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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의 손
조 정 레
설마설마했던 소문은 설마가 아니었다. 참말로 전기가 들어오게 된 것이다. 밤골의 밤이 대낮처럼 밝아질 날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집 한채는 거뜬히 싣고 달릴 수 있을 만큼 큰 ‘도라꾸’가 마을로 밀려들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그 차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 차가 꼬마들의 눈길이나마 끌 수 있었던 것은 그 큰 몸집에 온통 홍시감 색깔을 칠한 때문이었다.
그 차는 돌이 울퉁불퉁한 길을 힘겨운 듯 느릿느릿 움직이다가 멈추곤 했다 멈추었을 땐 둥글고 긴 기둥 같은 것을 하나씩 내려놓았다. 그런데 그 기둥 같은 것은 꼭 그만한 간격에 내려져선 길게 눕는 것이었다
꼬마들은 하아 이상해서 차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꼬마들은 그 흰빛의 기둥 같은 것이 돌덩어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차에 올라탄 아저씨들이 그것을 내리면서 왜 낑낑매는지도 알았다.
“응냐 응냐 응냐 응냐……”
두 패로 갈라진 아저씨들은 그 돌덩어리 기둥 양쪽에 매달려 짐을 잔뜩 싣고 고개마루를 오르는 소처럼 숨을 씩씩 불면서도 연신 이런 소리들을 번갈아가며 내고 었었다.
꼬마들의 궁금증은 뭉게구름치렴 피었다. 저리 무거운 돌덩어리 기둥을 어디에 쓰려는 것일까. 저 기둥에 드문드문 뚫린 조그만 구멍들은 무엇을 하는 걸까. 두 주먹이 다 들어가고 남을 만큼 기둥 밑에 뚫린 동그란 구멍은 또 뭘까.
꼬마들은 잔뜩 긴장한 채 눈알만 잽싸게 굴릴 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런 때 누가 한마디만 벙긋하면 왁자한 우김질이 시작되련만 위낙 처음 보는 것이라 그것이 어디에 쓰이는 것인지 꼬마들은 도통 실마리를 풀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꼬마들은 차가 움직이면 쪼르륵 그 꽁무니를 쫓았고, 아저씨들이 낑낑대며 돌기둥을 내릴 때면 멀찌감치 서서 넋놓고 구경을 되풀이했다.
아저씨들이 땀을 훔치며 제각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어떤 아저씨는 방금 내려놓은 긴 돌기둥에 걸터앉았다. 꼬마들은 조그맣게 쪼그리고 앉아 그 아저씨들을 말끔히 쳐다보고 있었다.
“니들 이 동네 사니?”
한 아저씨가 담배연기를 푸우 뿜어내며 꼬마들에게 물었다. 꼬마들은 주춤 일어서다 말고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니들 이게 뭐하는 건지 알아?”
아저씨가 빙긋 웃으며 물었고, 꼬마들은 금방 밝은 얼굴이 되며 모두 크게 고게를 가로저었다.
“뭐하는 건지 가르취 줄까?”
꼬마들은 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앞으로 조금씩 다가서고 있었다.
“이 사람 또 시작이다. 애들만 보면 그저 싱글벙글이지.”
다른 아저씨가 말했고,
“얘들아. 이게 뭐냐면 말야, 전봇대다, 전봇대.”
아저씨가 신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에키, 이사람아, 쟤들이 전봇대를 어떻게 알아.”
다른 아저씨가 나무라듯 말했다.
“그런가?…… 니들 전봇대 모르니?”
아저씨의 말에 꼬마들 모두는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 참…… 그럼 전기는 아니? 등잔이나 호릉불 대신 쓰는 대낮처럼 밝은 전기 말야”
아저씨의 말에 꼬마들의 얼굴은 금방 붉게 상기되었고 눈들은 반짝이는 물기를 머금었다. 엄마 아빠들이 하는 말을 들어 꼬마들은 이미 전기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알아요!”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쳤다
“나도 알아요!”
“전기다마 나도 알아요!”
“무지하게 밝은 것, 나도 알아요!”
꼬마들은 제각기 소리쳤다.
“그래, 그래. 그 전기가 니들 동네에 들어오게 됐다. 신나지?”
“야아아.”
“와아아.”
꼬마들은 외치며 마구 뛰기 시작했다
전기가설공사 소식은 삽시간에 온 동네에 퍼져나갔다. 누구나 처음엔 설마했고, 나무가 아닌 시멘트 전신주가 길가에 번듯번듯 누워 있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감격어린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되었다.
밤골사람들이 전기가 들어온다는 사실에 하나같이 설마를 앞세웠던 것은 그만큼 여러 차례에 걸쳐 속아왔기 때문이었다. 시꺼먼 그을음이 오르는 석유등잔 신세를 이제야 면하는가보다고 잔뜩 벼르다보면 공염불이 되곤 했었다. 그런 때의 허탈감이란 단순히 기대에 대한 실망이 아니라 그런 약속을 찰떡먹듯이 한 상대를 향해 내뿜다 지친 중오의 산물이었다. 그들이 전기가 들어오기를 목이 늘어지게 고대했던 것은 그저 밤을 밝게 살고 싶어했던 얕은 소견머리에서가 아니었다. 어둠침침한 등잔불빛 아래서 그래도 공부를 하겠다고 코를 들이미는 자식들에게 한시라도 빨리 전등의 그 말끔한 밝음을 주고 싶어했었다. 그 간절한 소망이 공염불이 되고 말면 자식들에 대한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무력한 부모라는 죄책감과 함께 뒤범벅이 되어 증오로 바뀌는 것이었다.
밤골 저 앞산 중턱짬에 쇠막대로 얼기설기 짜서 만든 무지막지하게 크고 높은 전신주가 선 것은 일정시대의 일이었다. 아슴한 높이로 이어져나간 전기줄에는 사람이고 짐승이고 붙기만 하면 시꺼멓게 타죽을 만큼 센 전기가 흐른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감히 접근을 못한 채 그 축 늘어진 전기줄을 빠안히 건너다보면서 어두운 밤을 지내야 했다. 그때 사람들은 아무도 밤골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앞산의 전기는 큰 도회지로 간다는 것이었고, 신작로에서도 산 하나를 넘어야 하는 밤골은 당연히 전기 같은 것은 지나쳐가는 곳으로 생각해버렸다.
그런데 해방이라는 것이 되었다. 밤골사람들에게 해방의 기쁨은 공출을 안해도 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나서 선거라는 이상야릇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 선거바람은 손가락이 일하는 데만 쓰이는 것이 아님을 일깨워줌과 동시에 사람값을 턱없이 올려놓는 일을 했다. 그러나 정작 밤골사람들을 들뜨게 만든 것은 따로 있었다. 손가락을 세워 암기한 기호 밑에 붓대통으로 꾸욱 눌러만주면 전기를 끌여들여준다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가슴 벌떡이고 기분 들뜨고 황감한 이야기인가. 그래서 밤골사람들은 이장(里長)이 시키는 대로 줄줄이 서서 똑같은 기호 밑에다 정성스레 붓대통을 눌렀다. 그러면서 또다른 느낌으로 역시 해방이 좋다는 것을 실감했고, 그 밝은 전등불빛 아래 온 식구가 오손도손 모여앉은 광경을 연상하며 기분이 달떴다.
그들이 붓대통으로 누른 바로 그 사람이 국회의원인가 대감인가로 뽑혀 서울로 행차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이나처럼 기뼈했고, 머잖아 그 신명나는 전등불의 밝음이 마을의 어둠을 걷어가리라 굳게 믿었다. 그러나 달이 몇 겹인가 겹쳐 지나도 소식은 감감하기만 했다. 남자들은 진작, 아낙네들까지도 기대에 부푼 이런저런 이야기들에 시들해지고 지쳐갔다.
“이거 어찌된 일일까요? 혹시 우리가 속은 건 아닌가요?”
“허허, 거 뭔 소리, 점잖은 양반한테. 나랏일 보는 양반이 얼마나 눈코뜰새가 없겠어. 틀림없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도록 하세나”
이런 이장의 당당한 태도를 믿고 또 몇 달이 지나갔다. 그러나 소식은 꿩 구워먹은 자리였다
“아직도 더 기다려야 할까요? 우리가 홀딱 속은 것이지요?”
“글쎄 말이야……, 점잖은 체면에 그럴 양반이 아닐 것인디……”
이장이 난색을 표하며 말을 어물거리게 되자 모두는 발끈 화가 솟았다. 그래서 모여앉으면 이장을 떡판 위의 떡살로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한가닥 희망을 버리지 못한 채 한 해를 넘기고 몇 개월이 지났다.
“되면 된다, 안 되면 안 된다 속시원하게 좀 알아버립시다.이거야 원 똥누고 밑 안 닦은 것처럼 이게 뭡니까.”
이런 말까지 나오게 되자 이장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고거 순 후레아들놈이야 어디다 대고 고런 싸가지 없는 거짓말을 해 그래.”
이장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욕을 쏴지르고 말았을 때 사람들은 그만 완전히 맥이 풀려버렸다. 한가닥 희망마저 자취를 감추어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잔뜩 화가 치밀어 있는 이장을 전처럼 욕해대거나 원망할 수도 없었다 이장도 밤골에 전기가 들어오기를 바라고 그런 일을 했다가 자신들과 함께 속은 것뿐 저지른 죄라곤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전기에 대한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던 어느 해 다시 그 선거바람이라는 게 불어왔다. 이번에도 전기를 끌어들인다는 것이었다.
물론 지난번에 왜 성사가 안 되었는지에 대해 청산유수 같은 설명이 곁들여진 건 말할 것도 없었다. 듣고보니 그럴듯도 했다. 그래서 이장을 위시한 동네사람들은 지난번처럼 한 기호 밑에 붓대통을 눌렀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번에야 설마, 이번에야 설마 하며 똑같은 방법으로 속기를 얼마나 했는지 사람들은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그건 기억을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불신감 때문에 기억을 하려들지 않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전기가 들어온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건 정말 느닷없는 소문이었다. 선거바람도 안 타고 불어온 소문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누구도 믿으려 하지 않고 콧방귀만 뀌었다 설마 전기가 들어올라고…… 언제부턴가 설마는 처음과는 반대의 의미로 쓰여지고 있었다.
그런데 읍내 장터거리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 돌덩이 같은 전신주가 길가에 즐비하게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앞산 중턱에 철근 전신주가 서고나서 실로 50여 년만의 일이었다.
어린애고 어른이고 할것없이 모두 기쁨에 들떠 있었지만. 특히 감격해 마지 않는 사람은 몇몇 노인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칠순이 넘어있었다.
“사람은 참 오래 살고볼 일이야”
“누가 아니래나 결국 이런 날이 오긴 오는구먼:”
“저기 저 전보상대가 박힐 때 내 나이 스물 셋이었지 아마……”
“허허, 기억 한번 총총하네 그랴 내가 스물 둘이었으니 틀림없구먼.”
노인들은 이런 말을 나누며 앞산을 감개무량한 옅굴로 건너다보고 있었다
전기공사는 예정보다 훨씬 앞당겨 진행되어 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1백 20여 호의 마을사람들이 거의 동원되다시피 하고 있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었다 하루라도 빨리 전기를 켜고 싶은 바램으로 너나없이 일손의 틈을 내어 공사에 힘을 합쳤다. 아낙네들은 돌아가며 먹을 것을 장만해 기술자들을 대접하기에 바빴다.
이렇게 되고보니 기술자들의 일손에 신명이 붙지 않을 수가 없었다. 책임자는 연신 벙글거리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했다.
공사기간을 한 달 이상 단축시켜 온 동네에 전기불이 들어오게 된 날밤 돼지를 세 마리나 잡는 잔치가 벌어졌다. 이렇게 밤골 전체가 흥겨움에 넘친 잔치는 보기 드문 일이었다. 공사 기술자들이 상좌에 앉혀진 건 물론이었고 그들은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을 마셔야 했고, 배꼽이 요강꼭지가 되도록 음식을 먹어야 했다.
양복을 미끈하게 뽑아입은 청년들이 밤골에 나타난 건 잔치가 끝난 바로 그 다음날이었다. 그들은 큼직큼직한 상자를 경운기만한 자동차에 가득 싣고 왔다.
회관 마당에 차를 세운 그들은 부지런히 손을 놀려 차 옆구리에 높은 쇠막대를 묶어 세웠다 그 쇠막대 끝에는 잠자리날개 모양으로 굽어진 또다른 쇠들이 여러 개 달려 있었다. 그 흰빛의 쇠막대들은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을 냈다.
몇몇 꼬마들은 청년들의 손놀림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살피고 있었다. 전기공사가 시작됐을 때처럼 또 집에 신나는 소식을 가져갈 수 있었으면 하고 꼬마들은 제각기 생각했다.
청년들은 한 상자 안에서 물건을 꺼냈다. 그 물건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인데, 네모가 반듯했다. 무슨 기계인 건 분명한데 무엇을 하는 데 쓰는 것인지는 꼬마들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청년들은 그 예쁘장하게 생긴 기계를 운전대를 덮은 차 지붕 위에 달랑 올려놓았다. 그리고 높은 쇠막대 꼭대기로 이어진 까만 줄 끝을 기계에다 연결시켰다. 청년들의 일은 그것으로 끝났다. 그들은 손바닥을 털고 벗어놓은 양복을 입었다.
“저게 뭐예요, 아저씨?”
누군가가 더 못견디겠다는 듯 쨍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아 요놈들, 오래 참았구나.”
한 청년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씨익 웃으며 꼬마들 앞으로 다가섰다.
“너희들 텔레비전이라는 말 들어봤니? 저게 바로 텔레비전이라는 거야”
“테에레에……”
꼬마들은 전혀 귀에 익지 않은 말을 어물어물 흉내냈다.
“저게 머어 하는 기곈데요?”
어느 꼬마가 힘들게 물었다.
“응, 저기에 이쁜 여자가 나와서 노래도 부르고, 군인아저씨가 나와 총싸움도 하고, 아주 신나는 기계다.”
“예에?”
꼬마들은 하나같이 놀라는 표정이 되었고 다음 순간, 피이, 아저씨 거짓말! 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런 눈치를 놓치지 않은 청년은 잠시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그래, 너희들 트랜지스터, 아니 라디오는 알지?”
청년이 반색을 하며 물었고 꼬마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라디오하고 비슷해. 한가지 다른 것은 라디오에서 노래하고 말하는 사람의 얼굴이 저기 저 네모난 데에 그대로 나오는 거야. 그러니까 사진이 나오는 라디오가 바로 저 텔레비전이라는 거다.”
꼬마들은 수긍이 가는 것 같은 표정이었고, 청년은 그런 꼬마들을 내려다보며 만족스런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어디 그럼 보여줘봐요.”
“그래 그러잖아도 이 아저씨들이 보여주려고 저렇게 차려놓은 거다.
그런데 방송국에서 낮엔 안하고 저녁에만 한단다. 너희들 이따 저녁밥 먹고 꼭 나오너라, 신나게 구경시켜 줄 테니까. 얘들아, 너희들은 구경하고 나서 말이지, 엄마 아빠한테 저 텔레비전을 사달라고 조르란 말야. 알겠지? 저걸 너희들 안방에 갖다놓고 매일 신나게 봐얄 것 아니냐 그치?“
청년은 꼬마들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진득진득한 음성으로 속삭이고 있었고, 꼬마들은 무슨 말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구분이 안 가는 끄덕임을 계속했다.
청년 하나만 차에 남았고 나머지 셋은 골목을 타고 릍어져갔다.
그들은 한 집도 빼놓지 않고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안녕하십니까, 아주머니. 전기가 들어오니 얼마나 후련하십니까. 그래.”
“전기는 잘 들어오나요? 어디 불편한 점은 없으신가요?”
서슴없이 마당으로 들어선 그들은 그지없이 사람좋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이런 식으로 너스레를 떨었다.
“말도 말아요. 뱃속까지 다 환해진 기분이라오.”
“불편하긴요. 등잔 밑에서 어떻게 살았나 싶은 게 다신 그런 세상 못살아낼 것 같은 붕붕 뜨는 기분이라우.”
여인네들은 아무런 경계의 빛도 보이지 않고 이렇게 마음들을 풀어놓았다. 낯설은 외지의 남자들을 모두 전기를 끌어다준 고마운 사람들로 싸잡아보는 여인네들의 착각의 탓도 있었지만 생전처음 전등불을 밝히고 보낸 지난 밤의 감회가 그네들의 마음을 그렇듯 헤프게 만들어놓고 있었다.
“아주머니 이제 전기도 처억 들어왔겠다. 안방에다 극장 하나 멋들어지게 차리시는 게 어떨까요?”
청년은 나긋나긋 말하며 울긋불긋한 카탈로그를 여인네 눈앞에 기세좋게 펼쳐보이는 것이었다.
“안방에 극장을 차리다니?……”
여인은 여기서 말을 멈추고 눈앞에 펼쳐진 요란한 색깔의 종이에 눈을 박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여인의 얼굴은 언뜻 긴장했다.
“이거 텔레비전이라는 거 아녜요?”
여인은 읍내에서 눈여겨 보았던 기억을 다잡으며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발목을 틀어잡은 것처럼 발길을 돌리지 못하게 하던 그 희한한 기계, 텔레비전이라는 것. 그걱을 맘놓고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신세가 얼마나 부러웠던가. 그런데 지금 바로 눈앞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이게 바로 안방극장 텔레비전입니다.”
“하지만 우리 형편에 어디…‥”
여인은 금방 시무룩한 얼굴이 되었다.
“아주머니 그까짓 값은 염려 마십시오. 밤골에 전기가 들어온 걸 축하하기 위해 우리 회사에서 특별히 싼 반값으로 깎아드리기로 했습니다. 아무 염려 마시고 오늘 저녁 회관 마당으로 나오세요. 거기서 텔레비전을 한바탕 틀 테니 구경부터 해보세모 자아, 이만 물러갑니다.”
청년이 양복깃을 펄럭이며 사립 밖으로 사라져버린 다음에도 여인은 텔레비전이 그려진 울긋불긋한 종이를 든 채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것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세 청년이 동네를 한바탕 휘젓고나자 여인네들은 끼리끼리 모여 텔레비전에 대한 길지 못한 상식들에 제각기 적당한 거짓말까지 반죽해가며 수다를 떨기에 침이 말랐다. 그네들의 수다는 하나같이 텔레비전 예찬론이었고, 전기가 들어온 바에야 사람같이 살아보려면 텔레비전은 꼭 있어야 한다는 필연적 명분론에 귀착했고, 그게 값이 수윌찮을 것이라는 경제의 허약성에 부딪쳤다가는 반으로 싹 깎아준다는 청년의 말을 상기하며 다시 기운을 회복했고, 어쨌거나 공짜구경이니 저녁밥 일찍 해먹고 회관 마당으로 나가자고 의견일치를 보았다.
어느 때 없이 이른 저녁을 먹은 사람들이 회관 마당으로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누구보다 세상을 만난 것이 어린것들이었다. 청년들은 곡마단 문지기들처럼 신바람을 내며 자리를 정리하기에 바빴다. 차를 맞바라보고 아이들은 앞에, 어른들은 뒤에 자리를 잡았다.
텔레비전에 어릿어릿 흔들리는 불이 들어오고, 한 청년의 손짓에 따라 긴 쇠막대를 이리저리 움직이자 과연 기계에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와아아!”
함성을 지른 건 앞에 앉은 꼬마들이었다. 꼬마들이 더 좋아한 건 프로가 어린이시간이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이 찰칵 꺼진 것은 어린이시간이 끝나면서였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모두 잘 보셨지요? 이게 바로 텔레비전이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직접 보셨으니까 긴 설명은 안 드리겠습니다. 이제 여러분들도 이 텔레비전으로 안방에 극장을 꾸며 온 식구가 오순도순 더욱 행복한 가정을 꾸밀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거 값이 얼마냐! XXX원입니다. 아 아, 놀라지 마십시오. 잠깐 조용히 하십시오. 그럼 그 돈을 한꺼번에 다 받느냐, 그게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에겐 최고로 길어야 육 개월, 여섯 달 동안 쪼개서 내게 하는데 우리 밤골 여러분들에겐 특별히 전기가 들어온 걸 축하하는 의미로 여섯 달을 더 늘려 일 년, 열두 달, 자그만치 열두 달로 쪼개서 내도록 했습니다. 그럼 열두 달 동안의 오부 이자만 계산해보십시오 여러분들은 반값에 텔레비전을 사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열두 달로 쪼개서 냈을 경우 한 달에 낼 돈이 얼마냐! 단돈XXX원. 이까짓 돈이면 아저씨들이 술 한잔 안 마시면 거뜬히 해결될 것이고, 아주머니들이 돼지 한 마리 더 치면 깨끗이 끝날 돈 아닙니까.”
청년은 여기서 잠시 말을 멈추었다. 어른들은 끼리끼리 뭐라고 숙덕이고 있었고 더러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자아 희망자는 말씀하세요. 당장 댁에다 달아드립니다. 돈은 염려마세요. 다음 달부터 내면 됩니다. 선착순으로 지금 당장 달아드려요. 여기선 더이상 안 틀어요. 우리두 갈 길이 바쁘니까 더이상 못 틀어요. 네에 저기 손드신 분, 어서 앞으로 나오세요. 네에, 그쪽 분도……”
이렇게 해서 열 일곱 집이 신청을 했다. 청년들이 15대밖에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에 두 집은 다음날 달기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예에, 아직도 기회는 있습니다. 밤새 생각해보시고 내일 다시 신청해도 좋습니다. 전기 들어오는 집에 텔레비전 한 대 없는 건 상투틀고 갓 안 쓴 격이고, 비단치마저고리 입고 버선 안 신은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청년은 이렇게 말을 맺었다.
열 다섯 집엔 당장 텔레비전이 설치되었다. 사람들은 제각기 가까운 집으로 떼지어 몰려들었다. 4월이긴 했지만 아직 밤공기는 찬데도 사람들은 마당에 진을 치고 앉았다. 열 다섯 집은 하나같이 텔레비전을 마루에 내놓아야 했다. 그날 밤 태극기가 펄럭이고 애국가가 나올 때까지 자리를 뜬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억시게 좋긴 존 세상이야”
“소리야 공중으로 날아다닌다고 허지만 어찌 온갖 사진이 공중으로 날아다닐 수 있을까”
“참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이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또 그렇다 치더라도 코쟁이들이 또박또박 우리말을 하는 건 어찌된 일이야, 글쎄.'’
어른들이 이런 감상소감을 피력하는 데까지는 좋았다. 그들은 곧 자식들 앞에서 곤궁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아빠, 우리도 텔레비전 사요”
“그래요, 영길이네는 낼 신청한댔어요. 우리도 낼 신청해, 아빠.”
애들의 성화는 아무리 많은 물을 끼얹어도 꺼지지 않을 불길이었다.
“밤이 늦었다. 어서 잠이나 자거라.”
이 말을 들을 아이들이 아니었다.
“싫어, 낼 산다고 약속해야지 뭐.”
“텔레비전 안 사면 잠 안 잘 거야”.
애들은 몸까지 훼훼 저었다.
“영길이네 걸 구경하면 될 거 아니냐.”
“싫어, 싫어. 챙피하게 그게 뭐야.”
“아빤 쩨쩨하게 그게 뭐야 아빤 챙피하지도 않아?”
이건 애비로서 체면이 말이 아니다. 애새끼들이 요모양인데 어쩌자고 저놈의 여편네는 또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건가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시끄러, 요런 소갈머리없는 새끼들아. 썩 가서 잠이나 자!”
드디어 꽤엑 소리를 질러버렸다. 그 서슬에 애들이 미적미적 물러갔다. 그때서야 아내가 발딱 일어서며 쏴질렀다.
“흥, 소리만 지르면 장땡인 줄 알지.”
내일 당장 델레비전을 사겠노라고 당당하게 외치지 못한 가장(家長)들은 거의 이런 궁색한 꼴을 면할 수가 없었다.
청년들은 다음날 아침 햇살이 다 퍼지기도 전에 들이닥쳤다. 그들에게 새로 신청한 수는 어제의 곱이 넘는 서른 여섯 집이나 되었다. 그러니까 밤골에서 텔레비전을 살 만한 집은 거의 다 산 셈이었다. 청년들은 하루종일 동네 골목골목을 부리나케 갈고 다녔다. 해질녘이 되자 밤골에는 쉰 세 개의 긴 장대가 여기저기 삐죽삐쭉 솟게 되었다.
텔레비전을 가진 집들이 반 가까이 되어버리자 형편이 어젯밤과는 영 딴판으로 변했다. 어젯밤처럼 그걸 마루에 내놓지도 않았고, 구경꾼들도 획 줄어버려 구경하는 입장도 만만치가 못했다. 전혀 눈치를 하는 건 아니었지만 어젯밤처럼 태극기가 필력일 때까지 죽치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텔레비전 시비는 아이들한테서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다. 무슨 놀이를 하다가 말다툼이 벌어지면 느닷없이 텔레비전이 사이에 끼어드는 것이었다.
“너 이새끼 까불면 텔레비전 안 보여줄 거야”
한 녀석이 눈꼬리를 세우며 이렇게 대지르면 상대편 녀석은 지금까지
“에잇, 받아라 마린 보이다!”
“좋다 덤벼라 나는 아톰이다!”
애들은 제각기 만화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나무에서 뛰어내리고 바위를 건너뛰고 하는 것이었다. 애들은 옛날의 숨바꼭질이나 땅따먹기 같은 놀이는 아예 집어치워버렸다. 씨름대신 레술링 흉내를 냈고, 아무 때나 “주고 싶은 마음, 먹고 싶은 마음……, “열두시에 만나오” 어쩌고 흥얼거렸다.
아낙데들도 애들 못지 않았다. 얼굴을 맞대면 그저 지난밤에 본 연속극 이야기에 바빴다.
“그 여자가 불쌍해서 어떡허지 그래?”
“그러게 말야 어쩌면 그리도 눈치가 없는지 몰라.”
“모를 수밖에. 남자가 그렇게 감쪽같이 속여버리는데 어떻게 알아?”
“어쩜 그 남잔 그리도 흉물수럽지? 낯짝만 봐도 정나미가 떨어져.”
“그것도 다 그 여우 같은 미스 홍 때문이야 홀딱 홀려버린 거라니까”
“그렇다니깐 고 여우 떠는 꼴좀 봐 금방 간을 홀딱 뻬먹을 것처럼 눈웃음 살살 치는 것 하고……”
“그런 남편 믿고 어찌 살지?”
“이 세상 남자가 어디 다 그럴라고”
“얼래, 남자처럼 믿을 수 없는 것도 세상에 또 없어. 계집이 살살 꼬리치는데 싫어할 남자 어딨어.”
“그렇담 우리 애아범들도 그럴까?”
“아따, 걱정도 팔자다. 요런 흉악한 촌구석에 미스 홍이 어딨어서.”
“아녀, 그런 것은 아녀. 읍내에 미스 홍 같은 계집들이 한둘인 줄 알어? 그런 짓 백날 하고 다녀도 우린 캄캄밤중이지 별수 있어?”
“그도 그렇구먼.”
“혹시 우리가 여태 까맣게 속아온 건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지.”
“안 되겠네, 오늘 저녁 당장 따져봐야지.”
“나도 그래야겠어.”
“나도 몸살나 죽겠네, 언제 저녁까지 기다려 그래.”
이처럼 화제는 비비틀려셔 엉뚱한 방향으로 불이 붙곤 했다. 그래서 가당찮은 부부싸움을 터뜨리기도 했다.
“당신도 저 남자처럼 날 속이고 있는 건 아니우?”
“아이고, 나도 저런 팔자나 한번 돼봤음 좋겠네.'’
남자는 심드렁하게 대꾸했고, 여자는 남편의 그런 미지근함이 마음에 걸렸다.
“아니, 무슨 말이 그 모양이오? 저런 꼴이 부럽다니, 지금도 날 속이고 있는지 누가 알아”
남자는 아내의 말에서 섬뜩함을 느꼈다. 농담이 아니라 가시가 돋혀 있는 것이다. 괜히 어물거리다간 그대로 뒤집어쓸 판이었다. 그렇다고 벌컥 화를 내기도 민망한 일이었다.
“누가 정말 그렇대나, 그냥 농담이지.”
“누가 알아요, 사람 속을. 아무래도 당신 좀 이상해요 어물어물하는 게.”
아내는 정색을 하고 덤비고 있었고, 남편은 급기야 화가 치밀어올랐다.
“아니, 요런 싸가지없는 여편네 좀 보소、 저놈의 텔레빌 당장 팍 부셔버려야지, 어디다 대고 지랄이야, 지랄이.”
남편이 벌떡 일어나며 텔레비전을 곧 걷어찰 기세였고, 아내는 황급히 남편을 붙들며 만족스런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만 했기 망정이지 텔레빌 깨버렸음 어쩔 판이었어. 그래.”
“우리 애아범은 그래도 텔레비전은 아까왔던 모양이지. 재떨이를 벽에다 내던지더라니까.”
“지랄하고 나만 젤 손해봤네. 눈깜짝할 새에 팍 쥐어박고 말잖아.”
“히히히…… 창수아범이 본래 몸이 날래잖은가베. 성질은 좀 칼칼허구.”
“어쨌거나 속시원하지 뭐야 우리 애아범들은 아무 탈 없으니까.”
이러면서 아낙네들은 키들거리고 신바람이 나는 것이었다.
아낙네들은 이제 퀴퀴하고 질척질척한 느낌의 생활 속의 이야기들을 거의 잊어버리고 있었다. 누가 누구보다 미남 탈랜트고, 어느 가수가 누구보다 노래를 잘 부른다고 우김질하는 것이 한결 재미가 고소했던 것이다.
텔레비전바람은 좀체로 잠잘 줄을 모른 채 더러 가정불화까지 일으키며 꾸역꾸역 밤골을 먹어가더니만 3개월쯤 지난 7월이 되어서는 백 개가 넘는 안테나가 서게 되었다.
지난 해와는 달리 무더운 밤인데도 당산나무 밑에는 모기불이 지펴지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담배불이 빠알갛게 타고 어른들이 나누는 이야기 소리가 개구리 울음소리에 섞여 두런두런 들리던 밤이 없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앞개울의 어둠 속에서 물창을 튀기는 소리와 함께 여자들의 간지러운 웃음소리도 들을 수가 없었다. 반딧불을 쫓는 애들의 왁자한 외침도 자취를 감추었고, 감자나 옥수수 추렴을 하는 아낙네들의 마실도 씻은 듯이 없어졌다 집집마다 텔레비전 앞에 매달려 있는 탓이었다.
청년들은 매달 같은 날짜에 나타나 또박또박 돈을 받아갔다. 처음 팔아먹을 때와는 달리 하루만 늦어도 이자를 가산하겠다고 으름짱을 놓았고, 한달이 늦으면 그동안 낸 돈은 무효로 하고 물건을 가져가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런데 이 말에 꼼짝을 못할 것이, 읽어보지도 않고 도장을 찍어주고 받은 월부계약서란 것에 그 조항들이 똑똑히 적혀 있었다. 그래서 거의 매일이다시피 돈을 빌리러 골목을 헤집고 다니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았다.
8월로 접어들면서 청년들과 다툼이 자주 벌어졌다. 처음 한두 달은 어찌어찌 날짜를 맞췄는데 달이 갈수록 돈물기가 힘에 부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나중에 구입한 사람들로, 에라 외상인데 그까짓 돈쯤 어떻게 변통이 되겠지. 하는 배짱을 부린 것이었다.
“담달에 한몫 내면 될 거 아뇨,”
“글쎄, 안 된다니까요,”
“야 이잘 붙여준다는데도 안 돼?”
“똑같은 말 자꾸 해봤자 입만 아파요, 텔레비전이 없어서 못 팔아먹는 판에 다 소용없는 소리요. 비키시오, 떼갈 테니.”
청년이 마루로 올라서려 했고, 주인이 청년을 나꿔챘다.
“정 이러기야, 이거?”
주인이 곧 쥐어갈길 듯이 대들었고,
“기운 좀 쓰시나본데 어디 쳐보시지. 요새 사람치는 놈들 잡아들이느라고 경찰서 유치장문 활짝 열어놨는데 어서 쳐보시라니까.”
주인과는 달리 청년은 유들유들한 태도로 비웃고 있었다.
주인은 그만 미칠 것 같은 심정이 되고 말았다. 텔레비전을 빼앗기고 두 달 낸 돈까지 꼼짝없이 떼일 형편이었던 것이다. 돈도 돈이지만 텔레비전이 있다가 없어지면 이게 무슨 꼴인가 마누라한테, 애들한테 체면이 말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동네 망신은 또 얼마나 큰가. 그냥 기분 같아서는 저놈의 뺀질뺀질한 낯짝을 후려갈겨버리면 속이 시원하련만 그러지도 못하고……
청년은 이미 싹수가 노란 걸 알고 있었다. 남들이 산다니까 기죽기 싫어서 덥썩 일 저질러놓고 똥줄이 타는 것이다. 지금 기분으로는 다음 달에 한몫 낼 것 같지만 아서라 안 속는다, 안 속아. 돈이 거짓말 시키지 어디 사람이 거짓말 시키더냐. 이런 가난뱅이들일수록 더욱 애지중지하게 마련이니까 3개윌쯤 썼다고 한들 신품이나 마찬가지야 새로 사는 것들도 숙맥이긴 매일반이니 더 속 썩히지 말고 물건 가져가는 거다.
청년의 이런 배짱 앞에서 텔레비전을 지킬 재간은 없었다. 그래서 열서너 집이 고스란히 수난을 당했다. 텔레비전이 실려나갈 때는 일대 소란이 벌어졌다. 애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울부짖었고, 화가 솟을대로 솟은 주인은 애들을 마구 때리며 소리질렀고, 안주인은 그런 남편에게 대들며 악다구니를 썼다.
한편에서 이런 소동이 벌어지는 것과는 아랑곳없이 살림살이가 넉넉한 열 서너 집에서는 전기용품 들여놓기 시합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이 시샘을 하듯 다투어 장만하고 있는 것은 밥통이었다. 그들은 이미 여름이 되면서 선풍기를 들여놓느라고 서로 신경을 곤두세운 일이 있었다. 그 선풍기라는 것도 참 희한한 기계였다. 부채로는 도저히 맛 볼수 없는 기막힌 시원함을 주었던 것이다. 땡볕 속에서 농약을 뿌리거나, 채전(菜田)에 엎드렸다 들어오면 전신은 땀으로 미역을 감고 더위는 헉헉 목을 치받고 올랐다. 그런 때면 으례 옷을 훌러덩 벗어젖히고 찬물을 끼얹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손목이 아프도록 부채질을 해보지만 땀은 가슴으로 등줄기를 줄줄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선풍기는 그게 아니었다. 스위치를 돌리기만 하면 금방 쏴아 쏟아져나오는 바람이 찬물을 끼얹었을 때의 그 시원함을 되살려주며 땀을 말끔히 걷어가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었다. 선풍기를 틀어놓으면 모기의 극성이 한결 누그러졌다. 그 신통한 선풍기바람이 모기란 놈을 제멋대로 날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선풍기를 가진 사람들은 이런 알톨같은 맛도 맛이었지만 한편으론 자기들도 대처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렇듯 편리하고 근사한 전기용품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 고소한 맛으로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젠 전기밥통이 여자들을 환장하게 만들고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 먼지 뒤집어써가며 짚단을 풀어 땔 필요가 없었다. 뜸을 들이자고 몇 번씩 솥뚜껑을 열어 뜨거운 김 속에 손을 처넣어 밥알을 집어내는 고역을 치르지 않아도 되었다. 전기를 꽂으면 빠알간 불이 반짝 들어와서는 제대로 보글보글 꿇었고, 불빛이 바뀌면서 딱 먹기 좋게 뜸까지 들이는 게 아닌가. 밥국물이 넘치길 하나, 밥이 설기를 하나, 여인네들은 그저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는 것이었다
“이리 존 세상을 몰랐으니 여태 헛살았지 뮈야.”
“누가 아니래, 나도 당장 사야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냐.”
“편하긴 참말로 편해서 존데, 그게 값이 좀……”
“아유, 무슨 걱정야 월부 아냐, 월부.”
“월부가 아니래도 그렇지. 마누라가 모처럼 고생을 좀 덜게 되었는데 까짓 돈 땜에 벌벌 떠는 남자라면 알아볼 쪼지 뭐야.”
“그렇구말구 그런 남자하고 살 섞고 살아봤자 뻔해. 그건 부부가 아니라 종노릇인 셈이라구.”
“허지만 그런 게 자꾸 늘어나면 전기값도 더 물어얄 것 아냐.”
“아이고 저런 궁상스런 여편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라, 죽기 전에 신간 한번 편해지는데 까짓 전기값 더 무는 게 무슨 대수야 그래.”
이렇게 해서 전기밥솥은 텔레비전 옆에 의젓하게 자리를 잡아갔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잔치집이 생겼지만 일손이 예전과 같지 않았다.
누구도 예천과 같이 밤늦게까지 일을 도와주려 들지 않았다 날이 어둑어둑해지자부터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슬슬 자리를 뜨기 시작한 것이다. 주인의 입장에서는 품삯을 주는 것도 아닌데 붙들어 앉힐 수 없는 노릇이었다. 주인은 전에 없던 이 야릇한 변괴를 얼핏 알아차리지 못했고 평소에 앙큼한 짓 잘해서 미워지던 딸년이 텔레비전 때문이라고 일깨위서야 그렇구나 싶었고, 델레비젼 없는 집만 골라 일손을 모았고 잔치준비를 하는데 생전처음 품삯을 지불하기로 한 주인은 마당 감나무 잎에 내려앉기 시작한 가을의 썰렁함이 그대로 가씀에 옮겨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샛터댁은 손을 재게 놀렸다. 빨리 설겆이롤 마쳐야 했다. 조금만 있으면 주말연속극을 시작할 참이였다. 그 연속극은 어찌면 그리도 아슬아슬한 게 오금을 조이게 하는지 몰랐다. 남편이 들으면 골통 박살날 얘기지만 그 훤하게 잘생긴 미남배우는 거의 밤마다 샛터댁의 잠자리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구 미남배우와 한이불 속에 들어있는 꿈을 꾸는 것이다.
“이 미친년이 왜 이래. 지까짓 촌년이 어쪄자고 이래.”
샛터댁은 소리내어 자신을 꾸짖기도 했다. 그러나 그 배우의 웃는 얼굴이 언뜻언뜻 떠올랐고, 그 연속극 시간만 다가오면 마음이 설렁거려 일손이 헛돌기 일쑤였다. 다른 여자들과 모여앉은 자리에서 그 배우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나올 때도 샛터댁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마음과는 달리 도무지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샛터댁은 그릇들을 대층 건져내놓고 부엌을 나왔다. 설겆이물은 이따가 버리거나 내일아침에 쏟아버려도 그만일 일이었다.
선전이 끝나고 곧 극이 시작되었다. 샛터댁은 아랫목에 엉덩이를 찰싹 붙이고 앉아 텔레비전 화면을 응시하며 침을 꿀떡 삼켰다. 지난주일의 마지막 장면이 키스를 하려다가 부자집딸인 애인한테 덜컥 들킨 데까지 였다.
그 잘생긴 남자는 두 여자 사이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괴로와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한 여자는 가난하고 다른 한 여자는 부자집딸이었다. 두 여자는 누가 더 낫다고 할 수 없을 만큼 예쁜 얼굴이었고, 똑같이 그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부자집의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샛터댁은 언제부턴가 자기가 꼭 가난한 여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 남자가 부자집딸에게 조금만 잘해주게 되면 파르르 화가 나기도 했고, 좀더 심하면 욕을 쏴대기도 했다. 틀림없이 자신이 당하는 것 같은 서운함과 분함이 가슴에서 엇갈리고 있었다.
키스를 하려다 들켜 엉거주춤 서 있는 두 남녀 앞에서 부자집딸이, 비겁해요. 더러워요, 이럴 줄 몰랐어요, 정말 몰랐어요, 외치며 뒤돌아서 뛰어가고 남자는 이름을 부르며 쫓아가려다 말고 엉거주춤 섰는데 가난한 애인과 눈이 마주쳤다. 그와 동시에 여자가 울음을 터뜨리며, 가세요, 어서 가보세요, 난 상관없어요. 하며 부자집딸과는 반대 방향으로 뛰어간다. 남자는 이쪽 저쪽을 두리번거리며 울상아 되고…… 샛터댁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넋을 뻬고 앉아 있었다.
샛터댁은 장면이 바뀔 때마다 얼굴을 찡그리기도 했고, 혀를 끌끌 차기도 했고, 흡족하게 웃기도 했고, 엉덩이를 들썩 올리기도 했다.
“엄매 나 목말러.”
국민학교 3학년인 아들이 화면에 눈을 둔 채 말했다.
“……”
“엄매 나 목마르다니까!”
아들의 목소리가 좀더 커졌다.
“하 엄마! 나 목마르단 말야!”
아들이 꽤엑 소리를 질렀다. 그때서야 샛터댁의 고개가 아들 쪽으로 획 돌려졌다. 그런 그네의 눈길이 매서웠다.
“아 니놈이 목타면 니놈 손으로 떠다 처먹지 어디다 대고 악을 써!”
샛터댁의 외침과 동시에 주먹이 아들의 머리통을 쥐어갈겼다. 그 서슬에 아들이 발딱 일어섰다.
“엄만 텔레비전이라면 미치고 환장이야.”
아들이 투덜거리며 방문을 차고 나갔다. 그리고 아들의 황급한 외침이 들린 것은 잠시 후였다.
“엄마, 불이야! 불났어!”
“?……”
샛터댁은 어리둥절했다. 어디서 들리는 소린지 잠시 분간이 안 갔다.
“엄마! 불이야 불!”
아들이 문을 박차고 뛰어들었다. :
“부울? 어디냐, 어디!”
샛터댁이 방을 뛰쳐나갔다.
불길은 부엌을 다 채우고 넘쳐나 차마 밑을 핥고 있었다.
“달수아부지, 달수아부지, 불이요, 불! 불이 났소.”
샛터댁은 펼쩍펄쩍 뛰며 남편을 찾았다. 아직 돌아올 시간이 아니었다.
“달수야 달수야!”:
방으로 뛰어들면서 외쳤다.
“엄마, 나 여깃어, 여기?”
아들이 여동생 손을 잡고 마당가에 와들와들 떨며 소리쳤다.
“아, 얼렁 사람들 불러. 불끄라고 사람들 불러!”
되돌아나온 샛터댁이 뒤집혀진 눈으로 울부짖었다.
“불이야! 불이야!”
“사람살려! 볼이야!”
샛터댁의 째지는 부르짖음과 아들의 울먹이는 외침이 어두운 골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어쩐 일인지 사람들의 기척은 들리지 않았고, 샛터댁이 사립을 떠다밀고 마당으로 뛰어들어 외쳐서야 비로소 방문이 열리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손에손에 물통을 들고 샛터댁의 집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불길은 처마밑을 빙그르 돌아 지붕으로 번진 뒤였다.
“살림살이라도 좀 꺼내봐야지!”
“틀렸어. 저 불길 좀 봐!”
“딴 데로 번지지나 못하게 해.”
“아니, 이 꼴이 되도록 뭘 한 거야.”
불길은 절망적이었다. 사람들은 가져온 물을 열심히 끼얹기는 했지만 푸시식푸시식 순간적으로 연기만 일으킬 뿐 불길은 점점 거세어갔다. 사람들은 더 물을 길어오려 하지 않았다. 이 눈치를 챈 샛터댁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내년이 미친년이여. 내년이 미쳤어. 나같은 년은 죽어야 돼.”
샛터댁은 불길을 향해 내달렸다.
“잡아!”
“저런, 저런……”
남자들이 쫓아가서 간신히 샛터댁을 붙들었다.
“놔요, 놔! 난 죽어야 돼. 죽어야 돼. 그까짓 게 뭐라고, 난 죽어야 돼에!”
눈을 허옇게 까뒤집은 샛터댁은 무서운 기운으로 발버둥질치며 한사코 불길을 향해 내닫을 기세였다.
<197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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