가로 등장한 미국주도의 브레턴우즈체제를 중심으로 한 자유무역질서와 시장개방이 경제적 독립과 국가안보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각 개별 국가들을 해방시킨 것은 아니었다. 각 민족국가들은 ‘절대적 이득’ 보다?상대적 이득?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자국의 경제안보를 보장하는 방법들, 즉 소위 ?이웃나라 거지 만들기?로 불리는 각종 관세 및 비관세 정책 등의 신중상주의 전략을 활용하였다.
중상주의자들은 세계화가 민족국가의 주권에 잠재적이며 근본적인 안보위협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은 세계화로 국가의 영역이 점점 축소되어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가 국민의 복지를 증진시키고,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방어해야하며, 국가의 가치와 생활방식을 보호해야 하는 일차적 책임을 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2장] 시장중심적 패러다임: 자유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1). 애덤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 중심의 초기 고전적 자유주의에서 국가와 시장과의 관계-
⇒① 애덤스미스 (P21-22)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학의 기원을 이룬 애덤 스미스는 국가와 시장과의 관계를 그의 저서『국부론』을 통해서, 자본과 고용(노동)에 대한 통제권이 국가가 아니라 개인기업가에 게 맡겨질 때, 최적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고 보았다. 스미스는 는 시장에 대해서 이를 ‘보이 않는 손’이라 표현 했다. 스미스의 자유로운 시장에 대한 애정은 넓게는 국가일반 좁게는 국가의 잠재적 남용에 대한 혐오로 나타났다. 스미스에게 국가는 위험하며 믿을 수 없는 존재 였다.
스미스가 바라본 자유주의적 관점은 자유방임 이라는 말로 가장 잘 표현된다. 사회적 선택에서 자유로운 개인이야말로 최상의 조건이며 국가의 역할은 기본적인 법체계마련. 국가방위의 확보, 그리고 화폐 주조등 개인능력 밖에의 일들, 공적인 업무로 제한된다.
② 리카도 (P23-24)
리카도는 비교우위에 입각한 자유무역은 국가를 효율적으로 만들며, 효율성이야말로 결국 국가의 부를 증진시키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자유무역이 “산업을 자극하고, 독창성을 북돋우며, 자연이 선사한 독특한 힘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함으로써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노동을 분배한다. 아울러 자유무역은 일반적으로 대량생산을 증가시킴 으로써 보편적 혜택을 널리 보급하게 된다” 고 주장했다.
또한 리카도는 개인의 성공적인 이윤추구는 보편적인 선과 직결되며 이는 곧 국가들을 연결하며 세계를 문명화된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 것이라고 보았다.
2)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주의에서 국가와 시장과의 관계- (P25-26)
밀의 정치경제학은 고전적 자유주의의 집대성이라 불린다. 밀은 국가가 시장을 보안하는데 제한적이고 선택적인 분배의 영역을 분리해서 사고했으며, 밀은 부의 생산에 관한 한 자유방임의 법칙은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으나, 부의 분배는 사회적 법률에 의해서 변경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자유방임의 생산이 가져오는 사회적 병폐현상을 국가가 나서서 교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진보를 성취하기 위해 시장실패를 교정하는 역할을 국가가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어린이교육, 빈민 구제등 개인의 주도성이 사회적 복지를 증진시키는데 적합하지 않은 영역에서 제한적인 국가의 역할을 옹호했다. 예를 들면, 자녀의 교육문제에서 일차적인 책임은 부모에게 있으나, 부모가 금전적 능력이 없는 경우는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인식했다. 물론 교육문제에 정부가 너무 많이 개입하는 것은‘위험한’것이지만, ‘모형학교’의 운영 같은 국가정책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3) 존 케인스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국가와 시장과의 관계에 어떤 수정을 가했는가? (P27-29)
자유주의의 케인스식 해석은 애덤 스미스의 정신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보이지 손’을 보다 좁은 영역에 국한시키며, 더 많은 건설적인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국가와 시장과의 관계를 결합시켰다.
케인스의 정치경제학은 20세기를 특징짓는 세 가지 사건(제1차 세계대전: 중상주의자들에 대해 등을 돌리고, 마르크스 ? 레닌주의 소련의 등장: 공산주의적 관점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1930년대 세계 공항: ‘보이지 않는 손이 재앙을 가져 올 수 있다’하며 극단적인 자유주의가 대표하는 시장숭배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케인스는 1936년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의 저서에서 공항이 주요하게는 유효수효의 부족 때문에 발생한 것 이라 결론을 내리고, 정부의 과감한 개입으로 유효수효를 촉진시킴으로써 대공항의 어둠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케인스는 브레턴우즈 체제를 통해 국내적으로는 국가의 개입과 자유방임의 세계경제라는 국제적 규범사이의 타협적인 해결책을 제시, 이 체제는 개방된 시장과 자유무역을 바탕으로 하는 자유주의 세계경제체제로 계획되었으나, 케인스가 옹호했던 국가의 적극적인역할, 즉 물가와 실업을 조절하고, 경제성장을 장려하기 위한 정책들을 독자적으로 시행 할 수 있도록 했다.
4) 신자유주의에서 -하이에크와 프리드먼 - 국가의 사장과의 관계는? (P29- 32)
시장의 실패를 국가의 개입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케인스의 자유주의에 대한 해석은 1950년대에서 1970년대 초까지 복지 국가모델로 황금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전 세계에 걸친 높은 실업율, 인플레이션, 경기후퇴라는 전반적인 악조건은 수요를 조정하고 완전고용을 유지하기위해 국가개입이 필요하다는 케인스주의를 불신하게 만들었다. 결국 다시 국가를 고전적 자유주의 국가로 되돌리고 시장의 기능을 회복해야한다는 주장이 경제학자로 노벨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미국의 밀턴 프리드먼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들은 시장적 해결책이 개인적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라는 스미스의 시장주의를 계승했다.
하이에크는 『노예의 길』에서 더 많은 경제안보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국가의 역할을 증대시키는 것은 위험한 길로 접어드는 첫 단계라고 주장했다. 안보와 자유에 대한 유일한 길은 국가의 역할을 축소시키는 것이며 시장의 자생적 질서가 개인들에게 제공하는 기회에 의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생산자들의 시장에 대한 정보는 국부적이고 부분적이며, 틀릴 수 있는 정보이기 때문에 완전경쟁은 이루어 질수 없다는 것이다. 불완전한 시장에서 보다 나은 시장정보를 획득 하려는 다양한 기업가들 사이의 경쟁이야말로 정보와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게하고, 이러한 효율성이야말로 스미스가 말한 국부(國富)의 원천이 된다고 보았다.
하이에크의 토대로부터 출발한 프리드먼은『자본주의와 자유』에서 “국가에 무엇을 해줄 것인가 요구하기 보다는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어 보라”며 강력한 정부를 주창한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정책을 비판하며, “어떻게 하면 정부가 우리가 가꾸어온 자유를 파괴하는 프랑켄슈타인이 되지 못하게 할 수 있는가?”라고 물으면서 “역사는 자유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 바로 권력의 집중임을 말하고 있다”며 권력은 작고 분산될수록 좋다고 주장했다. 자유롭고 경쟁적인 시장을 지닌 자본주의는 권력을 분산시키며 자유를 수호 할 수 있다. 즉 시장이야말로 자유를 유지하고 보호 할 수 있는 기제 였던 것이다.
[5장] 지역경제 공동체의 5단계는 외우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세계의 정치의 경제 질서 중 무역 질서를 설명하는 자유주의 패러다임의 재이론-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헤크세르-올린의 원리, 버논의 제품수명 주기이론,
크루거먼의 수요결정형이론- 이에 대한 국가중심적 패러다임과 구조중심적 패러다임의 비판
1)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 (P75-76)
데이비드 리카도는 국가 중심적 패러다임에 입각한 무역론을 비판하면서 자유주의적 무역론을 제시했다. 리카도는 무역이 국제적인 분업과 노동 분할의 증대를 통해 전반적으로 경제적인 번영을 촉진한다고 보았다. 모든 종류의 상품생산에서 열위에 있는 국가라 할지라도 무역에 참여 할 수 있다는 것이 리카도의 주장이었다. 예를 들어 마이클조던은 농구를 잘할 뿐 아니라 힘이 세기 때문에 그 어떤 정원사보다 정원 작업도 잘할수 있다고 가정하자. 이러한 경우에도 마이클 조던은 장원작업을 하기보다는 농구에 전념하는 것이 그 자신을 위해서나 정원사를 위해서나 이익이 된다. 같은 단위의 노동을 농구에 집중투자 함으로써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고 또한 정원사는 일자리를 보장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헤크셰르-올린의 원리 (P76)
비교우위론을 새롭게 발전시켜서 각국가의 생산요소 부존상태에 따라 비교우위가 결정된다는 이론이다. 이 원리에 따르면 기술수준에 큰 차이가 없더라도 국가별로 보유하고 있는 토지, 노동, 자본의 부존량이 다르기 때문에 국가간 무역이 발생한다. 즉 자본이 풍부한 국가는 자본집약적 상품을 수출하고, 노동이 풍부한 국가는 노동집약적 상품을 수출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일본과 미국이 기술수준이 비슷하다는 가정 하에 땅값이 상대적으로 싼 미국에서는 농산품이, 임금이 상대적으로 싼 일본은 공산품이 비교우위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3)버논의 제품수명 주기이론 (P76-77)
선진국이며 고도의 기술과 제품 생산개발 능력을 가지고 있는 A국과 후진국이며 임금이 A국보다 낮은 B국만이 있다고 가정하자. 특정형태의 제품이 A국에서 개발, A국에서 상품화되어 판매된 다음 B국으로 수출, B국은처음에 수입에 의존하지만 점차 디자인과 생산과정을 모방한 제품을 생산 다시 B국이 이 제품을 수출하기 시작하면 A국과 B국간은 임금차이로 인해 A국은 경쟁력을 상실, B국은 이 제품을 주도적 수출해 세계적으로 확대된다. 따라서 A국은 다시 부가가치가 높은 새로운 제품을 개발, 생산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며 이에 따라 산업구조도 더욱 고도화된다.
이와 같이 한 제품이 선진국에서 개발, 생산 되다가 성장기, 성숙기를 거치면서 후발 국가들이 모방해 대량 생산하게 되면 이를 개발한 선진국은 가격 경쟁력이 뒤지기 때문에 생산을 중단하고 오히려 후발국가로부터 수입하게 된다는 논리가 이른바 제품의 수명 주기이론이다.
4)크루그먼의 수요결정형이론 (P77-78)
2차 세계대전이후 무역이 선진국과 후진국사이의 무역이기 보다는 오히려 선진국사이의 무역이 증대 되고 있다는 현상을 설명하고 상품 차별화와 규모의 경제를 이용했다는 이론이다. 소비자들은 취향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종류의 상품이 시장이 공급되기를 원하고 소량-다종 생산방식은 소비자들의 기호에 가장 잘 부합되는 것이다. 생산구조는 소비자의다양성에 대한 욕구와 규모의 경제원리 사이의 팽팽한 긴장 속에 결정된다는 것이다. 크루그먼은 결국 무역은 이러한 긴장을 완화시키는 주요한 수단이라고 보았다. 이 이론은 비교우위론이나 ‘헤르셰르-올인의 정리’ 에 의해 설명이어려운 프랑스와 독일간의 무역증대를 가장 잘 설명한 이론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선진국 소비자들일수록 다양한 기호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크루그먼 등이 내세운 이론은 선진국간의 무역증대를 깨끗하게 설명한 이론이라 할 수 있다.
1. 자유주의적 패러다임에 대한 국가중심적 패러다임의 비판
①국가중심적 패러다임에서는 비교우위에 입각하여 국내산업을 재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비용을 증대시킬 수 있다. 예)포도주와 의복 산업
②특정산업이 경제적으로 열위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 산업의 종사자들이 정치적으로 열위에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이들은 다양한 정치적 통로를 통해 보호를 받고자 하는 압력이 존재한다.
예)냉전기 일본의 자민당과 농민사이
③특정 민족국가가 지나치게 다른 나라에 기대서는 안 되는 산업이 존재한다. 예) 농업분야. 특정 기간산업
④무역이 외교정책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 엠바고(수출입 금지). 보이콧트(불매)
2. 자유주의적 패러다임에 대한 구조중심적 패러다임의 비판
①급속한 자유화로 국가간ㆍ계급간 빈부격차 심화
②무역이란 부등가 교환을 통해 세계체제의 주변부와 중심부를 고착화 시켰다
③상품과 자본은 자유롭게 이동하지만 노동은 그렇지 못함.
④광우병이나 중국산 납꽃게 또 유전자 변형식품등과 같은 먹거리의 안전성 문제
(4).우루과이라운드와 WTO의 생성과 흐름 그리고 그에 대한비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을 위시한 여러 국가들의 국제무역질서는 자유주의 무역질서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1948년 1월 발효된 GATT눈 다자간무역제체로서 총 8차례의 다자간협상을 통해 그 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1980년대에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인한 각국의 보호무역조치로 인해 GATT의 신뢰성과 효율성이 저해됨에 따라서 GATT가 포괄하지 못하던 서비스교육확대, 외국인 투자증대 등 무역환경의 급변함에 따라서 새로운 다자간 무역규범을 제정하기 위한 논의의 필요성이 대두 되었다. 그리하여 우루과이 라운드라고 명명된 다자간무역협상이 시작될 수 있었고 그 결과로 1995년 1월 WTO가 출범하였다.
우루과이 라운드의 주요 합의사항을 살펴보면,
1.공산품분야: 약 40% 관세감축과 철강. 건설. 농업장비. 의료기기 등의 전후 최대의 관세 인하
2.농업분야: 농산물 교역에 대한 균일적 관세에 합의, 국내 보조금 및 수출보조금 단계적 감축
3.서비스분야: 서비스교역에 대한 다자간 규범 최초 마련
4.지적재산권분야: 저작권. 상표권. 특허권등에 이르는 포괄적 무역규범 마련
5.무역규범분야: GATT 정신에 위배되는 수출자율규제, 회색지대 4년 안 철폐 및 세이프 가드 강화
등으로 해서 WTO가 출범 하였다.
* 이러한 WTO 체제를 지지하는 자유주의적 패러다임 조차에서도 비판이 다음과 같이 나오고 있다.
1.WTO가 회원국의 국내정치까지 관여함에 따라 오히려 비효율성 초래
2.WTO는 미국과 유럽 및 일본 간의 대립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대립을 해소 하지 못하고,
3.일반적 기업들은 세계적 수준의 무역자유화보다 자신의 활동 대상국의 관세나 무역장벽의 철폐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점이다. 결국 이들은 범세계 무역자유화보다 지역별 무역자유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국가중심적 패러다임과 주조주의적 패러다임에서의 WTO 의 비판을 보면,
농민들의 생존권보호하고 식량안보를 위한 정책, 국내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 등 다수의 필요에 따른 정책들을 비관세 장벽 이라는 개념 안에 넣어서 없애 버리려 한다고 비판한다.
또한, 구조주의자들은 WTO가 ‘국제적인 부의 재분배’, ‘전 세계적인 고용기회의 확대’라는 휘황찬란한 구호 아래 건설되었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 부는 공정하게 분배되지 않고, 소수의 초국적기업들에게 집중 되었으며,빈곤은 확대 되었다는 것이다. ‘더 많은 고용창출’ 이라는 구호도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 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6장]브레턴우즈 국제 통화체제의 형성, 전개 그리고 붕괴
2차 세계대전 이후세계 자본과 상품의 흐름을 간략히 살펴보면, ①국제 통화체제는 브레턴우즈체제(1944년 미국주도)→②달러화의 위기와 브레턴우즈체제의 붕괴(1970년대)→③국제통화체제를 위한 다자간 협력시대(1980년대)→달러-유로화-엔화의 3각체제(1990년대)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 갈 무렵, 미국을 비롯한 44개 국가들은 미국의 뉴햄프셔州 브레턴우즈市에 모였다.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1930년대의 경제적 민족주의와 통화블록이 가져온 혼돈과 무질서의 국제 경제의 재발을방지하고 안정적 세계경제질서를 창조 하는 것이었다.
경제 질서의 재발을 방지하고 안정적 세계경제질서를 창조하는 것이었다. 브레턴우즈체제의 기본골격은 금환본위제, 고정환율제, 국제통화기금의 설립 등이었다. 브레턴우즈체제에서 미국은 패권국으로서의 지위를 실질적으로 행사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유럽경제의 파탄은 유럽 국가들로 하여금 브레턴우즈체제의 관리의 큰 역할을 담당할 수 없게 하였고, 소련과의 냉전적 대립은 결국 미국으로 하여금 세계통화체제의 관리에 일차적인 책임을 맡게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경제복구를 위해 진행된 마셜플랜은 미국의 세계 통화체제 관리의 첫 단계 조치였다. 그러나 경제원조와 군사원조에 수반되는 마대한 비용은 달러화의 대규모 해외유출을 가져왔고, 미국은 유럽과 일본의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다시 말해 미국의 국제수지는 지속적인 적자현상을 경험해야 했다. 결국 이는 ‘패권의 딜레마’ 를 가져와 달러화 위기와 함께 브레턴우즈체제의 붕괴로 이어진다. 미국은지속적인 국제수지적자를 무릅쓰고 국제 통화질서를 유지한 결과 달러화의 해외보유고가 미국의 금보유고를 초과하게 됨으로써 달러화에 대한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연이은 배트남전쟁의 확산과 존슨 대통령의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 프로그램의 과도한 재정지출은 내적으로 재정적자와 인플레이션을 통한 경기후퇴를, 외적으로 엄청난 양의 국제 수지 적자를 동시에 가져오게 되었다.1971년에 이르러 달러화의 국제적 신용도의 급락은 1960년대의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함께 통화의 불안정성을 증대 시켰다. 이런 가운데, 미국닉슨 대통령은 신경제정책을 통해 ①금에 대한 달러화 교환중지 ②달러화 보호하기 위해 보호무역 정책으로 선회하여 관세부가대상 수입상품에 대하여 10%의 부가관세를 추가 하였다. ③인플레이션 억제위한 수단으로 임금ㆍ가격통제 실시를 하였다.
그러나, 이런 조치는 금과 달러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해제시킴으로써 브레턴우즈의 중심축을 제거해 버린 셈이 되어 버렸다. 다시 말해 미국은 국내정치의 파국방지를 위해 국제통화체제에서의 패권자의 역할을 포기, 미국의 패권아래 유지되던 브레턴우즈 체제는 1973년 독일 연방은행이 달러화 고정환율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함으로써 공식적인 막을 내렸다.
첫댓글 특강에서 강조하셨던 내용을 정리해서 올려주셨습니다...지금까지의 자료와 대조해보시고 정리하셔서 좋은 결과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상우님~~~Tai xie xie nin le~~~^^)
감사 또 감사 드려요. 어찌 늘 이렇게 마음을 쓰시는지 복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